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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2:1-6
성경본문내용 (1)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2)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3)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4)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5)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6)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강설날짜 2007-12-09

2007년 12월 9일 설교


대언자 예수


말씀:요한일서 2:1-6

우리는 지난주에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 속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궁극적 목적은 빛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충만케 되어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에게 대언자가 필요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대언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1절을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요한1서를 기록한 목적 가운데 하나입니다. 1:3-4절에 보면 요한일서를 기록하는 긍정적 목적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를 기록한 긍정적 목적은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을 누리며, 이를 통해 우리 가운데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입니다. 이를 위해 1장에서는 빛 가운데 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2장에 들어가서는 이 이야기를 부정적인 차원에서 조금 각도를 바꾸어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1a).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역사하는 죄를 극복하고 이기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일을 함에 있어서 대언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우리 곁에서 우리를 하나님 앞에 변호해 주시고 도와주실 대언자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대언자’란 어원적인 뜻으로는 ‘파라클레토스’인데, ‘파라’(곁으로)와 ‘클레토스’(부름을 받은자)로서 ‘곁으로 부름을 받은자’, ‘누군가를 위하여 곁에 서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법정에서는 그런 사람을 변호사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있는데 그 ‘파라클레토스’(대언자)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대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어떻게 변호해 주시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능히 그 일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 피로 산 자입니다. 내가 피 값을 저 사람을 위하여 지불을 했습니다. 그를 위하여 흘린 나의 피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렇게 아버지 앞에서 대변해 주시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대언자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이기는 일을 더 힘써 행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또 다른 이름을 우리 예수님께 돌리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여기서 ‘화목제물’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 혹은 대속적 사역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NIV에서는 ‘속죄하는 희생제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그리고 온 세상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자신을 바침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마땅히 돌아오게 되는 모든 죄로 말미암는 진노를 대신 감당해 주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모든 죄로부터 속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진정한 참된 생명의 관계 속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시고, 동시에 계속적으로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서 말씀해 주시는 ‘대언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도움을 받아서 비록 우리가 이 세상 속에 살면서 여러 죄에 넘어지고 유혹 속에서도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아버지와의 빛 가운데서 영원한 사귐을 이루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한은 이 편지를 쓰면서 나의 자녀들이라고 부르는 그들에게 무엇을 위하여 편지를 쓴 것입니까?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죄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지난주에 보았듯이 도덕 윤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4절을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자이며,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죄는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요한1서에서 말하는 계명이란 3:23절에 보면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의 계명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이요. 둘째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 곧 서로 사랑하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린 것처럼 우리도 목숨을 주기까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절에 보면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율법의 완성자가 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명하신 이 계명을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누구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까? 모세의 말도 아니고, 선지자의 말도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변모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마 17:5).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딱 한 가지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 순종하여 형제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새 계명이 실제적으로는 언제부터 있었던 것입니까? 7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새 계명은 옛 계명 곧 율법 안에 들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질문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22:36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선생님,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2:37-40절에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율법과 선지자들의 핵심이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율법을 지키다가 그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야고보 2:10절에 보면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예를 쓰지만 하나라도 어기게 되면 전부를 못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을 다 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계명을 못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을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안다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곳에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러면 계명을 지킨다는 말 곧 ‘형제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3:8-10절을 보면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니까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 속에 율법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서신에서는 ‘사랑하라, 네 형제를 사랑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서신에서 ‘계명을 지키라’는 말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입니까? 요한일서 3:14-16절을 보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살인하는 것이며, 영생이 그 안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이루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씀을 보면서 과연 내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며, 새 언약 안에 있는 자인가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나는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 이렇게 하는가 하면 사람들이 대부분 성경에서 기록된 말씀을 자신들이 지킬 수 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구약 율법을 가장 잘 지킨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의 핵심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께 율법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 선생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성전에서 가르치니까 기분이 나뿐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율법의 핵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네 이웃이 누구냐’고 반문하시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통해 너희도 이처럼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편에서 볼 때 예수님은 기분 나쁜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선한 이웃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스스로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쓰고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1절을 다시 보면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고 쓴다고 하면서 누가 죄를 범하면 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을 미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내가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이 빛 가운데 행한다고 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는 것과 계명을 지키게 하는 것이란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율법의 마침이 되시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죄 사함을 받는 길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그 안에서만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조차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2절을 다시 보면 예수님의 화목제물 되심은 우리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미 예수를 믿는 자들의 구속주 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구속주가 되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속죄가 온 세상의 죄를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가지고 만민구원설이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예수님의 속죄로 다 구원받는다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더 복음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분명한 선택설이 있기에 만민 구원설을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속죄는 예수님이 이루어 놓았으니 그것을 믿고 안 믿고는 개인에게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이 지정의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달려있는 것입니까? 결국 인간에게 달린 것입니다. 그러나 허물과 죄로 죽은 인간이 무슨 수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에스겔서에 보면 마른 뼈가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어떻게 살아났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더 이상 지역이나 혈연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분이나 지위와 인종과 상관없이 오직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된 자를 다 불러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온 세상인 것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의 조건도 따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나님과 그 아들의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이 온 세상의 죄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란 5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서 온전케 된 사람들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그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 아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루어졌으니 참으로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이런 사랑을 받은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랑은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5:4). 내가 지키려면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난 자이기 때문에 마땅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늘도 대언자가 계속하여 중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34절에 보면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7:22-25절을 보면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저희 제사장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살아서 간구하시기에 온전히 구원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죄짓지 않게 하시고 늘 대언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온전함에 나아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며 주님께서 명하신 계명에 순종하여 형제를 사랑하므로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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