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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삿 6:1-24
성경본문내용 (1)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2)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3)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4)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5)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6)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8)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9)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10)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11)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12)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13)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14)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5)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16)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17)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18)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19)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 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 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20)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21)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22)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4)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 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강설날짜 2012-08-29

2012년 8월 29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사사기 제12강


기드온을 부르심


말씀 : 삿 6:1-24


사사 드보라의 지도하에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태평세월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사사 드보라가 죽자 또 다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숭배의 죄악을 반복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사 이번에는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파셨습니다. 이 미디안이 추수할 때가 되기만 하면 메뚜기처럼 와서 모든 것을 다 싹쓸이 하여 갔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입에 풀칠할 양식조차 모자라는 궁핍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가나안 왕 하솔의 압제 하에 있을 때도 힘들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때는 집에서 살 수는 있었는데, 이 미디안의 압제 아래서는 집에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어서 산으로 또는 사막으로 가서 거기 구멍을 내어 은신하면서 아주 비참하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심히 미약하고 비참한 처지에 있게 된 것입니다. 반복되는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계의 수위가 계속해서 올라가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합니다. 더욱이 미디안만 압제하고 강탈해간 것이 아니라, 아말렉 족속과 어떤 알려지지 않은 동방 사람들까지 와서 함께 강탈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사를 세우신 것이 아니라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하십니다.


(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8)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9)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10)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그전에는 부르짖으면 즉시로 도와주셨지만, 이번에는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사 입다 이야기에서는 책망을 넘어서서 아예 “너희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에게 가서 부르짖어서 그 신들로부터 도움을 얻어라”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점차로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처럼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매번 오냐오냐 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반복하는 고질병을 고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때로는 매몰차게 대우하심으로써 참으로 회개하여 죄를 반복하는 것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는 도움을 주시기 전에 먼저 강력한 책망을 통해서 그들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그 내용은 사사기 2장의 보김 땅에서 책망하셨을 때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에 신실하시고 모든 구원과 은혜의 축복들을 약속하신대로 다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구원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우상에게 절하며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비참한 처지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책망하시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11)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습니다. 때마침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는데, 포도주 틀에서 타작한 이유는 미디안 사람들 몰래 타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하면 타작마당에서 타작하면 미디안 사람이 쳐들어와서 자기가 타작해놓은 것을 다 빼앗아가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 몰래 타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기드온을 향해서 여호와의 사자는 놀라운 축복의 선언을 합니다.


(12)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먼저 ‘큰 용사여!’ 라고 부릅니다. ‘전쟁에 능한 자여’ 라는 뜻입니다. 미디안을 몰래 피해서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겁쟁이를 부른 말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용사여’ 라고 부르신 이유는 기드온이 지금은 겁쟁이이지만, 장차 전쟁에 능한 용사로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가실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3)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아주 원망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를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첫 번째 불평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왜 우리가 이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까?” 하는 불평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면, 왜 이렇게 자신들을 비참한 처지까지 내버려 두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선 선지자를 통한 책망의 메시지를 기드온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혀 듣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즉 기드온은 이러한 비참한 생활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징계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하루 비참하게 연명해가는 힘든 현실에 대하여 원망만 하고 불평만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불평에는 아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판단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재산이 있고, 건강이 있고, 모든 것이 형통하고, 어려움이 없으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고, 지금 나에게 재물이 없고, 궁핍하고, 사업도 망하고, 건강도 약하여지고 그러면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나에게 무언가가 있고 없고에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고 안 계시고 하는 그러한 이기적인 판단인 것입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외적인 환경으로서 하나님의 함께 계심의 여부를 판단하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때때로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환란을 당할 때, 그래서 밤낮 고생을 해도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해도 하나님은 묵묵부답이고, 어려움은 계속되고 그러면, 우리도 기드온처럼 “하나님 정말 나와 함께 하십니까? 정말 살아계십니까?” 그렇게 의심하면서 신세한탄하며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심히 이기적인 판단이요, 심히 잘못된 판단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건강하고 일이 형통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고,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움이 닥치면 하나님이 버리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러한 판단을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계명을 지키는 성도에게 더욱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도록 하시기 위해 경제적으로 그리고 건강으로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입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섭리의 계획이 있으셔서 여러분을 가난하게 하실 수도 있으시며, 때로는 미디안의 압제처럼 어려움에 처하게 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 앞에서 의심하고 불평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들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고,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잠재우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욥이 재산도 다 잃고 자식들도 다 잃었을 때, 그가 한 말이 무엇이었습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 하고 고백했습니다. 이후에 아내로부터 시험을 받는데,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악창이 났을 때, 그것을 본 아내가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라”고 그렇게 말했을 때, 욥은 “당신은 어리석은 여자와 같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으니, 하나님으로부터 때로는 재앙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생사화복에 대한 피조물로서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놀라운 뜻 가운데 우리를 가난하게 하실 수도 있고 병들게 하실 수도 있고, 사업이 망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여도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가벼운 생각으로, 나 중심적인 생각으로 힘든 현실 앞에서 원망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깊으신 경륜을 바라보면서 도리어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될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반드시 책임져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이 본문을 보면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고난과 여러 가지 환란으로 인해서 심히 궁핍함 가운데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난에 처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돈에 집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보다는 돈을 버는 것에 온통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돈의 노예가 되고, 탐욕의 마음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히브리서 수신자들을 향해서 “내가 너를 결코 버리지 아니할 것이니,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하게 여겨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세끼 밥 먹고 굶어죽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연명했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까?” 그렇게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책임지시니깐, 이 주님을 신뢰하고 그저 매일 매일 세 끼 밥 먹고 굶지 않는 것에 만족하고, 모든 삶의 현장에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불변하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믿고, 아무리 힘들어도 원망불평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섭리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족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 기드온이 가진 불평은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상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베풀어주셨는데, 왜 우리에게는 하나도 기적을 베풀어주지 않습니까? 조상에게는 그런 기적들이 많이 베풀어졌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왜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가족이 병이 들어서, 그 병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병이 고쳐지지 않고, 그냥 죽고 말았을 때, 얼마나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해지기가 쉽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왜 그 기적들을 일으켜 주지 않는 것입니까? 내가 기도했는데, 하나님 왜 그렇게 안 하십니까?” 그렇게 원망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했다고 일으켜주시고, 또 반대로 기도 안했다고 해서 안 일으켜주시는 그러한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는 자의 기도에 역사하는 힘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결국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한 알라딘 램프가 아니시고,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아내에게 무엇 무엇을 하라고 요구했는데, 아내가 그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것에 대해서 화를 내고 뭐라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런 관계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기적을 일으켜달라고 기도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것이지, 내가 이러이렇게 기도했으니 들어달라는 식의 주장하는 자세로 기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라딘 램프로 생각하는 주객이 전도된 그런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하는 알라딘 램프가 아니라, 도리어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종인 것입니다. 목을 뻣뻣하게 쳐들고 이렇게 해달라고 우기다가, 안 이루어지면 원망하는 것은 피조물의 지위에서 벗어난 행동인 것입니다.

 

세 번째 기드온의 원망 불평은 결국 불신앙으로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시고 축복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기드온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과는 완전히 반대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셨다고 주장합니다.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결국 불신앙으로 귀결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고난을 통해서 그들의 연단시키고, 낮추어서 겸손케 하고, 반복해서 죄를 짓는 습관들을 고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라, 자녀의 잘못을 고치기 위한 사랑의 매인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원망 불평을 계속하다가 결국 불신앙과 절망으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눈을 굴리면 점차로 그 눈덩이가 커지듯이, 우리의 어려운 현실만을 보고, 나 자신만을 보면 자꾸 원망 불평하게 되고,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 원망과 불평이 커지게 되고, 결국 그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우리 내면을 장악하게 되어서 불신앙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들라치면, 즉시로 우리는 현실과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이 현실을 통해 두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결국 나의 신앙을 단련시키고, 나를 더욱 성숙시키시는데 유익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므로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기 전에 사울을 통하여 연단하시는데, 그 연단하시는 가운데 얼마나 그가 비참한 상황에까지 내려갔느냐 하면, 자기 목숨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이방 왕 앞에서 침을 질질 흘리면, 미친 노릇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것으로 하나님 앞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했는데, 그것이 시편 34편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3)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롬 5:3-5)


여러 가지 환란 중에서 우리는 기뻐하는데, 그 이유가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은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가운데 쏟아 부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깨닫느냐 하면, 처음 예수님 믿을 때하고, 또 우리가 여러 가지 환란과 고난 속에서 살아갈 때입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때, 일이 형통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물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극히 드물고, 대체적으로 배부르고 등 따시면 하나님 잊고 사는 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그러나 환란과 고난 가운데서 우리는 그 고난이 있기 전에는 몰랐던 하나님의 큰 위로를 경험하게 되고,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큰 사랑을 또한 경험하게 되고, 그 고난을 통해서 내 신앙이 성숙되어지는 것을 경험하고, 또 주님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부활의 능력에 참예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러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이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운 환란과 고난 가운데서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어떠한 환란과 고난 속에서도 원망불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숙한 주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14)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여호와의 사자는 원망불평하고 불신앙하는 기드온을 주목하여 본 후 기드온을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 부르십니다. 우리 같으면 “이런 은혜도 모르는 겁쟁이 같으니라고... 때려치워라...” 그렇게 말했겠지만, 하나님은 이미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기로 계획하셨고, 모든 은혜를 베푸실 준비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가 원망불평하든지 말든지 그냥 주권적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특징입니다. 무조건적인 명령으로 부르시는 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특징입니다.

 

우리를 부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3)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4)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하나님은 군사를 모집하는 자이십니다. 군사를 모집하고 그 군사를 통하여 전쟁을 수행하시는 분으로 하나님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군대로 모집하다’라는 단어가 “스트라톨로게오”라는 단어로서 “스트라티아(군대)+레고(명령하다)”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명령으로 소집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병무청에서 현역들을 소집할 때, “혹시 군대 좀 오실 수 있으세요? 시간 괜찮으시면 군대에 제발 좀 와주세요.” 그렇게 통지서가 날라 옵니까? 아니죠. 그냥 “몇 날 몇 시까지 논산 훈련소로 집합하시오.” 그렇게 그냥 일방적인 명령으로 통지서가 날라 옵니다. 그리고 그 밑에 “만일 불이행시에는 병역법 몇 조에 근거하여 몇 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불이행시에 받게 되는 형벌이 적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네가 이 백성을 애굽에서부터 건져내라” 그렇게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못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래 알았다. 그러면 다른 사람 알아볼게” 하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모세를 향해서 노를 발하시고, 아주 책망하셨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명령은 일방적이고 심각하고 준엄한 명령인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부르실 때에도, “(5)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렘 1: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완전히 일방통행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통보하십니다.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택하시고 열방의 선지자로 다 정해 놓으신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향하여 한 번도 의논도 하지 아니하시고,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물어보지도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시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실 때도,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그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우리 주님이 손을 조아리면서 “한 번 나의 일군이 되어주지 않겠느냐” 고 부탁하신 것이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나를 따라 오너라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배와 집과 부모를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일한 부르심으로 오늘날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목회자만 부르심을 입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성도들이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무엇으로의 부르심입니까? 영적 전쟁을 위하여 예수의 좋은 군사로 부르셨고, 날마다의 아마겟돈의 전쟁을 하고 준비하는 군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그리스도의 선한 일꾼으로 부르셨고, 그리고 복음 전도할 추수할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누구도 예외가 없고, 그 누구도 이 엄중한 명령으로서 주어진 이 사명에 배제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부르심을 우리가 받았기 때문에,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도록 하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이 명령 앞에서 우리는 버려야 될 몇 가지 생각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나는 능력이 없어서 못 합니다”라고 하면서 자기 부족한 것을 핑계되는 것입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을 때 거의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나는 부족해서 못 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15)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 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일을 도무지 할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나 알아보십시오.”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이요, 죄입니다. 이 말 속에는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마치 기드온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오류가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는 일이 기드온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까?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고, 기드온은 다만 이 일의 통로로서, 또는 도구로서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내가 능력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부르심이 심히 부담스럽고, 이 사명의 인생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내 힘으로 이루어 내야 된다고 생각하니깐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 일은 어차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나는 통로로서 도구로서 쓰임 받을 뿐인데,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깐 그 부르심에 자꾸 “나는 부족해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는데 “나는 부족해서 못 하겠다” 그러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교만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부족해도, 결국 그 일을 해나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이것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다만 우리 자신을 의의병기로 하나님께 바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이런 저런 핑계를 대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가 없고, 또 부르시고 그냥 알아서 하도록 내던져 놓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은혜와 은택들과 힘과 능력과 지혜와 때를 따라 돕는 은혜와 모든 것들을 친히 허락하시기 때문에,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하다 하더라도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이 있으면 능히 그 일을 감당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자기는 부족하다고 하니깐, 하나님께서 기적을 보여주셔서 믿음을 갖도록 하시고, 능력이 없다고 하자 기적의 지팡이를 그의 손에 지어주시고, 말이 어눌하다고 하자 그 형 아론까지 붙여주셔서 능히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그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신 것이고, 또 친히 배려하시고, 부족한 부분을 친히 채워주실 은혜를 다 예비해 놓으시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이 오늘 본문에도 잘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그 부르심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은혜와 힘과 능력과 믿음과 용기를 주셨던 것입니다. 먼저 믿음 없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믿음을 갖도록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거듭 주셨습니다.


(16)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 6:16)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여서 네가 반드시 미디안을 쳐부수고 승리할 것이다” 그렇게 거듭 약속해주심을 통해서 그 연약한 믿음을 북돋아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을 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이미 주셨습니다. 그래서 14절에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믿음이 없어서 징표를 보여 달라는 기드온에게 친히 징표를 보여주심으로써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17)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오늘 본문에 기드온이 믿음의 징표를 구한 사건을 어떤 학자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분별하고, 보다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의지하려고 하는 기드온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본문을 보면 그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어떤 체험을 하고 어떤 영적인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인지 사단 마귀의 뜻인지 분별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어떤 메시지를 들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인지, 거듭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인도하심을 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 기드온의 징표를 구하는 일은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 가지 점에서 이것이 본문의 의도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그러면 하나님의 사자의 메시지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러한 징표를 늘 구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만일 기드온이 이번 한번만 징표를 구하고 그 다음에는 믿음으로 모든 일을 했다면,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해석이 맞겠지만, 그러나 이 기드온 이야기를 읽어보면, 징표를 구하는 것이 상습적입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표증을 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확신을 갖기 위한 긍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도리어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머뭇거리는 겁쟁이 기드온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하나님의 사자가 이 기드온이 가져온 예물에 지팡이로 불을 붙여 태워버림으로써 징표를 보이자 기드온이 비로소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그 앞에 두려워 떨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 앞에서 원망불평하고 의심하고 불신앙하였음을 깨닫고 그 앞에 회개하는 모습에서 기드온이 징표를 구한 것이 결코 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이 징표를 구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자신의 믿음 없는 연약함을 드러내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한 해석으로 생각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렇게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징표를 구하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참고 인내하시고, 기다리시고, 그리고 친히 그 요구대로 징표를 보여주심으로써 그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부르시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다 배려하시면서 그 부르심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믿음과 은혜와 힘과 능력과 필요한 모든 것들을 친히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나는 부족해서 못합니다.” 그렇게 응답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부족함을 채우시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써,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것이 명령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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