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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5:1-5
성경본문내용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4)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강설날짜 2008-03-09

2008년 3월 9일 설교


세상을 이기는 믿음


말씀:요한일서 5:1-5

요한일서 4:1-5:12절까지는 3:23절에 나타난 계명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을 새롭게 확인해 가면서 더 풍성한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말씀인데, 4:13-5:5절까지는 두 주제 곧 믿음과 사랑이 복합되어서 합주 형태로 주어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4:13-21절 말씀을 통해 합주 형태의 한 부분으로 ‘두려움이 없는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5:1-5절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5:4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로 난 자는 세상을 이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세상이 무엇이며, 이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곳을 세상이라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상을 더 넓게 정복하고 자기의 힘으로 다스리는 것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곧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세상 사람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교회는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삶을 살므로 어둡고 썩어져 가는 세상을 밝히고 썩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많이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소박한 말도 듣기가 힘든 세대입니다. 요즘 교회에서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내용들이 대부분 세상 사람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세속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보면 교회가 힘을 많이 가져서 세상의 힘들을 굴복시키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방식은 교회사에서 무수히 나타난 모습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십자군 전쟁입니다. 온갖 인간의 욕망을 담은 전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십자가를 내세우고 거룩한 성전이라고 전쟁을 벌인 것입니다. 요즈음도 교회가 하는 것들을 보면 방법만 다르지 내용은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힘의 보여주자는 식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대형집회를 통하여 숫자의 힘을 과시하려고 합니다. 정당한 입법조차 기독교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기들의 목표가 달성되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세상을 이겼다고 합니다. 과연 그런 것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일까요?

이사야 31:1-3절을 보면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앙모치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거니와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 말을 변치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를 치시리니.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시편 33:16-22절에서도 보면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 데에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라고 노래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강함이 아니라고 합니다. 군대의 많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앙모하고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믿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비밀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5:1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힘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과 병거를 원하는데 예수님은 자신조차 이 세상에서 머리 둘 곳조차 없이 사신분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끝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물론 부활이 있지만 그 부활은 모든 사람에게 보이신 것이 아니라 선택된 일부에게만 보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사람의 결단과 결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바리새인이요, 율법 선생이었던 니고데모조차도 거듭나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낳으셔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14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접하는 것은 사람으로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예수님의 영광과 은혜와 진리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의 증거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로 난 자의 증거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1b절에 보면 “또한 내신 자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난 같은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계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요한일서 3:23절을 보면 우리는 그의 계명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계명은 구약의 율법적인 계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곧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은 율법의 조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낳으신 결과물로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이라는 열매를 우리가 맺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믿음과 사랑인 것입니다. 만약 믿음과 사랑이 은혜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조건이 된다면 믿음과 사랑은 또다시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 계명이란 믿음과 사랑인데 이 믿음과 사랑을 우리가 지켜내어야 할 율법적인 계명으로 대치시키면 또다시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한 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계명과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계명과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 율법의 계명이란 사람을 무겁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아무도 그 계명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계명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곧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를 맛본 자는 마땅함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4:19-21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 건넘과 여리고 성의 무너짐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구원을 목격한 자들에게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하면서 백성들에게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자기들이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합니다. 이런 내용은 모세에게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너희가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순종하지 아니할 것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사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가나안 땅에서 여호수아의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이유는 이제 여호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살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의 삶은 여호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산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사기를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 마음대로 살던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 이후 왕들이 다스리던 시대는 어떠하였습니까? 선한 왕이 다스리면 조금 형편이 나아지다가도 다시 악한 왕이 다스리면 나라는 다시 우상숭배로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기도 하고 돌아오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탄식과 한숨 속에서 세월을 보내던 유대인들이 다시 율법을 지키자고 나온 자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분리하면서 자기들은 율법을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지킴은 자기들의 의로 전환이 되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무거운 멍에를 지운 것입니다. 율법을 알지도 지키지도 못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들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들이 얼마나 더하였겠습니까? 이 때 예수님이 오셔서 무엇을 말씀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1:28-30절에 보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하셨습니다. 그 멍에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를 지면 수고하고 무거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쉼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는 자는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믿음과 사랑이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5-11절에 보면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바리새인들의 주장에 대해 사도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론이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베드로가 말하기를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은혜이기에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으로 세상 나라들을 이기기도하고, 의를 행하기도 하고, 약속을 받기도 하고,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고, 연약한 가운데 강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과 결박과 옥에 갇히고 돌에 맞기도 하고 궁핍과 학대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믿음의 선진들의 삶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이었습니다.

바울사도도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14절을 보면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13절에 보면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자기들의 행위를 자기들의 믿음과 사랑을 자랑합니다. 그런 것은 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바울을 십자가에 못 박고 바울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겁고 어려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럽고 가벼운 짐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너무 무거운 삶을 삽니다. 세상을 이기기는커녕 온갖 세상의 것들에 눌려서 죽을 지경이 아닙니까? 남보다 뛰어나지는 못하여도 남 하는 만큼이라고 하려고 하니 얼마나 무거운 짐들을 지고 사는지 날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보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4절을 보면 대저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세상을 이긴 이김을 믿습니다. 여기서 ‘이긴’ 이라는 말씀은 이미 과거에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이기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5절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세상을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세상의 가치관에 주눅 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이 세상을 나그네와 외국인처럼 살았습니다.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짐이 가벼운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로 세상 가치관을 따라 살지 않게 하시고,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로 세상을 이기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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