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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말 3:13-18
성경본문내용 (13)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14)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15)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16)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17)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18)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강설날짜 2012-03-07

2012년 말라기 공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말씀:말라기 3:13-18

 

지난 시간에 우리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구체적인 예로 십일조를 들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복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특히 이 말씀을 통해서 십일조의 참된 의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지난 시간에 이어서 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오늘 말씀도 역시 논쟁으로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라기에서 이런 논쟁을 많이 보아 와서 이제는 익숙할 정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시니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1:2) 하면서 따졌습니다. 너희가 나를 멸시하였다고 하니 역시 ‘언제 우리가 하나님을 멸시하였습니까?’(1:5)하며 대드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괴롭게 하였다고 하니까 ‘우리가 언제 괴롭게 하였나이까?’(2:17)하며 대드는 것입니다. 내게로 돌아오라고 하니까 ‘우리가 언제 떠났습니까? 돌아오는게 뭡니까?’(3:7) 하며 대드는 것입니다.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소통의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죄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주가 되시기에 피조물로서는 그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면 ‘예! 알았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실 때 ‘왜 그러십니까?’ 하면서 따질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잘 하십니까? 아니면 주님의 말씀에 왜 그런가 하면서 시비 걸며 따지기를 잘 하는 것입니까? 우리 인간이 언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에 토를 달고 따지게 된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고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다 이러합니다. 그 결과가 바벨탑에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바벨탑을 쌓다가 언어가 혼잡하여 서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답답함이 온 세상에 가득합니다. 하나님과 사람과도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이 소통의 문제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말씀하시고 이루어내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고 또한 나는 듣지 못하였다고 하는 핑계가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20절에 보면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 1:20). 그러므로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13절에 보면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였다”고 외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며 대드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말라기 선지자는 무엇이 여호와를 대적한 것인지 그들에게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의 무엇이 여호와를 대적하는 것입니까? 14-15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헛되고 만군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슬프게 행한다는 것은 금식기도하며 울며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부지런히 지키고 금식도하고 울며 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하여도 복은 고사하고 고생만 하고 있는데 그렇게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본 2:17절 말씀에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계시냐 함이니라.” 이 말씀은 한마디로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시편 73편과 하박국서를 통하여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함께 보았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이런 생각이 없습니까? 어떻게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은 고난을 받고 악인이 형통하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그래도 섬긴다고 섬겨왔는데 세상 사람들보다 나은 복을 받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더 고생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이런 질문에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렇게 부조리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의 다스림을 믿으며, 또 하나님이 결국 악인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고 그 심판이 더딜지라도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이 없는 자는 결국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대적의 말이 바로 15b절 말씀입니다. 15b절을 다시 보면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팽배하여 있으니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이스라엘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지금 온 세상이 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결코 세상이 이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지식이 없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당하고 사는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또 작은 문제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억울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세상살이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들의 억울함만 하소연하면서 공의의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원망을 듣는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제가 이런 원망을 듣는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아니 수백 번씩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심판하였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향하여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조롱하였습니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내려 와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믿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저들이 알지 못하고 저러니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하셨습니다(눅 23:34). 지금도 이러한 조롱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며 하늘을 향하여 삿대질과 욕을 퍼붓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이겠습니까? 온 세상이 이런 원망과 아우성들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원망을 하는 자들 중에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의 아삽이나 하박국 선지자의 경우에도 이런 질문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듣고서는 믿음으로 기다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접하시는지를 보겠습니다. 16절을 보면 “그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온 세상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들 하나님이 없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대적하여도 그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피차 말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말이기에 믿음으로 살자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피차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3:12-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오늘 피차 권면하라고 합니다. 오늘날 같이 불신앙이 팽배한 세상 속에서 피차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조차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모습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까지 피차 권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매일 피차 권면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요, 교통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는 날마다 모여서 피차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위를 하든지 주님께서 다 들으시고 기념 책에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념 책이란 기억하여 기록한 책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시고 기록하시는 책에 대하여 모세도 말하였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우상죄를 범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용서하여 주시지 않으신다면 자신의 이름도 책에서 빼어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출 32:32). 이것은 모세가 목숨을 걸고 하는 중보인데 여기서 책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나 다니엘서, 시편과 누가복음과 요한계시록에서도 책에 대하여 나옵니다.

 

책에 기록이 된다는 것은 변명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슨 약속을 할 때 계약서를 쓰고 녹음까지 합니다. 다른 말 못하도록 그렇게 하고 심지어 비디오로 촬영까지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도 다른 말 하지 못하도록 녹음도 하고 녹화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여호와를 경외한 말인지 대적한 말인지 그것을 모르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고대에서 가장 정확한 증거가 된다는 뜻으로 책에 기록이 되기에 어느 인간도 나는 그런 말한 적이 없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억 안 나는데요’하는 그런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말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인지 아닌지 늘 살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2-37절을 보면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을 때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다고 비방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말로서 예수님을 거역하는 자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용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거역하면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이 말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의 말씀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승천 하셔서 친히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령이 임한 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예수님을 저주할 자라고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로 나옵니다. 악한 것이 가득한 자는 악한 말이 나오고, 선한 것이 가득한 자는 선한 것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말로 대적하는 것이 이 시대에는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하나님께서 세우셨는데 이것을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5-10절을 보면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을 하는 입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그 짐승의 일에 참여할 수가 없기에 핍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이거나 간에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거역하고 대적하는 일들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피차 권면합니다. 오늘이라고 이름 하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합니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라고 서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하나님이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보배같이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여호와를 말로 거역하지 아니하고 경외하는 자들을 아낄 것입니다. 17-18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정한 날에 자신을 경외하여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신다고 하십니다.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끼듯이 그들을 아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때에 그들이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분별하다’라는 말이 히브리어로 ‘ha;r;’(라아)인데 이 말은 ‘가려낸다’는 뜻이 아니라 ‘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의인을 구원하시고 악인을 징벌하시며, 성도를 축복하시고 불신 자를 저주하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똑똑히 보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힘과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살려면 고난이 가중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사시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믿음으로 살았지만 세상에서는 어떤 대접을 받았습니까? 고린도전서 4장에 보면 만물의 찌끼같이 대접을 받았습니다. 고린도전서 4:9-13절을 보면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님의 나라를 더욱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5:1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생 뿐이면 가장 불쌍한 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하늘에 속한 소망이 있기에 이 땅에서 만물의 찌끼같이 되어도 더욱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든지간에 주님께서는 당신이 정하신 날에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의인과 악인이 구별될 것입니다. 곧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때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가 구별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고 여기며 산 사람들과 주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산 사람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삽니까? 그 믿는 대로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옵니까? 우리는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 가운데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감사와 은혜의 말이 나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피차 권면하는 말이 충만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이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나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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