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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10:1-6
성경본문내용 (1)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2)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3)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5)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6)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강설날짜 2014-08-27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말씀:고린도후서 10:1-6

 

고린도후서 10-13장 말씀은 바울이 자신을 대적하는 고린도 교회의 대적자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고린도 교회를 방문할 것을 희망하는 말씀과 마지막 인사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7장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8-9장에서는 자신의 권면을 받아들여 자신에게 호의적인 자세를 가진 자들에게 연보에 대해서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주 협력과 화해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10장부터는 다시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8-9장에서 협력과 화해의 분위기에서 10장에 들어오면서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주 대결적인 분위로 바뀌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투도 강경한 어조로 바뀌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고린도후서 10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10장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1절에서는 방어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지만, 12-18절에서는 아주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서 바울은 육체적인 무기로 싸우는 대적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을 파하는 우리의 싸움의 병기가 어떤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무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우리의 싸우는 병기가 무엇인지 배우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진을 파하고 승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보면 “너희를 대하여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하고”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너희를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10절에 보면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바울을 두고 ‘그 편지는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고 평가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곧 그들은 바울의 외모를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외모를 보고 그의 권면의 말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런 말을 하는 그들을 어떻게 권면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친히 너희를 권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평가는 바울 입장에서 보면 아주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으로 대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누구보다도 강하고 혈기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이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잡아 죽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앞장을 섰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오기 위해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인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한 자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기 자신을 주님께서 오래 참아주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이 오래 참아 주심의 은혜 때문에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주님을 증거 하는 자로서 사람들을 만날 때에 그리스도의 온유와 관용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연약하고 말이 어눌했지만 그의 편지는 힘이 있고 강했습니다. 왜 그의 편지는 힘이 있고 강했습니까? 그들을 만났을 때에는 담대하게 만나지 않게 되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곧 심판의 만남이 되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인 것입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로부터 육체대로 행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우리를 육체대로 행하는 자로 여기는 자들을 대하여 내가 담대히 대하려는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나로 하여금 이 담대한 태도로 대하지 않게 하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육체대로 행한다는 것’은 약하고 보잘 것 없기에 이런 비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은 자신들의 능력들을 과시하면서 보통사람들은 감히 따라 올 수도 없는 경지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자기들이 스스로 비교하고 헤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자기를 칭찬하는 자로 더불어 감히 짝하며 비교할 수 없노라.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12). 이들은 지혜가 없는 자들인데도 지혜가 없는 자들의 동조를 받아서 바울은 육체대로 행한다고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그들에게 우리가 육체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육체대로 싸우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에서의 싸움은 힘의 싸움입니다. 힘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취하는 것이 육체대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종교적인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이 행할 수 없는 신기한 능력과 기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함부로 따라 올 수 없는 고행과 기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자신들을 신성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육체적인 싸움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 말씀을 보면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단의 역사도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좋아 하고 따르는 자들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낸다고 광고한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바울은 기적이 일어날지는 자기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때그때 시키시는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4:8-18절 말씀을 같이 보겠습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 성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고 있는 중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는데 바울이 그를 주목하여 보니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를 보고 “네 발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일어서 버린 것입니다. 그 과경을 보고 그곳의 사람들이 놀라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왔다고 하면서 바나바는 쓰스 즉 제우스라고 하고, 바울은 말을 하기에 허메 즉 헤르메스라고 하면서 제우스 신당의 사제들이 소와 화관을 가지고 그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들어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육체에 있어 행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자신도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에게 이런 능력이 나오면 자신의 옷을 찢고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과 똑 같은 사람이라고 드러내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자꾸만 자신을 신성화 시키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옷도 다르게 입고, 목소리도 다르게 하고, 걸음걸이도 다르게 하고, 보통 사람들은 따라 올 수도 없는 금욕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위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을 바울은 어떻게 보는 것입니까? 육체대로 싸우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 가운데 있으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는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쳤습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라면 베드로 일행 주위로 몰려 들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였습니다(행 3:12). 그리고 16절에 보면 이 사람이 일어난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로 나온 믿음이 일어나게 하였다고 증거 하였습니다.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이제 육체대로 싸우는 모습과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 모습이 비교가 되십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여호와를 만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19:11-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지만 그 바람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에 지진이 일어났으나 역시 그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그 불 가운데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리면서 기름을 부을 자들을 말씀하시고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무엇으로 이기고 싶은 것입니까? 내가 예수 믿는 자로 폼 나게 이기고 싶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 믿는다고 놀리는 자들은 태풍으로 날려버리든지, 지진으로 삼켜 버리든지, 불로서 태워버리든지 하고 싶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9:51-56절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과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살라버리기를 원한다고 하다가 예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육체대로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육체대로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싸우는 것입니까? 4-5절을 보면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자신의 개인의 권능과 경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강력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마귀의 견고한 진을 부수어버리는 그 무기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모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만 능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미련하고 어리석고 약하다고 버린 것이 십자가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에 보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무기란 세상에서 볼 때 아무런 무기도 안 되고 힘도 없는 그래서 사람들이 싫다고 침 뱉고 고개를 가로저은 그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바울 사도는 바로 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을 파하고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이론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론들은 한 마디로 인간이 주체가 되어 있는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론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인 것입니다. 인간은 다 스스로 신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만을 다 파하고 부수어 버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을 파하는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복음을 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이론을 다 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 복음에 공격을 당하여 무너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도로 우리의 무기를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갖추어야 하는 무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제대로 복종 하였습니까? 6절을 보면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의 복종이 온전하여 질 때에 모든 복종치 아니하는 것들에 대하여 벌하려고 예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는 고린도 교회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기 전에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또한 오고 오는 모든 당신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아니하면 심판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복이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요, 동시에 성도의 무기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볼 때는 미련한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이며, 우리의 무기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의 구원이며, 우리의 영적 전투의 무기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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