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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0:22-42
성경본문내용 (22)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23)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24)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2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26)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30)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31)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32)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33)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3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35)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36)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37)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38)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39)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40)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41)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42)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강설날짜 2010-05-09

2010년 5월 9일 설교


누가 예수님의 양인가!


말씀:요한복음 10:22-42

오늘 말씀은 수전절에 솔로몬 행각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전절은 지난번에 살펴봤듯이 율법에서 지키라고 하는 절기는 아닙니다. 수전절은 키스레브월 25일 곧 오늘날로 하면 12월 25일인데 이때부터 8일간 지켜졌습니다. 원래 이 절기는 ‘빛의 절기’라 하여 하누카(성전 봉헌)로 지켜져 왔습니다. 그러다가 기원전(B.C.) 165년에 유다 마카비가 중심이 되어 헬라 군대와 전쟁을 벌여 마침내 승리하여 더렵혀진 성전을 수리하고 성별하여 하나님께 봉헌하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지켜져 왔던 빛의 절기와 함께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여 겸해서 수전절로 지켜왔습니다. 이 수전절의 모든 의식이 초막절 때와 비슷하다고 해서 ‘키스레브 후의 초막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수전절에 솔로몬의 행각에 다니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무슨 질문을 했습니까? 24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에워싸 가로되’라는 말은 주님을 둘러싸고 도망가지 못하게 가둬놓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에는 놓아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자세로 예수님을 둘러싸고 “언제까지 당신이 우리의 마음을 의혹케 하려고 그렇게 말합니까? 당신이 메시아라면 속 시원히 밝혀 주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아주 명확하게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메시아임을 주장하는 주님의 말씀이 그들이 생각했던 메시아의 모습과 일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주님의 주장은 불분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25-27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미 말하였으나 너희가 믿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하신 말씀과 하신 일을 통해 충분히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은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아니한 것은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아의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곧 메시아에 대한 주님의 해석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주님의 해석이 유대인들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미 예수님과 다른 메시아관과 다른 하나님 나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다윗 왕과 같은 메시아가 와서 로마의 멍에를 깨뜨려 주시고 다윗의 왕좌를 예루살렘에 베풀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백성들을 모든 압제에서 구원해 주시고 물질적인 번영을 허락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한 때 세례요한도 예수가 메시아이신지에 대해 의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옥에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하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눅 7:19). 세례 요한이 이정도니 다른 사람들이야 어떠하였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면 메시아 같기도 하고, 또한 행동하시는 것이나 말씀 하시는 것을 보면 메시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 시원히 터놓고 분명히 자신들에게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신들도 분명한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나는 이미 말하였고, 나의 행한 일을 통해 메시아임을 증거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신 모든 일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분명히 밝히신 것은 두 번밖에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와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입니다. 4장에 봤듯이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내가 그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9장에서 본 것처럼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고 질문하시자 그 소경은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두 번을 제외하고는 사실 예수님께서는 딱부러지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표적과 이적을 통하여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일과 그 드러난 행위들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신 것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 첫해에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이 세 가지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이 일들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더욱이 이 일들과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실 때 사람들이 그에게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주님은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이 말씀은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신 일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대들었을 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셨습니다(요 5:17). 주님은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명백한 적대감을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쳐 주신 후 파문당한 그를 찾아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런 후 요한복음 10장에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돌아보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면 우리는 주님의 주장이 얼마나 분명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에게 왜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하십니까? 26-27절을 다시 보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메시아를 선택하여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도 보면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나의 말을 믿지 못하고 나를 따르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말씀 앞에서 다시 한번 심각한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양인가를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제대로 알아듣고 따라 가고 있는가를 점검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예수님을 선택하여 믿고 내가 예수님을 믿고 따라 간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자기 생각에 맞아야 따르겠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렇다면 우리도 유대인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양입니까?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입니다.

28-29절을 보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주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부르신 주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들은 결코 빼앗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셔서 예수님께 붙여 주시고, 예수님이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피로 대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 쳐 주셨기에 누가 감히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기에 아무에게도 자기의 백성을 빼앗기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그를 선택하여 믿은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슨 이익을 바라고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떠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한편으로는 괴로우면서도 그래 그 말씀이 맞아 하고서 인내하며 주님을 따른다면 우리는 주님께 택함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여러 가지 세상의 험한 일들로 인하여 불안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택하시고 예수님에게로 이끌어주신 하나님은 만유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라면 무엇으로 우리를 주님에게서 끊어 낼 수가 있겠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영생을 바라보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나라를 사모한다면 이 세상의 어떠한 환난이라도 우리가 주님에게서 빼앗기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30-39절을 보면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 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주님께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31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32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33절에서 선한 일을 인하여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한 일로 인해 돌로 치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다”고 하신 것을 꼬투리로 신성모독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사람으로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신성모독죄가 어디 있는가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로 치고자 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고 돌로 치고자 했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하나님과 한 본체이심을 이해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드러내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율법을 인용하셔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34-36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이라는 말은 구약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82:1절에 보면 “하나님이 재판장들 가운데 서시며”라고 했는데 이 재판장을 난하 주에 보면 신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재판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이를 신이라 한 것입니다. 6절에도 보면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신을 받으면 신들이라, 지존자의 아들이라 불렸는데 어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느냐, 왜 믿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민수기 11:16-17, 26-29절도 보면 모세를 도와서 재판을 할 지도자 70명이 하나님의 신을 받습니다. 그러자 그 지도자의 모임에 참여하지 않고 장막에 있는 두 사람 엘닷과 메닷도 함께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다는 보고를 할 때 여호수아가 저들의 예언을 금하소서라고 합니다. 이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왜 그것을 질투하느냐? 하면서 여호와께서 그 신을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신이 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를 신이라, 재판장이라 하였는데 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그렇게 믿지 못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이들이 장님인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일하셔서 눈을 뜨게 하셔야만 아들을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라고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신이 임하였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승천하신 분이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가 성령을 받고 예수님을 알게 되고 눈뜨게 되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37-38절을 보면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찌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보고서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하는 일을 보고서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기적을 베푼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을 고치고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은 결국 자신이 병을 짊어지고 가시는 이사야 53장의 예언 성취이며,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은 자신의 살을 찢어서 영생의 양식을 주시는 표적으로 베푸신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나는 요나의 표적 외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보고서 믿지 못하겠거든 예수님이 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보고 그 일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35-40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영생이심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살리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신 일입니다. 이 일을 보고서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지 사람들이 믿지를 못합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데 힘없이 죽은 십자가는 표적과 능력과는 상관없는 저주 받아 죽은 죽음이기에 정말 유대인들에게는 꺼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는 십자가는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란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꺼려하고 미련하다, 어리석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일을 보고 믿으라고 하여도 믿을 자가 없기에 주님의 일이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기어이 살려 내고야 마시는데 그 살려 내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거듭나고 다시 태어난 사람만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주님의 양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교회로 모이고, 예수를 믿는다는 이 일이 엄청난 하나님의 일하심의 결과로 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하신 일 곧 십자가를 보고 믿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주님의 양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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