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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요 11:45-57
성경본문내용 (45)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46)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47)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48)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49)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50)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51)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52)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53)이 날부터는 저희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니라(54)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여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시니라(55)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56)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57)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강설날짜 2010-06-06

2010년 6월 6일 설교


진리에 대한 반응


말씀:요한복음 11:45-57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죽어 장사 지낸지 나흘이나 되어 썩고 냄새나는 나사로를 말씀 한마디로 살려주신 표적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죽고 썩어 냄새나는 자를 살려 주신 사건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에 마지막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이 표적을 통해 자신이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음을 사람들로 믿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 주신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 본문은 그냥 스쳐지나가기 쉬운 본문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 12장부터 전개되는 말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50절에서 대제사장 가야바가 한 말 곧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야바를 통해 말씀하신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때 12장부터 전개되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썩고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려주신 사건을 목도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45-46절에 보면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으나 그 중에 어떤 자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의 하신 일을 고하니라”고 했습니다. 나사로를 살려주신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곧 나사로를 살려주신 놀라운 사건을 보고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시요,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어떤 자들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고발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표적 가운데서도 곧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믿는 것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9-31절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죽어 지옥에 가고 거지 나사로는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부자는 지옥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나사로를 보내 동생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미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죽은 자가 살아서 가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죽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신 엄청난 기적을 보고서도 믿는 자가 있는가 하면 고발하는 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구하는 세대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8-42절에 보면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으며,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표적을 구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대에 보일 표적은 요나의 표적 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표적을 구하는 악하고 음란 세대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표적을 보여 준다고 해서 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에서 진리가 다가오면 진리를 향하여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는 경우와 진리를 배척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에 분리를 일으키러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자녀와 비진리의 자녀로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편가르기를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은 서로서로 하나가 되자고 그렇게 말합니다. 종교 간에도 하나가 되고 나라 사이에도 하나가 되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와 비진리는 섞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떻게 악과 선이 함께 할 수 있습니까? 그러니 이러한 혼돈의 세상에 참된 진리가 오자 세상이 두 쪽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와 예수님을 고발하고 죽이는 자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다는 소식을 들은 종교 지도자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47-48절을 보면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가로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만일 저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급히 공회를 열어서 의논하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잘못한 게 아니죠.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그런데 이들이 공회를 열어 의논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보이니 저를 가만히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따라갈 텐데 그러면 민심이 그곳으로 옮겨 가게 되고 그러면 데모가 일어난 것으로 알고 로마 군대가 들어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다 빼앗아 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땅이라는 말을 다른 사본에서는 성전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 이들의 말하는 의도는 성전을 위하고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의 민족을 염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충성되고 나라에 대하여도 충성되게 보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공회로 모여 결정한 것을 누가 감히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별 다른 의견이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요, 민족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당장 정죄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민족을 내세워 진리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배척하게 하는 사람들의 현실관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한다면 종교지도자들의 행위와 그 말들이 얼마나 엉터리 같은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를 섬긴다는 자들이 로마군대가 겁이 나서 벌벌 떨뿐만 아니라 로마가 주는 그들의 기득권의 단 맛에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은 한 사람을 죽여서 많은 사람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참으로 그럴듯한 명분아닙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민족을 내세워 진리되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49-50절을 보면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아마 공회에서 여러 의견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유대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진리관입니다. 진리냐, 비진리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다수의 이익과 직결되는가 하는 것이 이들의 진리관입니다. 이것이 또한 민주주의의 원리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로 모여 의논하고 결정했다는 것은 공적인 권위를 가집니다. 당시 정치적인 처결권은 로마에게 있었지만 로마가 점령국들에게 종교나 문화는 관대한 편이어서 그들의 종교나 문화는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유대교의 종교적인 문제들은 자기들이 의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공회에서 내린 최종결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놀라운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 가야바의 결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유대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가야바가 그 해 대제사장이 되어서 하게 된 말입니다. 곧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이 말을 하게 된 것은 대제사장 가야바가 스스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가야바 스스로 한 말했죠.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곧 가야바가 스스로 말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말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51-52절을 보면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에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한 말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할 뿐 아니라 또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의 입을 빌려서 자신의 하실 일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역사의 비밀을 배울 수 있습니다. 곧 앞으로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당신의 자녀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죽음인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가지고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계획하고 말을 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주님의 주권아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의 죽으심이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이 세상 역사가 권세 잡은 자들에 의해 이루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역사 가운데 이 세상 역사가 이루어져 가는 것입니다. 결국 대제사장 가야바도, 사람들도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어져 가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가야바는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만 아니라 이방 가운데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야바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의미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있는 택하신 자기 백성들만을 위해 죽으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택하신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야바의 이 말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계시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앞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그것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비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진리관은 다수의 이익을 위하여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났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결의한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된 삶의 모습입니다. 자기들의 기득권과 그 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진리를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뜻이 그들에 의하여 방해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합력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희생시켰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희생이 정치적이고 외형적으로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역사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든 역사를 주관하셔서 당신의 구속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결정과 대제사장의 의견까지도 자기의 뜻을 이루어 내시는 일에 사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50절에서 본 것처럼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 예수님을 죽여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 주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의 뜻대로 일을 이루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일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하가 이미 다 주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어야 합니까?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들입니까? 아니면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우리의 관심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장차 불심판을 받기 위하여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7절에 보면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심판을 받기 위해 보존되어 있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과 함께 이루어질 영원한 새 예루살렘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53절을 보면 종교 지도자들은 이 날부터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합니다. 그들은 공회를 열어서 정식으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공회에서 공식적으로 예수님을 제거할 음모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정식 공회를 통해 예수님을 죽이고자 결의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대제사장의 입을 빌어서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민족이 망하는 것 보다 났다는 이 말을 하고서부터 예수님을 죽이기로 모의를 하는 것입니다. 57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고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54절에 보면 공회에서 정식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고자 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유대인 가운데 드러나게 다니지 아니하시고 거기를 떠나 빈 들 가까운 곳인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기 유하셨습니다. 그러나 55-56절에 보면 여전히 백성들의 기대는 예수님께 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 것입니까? 진리에 서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기준에 서 있습니까? 말씀 한 곳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요한복음 18:33-38절을 보면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심문하는 빌라도에게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진리에 대해 증거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리에 속한 자는 자신의 말을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바로 앞에 진리 되신 예수님을 두고도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결국 빌라도는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왕위를 보존하기 위해 민중들의 항의에 진리되신 예수님을 내어 주고 맙니다. 결국 그는 역사상 진리되신 예수님을 죽인 장본인으로 기록되고 말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자만이 진리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요 16:13).

 

오늘날 우리 안의 아우성이 무엇입니까? 나의 욕망을 위한 아우성에 예수님을 내어 주지는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진리 가운데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말씀 한마디로 살리신 예수님이 현재 부활이요, 생명 되심을 믿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위협과 손해와 불이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진리를 좇아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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