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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갈 5:7-15
성경본문내용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8)그 권면이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9)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11)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강설날짜 2011-11-30

2011년 11월 30일 한결교회 수요강설

갈라디아서 제26강


진리에 순종


말씀 : 갈 5:7-15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결국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이 다른 복음을 좇으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서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라, 다른 복음을 좇으면 결국 삶이 부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5장 후반부부터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다른 복음으로 인해서 격분할 수밖에 없었고, 앞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경고했으며, 오늘 본문에서도 그들에게 대하여 다시금 심판을 선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케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갈 5:10)

(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갈 5:12)

 

12절은 거짓교사들을 아주 풍자적으로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너희들이 그렇게 베어내는 것을 좋아하는데(할례가 성기의 표피를 베어내는 것이니깐), 베어내는 김에 아예 성기 전체를 베어내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적대감이 이렇게 차가운 조롱으로까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가르침과 삶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가르침을 좇느냐 어떤 가르침에 순종하느냐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좇아서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그 결과가 아이러니하게도 육체의 일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우리가 이미 배운 것처럼 단순히 우리를 외적으로 제지할 뿐, 우리 내면에 어떤 순종할 힘이나 도움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외적으로 조목조목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율법이 궁극적으로 목적하는 바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실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규칙과 조건과 자격을 논하는 곳에서는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정죄하는 것 밖에는 나올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결국 율법을 어떻게 악용합니까? 외적으로 몇 가지 조항을 지켰다고 자기 의를 내세우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데 이 율법을 악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그들의 외식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라고 하셨습니다(마 23:25이하). 율법이 겉은 깨끗하게 보이게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되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썩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마음이 문제입니다. 이 마음이 근본적으로 썩어 있는데, 율법은 이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 썩고 부패한 마음을 은밀하게 감추고 바깥만 치장하는데 악용되어서 자기를 자랑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좇아 살면, 5장 후반부에 나오는 육체의 일이 현저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결코 사랑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언약은 어떻습니까? 이 마음을 근본적으로 고치시는 것입니다. 무엇으로요?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 마음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을 우리 마음판에 새겨주시고, 또 우리로 자원해서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모든 힘과 은혜와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율법이 목적하는 바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갈 5:14)

 

결국 그 복음 안에서 허락된 자유는 우리로 어디로 이끌어갑니까?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언약은 율법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진정으로 성취하는 삶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사실은 원래 율법이 목표하였던 바였는데, 율법 아래 있을 때는 우리가 그것을 실천할 수 없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그것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실 때, 사실은 율법에 이미 있는 계명이지만, 그것을 ‘새계명’이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하고, 율법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는 것하고 내용상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럼에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계명을 이루는 방식에서의 근본적인 차이점 때문입니다. 율법도 이웃사랑을 명하지만, 그것은 우리 바깥에서의 외적인 명령일 뿐, 아무런 순종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본성상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산 신자에게 있어서는 상황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 주님의 사랑 안에서, 그 은혜를 힘입어 비로소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새계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의 메시지는 이런 사랑의 열매를 맺는 삶이 오직 어디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까? 은혜의 복음 안에서만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오직 은혜의 복음을 따라 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7절의 표현을 빌리면, 진리를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갈 5:7)

 

여기서의 진리는 은혜의 복음을 말합니다. 은혜의 복음을 순종해야 구원 받을 수 있고, 또 율법을 성취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7절에서 보는 것처럼 갈라디아 성도들은 처음에는 달음질을 잘했지만, 나중에 거짓교사들의 미혹에 넘어가서 다른 복음을 좇으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길이고, 그것의 결과 삶의 모든 경건이 무너지기 때문에 바울이 지금 이 갈라디아서 서신을 통해 매우 분노하고 격양된 어조로 다른 복음을 비판하고 은혜의 복음을 길게 변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이 진리를 알아야 된다고 하지 않고, 순종해야 된다고 말한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알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할 것을 요구합니다(행 6:7; 롬 6:17; 롬 10:16). 우리는 이 은혜의 복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 은혜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종한다니깐 어렵게 생각하는데,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배웠듯이 그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은혜 안에서 은혜를 누리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 그리고 날마다 이 은혜만을 의지해서 사는 것이 은혜의 복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에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에서 사랑이라는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복음의 복종하는 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처럼 우리에게도 진리를 순종치 못하게 막는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그리고 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은혜를 자주 잊어버리는 배은망덕한 본성이 있습니다. 자신의 전적부패와 타락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존심과 체면, 자기 의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려고 하는 교만이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복음을 순종한다는 말은 이러한 죄악된 본성을 부인하고, 죽여서 하나님의 은혜에 자기를 복종시켜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믿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이 우리의 신앙의 여정을 달음질이라고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에스컬레이터에 탄 것이 아닙니다. 발만 얹어놓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를 자동적으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식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달리기 경주와 같습니다. 사실 바울은 자주 신앙의 여정을 달리기 경주로 비유하여 말합니다.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2-14)

 

달리기 선수는 몸을 전면으로 숙이고, 눈은 목적지에 고착시키고, 손은 앞으로 뻗을 채로, 발을 빨리 움직이는 데만 집중하고 거기에 전심전력을 다해서 그의 목적을 추구하려고 좇아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인 것이죠. 오직 부름의 상을 위하여, 의의 소망을 기다리면서, 오직 무엇에만 힘써야 합니까? 진리를 순종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은혜의 복음 안에 거하는 삶을 지금 현재 살아가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리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직 은혜 안에서 신앙의 경주를 힘써 감당하고 있습니까? 다른 것을 볼 필요 없이 내 삶에 사랑의 열매가 맺히는지 않 맺히는지를 보면 내가 진리에 순종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사랑의 열매가 맺혀지고 있나요? 내 삶 속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진리를 불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하고, 우리 삶 속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가 참으로 회개하여 거기서 돌이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아래서 진리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을 보십시오.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우리를 자유케 하신 목적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자유와 종이 서로 대조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로 결합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란 방종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은 사실은 바울의 모든 서신에서 늘 최정상에 있는 항목입니다. 어느 바울 서신의 산을 등반해도 결국 최고봉에는 항상 사랑이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자주 증거합니다.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4)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13)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2-14)

 

이런 말씀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 결국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을 실천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자유하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것을 단순히 율법의 저주와 지옥 심판에서 구원받아 죄 사함과 의롭게 됨과 영생을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하는 소극적인 개념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리스도의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는,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하는 복음의 적극적인 측면을 또한 우리는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무엇이고, 우리에게 이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어떤 구속을 행하셨는지를 우리가 주목하고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또한 그와 아울러서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부르셔서 결국 우리의 삶 속에서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가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 속에서 기대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농부가 포도나무에서 포도열매를 기대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간절히 사랑을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랑하라’, ‘사랑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이 얼마든지 율법조항처럼 되어서, 나는 하기 싫은데, 나 바깥에서 압박하고 강요하는 무거운 멍에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앞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아버지에게 돌아왔을 때, 아버지의 은혜의 통치를 받는 것을 과거처럼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으로 생각했겠습니까? 긴 방황을 통해서 탕자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 신앙이 철이 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가 두려워서 공부하는 것은 철이 없는 것이고, 공부가 부모 아래 있는 자녀의 권리라는 것을 알고 자원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철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결코 그런 압박이나 무거운 멍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은혜와 자유의 능력으로서 우리가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사랑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의 능력의 근거가 되셔서 우리로 사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랑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이미 성령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허락된 은혜를 힘입은 사랑의 실천을 우리 각자가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육체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를 낭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어떤 구속을 행하셨으며, 그 자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철창 우리 속에 있는 독수리에게, 철창의 문을 열어 자유롭게 해주었는데, 날지도 않고 가만히 철창 우리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로부터 받은 영양분과 진액을 그냥 땅에 흘려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7)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8)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 6:7-8)

 

끝까지 그렇게 살면 그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우리의 욕심과 능력과 한계 속에 묶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옛사람의 욕정과 이기심에 우리를 가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부르시고 성령을 주셨다는 것을 알고, 또 그 성령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하시는지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어느 만큼의 구원, 어느 만큼의 성취를 목표하고 계시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결국 신앙생활하면서 늘 질문하는 것이 “왜 나는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나?”하는 것인데, 결국 그 질문은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하면 예수님께 대한 나의 믿음 문제로 끌고 갑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다 보면 우리의 믿음 없는 것을 늘 한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없다고 얘기할 때, 그것은 결국 나의 의지가 약하다든가, 나의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우리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그러나 믿음은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분의 십자가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지 못하는 영적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을 실천함에 앞서서 오직 은혜의 복음의 진수를 깊이 깨달아 가야하고, 그 은혜의 복음 위에 굳게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복음에 순종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여 달음질을 해 나아갈 때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랑의 열매가 맺히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넘치게 부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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