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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골 3:1-4
성경본문내용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강설날짜 2009-04-12

2009년 4월 12일 부활절 설교


위엣 것을 찾으라


말씀:골로새서 3:1-4

골로새서는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대부분 바울서신들의 특징은 전반부는 교리 문제를 다루고, 후반부는 실천 문제 곧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골로새서도 1-2장에서는 교리 곧 십자가로 승리했음을 설명하고 있고, 3-4장은 십자가로 승리한 자 곧 다시 살리심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서신을 쓸 당시 골로새 교회에는 온갖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훼방하고 성도들로 하여금 복음에서 떠나게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골로새 교회에 십자가로 승리하였다고 선언합니다. 골로새서 2:14-15절에 보면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말씀하신 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망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승리로 말미암아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로 승리한 복음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복음은 다 거짓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은 예수님 혼자만의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한 승리입니다. 골로새서 2:11-12절에 보면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롬 6:3-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창세전에 택하심을 받은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로 인한 십자가의 승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연합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한 승리인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로 승리한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골로새서 3-4장은 십자가로 승리한 성도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십자가로 승리한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하나의 원론적인 말씀으로 ‘위엣 것을 찾으라’라고 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돈을 추구하고, 명예를 추구하고,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뇌물을 받고, 부동산 투기를 하고, 학벌을 위조하고, 원조 교제를 하고, 성상납을 받습니다. 이런 시대 가운데 오늘 이 말씀이 십자가로 승리한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너무 영적인 사람들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터부시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욕되고 죄악되기 때문에 금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신령하고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 못된 생각입니다. 여기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할 때 가정생활도 하지 말고, 직장생활도 하지 말라고, 공부도 하지 말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 뒤에 연이어 위에 것을 찾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정생활을 해야 하는지, 직장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말씀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8절 이하에 보면 남편과 아내와 자녀와 아비와 종들과 상전에 대하여, 곧 이들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몽상가처럼 뜬 구름 찾듯이 위를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을 터부시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가정생활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학교생활을 하든지 간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어디에 속하여 있는지를 늘 생각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부분 전체 곧 1-2장의 말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1-2장의 말씀 중에서 중요한 몇 구절만 보겠습니다. 2:6절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서 주체적으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모셔 들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2:13절에 보면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 할례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죽어 있는 자가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여기서 ‘예수님을 주로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우리를 넣어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혼자만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대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수납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승리하신 것을 생각할 때 늘 이 사실을 바르게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예수님 혼자만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면 우리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와 상관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이며, 우리가 예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혼자만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신 자기 백성들과 함께한 죽으심과 부활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기 백성들을 그 가운데 넣어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기 백성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 넣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신비한 비밀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을 넣어 주신 것입니까? 세례라는 방식으로 넣어주신 것입니다. 세례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2:12절을 보면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한 로마서 6:3-5절을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바로 세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묶어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어서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으로부터 온 성령이 임하게 되면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것이며, 위로부터 거듭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위엣 것을 찾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살리심, 곧 위로부터 거듭나지 못하였다면 아무리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여도 엉뚱한 것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내용물들이 다 땅에 있는 것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이 하는 말이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맞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위에서 무언가 복이 쏟아지기를 원하는데 그것들이 다 땅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하고 있는 저 자신도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수시로 일어납니다. 복권에 수십억이 당첨되었으면, 달러가 가득 든 가방을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끔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존입니다. 이러다가 불현듯 말씀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인데, 이런 사건을 통하여 내가 얼마나 위엣 것을 찾지 않고 땅에 것을 추구하며 사는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었다는데,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았다는데 하는 말씀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위엣 것을 찾아 나설 능력이 없기에 주님께서 위엣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조치를 하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대로 되었다면 위엣 것을 찾을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본성적으로 위엣 것을 추구하지 않고 땅에 것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언제 하늘을 쳐다봅니까? 땅에서 모든 일이 잘 될 때 쳐다보지 않습니다. 땅의 소망과 기대가 끊어질 때, 농사짓는 사람들은 비가 오지 않을 때 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이라면 하늘을 쳐다볼 때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제비가 박 씨를 물고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중의 새도 하나님께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보고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붙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말씀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1-3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했습니다. 버릴 것과 추구할 것을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골로새서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말과 평행이 되는 말씀이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다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엣 것을 찾게 되는데, 위엣 것이란 우리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주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 약속의 결정체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기에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다는 것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며, 찾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 말씀과 늘 거꾸로 살아갑니다. 내가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이 땅에서도 잘 되고 복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위엣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는 본성적으로 위엣 것을 생각하기보다 땅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는 것도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면 주님께서 자기의 몸이기에 가만히 두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흔들어서라도 곧 우리를 훈련하시고 징계해서라도 위엣 것을 찾고 생각하도록 조치를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가 누리는 축복입니다.

요즘 우리가 창세기에서 배우듯이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자들과 함께 하시고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징계하시기도 하시고, 보호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언약을 반드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 때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는가 하면서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다가 우리와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바울이 당한 고난은 자기의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고난입니다. 얼마나 심한 고난을 받았는지 살 소망 까지 끊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이루고자 하신 것입니까? 자기를 믿지 않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의 어떤 능력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로새서 2장의 말씀대로 하면 세상의 초등학문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금욕적인 행위도, 의문 곧 율법에 속한 것을 지킨다고 하는 것도 믿지 않는 것입니다. 2:23절에 보면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아무리 지혜롭게 보인다고 하여도 이런 것들은 육체를 좇는 것을 금하는 데에는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2:21절에 보면 세상의 초등학문과 의문의 묵은 것 곧 율법을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이라고 한다고 해서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만이 아니라 세상적인 방법으로 위엣 것을 추구하겠다고 하는 것도 다 포함되는 것입니다. 곧 세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것도 땅에 속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절에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주여 주여 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긴 자를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을 주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하시고 자신에게서 떠나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시는 이 말씀의 성취는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는 우리가 영원히 거하여야 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곧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는 것입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위엣 것을 찾는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하는 이 살아있음은 실상 죽은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생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추어져 있다는 것은 지금 성도들을 보면 세상에서 별 볼일 없어 보이기 때문에 감추어져 있어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과 그 결과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볼품이 없었으면 그 얼굴에 침을 뱉었을까요?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고 온갖 모독을 다 하고 십자가에 죽였을까요? 그 분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음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므로 땅의 것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하늘의 생명이 보이지를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들 역시 이런 대접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세상에서 이런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역시 생명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위엣 것을 찾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위엣 것을 찾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까? 4절을 보면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소망입니다. 이것이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는 사람의 소망인 것입니다. 비록 지금 생명이 감추어져 있어서 세상에서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에 예수님의 영광을 함께 입을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지만 위엣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약속들이 거의 다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한 가지 남은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중에 재림하실 일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십자가로 승리하신 그 복음 위에 굳게 세워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영광중에 재림하실 그날을 소망하며 위엣 것을 찾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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