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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6:3-10
성경본문내용 (3)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4)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5)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6)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7)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8)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9)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10)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강설날짜 2014-06-04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말씀:고린도후서 6:3-10

 

우리는 지난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사야 49:8절 말씀을 인용하여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했습니다(고후 6:2).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고린도후서 6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 사도가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자세를 가졌으며,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말씀은 바울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자신의 사도직 곧 화목케 하는 직책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바울이 떠난 뒤에 고린도교회에 거짓 선생들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외모를 자랑하며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했습니다. 그를 통해서 바울의 가르침을 부정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 중에 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바울의 사도직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사도직을 감당하면서 많은 고난을 받았는데 어떻게 진정한 사도라면 이런 고난을 받을 수 있느냐며 그의 외모를 보고 사도직을 부인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이 복음을 위해 온갖 수고와 고난을 감수했음을 소개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수고와 고난 가운데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능력에 근거하여 신앙적 미덕을 유지했음을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직을 더욱 확실하게 변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바울의 자세를 배우고 우리도 흔들림이 없이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3-4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화목케 하는 직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화목케 하는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기 위해서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기 위해 힘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훼방을 받는다’라는 말은 ‘비난을 받는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거리낀다’는 말은 ‘실족할 계기를 준다’, ‘범죄할 기회를 준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말씀을 기초해서 볼 때 바울 사도가 자신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들이 실족함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해야 하는 자신의 직책이 비방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늘 조심해서 처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어떠하였습니까? 바울의 삶을 보면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많은 비방을 받았습니다(행 26:24; 고후 3:1, 11:16).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많은 비방을 받은 것은 그의 인격의 결함이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그것은 사람들의 복음에 대한 무지와 그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4절을 다시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비난 받지 않기 위해서 취한 자세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3:1절에서는 자신을 자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은 3:1절 말씀과 모순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3장에서 자신이 천거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때는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어떤 외부적 조건에 의존하여 자신의 사도직을 보증 받지 않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그의 직분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종이에 쓰여진 어떤 천거서를 통해서 자신의 직분을 입증 받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복음을 위해 행한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그가 하나님의 참된 일군임을 증명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3장의 말씀과 모순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뎠다고 합니다. 여기서 ‘견디는 것’은 ‘참을성 있는 견딤’ 곧 인내를 뜻하는 말로 환난을 수동적으로 참는 것을 뛰어 넘어 초지일관 맡은바 사명에 충성을 다한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모든 일에 인내하며 맡은바 사명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4-5절에 보면 바울은 많이 견딘 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아홉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4-5절 말씀을 보면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세 가지 곧 환난과 궁핍과 곤난은 일반적인 고난을 의미하고, 다음 세 가지 곧 매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은 사람으로부터 오는 핍박을 말하며, 마지막 세 가지 즉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은 자발적으로 취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아홉 가지를 하나씩 살펴보면 ‘환난’은 궁지에 몰린 일반적인 경험들을 가리킵니다(고후 1:4-11). 그리고 ‘궁핍’은 계속되는 역경을 가리키고(행 20:34), ‘곤난’은 극복하기 어려운 극한 상황을 가리킵니다(고후 4:8). 그리고 바울은 본서를 쓸 당시까지 여덟 번이나 채찍으로 맞는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 중에 다섯 번은 유대인들에게이며, 나머지 세 번은 이방인들에게 맞았습니다(고후 11:24-25). 또한 바울은 몇 번이나 감옥에 갇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록으로 나타난 것만 봐도 빌립보, 예루살렘, 가이사랴, 로마 등 네 번이나 됩니다. 그리고 ‘요란한 것’이란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아마도 난폭해진 궁중들에 의해 위험에 직면했던 사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그리고 ‘수고로움’은 바울이 대가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생계를 위해 손수 일한 것을 비롯하여 복음 전파에 쏟은 모든 열정을 가리킵니다(살전 2:9). ‘자지 못함’은 끊임없는 전도 여행과 성도들을 염려하는 것과 그들을 섬기는 수고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상황을 가리킵니다(고후 11:27). ‘먹지 못함’은 영적 각성을 위하여 금식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 할 상황에서도 먹지 못하고 굶주린 것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런 많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화목케 하는 직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했다고 합니까? 6-7절 말씀을 보면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라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화해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가진 8가지 미덕을 소개 하고 있습니다. 앞의 9가지의 시련을 견뎌낸 것이 화해의 직책을 수행하기 위한 외적 자질이라면 여기서의 8가지 미덕은 내적 자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여기서 ‘깨끗함’이란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는 것과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지식’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파악하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오래 참음’은 일반적인 고난의 상황에서 단순히 견디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적대자들의 모욕이나 비난에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친절하고 사랑을 가진 행동을 의미합니다. ‘오래 참음’과 ‘자비’는 함께 연결되는 특성으로 동기와 결과를 나타냅니다. 오래 참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타인에게 자비로써 아량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화’는 성령의 은사 또는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짓없는 사랑’은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은 최고의 열매로 형제에 대해 위선됨이 없이 진실로써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은 바울 자신이 사도로서 전파한 것을 지칭하는데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대한 언급으로 바울이 자기의 지식이나 언변 같은 인간적인 재능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복음을 전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라는 말은 군인이 칼과 방패로 무장을 하듯이 바울이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단의 공격을 저지하고 세상을 쳐부수기 위해 성령의 검과 믿음의 방패로 자신을 무장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바울은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 많은 환난과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의의 병기로 살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의 모습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바울 사도는 하늘을 보고 왔습니다(고후 12:1-10). 그러므로 그는 동시에 땅의 끝도 다 보고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어떤 모습이 되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빌 1:20-21). 그런데 그리스도의 존귀란 이 세상의 영광으로는 결코 알 수 없도록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일군이지만 이 세상에서 그 직책을 담당한 모습은 세상에서 약하고 죽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8-10절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화목케 하는 직책을 수행하면서 자신이 직면한 상황을 9가지 대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8-10). 영광과 욕됨,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자 같으나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 사도 자신이 사도직을 수행 하면서 직면했던 당시의 상황을 양면적인 반응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바울 사도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영광과 욕됨’이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임과 거부를 의미하는데, 영광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 주어지는 존경을 가리키고, 욕됨은 복음의 거부가 곧 자신의 욕됨으로 인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은 비난과 칭찬을 뜻하는 것으로 바울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를 지칭합니다. 앞의 ‘영광과 욕됨’은 바울의 주관적인 감정에 속하고 이어지는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은 타인들의 객관적인 평가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여튼 바울은 인정과 배척, 칭찬과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일한 원칙으로 동일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이 말은 바울 자신이 미혹케 하는 자가 아니라 진리를 전하는 자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생전에 속이는 자라는 비난을 받으셨습니다(마 27:63; 요 7:12). 그러나 예수님은 참진리셨습니다(요 14:6). 그와 같이 바울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속이는 자라는 비난과 오해를 받았으나 사실은 참되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여기서 ‘무명한 자’라는 말은 문자적인 의미는 ‘무시를 당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이 말씀은 바울이 사도로 인정받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로부터 그의 사도권에 대해 의심을 받고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전한 복음조차 배척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명한 자’라는 말은 ‘인정 받은 자’라는 뜻으로 무명한 자와 반대의 개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로부터 무시를 당했지만 또한 많은 교인들로부터는 그가 전한 복음이 진리임을 인정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도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알아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은 유명한 자인 것입니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바울은 죽음의 위협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실제로 죽음 직전에 이르기까지 하였습니다(행 14:19; 고후 1:8-9). 그러나 그때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본절의 ‘보라’라는 감탄사는 바울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죽음의 위협에서 구원 받은 사실을 매우 감격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은 시편 118:18절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시편 118: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아니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고난당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가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바울은 끊임없는 고난과 유대인들의 불신앙 및 고린도교회 일부 교인들의 사도직에 대한 오해 등으로 인해 근심과 염려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각하고 그의 도우심을 확신했으며, 미래의 축복을 믿었으며, 또한 현재의 사소한 고난이 귀중하고 영원한 영광을 이루는 것이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바울의 마음에는 평강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바울은 이 세상 물질에서는 가난했지만 많은 사람을 영적으로 부요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세상의 재물을 거의 소유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닙니다. 회심한 이후 복음 위해 가난한 자가 되었고 자급자족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였지만 영적으로 매우 부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소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줌으로 그들도 영적으로 부요한 자가 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 말씀은 앞의 모든 대구들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배설로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빌 3:8). 그러나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후사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롬 8:17; 고전 3:21-22). 바울에게는 바로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의 제물과 생명 등에 연연해 하지 않고 오직 모든 것을 바쳐서 복음 전파에 진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14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처럼 분명한 경계가 생긴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즐거워하는 자는 우는 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자는 너무 가난한 자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보면 바울 사도가 가난하고 죽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군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세상과 전혀 다른 세계를 증거 하기 위하여 우리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평가에 마음이 빼앗기지 말고 오직 영원한 주님의 평가에 마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군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오직 주님의 평가에 마음을 두고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진정 화목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군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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