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by 손재호 posted Jan 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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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전 2:11-17
성경본문내용 (11)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3)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14)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16)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17)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강설날짜 201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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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베드로전서 공부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말씀:베드로전서 2:11-17

오늘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베드로전서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9-10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의 신분과 그 지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성도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는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여느 인생들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는 완전히 다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참으로 신자란 하나님 앞에서 볼 때 엄청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엄청난 지위를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곧 우리 성도는 자기 신분과 지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신분과 지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을 때 어떤 핍박 가운데서도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만을 자랑하며, 그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백성 아닌 자들을 자기백성 삼으셨다고 하셨습니다.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10). 그러면 우리 성도들은 원래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택한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까? 어떻게 이런 엄청난 신분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선택받을 만한 아무런 조건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된 것은 우리의 어떤 조건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이 사실을 확인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자랑하며,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신분을 소유한 성도들은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은 2:11-3:7절까지 계속되는 성도들의 대 사회에 대한 일련의 교훈 가운데 첫 부분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특히 세상 권세 잡은 자들에 대한 성도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한 말씀을 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17-2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란 하늘에 시민권에 있기에 하늘에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합니다. 배가 그들의 신이라는 것은 세상의 정욕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땅의 일을 생각하고 땅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실 그 영광의 주님, 우리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위엣 것을 찾는 자입니다.

골로새서 3:1-6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거듭났다면 곧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고 찾는 것은 탐심이라고 하며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두 곳의 말씀만 봐도 성도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오늘 분문 11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보면 성도들을 ‘나그네와 행인 같은 자’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이 땅을 사는 성도의 호칭입니다. 1:1절에서는 성도들을 가리켜 ‘흩어진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란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행인과 같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살면서 영혼을 거스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이란 방금 본 에베소서 3장과 골로새서 3장에서처럼 땅의 것을 생각하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란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을 하늘에 속한 영원한 기업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자꾸만 이 세상에 속한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도록 그것들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를 가리켜 우리는 신학적으로 전투하는 교회라고 하고,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이루어질 천상에 있는 교회를 승리한 교회라고 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왜 전투하는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까? 영적인 싸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우리 성도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승리하는 교회가 되기까지 이 거룩한 영적인 싸움을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싸움이 있습니까? 육체의 정욕과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육체의 정욕을 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을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있습니까? 아니 나의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산다고 하십니까? 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세상의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 교회를 가리켜 많은 사람들이 기업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 땅의 정욕을 쫓아 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세상의 정욕을 쫓아 살았으면 교회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보고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육체의 정욕에 져서 이 세상의 탐심을 좇아 사는 우상숭배자의 삶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싸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정욕과의 싸움을 잘 감당해 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2절을 보면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은 이방인 가운데서 선한 행실을 가져 너희를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도리어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악행 한다는 비방들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만 초대교회 때에 성도들을 향한 비방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파괴하는 이단들이라는 비방을 들었고, 이방인들에게는 국가를 거부하는 단체로 비방을 받았습니다. 13-17절 말씀을 보면 당시 성도들이 어떤 비방을 받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13-17절을 보면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우리 성도들은 먼저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합니다. 특히 왕이나 방백들에게 순복하라고 합니다. 그들을 세운 것은 악행 하는 자들을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들을 상주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선행을 한다는 것은 세상에서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의 무식한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는 모든 것에서 자유 하지만 그러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모든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왕을 공경하는데 쓰라고 합니다. 곧 자유로 마땅히 행할 바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에 성도를 향하여 악행 한다는 비방이 어떤 것들인지 짐작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시면 이 세상은 심판을 받고 믿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성도의 왕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세계는 로마가 지배하고 있기에 로마의 통치자를 왕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두 왕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가 2천년을 지나오면서 많은 갈등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만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교회, 즉 성도가 아직도 땅이라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기에 이 땅에서는 국가가 형성되어 있고 그 국가에는 최고의 권력자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 사이의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국가가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중세 때는 교황권과 황제권의 세력다툼이 있었습니다. 누가 더 높으냐의 싸움이었습니다. 서로 힘겨루기를 한 것입니다. 교황이 황제를 임명 해야 하는가, 황제가 교황을 임명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싸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대부분 정교 분리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예수님께 세금문제로 질문을 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세금을 내어야 한다고 하면 율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어떻게 답변하셨습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2:15-22절을 보면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 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악함을 말씀하고 있지만 세금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보게 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입니다.

로마서 13:1-7절을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 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 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도가 국가의 권력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세들에게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의 권력이 악행 하는 자를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행을 행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쿠데타를 일으켜 많은 사람을 죽이고 불법으로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그것도 순복해야 합니까? 이 땅에 군사독재시절에 권력자 앞에서 목사들이 로마서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순복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권력에 아부를 한 것입니다. 독재자들이 교회를 얼마나 우습게 보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도행전 5:27-29절을 보면 “저희를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공회란 유대인들의 자치적인 통치기구입니다. 그들이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을 증거 하지 못하게 하여도 계속 증거 한 것입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제도를 순복하지만 주를 위하여 순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과 상반되는 것이라면 거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에도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원정출산을 해서 이중 국적을 가진 자도 많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군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중 국적을 가진 자가 아니라 외교관으로 이 땅에 와서 사는 사람들을 봅시다. 그들이 대한민국에서 살면 대한민국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보다 그들이 우선하는 법은 그들의 모국의 법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살면서 법도 지키고 세금도 내어야 하겠지만 언제가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도란 이중 국적을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이 땅에서 발을 딛고 살고 있지만 우리의 진짜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그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성도의 바른 자세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발 딛고 살면서 위엣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 땅에 살면서 어떻게 전혀 땅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갑니까?’ 하는 염려들에 대하여 적절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정당한 법에 대해서는 순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종이어서 순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하여 순복하는 것입니다.

16절을 다시 보면 성도들은 이 세상에 대하여 얽매일 것이 없는 자유인입니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2:16). 우리의 궁극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평화롭게 되어서 지상낙원을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행인처럼 살아가는 참된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가지고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학법 투쟁한다고 바퀴달린 십자가 메고 행진하는 꼴사나운 짓 하지 말고 학교 재정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악행 한다는 비방을 막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가 사학법을 기독교 학교 재단에는 적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세무조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집행이 된다면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이 입을 닫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단체들이 숫자라는 힘을 가지고 자기들의 불법을 가리려고 하면 무슨 종교의 자유를 말한다고 할지라도 욕을 얻어먹을 것입니다.

성도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하여 악행 한다고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이 말씀을 우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나의 행동을 통하여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착같고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까? 동네에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가장 잘 따지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를 가지고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뭇 사람을 존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는데 써야 합니다. 이것이 이중 국적을 가진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행인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정욕을 추구하며 살지 않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육체의 정욕과 싸우며 이 땅에서 선한 행실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비방하는 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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