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by 손재호 posted Dec 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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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22:1-19
성경본문내용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2)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4)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5)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7)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8)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9)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12)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15)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16)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19)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강설날짜 2008-12-21

2008년 12월 21일 설교


이삭을 번제로 드려라


말씀:창세기 22:1-19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린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우신 후 25년 만에 약속의 자녀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자녀로 주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자녀로 주신 이삭을 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아브라함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극단적인 방법으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계시하고자 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이 무엇을 계시하시고자 하셨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맹세를 맺은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어떤 시험을 하셨습니까?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가 지시한 한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번제란 짐승을 잡아 각을 떠서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자손으로 주신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이 시험은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삭을 불태워 드리면 하나님의 언약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또한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생명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이해하기 힘들고, 감당하기 힘든 시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시험은 유혹이 아니라 신앙을 점검하는 시험입니다. 과연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험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시험을 통하여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약속의 자녀 이삭보다도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더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곧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경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아서 한번 말씀하시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왔고, 또 믿음이 좋아서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하니 척 바쳤다 이런 식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이삭을 번제로 드릴 만큼 성숙한 믿음을 소유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아브라함에 대해서 배워왔는데 아브라함의 모습은 믿음이 없어서 여러 가지 실수를 하는 것을 봤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해 첩을 드리기도 하고, 생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기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고 연약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를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믿음을 연단해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인정할 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75세에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하여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연단해 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백세가 되어 주신 언약의 자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통해 그의 믿음을 연단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서 아들 이삭보다도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와 같은데서 아들을 얻게 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가를 테스트하는 것입니다. 곧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는지를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바로 그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사에 쓸 제물이 되는 아들과 나무를 쪼개어 두 사환을 데리고 모리아 산을 향해 떠났습니다. 4절에 보면 출발한지 사흘째가 되어서 멀리 목표지인 산이 보였습니다. 그 당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곳은 모리아 땅에 있는 산입니다. 모리아에 있는 산은 오늘날로 보면 예루살렘에 있는 산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세웠다는 자리가 바로 그 산입니다. 그런데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63마일 쯤 되는 곳입니다. 족히 1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입니다. 창원에서 대구 정도의 거리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흘 길을 나귀를 타고 사환들과 함께 번제에 쓸 나무와 불과 칼을 가지고 모리아에 있는 산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드디어 사흘째 되던 날에 모리아에 있는 산에 이르렀습니다. 5-6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 입구에서 사환들에게 이삭과 함께 산꼭대기에 가서 경배하고 올 것이니 너희는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번제 쓸 나무를 취하여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이삭이 나뭇짐을 지고 산을 올라갈 수 있는 정도면 적어도 15세 정도의 나이는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75세에 부름 받았으니 몇 년이 지난 것입니까? 40년은 족히 지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신지 40여년이 지난 후에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테스트를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40년이 넘도록 그의 믿음을 연단해 오셨습니다.  

7-8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은 모리아 산을 향해 묵묵히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산에 오르면서 좀 이상하였습니다. 번제에 쓸 나무와 불과 칼은 있는데 번제에 쓸 번제물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이에 아브라함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자기의 아들 이삭을 향하여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17:19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서 낳은 아들 그 이름까지 직접 지어 주셨습니다. 그 씨로 인하여 언약을 세우며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시리라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아들을 죽여 번제로 드리라고 하니 아브라함의 심중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9-10절에 보면 드디어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벌려 놓은 후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올려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내리치고자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1-12절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을 불러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는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 경외하는지를 테스트 하신 것입니다. 그 테스트의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이와 같은 신앙의 경지에 오른 것이 누구의 열심 때문입니까? 아브라함의 열심입니까? 하나님의 열심입니까?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우리는 이 본문만 가지고 ‘아침 일찍 떠났다, 그러니 다른 생각 들기 전에 즉시 순종했다, 그리고 아내와 상의를 안했다, 상의를 하였다면 말렸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갔다, 종들을 산 밑에 두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말렸을 것이니 그럴 수밖에 있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꾸만 나열하다 보면 아브라함이 훌륭한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떠한 개인이 훌륭하고 뛰어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계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40여년 동안 열심히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 말씀에 모든 것을 다 걸어 버리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거대한 나라 이집트의 바로왕도 벌벌 떨게 하시는 하나님, 경수가 끊어진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게 하신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이제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 이렇게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9절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성도들과’라는 말은 구약의 믿음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곧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윗과 같은 동일한 성도요, 하나님의 식구라는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히브리서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볼 때 믿음이란 죽은 자를 살리실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도 불가능한 아들이었기에 이제 하나님이 바치라고 하여도 다시 살려 내시리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불필요한 것이지만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일에 실패를 하였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요? 아브라함 너 탈락, 그렇게 하셨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또다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연단하사 이삭을 바치는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믿음의 사람으로 불러내신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열심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가 하면 예수 믿었으니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을 들었으니 이제 다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고도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것처럼 이제 우리의 모든 것까지 하나님의 약속 앞에 바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들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바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들을 다 목사나 선교사를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목숨까지 주님의 약속 안에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이레라는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자식을 잡아 번제로 바치라’는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그 아픔 속에 참여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식, 그것도 약속의 자녀, 그 아이가 죽으면 대가 끊어지는데도 계속하여 단절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이 극단적인 절망은 하늘과 세상과의 단절입니다. 이 단절을 성도는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것도 연결점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으로 불러 내셔서 그 산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상황을 만들어 내시는 것입니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는 아들의 모습에서 아브라함은 새롭게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한 수양이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 대신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14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이삭이 모리아 산으로 가면서 불과 칼은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대답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삭 대신 한 수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삭을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양으로 번제를 드린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언약을 반복하여 주셨습니다. 15-18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문을 얻는다는 것은 전쟁의 승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나님은 창세기 3:15절에 예언된 그 여호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중에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를 라반이 시집보내면서 뭐라고 축복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창세기 24:60절을 보면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결혼하는 딸에게 전쟁의 명령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적의 성문을 얻게 하리라는 말씀이 마태복음에서 16:18절에서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시는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음부의 권세는 음부의 대문이라는 뜻인데, 그러므로 예수님이 음부의 권세 즉 대문을 부수어 버리셨기에 교회를 음부의 권세가 흔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의 힘이 없다고 염려하거나 걱정한다면 그것은 이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두세 사람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완전한 교회입니다. 이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의 몸이기에 대적의 문을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리아 산이 훗날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집니다. 성전의 기능이란 언제나 희생제물이 드려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모든 희생제물은 사람이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준비하여 드리는 희생제물이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신 제물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삼일 만에 일으키리라 하신 것은 성전 된 자기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성전의 기능을 담당하신 분이 바로 자기 몸을 제물로 삼아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그 ‘여호와 이레’의 내용입니다. ‘여호와 이레’란 이처럼 하나님이 친히 제물을 준비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기에 제물을 우리가 준비하여야 마땅한데 우리는 제물의 필요성도 모르고 알아도 준비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온전한 희생제물을 우리는 준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10절을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 이레의 복인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기에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설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화목제물을 준비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위하여 제물을 준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요, 이것이 우리에게 은혜의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이제 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더 이상 세상의 염려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은사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성도에게 어떠한 환난이나 곤난이나 핍박이나 현재일이나 장래일이나 죽음이라도 그 어떤 세력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그 어떤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을 주님의 약속에 모든 것을 던져 버리는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자신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약속에 묻어두고 깊은 수렁과 버려짐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다음 행동을 기대하는 자에게 여호와 이레의 역사를 맛보며 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린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의 언약을 믿고 주님의 언약 안에 우리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하시는 인정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살므로 우리의 모든 삶에 참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누리시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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