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77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2:12-14
성경본문내용 (12)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13)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14)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강설날짜 2007-12-30

2007년 12월 30일 설교


그의 이름으로


말씀:요한일서 2:12-14

지난번에 우리는 새 계명을 쓰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새 계명이란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새 계명 자체가 빛으로서 어두움인 우리에게 밀고 들어온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두움이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새 계명의 빛이 우리 속에 밀고 들어올 때 그 결과로서 마땅히 형제를 네 몸처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 스스로 어두움을 물리치고 빛 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어두움의 일을 택하느냐, 빛의 일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어두움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죄인 줄, 곧 어두움 아래 있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모습이 나오는가 하면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하시는데 나는 그런 죄를 지은 적이 없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5:12절에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 모든 인생은 우리의 최초의 조상인 아담의 허리에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인정하고 안 하고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아담의 후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면서 살겠다는 사고방식이 아담의 범죄 안에 들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 결과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14절에 보면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아도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표상이라는 말은 아담 안에 속한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사망이 왕 노릇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역시 그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생명이 왕 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습니까? 그런데 이것을 믿는다는 것은 인간의 지성이나 감정이나 의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새 계명이 빛으로 우리에게 밀고 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곧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정말 그러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미 성도 안에 이루어진 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빛으로서 살아야 이런 모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성도 안에 이미 주어져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인 12-14절은 설교에서 말하면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무엇인지 적용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청중들 중에서 구체적인 계층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라고 합니다. 여기서 자녀들은 나이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디도서 공부에서 살펴봤듯이 한 사람에게는 늙은 남자의 모습, 늙은 여자의 모습, 젊은 남자의 모습, 젊은 여자의 모습, 아이와 같은 모습 등 여러 가지 모습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2-14절에서 나오는 자녀, 아버지, 청년이라고 한 것은 나이나 신앙의 성숙도를 따라서 구별하는 내용이 아니라 한 성도를 여러 면으로 보고서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도 요한이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이미 적그리스도가 활동하고 있기에 성도가 무엇으로 무장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가 아니기에 아비의 내용만 챙기면 된다든지, 나는 청년이기에 청년 부분만 챙기면 된다든지 하는 그런 자세는 옳은 자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성도라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첫째, 자녀들 곧 성도들은 우리의 죄가 그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12). 여기 ‘사함을 얻었다’는 말의 시제는 완료형입니다. 이미 ‘너희의 죄가 사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동사는 수동태로 되어져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누가 죄를 사하느냐, 사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얼마든지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렇게 죄가 사하여 진 것입니다. 자녀들은 이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죄가 이미 하나님에 의해 사하여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가 하나님에 의해서 사하여 졌다’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아갈 때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를 보면 이 사실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에 의해 이미 사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살 때 어떤 결과를 만들어 냅니까? 그 자녀들 속에 계속해서 죄를 짓지 않도록 만듭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에게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라는 말씀은 ‘자녀들아 이미 너희 죄가 사하여 졌다. 그 사실을 알고 그 사실에 의거해서 죄를 계속적으로 이기는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우리의 죄가 이미 사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 때 우리는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행하지 않게 됩니다. 빛 가운데 행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얻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이 사실을 놓쳐버리면 건물의 기초가 무너지면 온 건물이 다 무너지듯이 우리의 모든 신앙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그의 이름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부터 시작하여 이루어 오신 모든 일들을 포함한 이름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야 하셨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을 보내심까지 모두다 주의 이름으로 일어난 일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주의 이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시는 것이지 결코 이스라엘의 선한 행위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자들입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순종해 본 적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 실상을 보이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죄인임이 드러나고 결국 율법의 저주대로 이방의 포로가 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입니다. 에스겔 36:22-28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습니다. 그런데도 구원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구원하시되 맑은 물로 뿌려서 정결하게 하여 모든 더러운 것에서 곧 우상의 섬김에서 깨끗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어서 자기 백성을 삼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대로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사람입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자기의 이름은 부인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 사함이란 오직 주의 이름으로만 된다는 것을 증거 하는 사람이 주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만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 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되며,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둘째, 아비들 곧 성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 이름의 비밀과 그 이름의 능력을 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비들에 대해서 기록하는 핵심동사 ‘알았다’ 역시 완료형 동사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를 이미 너희가 알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우리가 원리적으로 이야기 했던 것을 가지고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이미 알았다, 아는 그 사건이 이미 일어났다’라는 것은 계속적으로 우리 속에 나타나는 그 증거들, 곧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완성되어져 가는 일이라든지, 하나님 안에 계속적으로 우리가 거하는 그런 일이라든지,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 속에서 입증이 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나타내짐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를 알았다라고 이야기 하는 그것이 지금 계속해서 알아가는 일로 더 깊은 확신 가운데, 더 깊은 교제 가운데 나아가는 이런 일로 연결이 되어져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 요한이 이렇게 표현을 하고 있다면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 알아서 어쨌다는 거냐? 알았다는 것은 우리가 앎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알아가는 삶을 제대로 살아야 될 것인가? 그런 부분에 대한 실제적 적용으로 연결이 되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본문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신이가 육신으로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비들 곧 성도들은 이미 그 분을 압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다만 역사적인 한 인물이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그분과 지금도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사도들이 보고 들은 바를 전하는 것은 사도들과 사귐, 곧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의 사귐을 통하여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도대체 그 이름이 무엇이기에 죄를 사함 받게 되었는가를 더 알아가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8-13절에 보면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교회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경륜을 교회로 말미암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 비밀의 경륜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이제 내가 주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 보답할까 하는 차원이 아니라, 도대체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이 무엇인지 이제부터 알아가고 맛보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비입니다.

자녀나 아비나 청년을 한 개인의 신앙 성숙도로 말할 수 없고 한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다 들어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아이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후에 우리가 무언가를 많이 해야 신앙이 성숙해진다고 들어왔습니다. 언제까지 죄 사함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야지 하면서 여러 가지 빛 된 삶을 살라고 주문을 합니다. ‘사명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제자 양성을 해야 한다.’ 그런 것을 신앙의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과거 이런 것이 신앙의 성숙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성숙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는데 이제 그 이름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아가는 것이 신앙의 성숙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태초부터 계신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4절을 보면 “다시 아이들아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들에게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곧 아들을 아는 것입니다. 아들을 모르면 아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아비들은 여전히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다고 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은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청년들 곧 성도들은 악한 자를 이겼다고 합니다. 13b절에 보면 청년들은 악한 자를 이겼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기었다’는 말 역시 완료형입니다. 청년들이 어떻게 악한 자를 이긴 것입니까? 14b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심으로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합니다. 흉악한 자란 거짓 선생들을 말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을 물리쳐 이긴 것은 말씀이 그 안에 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결국 태초에부터 계신 말씀이며, 영원하신 아버지의 뜻 안에서 예정 된 대로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속죄한 이름입니다. 그 이름으로 속죄함을 입고 그 이름의 비밀과 능력을 알아갈 수록 그 보혈의 능력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흉악한 자들을 물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이며, 그 이름을 알아감으로 그 사귐의 깊이가 더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흉악 한 자를 이길 뿐만 아니라 손도 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5:18-21절을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았으며,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하여졌으며, 흉악한 자를 이미 이기었음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이 사실 가운데 거하게 하사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03 [마태복음 28장] 왕의 대위임 명령 마 28:16-20 손재호 2007-11-18 5829
602 [요한일서 1장] 생명의 말씀! 요일 1:1-4 손재호 2007-11-25 5654
601 [요한일서 1장] 빛 가운데 행함! 요일 1:5-10 손재호 2007-12-02 4600
600 [요한일서 2장] 대언자 예수 요일 2:1-6 손재호 2007-12-09 4873
599 [요한일서 2장] 새계명을 쓰는 이유 요일 2:7-11 손재호 2007-12-16 5087
598 [누가복음 2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 눅 2:1-20 손재호 2007-12-23 4572
» [요한일서 2장] 그의 이름으로! 요일 2:12-14 손재호 2007-12-30 3772
596 [요한일서 2장] 세상을 사랑하면! 요일 2:15-17 손재호 2008-01-06 4664
595 [요한일서 2장] 적그리스도를 주의하라 요일 2:18-23 손재호 2008-01-13 4536
594 [요한일서 2장] 처음부터 들은 것! 요일 2:24-29 손재호 2008-01-20 4442
593 [요한일서 3장] 하나님의 어떠한 사랑! 요일 3:1-3 손재호 2008-01-27 5946
592 [요한일서 3장] 범죄하지 말라 요일 3:4-10 손재호 2008-02-03 4876
591 [요한일서 3장] 서로 사랑할지니 요일 3:11-24 손재호 2008-02-10 4446
590 [요한일서 4장] 영을 다 믿지 말고 요일 4:1-6 손재호 2008-02-17 4044
589 [요한일서 4장]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요일 4:7-12 손재호 2008-02-24 6451
588 [요한일서 4장] 두려움이 없는 사랑 요일 4:13-21 손재호 2008-03-02 5564
587 [요한일서 5장] 세상을 이기는 믿음! 요일 5:1-5 손재호 2008-03-09 5265
586 [요한일서 5장] 하나님의 증거! 요일 5:6-12 손재호 2008-03-16 5146
585 [고린도전서 15장] 부활의 첫 열매! 고전 15:19-28 손재호 2008-03-23 4348
584 [요한일서 5장] 영생이 있음을! 요일 5:13-21 손재호 2008-03-30 466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