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5장] 아브라함의 죽음

by 손재호 posted Jan 1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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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25:1-18
성경본문내용 (1)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2)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3)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4)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5)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6)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7)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8)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9)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10)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11)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 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더라(12)사라의 여종 애굽인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낳은 아들 이스마엘의 후예는 이러하고(13)이스마엘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이름과 그 세대대로 이와 같으니라 이스마엘의 장자는 느바욧이요 그 다음은 게달과 앗브엘과 밉삼과(14)미스마와 두마와 맛사와(15)하닷과 데마와 여둘과 나비스와 게드마니(16)이들은 이스마엘의 아들들이요 그 촌과 부락대로 된 이름이며 그 족속대로는 십 이 방백이었더라(17)이스마엘은 향년이 일백 삼십 칠세에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18)그 자손들은 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러 그 모든 형제의 맞은편에 거하였더라
강설날짜 2009-01-11

2009년 1월 11일 설교


아브라함의 죽음


말씀:창세기 25:1-18

오늘 말씀은 아브라함이 그두라를 아내로 취한 사실과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녀 이삭에게 자신의 모든 재물을 다 넘겨준 후 죽어 막벨라 굴에 장사되는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모든 재물을 다 넘겨 준 의미와 아브라함의 죽음을 통해 그의 인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이방인인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후손으로 부름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처럼 우리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여러 번에 걸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애초부터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을 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그를 부르시고 언약하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오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부르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동일하게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 내시고야 말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우리가 어떻게 믿음의 길로 인도되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기에 그의 출발과 과정과 죽음까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우리 말 성경은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다’고 했는데, 원문을 중심으로 보면 후처라는 용어가 별로 적절하지 못합니다. 즉 사라가 작고하고 난 후에 사라를 대신해서 다시 장가를 들었다고 하면 다소 오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문대로 보면 그두라가 사라가 죽은 후에 사라 대신에 얻은 후처라기보다는 또 하나의 아내, 혹은 다른 아내를 취하였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6절에 보면 우리 말 성경에는 그두라의 자식을 가리켜 ‘서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원문에 보면 ‘그 소실들의 아들들’이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소실들이란 곧 그 첩들이란 하나는 하갈이고, 다른 하나는 그두라입니다. 역대상 1장에 보면 아담으로부터 족보가 죽 나오는데 특히 32-33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의 낳은 아들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요. 욕산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요.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그두라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역대상에 보면 분명히 그두라가 아브라함의 첩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은 후에 다시 그두라와 재혼을 해서 자식을 두었다고 보기보다는 하갈과 함께 첩으로 그두라를 두었었고 그에게서 자식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첩 그두라가 낳은 자식은 어떠합니까? 역대상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였습니다(2). 그리고 3-4절에 보면 그 자식들에게서 태어난 후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고,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이 죽기 전에 이들을 어떻게 정리 하였습니까? 5-6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첩들에게서 난 자식들에게도 재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삭을 떠나서 살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생전에 서자들로 하여금 이삭을 떠나 동쪽으로 가서 살도록 조치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이 이삭을 통해 이루어짐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기 직전까지 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곧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같이 첩들을 통해 낳은 자들은 이삭과 함께 유업을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기 생전에 이들을 이삭과 분리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브라함이 첩의 자식들을 다 내어보내고 이삭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 일에 대해서 좀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전 재산을 물려준 것은 자기 독단으로 하고 말고 할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허락 아래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하나님께서 내리신 위대한 소망이요, 약속의 자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사명의 계승자로서 하나님께서 이삭을 지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7:19절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물질을 주시고 복을 주신 까닭은 언약을 이루어 가는 일에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곧 아브라함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충실히 수행해 나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 주시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받은 언약의 내용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인해 어딘가에 정착해서 소왕국을 건설하고 살지 않고 함께 사명을 받은 이삭과 야곱과 함께 삼대에 걸쳐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일생 나그네요, 우거자로 자임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고 지켜 주시고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약소하고 미미해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수모를 받거나 아무렇게나 대접을 받도록 두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약육강식에 의해 힘 있는 자가 덮치지 못하도록 아브라함을 지켜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대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23장에 보면 헷 족속으로부터 ‘당신은 하나님의 방백입니다’라는 말을 듣게 하였습니다(23:6). 창세기 21장에 보면 그랄 왕 아비멜렉은 군대장관을 대동하고 아브라함에게 와서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내가 알았습니다. 우리 서로 평화조약을 맺읍시다’라고 했습니다(21:22-2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거부가 되게 하시고 형통케 하셔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귀한 대접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재산이 누구한테 가야 할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자기 마음대로 낳은 서자들한테도 주고, 이삭한테도 주고, 이스마엘한테도 주고 그렇게 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내 보낼 때는 물하고 먹을 것만 주어서 내보냈습니다(21:14). 오늘 본문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두라에게서 낳은 자식들에게 재물을 주어 이삭을 떠나 동방으로 가게 했다고 했는데, 여기서 서자들에게 준 재물은 재산의 일부씩 나누어 주었다기보다는 선물로 얼마씩을 준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세력을 나타내는 물질의 전부를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인 이삭에게 다 주었습니다(5).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에 대한 약속과 허락으로 내리신 재산이기에 언약의 자손 이삭이 그 언약을 계승할 뿐 아니라 물질도 함께 계승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독단으로 자기가 주려면 주고 말려면 말고 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왜 이스마엘이나 다른 자식들에게도 재산을 나누어 주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와 명령의 내용에 대해서 민감했고, 그 계시와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기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명령을 따라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전 재산을 계승하여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지속적으로 이루어가는 데 지장이나 거침이 없게 하려고 자기 생전에 다른 자식들에게는 선물을 주어 동방으로 가서 살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여러 첩을 얻어서 자식을 낳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약속의 자녀 이삭에게 계승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의 죽음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7-9절에 보면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라.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그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에 100년을 하나님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는 인생을 살다가 이제 드디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에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습니다. 막벨라 굴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었으며, 아내 사라를 장사한 곳입니다(10).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장수하다가 평안히 열조에게로 돌아갔습니다(창 15:15).

우리는 아브라함의 죽음을 통해서 그의 생애와 관련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생애를 돌아볼 때 현저하게 드러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만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산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한마디로 하면 거룩한 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보낸 사람입니다. 거룩한 생활이란 무슨 경건한 모양을 나타내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즉 “경건한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능력을 부인하는”그런 것이 아니라(딤후 3:5), 자기 자신이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되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늘 주의해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2:2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습니다.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 말씀은 역대하 20:7절과 이사야 41:8절에도 있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성경 곳곳에서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도 믿음으로 떠났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9-10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다 같이 장막에 거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안정된 도시 생활을 버리고 유목민으로 출발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소망을 늘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언약을 맺어주셨습니다. 그 언약 속에는 ‘자식을 낳을 것이다’라는 현실적인 것도 있었지만 일생 동안 특별히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또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해변의 모래같이 많을 것이니라”등 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와 같은 자기에게 주어진 축복들을 믿고 살았지만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실제적으로 이루어진 일들은 별로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일생 동안 그는 결국 몇 사람의 아들과 몇 사람의 손자가 있었을 뿐입니다. 100세나 되어 이삭을 낳았고, 이삭이 60세가 되어서 야곱을 낳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나이 160세에 손자 야곱을 얻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생전에는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다의 모래와 같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받았지만 그가 죽기까지 사라를 묻은 막벨라 굴이 전부였습니다. 아들 이삭과 손자 야곱으로 더불어 삼대에 걸쳐서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어 요동하지도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위대성입니다.    

로마서 4:18-22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백세 때에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죽은 사람 같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바랄 수 없는 것 중에는 자식을 낳는 문제뿐만 아니라, 멀고 먼 이야기 곧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다는 것, 네 자손에게 가나안 일경을 주신다는 것’ 등도 다 포함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4:23절에 보면 “이것을 저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신칭의’라는 믿음은 바로 이러한 믿음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고 살아가려고 한 사람입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아름다운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으로 일생 동안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일생 동안 나그네로 장막생활을 해 나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실 나라를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참된 본향, 거룩한 하늘 본향을 사모하고 찾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지상에 있는 나라는 많은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온 본향을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이 경영하실 아름다운 나라를 사모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 은혜의 왕국을 동경하고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8-10절에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라봤기 때문에 일생을 나그네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경영하실 터,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 영원히 무너지지 아니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아브라함만이 아니라 그 후손들도 다 믿고 나아갔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높이고 그의 후손으로 자처한다면 아브라함이 믿은 것과 같이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나아간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환영하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거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13-16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간직한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 언급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의 왕국이 시작되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지만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습니다. 땅 위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라고 자처하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땅에 있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고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해 한 성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거룩한 성을 바란 까닭에 이 세상에 살 때 그것을 가외의 생활로 알고 장막생활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신앙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그의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자라고 자처한다면 이와 같은 그의 믿음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오늘날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들이 정처 없이 장막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이 영원할 것처럼 생각하고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땅은 지나가는 땅, 곧 나그네의 길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경영하실 아름다운 나라를 소망하며 거룩한 나그네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처럼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토록 바라고 소망하던 아름다운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이 당시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스마엘도 역시 이삭과 분리시키셨습니다. 12-18절에 보면 이스마엘의 족보와 거주지가 나옵니다.

우리는 오늘 이삭에게 모든 재물을 물려주는 의미와 아브라함의 죽음을 통해 그의 생애를 살펴봤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오늘날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라 살고 있는지, 하나님이 경영하실 아름다운 나라를 사모하며 언약을 좇아 순례자의 삶을 살고 있는지 자신을 점검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이 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아브라함의 죽음 앞에서 더욱 새롭게 확인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죽는 자는 죽어도 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이며, 소망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사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살고,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죽어간 아브라함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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