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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갈 3:6-9
성경본문내용 (6)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8)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강설날짜 2011-09-14

2011년 9월 14일 한결교회 수요모임 강설

갈라디아서 제15강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말씀 : 갈 3:6-9

오늘날 신앙생활하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나는 아브라함의 아들들이요 딸들이다”라는 사실을 늘 인식하면서 신앙생활하십니까? 아니잖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 보다 더 크고 중요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고 딸들”이라는 정체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이 “아브라함의 아들됨”과 “하나님의 자녀됨”이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인데(갈 3:29; 4:7 비교), “하나님의 자녀됨”이라는 정체성이 너무 그 의미가 풍성하고 광대하기 때문에 사실 “아브라함의 아들됨”이라는 정체성이 거기에 묻혀서 우리에게 큰 관심사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신약성경이 완성된 시대를 사는 신약 성도들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1세기 당시 초대교회 상황에서는 그렇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아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1세기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대한 문제였고,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에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내가 아브라함의 아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갈라디아 교회가 안고 있었던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말했을 때 바울이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교훈하는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6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 3:6) 바울은 앞서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경험에 호소했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듣고 믿음으로냐 율법의 행위로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경의 예를 들어서 호소합니다. 누구를 예로 드느냐 하면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 거짓교사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때마다 항상 누구를 예로 드느냐 하면, 아브라함을 예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거짓교사들에게 있어서 이 아브라함은 자신들의 조상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신실함과 순종으로 특징 지워지는데, 그러한 신실함과 순종이 언약의 축복을 누리는 공로로 하나님께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6장 5절에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창 26:5) 율법이 주어지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지켰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의 거짓교사들은 바로 이러한 본문들을 근거로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누리려면 믿어야 할뿐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모세 율법을 신실하게 순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거짓교사들은 아브라함을 근거로 할례를 주장했습니다. 창세기 17:13-14절을 보십시오.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14)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창 17:13-14) 거짓교사들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언약의 당사자이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아브라함의 자손만이 언약의 계승자요, 언약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고 거짓교사들은 생각했는데, 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유일한 길이 바로 할례인 것입니다.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그 언약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언약백성에서 끊어지면 구원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구원받느냐 받지 못하느냐의 문제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짓교사들은 이러한 근거를 가지고서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켜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그래야 약속된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거짓교사들의 주장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아브라함 자신의 신실함이나 행함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의 명백한 증거로 바울은 창세기 15장 6절을 인용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이 구절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아브라함이 아무리 기다려도 하나님이 자식을 주시지 않자, ‘다메섹 엘리에셀’이나 상속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장막 밖으로 이끄셔서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그렇게 뭇별을 보여주시면서,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도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아브라함이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의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그의 행함이나 순종이나 그 어떤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아니 아브라함의 믿음이 공로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로마서 4장 2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로마서 4장은 오늘 갈라디아서 말씀과 사실상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의미를 더 자세하게 풀어쓴 말씀입니다.)

“(2)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3)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4)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5)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7)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8)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2-8)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말은 자랑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나에게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이나 공로가 없음을 인정하고, 오직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감사함으로 거저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은 바로 이러한 믿음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이 믿은 것 하고, 우리가 믿은 것하고, 그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릅니다. 그러나 결국 본질은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그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고, 그 씨는 결국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 아브라함이나 동일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아브라함이나 우리나 동일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기 때문에, 우리 이방인 신자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아브라함과 피가 하나도 안 섞인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방금 찾아본 로마서 4장의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11)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12)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롬 4:11-12)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는데, 이것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믿는 무할례자들의 조상이 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6-17절도 보십시오.

“(16)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17)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롬 4:16-17)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입니다. 때문에 아브라함을 우리가 말할 때 뭐라고 말합니까?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또는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서 천하만민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무조건 너 아브라함과 너희 자손에게만 복을 주겠다. 누구든지 복을 받고 싶은 이방인들은 아브라함 아래로 들어와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처음부터 이방인들도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그 축복에 참예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창 17:4-5 참조). 이것이 하나님의 창세전의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미리 알았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끔씩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 창세기를 기록할 때,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이 놀라운 계획을 미리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율법이 생기기 430년 전에, 그리고 할례를 받기도 전에, 벌써 이 놀라운 복음을 전해 들었고, 이제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약속이 성취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최종 결론이 9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즉 이방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가 참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참 이스라엘 백성이며, 아브라함의 언약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릴 언약의 축복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앞서 읽어보았던 것처럼 유업을 이을 후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마치 이삭이 아브라함의 모든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재산을 유업으로 물려받았듯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모든 풍요로움과 축복들을 물려받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 유업에 대해서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는 성령을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4) 그리고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1) 성령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받는 이러한 놀라운 축복이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과거 구약시대처럼 아브라함의 혈통적인 자손이거나 아니면 할례를 받은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언약 시대 아래서는 이 기준이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냐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냐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아무리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할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팔레스틴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하고 계속해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모여오고 있는 것을 갖다가 구약의 성취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온 땅으로 흩으신 이스라엘을 다시금 이스라엘 땅으로 모으시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해 주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온 열방을 심판하고 통치하게 하시며, 그리하여 온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게 되는 날이 임할 것이라고 여러 군데 약속되어 있는데, 지금 이 약속이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서 성취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이스라엘 민족이 여전히 하나님의 택함 받은 언약백성으로서 지금도 존재하는 것처럼, 그들을 통해서 성취하실 구약의 약속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처럼, 말하는 경향들이 세대주의나 일부 복음주의 목사들, 학자들 사이에서 주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를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교회라고 하면서 서로 간에 교제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스라엘이 지금 독립해서 이스라엘 땅을 회복한 것이 구약의 약속의 성취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물론 로마서 11장에 근거해서 여전히 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미래가 열려있고, 또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이방인의 수가 채워지면 이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대대적인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팔레스틴 땅에 독립해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자꾸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성전이 AD 70년에 무너졌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지만, 예수님이 참 성전으로 오셨기 때문에 더 이상 성전이 무의미한 것입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루살렘 땅이 거룩한 땅입니까? 거기로 가는 여행을 성지순례라고 하는데, 정말 거기가 성지입니까? 아닙니다. 그냥 일반적인 도시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도시일 뿐입니다. 다만 기독교의 역사유적이 있다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예루살렘 성은 무엇입니까? 요한계시록 21장을 보시면 하늘에서 예루살렘 성이 내려오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어린양의 아내,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 성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물리적이고 혈통적이고 의식적인 것들이 다 예수님 안에서 성취되어서 예수님과 교회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팔레스틴 땅의 이스라엘 민족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28)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교회가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16에 보면 갈라디아 교회를 일컬어서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면,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갈 6:16)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자가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요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의 자손입니까? 다 마귀의 자손입니다.

“(37)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38)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39)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40)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41)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 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 (44)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37-41,44)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순수혈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고, 반대로 세리나 창기들을 아주 쓰레기 취급을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외적인 자격과 율법을 지킨 것을 공로로 내세우고, 그것을 특권으로 삼고서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 앞서서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독사의 자식들아 하면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라고 강하게 책망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끊임없이 외적이고 의식적이고 혈통적인 것에 집착하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아비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아비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마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는 것은 다 마귀의 아들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리고 설사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해도, 갈라디아 거짓교사들처럼 실질적으로 할례나 율법의 행위들, 여러 가지 외적인 자격과 조건을 의지하거나 그것을 자랑한다면 그것 역시 마귀의 아들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어떤 자들이냐 하면, 자기에게는 자랑할 것 없음을 아는 자입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자격이 없고 공로가 없으며, 오직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아는 자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자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었기 때문에 동일하게 언약하고 허물진 형제들에게 관용하며, 용서하고, 도리어 사랑으로 품고 섬기는 자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거나,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서 남을 판단하는 것, “나는 이러 이렇게 사는데 저 사람은 왜 나처럼 못하냐?” 판단하고, 정죄하는 자는 바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의 행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십시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십니까? 정말 늘 나에게는 자격이 없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이렇게 구원받아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늘 깨닫습니까? 그 십자가 은혜만을 의지하고 그 십자가 사랑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며, 그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찬양합니까? 아니면 혹시 우리가 나의 행함을 의지하거나 그것을 공로로 자신을 자랑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업적을 이루었을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나의 공로는 하나도 없다고 고백하십니까? 만일 우리가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정말 내가 아브라함의 아들인지 마귀의 아들인지 고민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늘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쓰고, 또 여러 가지 선행을 행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전적부패와 무능력을 깨닫고, 자신의 자격 없음으로 인해서 늘 애통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래서 십자가만을 의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해서 항상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참된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도 때때로 넘어지고 자빠져서 마귀의 아들의 행사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서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자로 점점 성화되어져갈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고 자기 고집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는 삶을 살아가면, 그 사람은 마귀의 아들인 것이고, 그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 자신을 잘 돌아보고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알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오직 예수님의 은혜만을 의지해서 사는 우리 모든 한결 지체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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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 2012년 디도서 공부(전체 개요) file 디도서 손재호 2012-03-21 3239
568 [레위기 1장] 예물과 헌상 file 레 1:1-2 최상범 2014-03-26 3203
567 [갈라디아서 4장] 약속의 자녀의 의무 file 갈 4:21-5:1 최상범 2011-11-09 3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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