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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2:15-17
성경본문내용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강설날짜 2008-01-06

2008년 1월 6일 설교


세상을 사랑하면


말씀:요한일서 2:15-17

2008년 무자년 새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온전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성장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지난 2:11-14절 말씀을 통해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이루어가기 위한 실제적인 예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미 죄사함을 받았으며, 성도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으며, 성도들은 이미 악한 자를 이기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함을 배웠습니다. 성도는 이런 것들을 알 때 그 은혜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15절부터는 다시 원론적인 차원으로 돌아와서 하나님과 진실된 사귐을 이루어 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 곧 그 빛의 사귐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적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해서 두 주간에 걸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 진실된 사귐을 이루어 가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인 세상을 사랑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본질중의 한 가지가 바로 우리의 사랑을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볼 때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잠시만 방심해도 금방 이 세상과 세상의 것들에 우리의 마음이 빼앗겨 버립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에 우리의 사랑이 빼앗기게 될 때 그 결과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결코 양립될 수 없습니다. 곧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왜 하나님과의 사귐을 방해하는지 배우고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수요 강의 때 ‘예수 믿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땅의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하고 위엣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딤전 6:9-10).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예수 믿는 자들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할까요? 아마 다 도망갈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면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세상에 온갖 좋다는 이야기들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부터 해서, 하나님을 믿으면 복 받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우리 자신들도 이렇게 전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라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고 구하지 말라는 것은 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상에서 잘 될 수 있도록, 부자 되게 해 달라고, 이 땅에서 잘 되고 복 받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는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 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세상이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고 말씀 하셨는데 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세상의 죄짓는 것이나 세상의 악한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지 이 세상 자체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으로는 여기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3:16-21절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는 멸망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사랑입니까? 사랑한다면 다 용서하시지 왜 멸망시키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까? 또 계속 되는 말씀을 보면 믿지 아니하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심판을 받는 정죄가 무엇입니까?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빛을 예수님으로, 어두움을 세상으로 대입시켜도 됩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기에 빛이신 예수님을 미워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사랑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사람들이 미워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곧 세상을 사랑하는 자신들의 어두움이 드러나기 때문에 빛이신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에 가서 장사해서 이익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악한 것입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얻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악한 생각입니까?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것이 악한 것입니까? 문제는 이런 열심들이 무엇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3-16절을 보면 어디에 가서 장사해서 이를 보리라고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은 제쳐두고 허탄한 자랑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이루고자 하는데 그 이룸을 통하여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것을 악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4: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올바른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제쳐두고 허탄한 자랑을 위해 세상을 사랑하고 계획하고 열심히 이루고자 하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와서도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의 자랑거리를 구한다면,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을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죄며, 하나님의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는 빛되신 하나님과 진리의 사귐을 이루어 갈 수 없습니다.

이제 본문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5절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죽임을 당한 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에 사랑할만한 것이 있을까요? 자기 아들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 될 때 그 피 앞에서 회개하는 자와 그 피를 무시하는 자 이렇게 둘로 나누어짐을 볼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늘 자기 생각밖에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비켜나갈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6절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죄악된 본성적 차원의 욕망을 말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구체적인 육신의 정욕의 한 부분으로 눈을 통해 들어오는 욕망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외모지상주의와 같은 욕망입니다. 이생의 자랑이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 곧 생명유지에 대한 필요한 소유를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한 이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이 세 가지의 욕망에서 벗어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런 정욕들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옆구리에 있는 후손들이기에 우리들에게 이런 욕망이 근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보았을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이생의 자랑이 될 만큼 탐스러웠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 얼마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이생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까? 사람들이 날마다 살아가는 방향과 목적이 전부 이 세 가지 안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 때는 먹고 사는 일에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먹고 살만하면 이제 보암직한 것에 나서는 것입니다. 60년대, 70년대 우리의 삶을 보십시오. 오직 먹는 문제가 전부였다시피 했습니다. 먹는 문제만 해결해 준다면 인권도 민주화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기꺼이 희생하면서까지 먹는 문제 해결에 올인 하였습니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이 시대 우리들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하루 세끼 밥 먹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추위에 떨지 않을 옷만 입으면 만족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를 먹어도 맛이 중요합니다. 건강을 위해 몸에 좋은 것을 먹고자 합니다. 옷을 입어도 품위와 멋을 먼저 따집니다. 등만 눕힐 수 있는 방만 있어도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안락하고 편안한 집을 추구합니다. 자동차를 사도 멋있는 것을 사고 싶습니다. 심지어 오늘날은 얼굴까지 뜯어고치고자 하고, 에스라인 몸매를 만들기 위해 먹는 것도 절제하며 투쟁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자꾸만 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런 것은 다 이생의 자랑을 구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런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인 것이 더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면서 반대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소유를 이야기 하고, 나눔을 실천하며, 환경운동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세상과 다른 가치를 위하여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가만히 따져보면 이생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요즈음 세상에 그렇게 착한 사람이 다 있다니!’ 이 얼마나 세상의 자랑거리입니까? 얼마나 보람 있는 일입니까? 결국 이것도 이생의 자랑을 구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는 이 욕망 속에 한평생을 보내면서 사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런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살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2-14절 말씀을 다시 보아야 합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오늘 말씀은 바로 앞의 이 말씀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보면서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하여 살고 있는지 들통이 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통이 날 때에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다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12-14절의 이 말씀이 바로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미 사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를 우리가 이미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여 이미 흉악한 자를 이겼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인 것입니다. 이 믿음이 주어진 자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닙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은 다 배설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이 주어진 성도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 목표가 아니라 다른 목표,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된 자는 빛이신 하나님과의 사귐, 곧 진리와의 더 깊은 사귐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17절을 보겠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해도 빛을 잃고, 별도 떨어집니다. 우리가 볼 때는 영원할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지나갑니다. 그래서 전도자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일장춘몽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5:12절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진리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세상을 하나님 아버지의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더 깊이 하나님과 사귐을 이루어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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