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1,014
  • 어제방문자 : 
    982
  • 전체방문자 : 
    1,418,134
조회 수 262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고후 9:1-5
성경본문내용 (1)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2)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3)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4)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5)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강설날짜 2014-08-06

2014년 고린도후서 공부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


말씀:고린도후서 9:1-5

 

우리는 지난 몇 주간에 걸쳐 고린도후서 8장 말씀을 통해서 연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연보는 은혜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연보란 바로 이 은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란 단순히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하보다 귀한 은혜를 받았기에 연보를 하는 것은 은혜 받은 자로서의 특권인 것입니다.

 

또한 연보란 평균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연보에 있어서 평균케 함이란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놀라운 은혜의 부요함의 평균화입니다. 그 은혜의 세계가 너무나 부요하기에 자신의 목숨마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내어 놓는 부요함인 것입니다. 죽어도 영광의 몸으로 다시 사는 세계를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향해서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60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의 최후를 죽는다고 하지 않고 ‘잔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죽음도 이기는 부요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오늘 말씀에서는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연보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며, 자원함과 넘치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라면 미리 준비하라고 하지 않아도 다 잘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연보할 때에 매주일 늘 기쁨과 감사와 넘치는 은혜로 하고 있습니까? 몇 십 년을 연보하다가 보면 그냥 습관적으로 하고 의례히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연보를 할 때마다 아까워서 인색하여 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연보가 은혜임을 아는 자는 미리 감사함으로 준비할 것입니다.

 

그러면 미리 준비하는 것은 자원하여 기쁨이 넘쳐서 힘에 지나도록 하는 연보와 다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기분파들이 많습니다. 기분이 나면 온 국민이 다 들고 일어나서 붉은 악마가 되기도 하고, IMF 때는 전 국민이 금 모우기 행사에 동참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부흥회 자체가 없습니다만 한국 교회의 많은 부흥회 때 보면 분위기가 고조되고 건축역사를 위하여, 선교사를 위하여 헌금을 작정하라고 하면 힘에 지나도록 작정을 합니다. 그렇게 해 놓고 나중에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힘들어 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심지어 과도하게 작정한 헌금이 부담이 되어서 결국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 가끔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작정을 해 놓고 그것이 서원한 것이라면 손해가 와도 갚으라고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연보들이 참 연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3절 말씀을 보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의 예를 들어서 고린도 교회로 하여금 연보를 미리 준비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매주일 첫날에 각 사람이 이익을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갈 때에 연보하지 않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갈 때에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연보를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년 전부터 예비하였다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의 원함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다른 성도 섬기는 일로 곧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섬기는 일로 연보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일년 전부터 예비하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마게도니아 교인들에게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자랑하니 마게도니아의 많은 사람들도 자극을 받아서 분발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연보를 말하기 위하여 세 사람을 보내는 것입니까? 3-4절을 보면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의 준비치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형제들을 보낸 것은 마게도니아에서 고린도 교회 교인을 자랑하였는데 이 자랑이 헛되지 않고 사도가 말한 것처럼 준비하게 하기 위하여 보낸 것입니다. 미리 준비가 되지 않으면 바울 사도가 마게도니아를 지나서 고린도 교회로 갈 때에 마게도니아 교회 교인들도 함께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게 될 텐데 그러면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자랑해 놓은 것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가 이 믿는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도록 세 명의 형제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연보의 내용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 전반에 걸친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어느 날 갑짜기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붕붕 날아다니는 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신실함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복음을 누구에게 부탁하는가 하면 신실한 자에게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2절을 보면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충성된 자란 신실한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 미리 준비하는 것은 연보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생활의 전반에 필요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오늘 밤에 자신의 영혼을 도로 찾는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눅 12:13-21). 그러므로 그 축척된 재물이 오히려 그 사람에게 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이 사실을 많이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가 귀하고 좋은 것을 나중에 먹으려고 은밀한 곳에 숨겨 두었다가 폭삭 썩은 경험들이 한 두번은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아껴 두었다가 벌레가 먹고 썩어 냄새가 났습니다(출 16:19-20). 그러므로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라는 지금 준비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참 연보가 아니라 참된 신앙생활도 범사에 미리미리 준비하며 사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연보’라는 단어 앞에 각주 2)번이 있는데 밑에 각주를 보면 헬라어로 ‘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연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억지로’라는 단어에도 각주 3)번이 있는데 밑에 각주를 보면 ‘탐심이’로 번역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지 않는 연보는 탐심으로 하는 연보가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주를 사랑하며, 주의 은혜에 감사하여 준비해 두는 것이 참 연보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준비된 연보는 단지 연보가 아니라 복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특별 부흥회를 해서 온갖 복과 저주를 이야기 하면서 돈을 내게 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것은 복에 참예하는 것이 아니라 탐심에 참예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리 준비하는 것은 단지 연보만이 아니라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에서 미리미리 준비하며 사는 것이 참 신앙답고 억지나 탐심이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미래의 안락한 삶을 위하여 미리미리 저축을 합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하여 여러 가지로 자신을 준비합니다. 좋은 직장을 위해 미리미리 영어 공부도 하고, 어학연수도 다녀옵니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를 얻기 위해 미리미리미리 외모도 꾸미고 요리도 배웁니다. 특히 요즘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서 보험을 많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의 어둠의 자식들도 이렇게 미래의 안락함과 남편과 아내를 위해 준비하는데, 우리의 영원한 안식과 영원한 신랑이 되실 주님을 맞이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어 둘 수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고 부르는 바로 이 시간에 우리는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별세를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무엇을 의논하셨습니까? 별세를 의논하신 것입니다. 마가복음 9:2-13절을 보면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저희가 산에서 내려 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갑짜기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자신이 당할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미리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미리 창세전에 준비되었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준비된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오늘 죽는다는 생각을 합니까? 주님이 오늘 재림하신다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으라고 하면 그런 것은 늙어서 힘이 없을 때나 하는 것이지 젊어서는 할일이 많아서 바빠서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천하를 얻고도 내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6; 막 8:36).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눅 12:20). 그런데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이 오늘날 이 시대에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종말론적 공동체입니다.

 

마태복음 25:1-13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열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할 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은 준비하였는데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예비 하였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더디옴으로 기름이 떨어져서 등불이 꺼져가자 슬기로운 다섯 처녀에게 기름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슬기로운 처녀들이 미련한 처녀들에게 그렇게 하면 둘 다 모자랄 테니 기름집에 가서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고 문은 닫쳤고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므나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복음 19:11-27절을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기 위하여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가면서 종 열을 불러서 은 한 므나씩을 주면서 자기가 돌아 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주인이 반드시 왕위를 받아 오신다는 것을 믿는 종들은 주인이 보이지 않더라도 주인을 눈앞에서 보듯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은 주인이 준 은 한 므나로 열심히 장사하여 열 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회계할 때 그는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을 듣고 열 고을을 차지하는 권세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 한 종은 주인이 준 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그 종도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듣고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한 종은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고 하며 수건에 싼 한 므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에 주인은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고 책망하며 그의 가진 한 므나까지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었습니다. 그런 후에 주인이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준비하며 사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의 종이며, 청지기 입니다. 그러므로 연보만 미리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도, 재림도 미리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기에 참으로 복되고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연보를 미리미리 준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연보 뿐만 아니라 죽음도, 재림도 미리미리 준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 앞에서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515 [사무엘상 4장]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의 영광 file 삼상 4:1-22 손재호 2015-02-04 2704
514 [고린도후서 5장]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file 고후 5:18-21 손재호 2014-05-21 2701
513 [사무엘상 2장] 한나의 찬양 file 삼상 2:1-11 손재호 2015-01-14 2689
512 [갈라디아서 5장] 진리에 순종 file 갈 5:7-15 최상범 2011-11-30 2684
511 [디도서 1장] 사도의 임무(1)-믿음과 지식을 위하여 file 딛 1:1-4 손재호 2012-03-28 2679
510 [레위기 24장] 등잔불과 진설병에 대한 규례 / 신성모독에 대한 규례 file 레 24:1-23 최상범 2015-12-30 2671
509 [레위기 16장] 대속죄일 규례 file 레 16:1-34 최상범 2015-11-11 2653
508 [사사기 3장] 사사 옷니엘(2) 삿 3:7-11 최상범 2012-07-18 2651
» [고린도후서 9장] 연보를 미리 준비하라 file 고후 9:1-5 손재호 2014-08-06 2628
506 [갈라디아서 5장]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file 갈 5:26-6:5 최상범 2011-12-21 2613
505 [갈라디아서 5장]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file 갈 5:1-6 최상범 2011-11-23 2608
504 [사무엘상 7장] 에벤에셀의 하나님! file 사무엘상 7장 손재호 2015-02-25 2583
503 [갈라디아서 1장] 다른 복음은 없나니(1) file 갈 1:6-9 최상범 2011-06-15 2579
502 [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file 고후 11:7-15 손재호 2014-10-15 2560
501 청교도 예배(1) 2529
500 [디도서 1장] 사도의 임무(2)-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file 딛 1:1-4 손재호 2012-04-04 2528
499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 2513
498 [갈라디아서 1장] 핍박자에서 복음증거자로 file 갈 1:18-24 최상범 2011-07-13 2504
497 [레위기 11장] 음식법 file 레 11:1-23 최상범 2015-10-07 2499
496 [고린도후서 6장]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file 고후 6:3-10 손재호 2014-06-04 249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34 Next
/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