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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35:16-29
성경본문내용 (16)그들이 벧엘에서 발행하여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 길을 격한 곳에서 라헬이 임산하여 심히 신고하더니(17)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18)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19)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20)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21)이스라엘이 다시 발행하여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22)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서모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야곱의 아들은 열둘이라(23)레아의 소생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24)라헬의 소생은 요셉과 베냐민이며(25)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은 단과 납달리요(26)레아의 여종 실바의 소생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27)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 아비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28)이삭의 나이 일백 팔십세라(29)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강설날짜 2009-04-05

2009년 4월 5일 설교


사랑하는 라헬의 죽음


말씀:창세기 35:16-29

오늘 말씀은 야곱이 벧엘을 떠나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던 헤브론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야곱이 그렇게 사랑했던 라헬이 네 명의 아내 중에서 가장 먼저 죽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라헬을 장사하고 그 무덤에 비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치고 거기 거할 때 장남 르우벤이 그의 서모 빌하와 통간하는 부끄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부끄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러한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어떻게 택하시고 부르시고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 편입시키시는지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나이 180세로 죽게 되는데, 그 장사를 야곱과 에서가 함께 지내게 됩니다. 에서가 야곱을 향하여 복수의 칼날을 간 것은 아버지가 죽으면 야곱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언약을 야곱과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야곱과 에서가 함께 아버지를 장사하고서는 서로 따로 살게 됩니다. 창세기 36:6-7절을 보면 에서가 동생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갑니다. 소유 재산이 너무 많아서 야곱과 함께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가 다른 곳으로 가고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하던 곳에서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남인 에서가 아버지 이삭이 살던 곳에서 거하지 않고 떠나감으로 야곱이 아버지의 살던 곳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연결이 됩니다. 이는 언약의 흐름입니다. 이삭은 죽었지만 그러나 그 언약은 야곱을 통하여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에서는 자연히 분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특히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의 죽음과 그의 인생이 구속사에 차지하는 의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라헬의 전체 생애를 한번 조망하여 보면 라헬은 야곱의 눈에 띄었고,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것 외에 라헬이 스스로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라헬은 하나의 신랑을 두고 형 레아와 무섭게 질투하며 야곱을 독차지 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남편을 따라 도망 칠 때도 드라빔을 훔쳤습니다. 하나님보다 우상이 앞섰던 여인입니다. 드라빔을 훔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아버지 앞에서 거침없이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여인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어미가 되는 것입니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생산되는 것이 인간들의 질투와 시기 속에서 생산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만드시는 것은 인간의 구원이 사람의 자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헬이 하나님의 언약 속에 들어가게 되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단지 야곱의 아내가 되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자기 몸으로 낳은 자는 요셉과 베냐민이지만 라헬과 레아를 함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어머니로 보는 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라헬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어머니가 된 것은 야곱의 눈에 들고, 야곱이 그를 사랑하였기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위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내용이 후손과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문제는 지난주에 살펴보았습니다. 이 언약 외에 또 다른 복을 허락하셨는데 그것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이들을 통하여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곳으로는 하나님과의 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이들에게 붙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편입이 되는 것입니다. 라헬은 세상 여인들처럼 욕심과 시기와 질투가 많은 자였습니다. 특별히 자녀가 없었기에 더욱더 남편에게 집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인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어머니로 복을 빌어 줄 때 불리우는 이름이 된 것입니다.

룻기서 4:9-13절을 보면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보아스가 룻을 자기의 아내로 맞아들이는 내용입니다. 룻기 4:1-8절에 보면 보아스 보다 룻과 더 가까운 친족이 있어서 그에게 나오미의 남편의 유업을 이어 주겠느냐고 하자 그가 거절합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그 일을 합니다. 보아스가 이일을 다 마치고서 이 일에 너희가 증인이라고 하자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 일에 자신들이 증인이 된다고 하면서 보아스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축복을 합니까?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11-12). 이 말씀에 보면 라헬과 레아가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자로 불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룻을 축복하는데 이러한 복을 빌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 땅 모압의 여인이 라헬과 레아의 복을 이어 받아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들이 야곱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주어지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야곱 자신도 얼마나 욕심꾸러기이고 교묘하며 속임수의 사람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그러한 것을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는 것이 우리가 바로 모든 언약의 완성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을 놓치면 기독교가 아니라 이방 종교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헬이 죽는 것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마지막 아들 베냐민을 낳으면서 그 산고로 인하여 죽게 됩니다. 18절에 보면 라헬이 산고로 거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 때 ‘아들이다’라는 말을 듣고 슬픔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베노니’라고 짓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 이름을 바꾸어 ‘베냐민’, 곧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라헬은 고통 중에 베냐민을 해산하고서 죽게 됩니다.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았지만 자녀가 없어서 고통 하였고, 겨우 두 번째 아들을 낳다가 죽게 됩니다. 그러자 야곱이 라헬의 무덤에 비석을 세우는데 후대에도 이 라헬의 무덤을 사람들이 기억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0장에 보면 사사시대 말기에 사울이 왕으로 부름을 받을 때에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서 사울이 왕으로 부름 받은 징조를 말하면서 라헬의 무덤에서 두 사람을 만나리라고 합니다(삼상 10:2). 이를 보건데 수백 년이 지난 때에도 라헬의 무덤이 그대로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헬은 자녀가 없어서 통곡한 여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지만 그 자녀를 낳기 전까지 통곡하였습니다.

창세기 30:1, 22절을 보면 자식 없는 라헬이 ‘내가 죽겠노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라헬을 들으시고 자녀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라헬의 고통을 예레미야에서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1:15-17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고 했습니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라마는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입니다. 라헬이 애곡한 것을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포로로 잡혀가는 그 고통의 부르짖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기서에서 본대로 이스라엘을 세운 라헬과 레아라고 하였듯이 라헬의 통곡은 이스라엘이 자녀를 잃고서 통곡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헬의 자녀가 요셉과 베냐민인데 요셉이 두 지파가 됩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입니다. 에브라임은 북쪽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파가 되고,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쪽에, 절반은 북이스라엘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은 남쪽 유다에 속하여 집니다. 그러므로 라헬의 자녀가 남북으로 다 나누어져 있는데 이 라헬의 묘가 있는 곳이 남북의 경계선이 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라마에서 라헬이 통곡한다는 것은 이미 죽은 라헬이 무엇을 통곡합니까?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자녀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 갔기에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헬이 위로 받기를 거절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비참함과 그 고통을 라헬의 통곡으로 비유하여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애곡 속에서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는 것입니다.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예레미야 31장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말하면서 동시에 새 언약을 말하고 있는 장입니다. 그러므로 라헬의 통곡은 한걸음 더 나아가는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잃고서 울부짖는 자들의 소리가 있게 된다는 이 예언을 마태복음에서 어떻게 성취가 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16-18절을 보면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함이 이루어졌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헤롯의 궁으로 들어가서 왕의 나심을 묻게 됩니다. 그러자 소동이 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으니 정확하게 유대 땅 베들레헴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왕이 자기도 그 왕에게 경배하도록 찾거든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박사들에게 현몽하여 다른 곳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제서야 헤롯왕이 자기가 속은 것을 알고서 베들레헴의 영아들을 학살하는 것입니다. 헤롯은 자기의 왕권을 지키기 위하여 자기의 자식까지 죽이는 그런 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 태어났다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를 학살하라는 명을 내린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갑자기 군인들이 들이닥쳐서 어린 아이를 죽였으니 그 아이의 죽임을 본 어머니들의 통곡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이 통곡의 사건을 예레미야 31장의 라마에서 라헬의 통곡이 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죽고 하는 그런 상황에서의 슬픔의 고통을 지금은 헤롯 시대에 영아의 학살로 인하여 울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 세상의 세력이 야곱의 후손을 미워한 것처럼 그러한 세력이 헤롯을 통하여 야곱과 라헬의 자손을 대항하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분노는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분노의 표출이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세력이 이 세상의 세력임을 보이는 사건이 영아 살해사건 입니다.

시편 2:1-6절을 보면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열왕들이 모여서 분노하는 것은 여호와와 그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대적의 한 형태가 라마의 통곡을 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리스도를 대적한다고 하여도 결국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웃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하여 분노하시며, 그들에게 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무슨 싸움에 휘말려 있는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15절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의 싸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요한계시록에 잘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12:1-17절을 보면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하려 하되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고 했습니다. 용이 해산하는 여인의 아이를 삼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탄생을 막으려고 용이 싸움을 거는 과정에서 라헬의 통곡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철장권세로 다스릴 자가 시편 2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땅으로 내어 쫒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또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와 더불어 싸우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17절에 보면 용이 누구를 대적합니까?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싸움의 대상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싸움의 방법이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보면 짐승에게 절하고 표를 받지 않으면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짐승에게 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러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름으로 오는 고난을 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가치관에 절함으로 세상적인 편안을 누리며 사시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면 결코 세상 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를 흔들어 내시고 깨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세상에 닥치는 환난으로 인하여 애곡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 아들 빼앗겼다고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위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위로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싸움이 있습니까? 라헬의 애통이 있습니까? 라헬은 그 고통이 너무나 크기에 위로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 위로가 예레미야 31:16-17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이러한 위로가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입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위로도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위로만이 우리 인생의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라헬에게 임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가치와 욕망을 좇아 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진정한 위로를 소망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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