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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신 23:1-8
강설날짜 2019-11-13

2019년 신명기 공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

말씀:신명기 23:1-8

 

오늘부터 우리는 신명기 23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신명기 23장 말씀은 21장부터 계속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실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적 자비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계속되는 말씀입니다. 특히 23장에서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들(1-8)과 진을 정결케 하는 법(9-14)과 약속의 땅에 살 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기타 규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1-8절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에 대해 말씀합니다. 우리가 본문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살펴보기 전에 여호와의 총회가 무엇인지부터 먼저 보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총회라는 말은 출애굽 이후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언약대로 출애굽하게 되는데 그 정점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별되는 것이 바로 여호와의 총회입니다. 이들이 홍해를 건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을 때 최초로 총회라고 합니다. 신명기 5:2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 하시고 그것을 두 돌 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너희 총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총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호와의 총회는 사람들이 의도해서 만들어낸 총회가 아닙니다. 에스겔서 20:5-9절을 보면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었노라. 그 날에 내가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그러나 내가 그들의 거하는 이방인의 목전에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었었나니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목전에서 더럽히지 않으려 하여 행하였음이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애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출애굽 시켜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을 출애굽 시키신 것은 여호와의 선택과 맹세를 이루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심은 결국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총회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총회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면 안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할 자가 누구라고 합니까? 첫째로,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이 베인 자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신낭’과 ‘신’이란 고환과 생식기를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을 베인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태어나면서부터 신낭과 신이 상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자들까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의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신낭이 상하고 신이 베인 자는 태어날 때부터 상한 자를 말 한다기보다는 가나안의 우상숭배자들이 그들의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거세를 한 자들을 두고 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게 되면 이교도의 풍습에 전염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를 위해 신낭이 상하거나 신이 베어진 자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총회를 보호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로, 사생자입니다. 2절을 다시 보면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십대까지라도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사생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 ‘사생자’란 아비 없는 자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는 사생자는 아비가 없는 자가 아니라 음행으로 태어난 자식을 말합니다. 이런 사생자에 대하여 호세아 5:7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다는 말은 우상숭배자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자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절에서 십대까지 이런 자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십대를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규례가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십대까지’라고 했기 때문에 십대 이후에는 들어올 수 있다는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이 베인 자 그리고 사생자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신낭이 상한 자나 신이 베인 자 그리고 사생자는 다 우상숭배와 관련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것은 우상 숭배자들을 하나님의 백성의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에 받아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이런 우상숭배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과거 우상숭배를 했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께서 돌아 온 자는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우상숭배자들을 받아들일 때 거룩한 교회 공동체 전체 부패할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면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데 사생자처럼 십대만이 아니라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암몬과 모압 족속은 어떤 족속입니까? 암몬과 모압은 롯의 두 딸이 자기 아비에게서 낳은 자식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후에 롯이 소알이라는 성읍에서 살다가 두려워서 동굴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그때 롯의 두 딸들이 세상의 도리를 좇아서 자기들의 남편 될 자를 만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아비에게 술을 먹여서 후손을 잇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족속이 암몬과 모압 족속입니다.

 

그러면 암몬과 모압 족속이 왜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까? 4-6절을 보면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때에 떡과 물로 영접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메소보다미아의 브돌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갈 때에 도와주기는 커녕 도리어 적극적으로 방해를 하였습니다.

 

민수기 22장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로 인하여 저주가 오히려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1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이 언약으로 인해서 발람이 아무리 저주를 하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니 저주가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을 받는 길은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스스로 서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저주를 받는 길입니다(참조. 신 28장).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총회를 저주한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이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참여 하지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너의 평생에 암몬 족속과 모압 족속의 평안과 형통을 구하지 말라고 합니다.

 

암몬과 모압 족속은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데 방해하고 저주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고 저주를 한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고 저주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는 이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특히 오늘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교회 공동체에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이들은 진리를 무너뜨려 교회 공동체를 무너지게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진리의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가운데 우상숭배자들과 하나님을 대적하고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 곧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철저히 물리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를 보호하며, 교회를 통해서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7-8절을 보면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그들의 삼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에돔은 너의 형제라고 합니다. 에돔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에서의 후손으로 이스라엘과는 혈연관계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에돔과 애굽 족속은 하나님 나라의 땅에 산지 삼사 대 후에는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고 합니다. 애굽 족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 애굽에 들어갔을 때에 그들을 보호 해 주었습니다. 물론 요셉이 총리로 있어서 그랬기도 합니다만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장한 곳입니다. 곧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곧 큰 민족을 이루어 주리라고 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는 일에 애굽이 태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직전에 고역을 시키고 바로 왕의 강팍으로 이스라엘을 내 보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이 민족으로 태동한 곳이 바로 애굽입니다. 그러므로 이 애굽 족속은 에돔 족속과 함께 삼사 대 만에 이스라엘의 총회에 들어올 수가 있다고 합니다.

 

총회에 들어오고 못 들어오고 하는 내용들이 선지자들에게 오면 좀 달라집니다. 총회에 들어오고 못 들어오는 기준이 달라지는데 이것은 율법과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상으로 사실 같은 것입니다. 그 내용이란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로 인하여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이 없이는 들어 올 수가 없는 것이 이스라엘의 총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총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선택과 긍휼을 부정하게 되면 잘리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선택인줄 모르고 자기들을 위한 선택인줄 알고 교만하면 그들도 잘리는 것입니다.

 

이사야 56:3-8절을 보면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그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말하지 말며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할 것이며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는 주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미 모은 본 백성 외에 또 모아 그에게 속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방인도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그 백성 중에서 갈라내실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자도 마른 나무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고자라도 안식일을 지키며 여호와를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은 고자들에게는 여호와의 집에서 자녀보다 더 나은 기념물을 주며 영영한 이름을 주겠다고 합니다. 신명기에서 생식기가 상한 자들이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여기서는 고자라도 여호와의 언약을 굳게 잡는 자들에게는 영영한 이름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되는 것은 이스라엘의 쫓겨난 자를 모으신다는 말씀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함으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외국의 왕궁에서 일을 한 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바사 궁정에서는 환관들만 궁정에서 일을 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외국에 쫓겨난 자들이라도 다시 돌아와서 이스라엘의 총회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고자라도 총회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총회를 내다보신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완벽하게 의로움을 지켜서 총회의 구성원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기 때문에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에스겔 36장).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총회란 신명기에서나 이사야에서나 간에 여호와의 일하심이 담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자들이 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하심이 담겨질 때 여호와의 총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도 여호와의 일하심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무리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레미야 31:6-9절을 보면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 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고 했습니다.

 

미가서 4:6-8절에서도 보면 쫓겨난 자를 모아 내시는데 이런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는 내가 저는 자를 모으며 쫓겨난 자와 내가 환난 받게 한 자를 모아 그 저는 자로 남은 백성이 되게 하며 멀리 쫓겨났던 자로 강한 나라가 되게 하고 나 여호와가 시온산에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그들을 치리하리라 하셨나니 너 양떼의 망대요, 딸 시온의 산이여! 이전 권능 곧 딸 예루살렘의 나라가 네게로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긍휼을 담아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으려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수군거리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마 9:12-13). 그러므로 여호와의 총회란 인간의 의로는 들어갈 수 없는 것이며, 오직 여호와의 긍휼이 담겨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총회란 지상에서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만드시는 여호와의 총회는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21-26절을 보면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분명한 구분이 육체와 약속입니다. 인간의 의도와 실력으로는 약속에 들어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육체라고 하며, 약속이란 없는데서 있게 되는 방식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8-29절을 보면 “너희의 이른 곳은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 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장자들의 총회를 보여주는 것이 구약의 이스라엘이며, 신약의 교회입니다. 이 둘 다 하나님의 언약과 긍휼이 담겨야 합니다.

 

구약의 총회는 어린 양의 피 뿌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림자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아닌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의 피로서 뿌려진 것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입니다. 이 총회를 현재 보여주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하늘에 있는 장자들의 총회인 피 뿌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재주와 뜻과 방법으로 세워나가려고 한다면 이것은 하늘에 있는 총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임의 단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의 총회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축복을 온전히 누려가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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