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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일 5:13-21
성경본문내용 (13)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14)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15)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16)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17)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18)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20)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강설날짜 2008-03-30

2008년 3월 30일 설교


영생이 있음을!


말씀:요한일서 5:13-21

오늘 본문은 요한일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사도요한은 이 서신을 마무리하면서 오늘 본문을 통해 이 편지를 쓴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저자인 사도 요한은 이 서신을 쓴 이유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썼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요한의 공동체 가운데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를 짐작하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요한1서를 읽어오면서 적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 요한의 공동체 가운데는 적그리스도들이 일어나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적그리스도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온전한 구원자가 되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 서신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일서 공부를 마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과 그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생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자가 요한일서를 제대로 읽은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자신들 가운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믿음이 있는지, 그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지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면서 요한일서의 마지막 말씀인 오늘 본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요한일서 5:11-12절에 보면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8절에 보면 증거하시는 이가 셋이라고 했습니다. 곧 성령과 물과 피가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증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진리의 내용을 요약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그 분이 땅에서 증거 받으시고, 모든 사역들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확증해 주시는 모든 과정들이 다 포함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 안에 생명이 있는 거다. 그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이 아들이 오시고 이 모든 일들을 감당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의 모든 관계는 이 아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에 달려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자의 삶의 성숙이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기록하는 목적임을 13절에서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을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저자는 이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영생적 사귐의 관계를 더욱 증진해가는 길로 나아가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생명의 사귐을 깊이 증진해 나가게 될 때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담대함(파레시아)입니다. 담대함이란 하나님과 터놓고 예기하는 사이 곧 허물없이 참된 사귐을 누리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1서 속에서 담대함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나타납니다. 2:28절에 보면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3:21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했습니다. 또 4:17절에 보면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고 했고, 5:14절에서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요한일서에서 담대함이라는 요소가 대단히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믿음의 관계, 바른 고백의 관계를 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지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자질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담대함입니다. 이 담대함은 현재 우리의 기도에서 적용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서 하나님 앞에서 말이 막히지 않고 말이 트이는 관계, 곧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터놓고 예기하는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것이 종말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도 우리에게 적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심판의 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두려움 없이 담대함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20절에 보면 요한계시록 기자는 주님께서 속히 오리라 하시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은 담대함을 누리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인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결론부분도 보면 요한일서의 결론과 비슷한 말씀으로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30-31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이 성경에 다 기록된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이 있습니다. 더 많이 있지만 오직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하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증거란 지난번에 살펴보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인데, 이 영원한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11-12절에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 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 얻을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게만 생명이 있고,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이 땅에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5:19-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심판도, 생명을 주시는 것도, 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바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신다는 것은 믿었는데,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심을 믿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이 참람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생명을 주시기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보여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썩는 양식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양식 즉 영생의 양식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시대 때 만나를 먹은 자들도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늘로서 내려오셔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살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였고, 또한 요한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날 이 성경을 보면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믿으면 제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생명이 없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주님이 떠나 가버리면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면서 산다고 할지라도 ,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산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이 다 헛된 것뿐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이 영원하다고 할 것들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면서 무엇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 생명을 받은 자는 다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우상으로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1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이 요한 1서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보다 우상을 좋아하기에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시큰둥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우상에 빠져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영생이 있는 자의 삶은 어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는 것이 영생의 복임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영생이 있는 사람들은 담대합니다. 세상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두려움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환난이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일생이 다 두려움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환난과 일생에 매여 두려워하는 것입니다(히 2:15).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란 세상이 볼 때에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모습이 사실은 생명의 모습이고 영생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이 없는 것을 복으로 여기고, 환난과 핍박을 저주로 보는 시각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14절을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함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면 그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지, 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담대함은 그의 뜻대로 우리가 무엇을 구하면 그 구하는 바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진정으로 아버지의 뜻대로 구했습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26:36-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였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39). 예수님은 이와 같은 기도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구한 예수님의 기도의 결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버지의 뜻대로 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담대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편안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을 받기에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대로 기도하여 담대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16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함으로 담대한 자의 구체적인 한 예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으니 여기에 대하여 구하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난해한 구절입니다. 모든 범죄가 다 죄이며 죄의 삯은 사망인데 어떻게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고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느냐고 할 수가 있습니다(17). 그러나 요한 서신 전체를 보면 사망에 이르는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생명이 있는 자들이 무엇을 구하여야 하는지 한 예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한 대표적인 기도가 아브라함이 롯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위하여 무엇을 구하였습니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구원하여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서 평안하고 안전하게 살기를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고 있던 롯도 그 악한 모습을 보고 그 마음이 상하였습니다(벧후2:6-8). 그런데도 그곳이 살기가 좋았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이런 롯을 위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롯을 구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창 18장).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멸망의 성에서 롯을 구하여 내신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물론 이런 기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기도하시고 성령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결과가 성도에게 미치게 되면 그 생명을 얻은 자도 담대하게 주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 구원을 위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18-20절을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고 했습니다. 사망에 이르는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죄는 하나님께로 난 자는 지을 수 없는 죄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는 예수님을 부인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믿는다고 하다가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니라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로 난 자라면 예수님을 부인하고서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난 자라면 예수님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지키시기에 악한 자가 손도 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두 영역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영역과 세상에 속한 영역입니다. 세상에 속하였다는 것은 악한 자에게 속하였기에 이들은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전에는 다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하신 주님으로 믿는다면, 세상이 다 망하여도 예수님으로 만족한다면, 그런 믿음이란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가지는 믿음이며, 그런 믿음을 지키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기에 담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지각도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이런 지각을 주신 것입니다. 그 지각을 주신 결과가 참된 자가 누구신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하나님이시며 영생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바로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 보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에서 떠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우상숭배에서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21). 자신을 지켜 우상을 멀리하지 아니하면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참된 사귐을 이루어가게 하심으로 영생의 풍성함을 더욱 맛보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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