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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삼상 4:1-22
성경본문내용 (1)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2)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명 가량이라(3)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4)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5)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6)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7)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8)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9)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10)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12)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에서 달려나와 그 옷을 찢고 그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실로에 이르니라(13)그가 이를 때는 엘리가 길 곁 자기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그 마음이 여호와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며 고하매 온 성이 부르짖는지라(14)엘리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이 훤화하는 소리는 어찜이뇨 그 사람이 빨리 와서 엘리에게 고하니(15)때에 엘리의 나이 구십 팔이라 그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16)그 사람이 엘리에게 고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가로되 내 아들아 일이 어찌 되었느냐(17)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18)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자빠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 많고 비둔한 연고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사십년이었더라(19)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20)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21)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22)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강설날짜 2015-02-04

2015년 사무엘상 공부


이스라엘을 떠난 하나님의 영광


말씀:사무엘상 4장

 

오늘은 사무엘상 4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사무엘상 2장에서 무명의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습니다(27-36). 그리고 사무엘상 3장에서 사무엘이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엘리 집안의 심판을 증거했습니다. (10-14). 이와 같은 엘리 집안의 심판에 대한 예언이 사무엘상 4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심판이 엘리 집에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1-4절을 보면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 쳤더니. 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명 가량이라.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게 전파되어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사무엘이 민족의 지도자로 부상할 무렵 지중해 해변 평야 지대에 거주하던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블레셋’ 족속(the Philistines)은 함의 손자 가슬루힘의 후손이었습니다(창 10:14).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무렵에는 가나안 남쪽 지중해 연안에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출 13:17; 23:31). 이들은 인구 증가와 함께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거주하던 산간 지역을 노리며 이스라엘을 침공해 온 것입니다. 이에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곁에 진을 쳤으며, 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선제 공격을 하여 이스라엘 사람 사천명 가량이 전사했습니다(2). 전쟁에서 패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탄식하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3a). 이들은 자기들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자기들과 늘 함께 하셔서 언제나 적을 물리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서 7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 회개하면서 여호와의 뜻을 먼저 물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패배의 원인을 방법론에서 찾았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를 가져가지 않아서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고 하였습니다(3b). 이들은 하나님의 언약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언약궤를 부적처럼 이용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을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거기 함께 하였습니다(4). 이들은 언약궤를 앞세워서 블레셋과 전쟁을 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5절에 보면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당도하자 온 땅이 울리 정도로 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들은 언약궤로 인해 사기가 충천하였습니다. 6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고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며 그 연유를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온 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블레셋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는 큰일 났다는 식의 두려움이었습니다. 7-8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이스라엘의 신의 명성을 듣고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그 진에 이르렀다고 하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누가 이 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건지겠느냐고 했습니다. 놀랍게도 블레셋 사람들이 출애굽의 놀라운 역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애굽에 각종 재앙을 내리시고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신으로 인정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반응은 두려움과는 정반대의 반응입니다. 9절에 보면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어차피 지게 되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종으로 삼았던 것처럼 우리가 그들의 종이 될 것이니 죽기 살기로 싸우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이라는 말은 불레셋이 한때 히브리 사람들의 종이 되었던 것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블레셋이 당할 미래 일을 가정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번 싸움에서 지면 히브리 사람이 우리에게 종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그들의 종으로 전락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블레셋의 전투 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독려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10-11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블레셋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앞세우고 싸웠지만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된 자만 보병이 삼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습니다. 이로써 2장에서 익명의 선지자와 3장에서 사무엘이 엘리 집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고가 그대로 성취가 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어리석게도 마치 자신들이 모세나 되는 양 하나님의 언약궤를 진중에 모셔가며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도리어 대패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소용이나 필요에 따라 운반되거나 동원되는 실용적인 도구나 수단으로 간주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전쟁의 승리를 위한 기계적으로 보장되는 실용적인 도구가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동식 통치 보좌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백성에게는 당신의 거룩한 현존을 아낌없이 나타내시지만, 당신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거룩한 현존을 감추십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자체가 모세 때에는 이방 족속들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공격무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의 종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순종이 담보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진은 늘 거룩하고 정결하게 유지되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현존이 늘 거기에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에 보면 거룩한 진 정결 유지법은 하나님의 법궤가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려면 이스라엘의 진 자체가 거룩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3:9-14절을 보면 “네가 대적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찌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찌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붙이시려고 네 진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합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적군을 이스라엘에게 넘기시려고 이스라엘 진중에 행하시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그 진영을 거룩히 유지해야 합니다. 이 신명기의 거룩한 진 유지법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불결한 것을 보시면 이스라엘을 떠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결한 장본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기보다 도리어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가로챘습니다.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을 드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이들은 참으로 불량자요, 여호와를 알지 못하던 행악자들이었습니다(2:12). 거룩하신 하나님의 일차적인 공격 대상은 블레셋이 아니라 홉니와 비느하스요, 그리고 그들을 따르던 이스라엘 진영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적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고대의 전쟁은 신들의 도움으로 전쟁의 성패가 갈린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언약궤가 적들의 손에 넘어간 것은 이스라엘의 신이 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 인해 여호와의 이름이 모독을 받았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일어나게 하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을 심판하시며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 위함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조건 이스라엘의 편이 아니라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 이름이 모독을 받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주술적이거나 미신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언약하신 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또는 교회에 헌신 충성 봉사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은 무조건 자기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자기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헌금을 하고 철야를 하고 금식을 하고 봉사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편이니 나의 소원을 들어 줄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소원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어려움에 부딪치면 내가 무슨 정성이 부족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하면서 또다시 더 큰 정성을 바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아는 종교 사기꾼들은 더욱더 그 마음을 부추켜서 신에게 정성을 바치도록 온갖 말씀들을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무조건 성공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12-18절을 보면 제사장 엘리의 죽음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전쟁에 패배한 날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와서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릅니다(12). 이것은 장례를 치르는 자의 복장입니다. 이 때가 엘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궤로 인하여 떨릴 즈음이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성에 들어오면서 전쟁에서 패한 소식을 전하자 온 성읍이 부르짖는 소리로 가득하였습니다. 그 사람에 엘리에게 말합니다. 17절을 보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전쟁에서 패배한 소식과 두 아들의 죽음과 언약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에 앉아 있던 엘리는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이때 엘리는 나이가 구십팔 세이며 눈은 어두웠고 몸은 비대하였습니다. 여기서 엘리가 앉아 있었다고 하는 의자는 일반적인 의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단어로 보좌로도 사용이 됩니다. 곧 왕이 앉는 보좌나 하나님의 보좌로도 쓰이는 것입니다. 이런 의자에 하나님보다 자기 자식을 더 귀하게 여기며 저주를 자청하고 있는데도 금하지 않았던 자가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엘리가 전쟁의 패배소식과 두 아들의 죽음과 언약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넘어져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자에 앉아 있습니까? 엘리와 같이 멸망의 의자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19-22절을 보면 비느하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해산할 때가 다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 빼앗긴 소식과 시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 소식을 듣고 갑짜기 배가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을 하였습니다. 아마 충격으로 인해 조산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녀는 해산을 하다가 죽습니다. 해산을 돕던 여인들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 아들이라고 합니다.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해산하는 여인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말에 이 여인은 대답도 하지 않고 관념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에서 이 여인의 신앙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하였습니다. 각주를 보면 이는 영광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 여인은 이 하나님의 심판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19-22절 말씀에서 이 여인이 말하는 순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언약궤-시아버지-남편-언약궤-시아버지-남편-언약궤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위치와 세 번이나 반복되는 말이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를 빼앗긴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난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내용을 요약한 시편이 있습니다. 시편 78:51-55절을 보면 “애굽에서 모든 장자 곧 함의 장막에 있는 그 기력의 시작을 치셨으나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저희를 안전히 인도하시니 저희는 두려움이 없었으나 저희 원수는 바다에 엄몰되었도다. 저희를 그 성소의 지경 곧 그의 오른손이 취하신 산으로 인도하시고 또 열방을 저희 앞에서 쫓아내시며 줄로 저희 기업을 분배하시고 이스라엘 지파로 그 장막에 거하게 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광야 생활을 거쳐 약속의 땅에 심으셨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시편 78:56-64절을 보면 “그럴찌라도 저희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며 반항하여 그 증거를 지키지 아니하며 저희 열조 같이 배반하고 궤사를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가서 자기 산당으로 그 노를 격동하며 저희 조각한 우상으로 그를 진노케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실로의 성막 곧 인간에 세우신 장막을 떠나시고 그 능력된 자를 포로에 붙이시며 자기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그 백성을 또 칼에 붙이사 그의 기업에게 분내셨으니. 저희 청년은 불에 살라지고 저희 처녀에게는 혼인 노래가 없으며 저희 제사장들은 칼에 엎드러지고 저희 과부들은 애곡하지 못하였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하나님을 반항한 것이 사사시대임을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여호와의 영광이 실로의 성막에서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시편 78:65-72절을 보면 “때에 주께서 자다가 깬자 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 또 요셉의 장막을 싫어 버리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유다 지파와 그 사랑하시는 시온산을 택하시고 그 성소를 산의 높음 같이, 영원히 두신 땅 같이 지으셨으며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저희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실로에서 떠나 버린 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끝난 자리에서 다시 여호와의 일하심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주께서 고함치는 용사처럼 일어나셔서 일하십니다. 이 내용은 사무엘상 5장에서 언약궤가 홀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모습을 통하여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세우십니다. 다윗에게 언약하신 대로 영원한 위(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것입니다. 엘리는 자기 자식을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의 생명을 내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영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함께한다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까? 하나님의 언약이 떠나버리면 우리의 영광도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구약시대 언약을 주시고 언약의 돌 판과 언약궤를 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과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언약이 마음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돌 판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옛 언약을 완성하신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언약이며, 우리 마음에 기록이 됩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이름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빌 2장).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세상의 헛된 영광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머물러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멸망의 자식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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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갈라디아서 1장] 다른 복음은 없나니(1) file 갈 1:6-9 최상범 2011-06-15 2579
502 [고린도후서 11장] 사단의 일군, 의의 일군 file 고후 11:7-15 손재호 2014-10-15 2560
501 청교도 예배(1) 2529
500 [디도서 1장] 사도의 임무(2)-영생의 소망을 인하여 file 딛 1:1-4 손재호 2012-04-04 2528
499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 2513
498 [갈라디아서 1장] 핍박자에서 복음증거자로 file 갈 1:18-24 최상범 2011-07-13 2504
497 [레위기 11장] 음식법 file 레 11:1-23 최상범 2015-10-07 2498
496 [고린도후서 6장]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file 고후 6:3-10 손재호 2014-06-04 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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