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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13:6-11
강설날짜 2019-05-01

2019년 신명기 공부

긍휼히 보지도 말라

말씀:신명기 13:6-11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선지자나 꿈 꾸는 자들을 죽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살펴봤습니다. 선지자와 꿈 꾸는 자들이란 공개적으로 드러난 자들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 하나님을 배신하도록 이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어떤 능력이 나타나고 그들의 예언대로 일이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그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이들에게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지 그 여부를 알고자 하는 시험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선지자나 꿈 꾸는 자라고 자처하는 자들의 유혹보다 더 은밀한 유혹, 그래서 더 끊어내기가 힘든 자들의 유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노출된 이단들은 우리가 조금만 주의해도 구별이 됩니다. 그리고 내가 따라가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 인정과 애정과 사랑의 관계로 묶여진 자들에게서 일어나는 은밀한 유혹들은 끊어내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네 동복 형제나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꾀어 하나님을 떠나게 하여도 좇지 말고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도 말며 애석하게 여기지도 말며 덮어 숨기지도 말고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6-11절을 보면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 곧 네 사방에 둘러 있는 민족 혹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민족의 신들을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지라도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동복 형제’라는 말은 같은 어머니 배에서 나온 형제라는 말입니다. 곧 친형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와 생명을 같이 하는 친구’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고자 하는 아주 생명을 나눈 친한 친구를 말합니다. 신명기 기자는 친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너와 네 열조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을 섬기고자 할지라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만히’라는 말은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둘이만 있을 때 가만히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너와 열조가 알지 못하는 신들은 이스라엘 사방에 둘러 있는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말합니다. 곧 블레셋이나 모압이나 아람이나 애굽 등 이스라엘 사방에 둘러 있는 이방 민족들의 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기자는 네게서 가깝든지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있는 어떤 민족들의 신을 섬기고자 할 때에 그들을 좇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을 듣지도 말고 긍휼히 보지도 말라고 합니다. 애석히 여기지도 말고 덮어 숨기지도 말고 용서 없이 그를 죽이라고 합니다. 그들을 죽일 때에 네가 먼저 손을 대고 그 후에 뭇 백성들이 손을 대라고 합니다. 여기서 ‘손을 댄다’는 말은 10절에서 말하는 돌로 쳐 죽이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은 무시무시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한다고 해서 자기의 친형제나 자녀나 아내나 생명을 함께 나눌 정도의 친한 친구조차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실 우리는 친하니까 아무리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하고, 이단적인 사상을 가르친다고 할지라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기 쉽습니다. 안타깝게 여기고 덮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이것이 인지상정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기자는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애석히 여기고 덮어 숨겨주지도 말라고 합니다. 사실 가만히 이야기 한 것이니까 남들이 알지 못하잖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얼마든지 안타깝게 여기고 그냥 덮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기자는 그냥 덮어 주지 말고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합니다. 돌로 칠 때도 네가 먼저 돌로 치고 그 후에 뭇 백성이 돌로 치게 하라고 합니다. 곧 그 일에 모든 백성들이 참여하게 합니다. 공개적으로 그 죄를 징치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는 아무리 한 배에서 난 한 형제이고 자녀이고 아내이고 생명을 함께 나눌만한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반드시 돌로 쳐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도 친형제나 자녀나 아내나 생명을 나눈 친한 친구가 그렇게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합니까? 그래서는 안되겠죠. 그렇게 하면 살인죄가 되어 잡혀 가게 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날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우상숭배자나 이단적인 사상을 가르치는 자를 우리는 따라가거나 용납하거나 덮어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애석히 여기거나 덮어주거나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어디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느냐고 분명히 책망하고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들의 죄악을 분명히 지적하고 회개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권고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들으면 권징의 원리를 따라서 교회에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그들을 치리를 하고 징계를 해야 합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고 안 받아들이면 교회는 그들을 교회에서 쫓아내어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잔인하게 느껴집니까? 사실 구약 시대나 오늘날이나 그 원리는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 자들을 반드시 징계해야 합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은 교회와 국가가 하나였습니다. 곧 정교일치 사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교회도 되고, 하나님의 나라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정교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이고, 나라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또한 동시에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대한민국과 기독교가 같지 않고 따로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어떤 사람이 국가에 반역을 꾀하거나 간첩 활동을 한다면 극형에 처하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나라입니다. 세상 나라는 불의가 있고 죄를 짓는 일이 많고 죄악이 가득하므로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의가 가득하고 죄가 없고 평화롭고 기쁨이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에 영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용납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을 떠나도록 유혹하는 자가 비록 친형제이고 자식이고 아내이고 생명을 나누는 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좇지 말고 듣지 말고 애석히 여기지도 말고 덮어 숨기지도 말고 돌로 쳐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그 죄악이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자들 곧 그들이 아무리 친형제이고 자식이고 아내이고 생명을 나누는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돌로 쳐 죽이라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훈 하고자 하심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 10-11절을 다시 보면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한 자니 너는 돌로 쳐 죽이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자들을 그들이 아무리 친형제이고 자식이고 아내이고 생명을 나눈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지도 말고 애석히 여기지도 말고 돌로 쳐 죽이라고 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여호와를 떠나게 하고 다른 신을 따라 가게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런 악을 행하지 않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가나안 족속들이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의 죄악이 관영함을 인함이었습니다. 마치 노아홍수 때에 죄악이 관영하였던 것처럼 온갖 우상숭배가 가득하였습니다. 이런 우상숭배의 현장은 약육강식의 현장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적자생존의 냉혹한 법칙만 통용되는 곳이 우상숭배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곳에 들어가서 살아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는 이런 우상숭배가 기승을 부리지 못하도록 애초부터 단절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휼로 구원받은 자들이 긍휼을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긍휼의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친형제요, 자녀요, 아내요, 생명을 나눈 친구라고 할지라도 단호히 처단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고 허물이 덮어지고 용서를 받아서 나온 민족이 이스라엘인데 이런 하나님의 품을 떠나게 만드는 것을 반드시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우상숭배란 결국 지옥의 삶이기에 그런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족이 함께 범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가나안의 첫 성 여리고성 전투에서 여리고 성은 하나님께 바쳐진 성이기에 그 어떤 물건도 손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간이라는 사람이 여리고성을 공략하면서 시날산 외투 한 벌과 금덩이와 은을 훔쳐 자기 장막에 땅을 파고 숨겨두었습니다. 아무도 모른 줄 알았는데 아이성에서 패배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제비를 뽑아서 아간이 걸렸고 죄를 고백합니다. 그러자 아간과 그 가족과 모든 재산을 다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돌로 쳐 죽입니다(수 7장). 그런데 가족이 왜 함께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까? 천막에 함께 사는데 그 숨기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가족이기에 그것을 덮어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멸망한 것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뜻은 하나님의 긍휼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간의 정신은 자신이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일에 일조를 했기 때문에 마땅히 자기의 공로를 챙긴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어떤 전쟁이든 자기의 이익을 위한 전쟁에서는 당연한 권리로 여긴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신을 따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에 나오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보면 제사장의 아들이면서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가 자기의 식탐을 위하여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기도 전에 자기가 먼저 고기를 취하여 가고 성전에 시중드는 여인을 건드리는데도 엘리 제사장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 모습이 이미 우상숭배자의 모습인데도 단호하게 내치지 못하고 좋은 말로만 합니다.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않다고만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이 제사장으로 율법을 가르쳐야 할 사람인데도 가족이기에 그냥 덮어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가족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법궤도 빼앗기고 나라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잘라내지 못한 것입니다.

 

미가서 7:1-6절을 보면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도다.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 대인은 마음의 악한 사욕을 발하며 서로 연락을 취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비를 멸시하며 딸이 어미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미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상숭배란 탐심입니다. 우상숭배로 인하여 형벌의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믿지 말고 품에 누운 아내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키라고 합니다. 사람의 원수가 집안 식구가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34-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4-39). 왜 원수가 집안 식구가 되는지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와 따르지 아니하는 자와의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살자고 하는데 한 사람은 예수만 믿고서는 못 살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도 믿고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9절을 다시 보면 “너는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덮어 숨기지 말고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방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온갖 우상들이 다 소개됩니다. 온갖 성공신화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족이, 생명을 같이한 친구가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긍휼히 여기지 않고 단호하게 끊어내겠습니까? 아니면 인간적으로 동정하고 덮어 주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끊어내지 못한 인정과 애정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끊어내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하시겠지만 결국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믿던 모든 것들을 끊어내시면서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구 관계 속에서도 주님의 긍휼을 버리게 하는 자들에 대하여 긍휼도 애석함도 덮어줌도 용서도 없게 하시는 조치를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8절에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어떤 꾀임에도, 누구의 꾀임에도 넘어가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위에 굳게 서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그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여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영원히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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