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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3:1-6
성경본문내용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2)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3)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강설날짜 2012-07-15

2012년 7월 15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7강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말씀 : 히 3:1-6

 

히브리서 저자는 고난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상황 속에서,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게으름 가운데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헌신하기를 주저하고 뒷걸음질 치고, 심지어는 신앙을 변절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이런 그들을 향해서, 그들을 복음 위에 흔들림 없이 굳게 세우고, 믿음과 소망 가운데 복음에 헌신하고 충성하도록 권면하고자 이 히브리서 서신을 썼습니다. 이를 위해 히브리서 저자는 복음을 굳게 붙잡고 그 복음에 충성하면 하늘에 어떤 보상이 있고, 또 반대로 복음을 배반하면 어떤 비참한 말로를 겪을 것인가 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언급해서 경종을 울리고 헌신하도록 격려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히브리서의 강조점은 그것보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점에 보다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분이 구약보다 얼마나 탁월하시고 우월하신 분이시고, 그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온전한 구원을 얻어 거룩하게 되었으며, 구약과는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지위와 특권을 누리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깨우치는데 이 서신의 일차적인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기독론)를 제대로 알면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복음 위에 흔들림 없이 서서 복음에 헌신하고 충성하게 될 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알았던 것입니다.


20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원리나, 2000년 전에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주님 앞에서 충성스럽게 사는 원리나, 원리는 꼭 같습니다. 그것은 결국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십자가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닫게 될 때, 우리가 그 사랑에 감동을 받아서 주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오고 평양대부흥을 거치는 가운데 확립한 두 개의 확고한 신앙이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 신앙과 종말 신앙이었습니다. 종말 신앙은 이제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인생은 잠시 지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신앙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는 그분의 피로 거저 사신바 되었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주님을 위해 죽을 차례다” 라고 하는 순교신앙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결합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충성스러운 삶을 살도록 우리를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도 이러한 종말 신앙과 십자가 신앙을 심고자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충성된 삶을 사셨는가 하는 것을 모세와의 비교를 통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선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구조를 먼저 말씀드리면, 지난주에 살펴보았던 2:17말씀은 히브리서의 핵심구절입니다.

(17)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

 

히브리서는 바로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 예수님을 증거하는데 그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을 토대로 해서 이후의 논증이 진행됩니다. 3:1-4:14까지는 먼저 예수님의 충성되심에 대해서 논의하고, 4:15-5:10까지는 자비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에 대해서 논의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10장까지는 대제사장 예수님의 구속사역에 대해서 보다 심도 있게 다룹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전체가 바로 이 2:17절 말씀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아무렇게나 논의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직적으로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충성되신 대제사장 예수님에 관해 말하면서 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먼저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인지 일깨워줍니다. 그들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이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면, 언젠가 우리가 힘들 때 스스로 그 구원을 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부르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생을 돌아보면 어떤 때는 주님을 잘 믿는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렇지 못한 때도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내가 내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날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새로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만세전에 우리를 택하실 그때에 이미 우리가 어떠할 것을 시간을 초월해서 모두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부르심에 후회가 없으시다는 것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아마 우리의 마음에 황송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부족한 것을 깊이 고백하고 오늘 하루도 주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이 이렇게 어린아이 같고 수시로 미끄러지는 우리를 부르신 것을 후회하지 아니하신다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면서 위로와 격려를 얻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하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이 땅의 가치를 위해 살지 말고, 하늘의 가치를 위해 살도록 소명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늘로 가는 인생입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천성을 향해 걸어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땅의 가치를 위해 살아갈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은 짧고 결국 죽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세상은 영원한 세상이 아니라 장차 불타 없어질 세상이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들을 소망하지 말고, 하늘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우리가 이러한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거기에 영광스럽게도 하나를 더 붙입니다.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형제들입니다. 자매는 어디 갔나 섭섭해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형제라는 말에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수신자들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후에 그들에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1)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어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까?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도리란 우리의 믿고 고백하는 바, 곧 교리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사도시며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도가 되신다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오직 여기서만 표현됩니다. 우리는 ‘사도’ 하면 12사도와 바울 사도를 생각하는데, 사실 예수님이 사도직의 원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오늘날로 말하면 ‘특사’, ‘전권대사’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즉 외교지에 나가서 대통령의 메시지나 뜻을 대신 전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고 일을 대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계시하시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온전히 수행하신 사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분의 대제사장 되심은 4장 후반부부터 자세하게 소개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믿는 도리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하면서, 어떤 점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지 일러줍니다. 즉 히브리서 저자는 이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얼마나 충성스러운 분이신지를 모세와의 비교를 통해 증거합니다. 모세와 비교하는 것은 매우 의도적이면서도 적절한 것입니다. 사실 히브리서 전체는 모세와 예수님을 비교하는데 모든 초점이 가있습니다. 1장 1-3절에서 선지자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주제도 바로 사실은 모세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선지자의 전형이고, 모든 선지자와 그들의 메시지는 바로 모세오경에 토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모세를 최고의 선지자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라는 주제도 결국은 천사의 중보를 빌어 주신 모세의 율법에 대한 논의와 연결되기 때문에 그 주제도 모세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 10장까지의 대제사장 논증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과 모세 율법이 명하는 제사제도와 아론 계열의 제사장이 대조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히브리서는 바로 모세와 예수님,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고 비교하는 서신입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예수님을 모세와 비교하는 이유는 모세에 대한 유대인 신자들의 존경과 충성심이 대단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들은 복음을 포기하고 유대교로 돌아가려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저자는 모세보다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비견될 수 있는 구약의 유일한 인물은 모세밖에 없다 라는 점에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모세 역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였으며, 예수님과 같이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인 세 직분을 한 몸에 감당한 구약의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어? 모세도 제사장이었습니까? 시 99:6에 모세를 제사장으로 호칭하고 있고,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도 사실상 중보의 역할을 감당한 사람은 아론이 아니라, 모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할 때, 그 금송아지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대제사장 아론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멸당할 위기 가운데 있었는데, 모세가 나서서 중재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하면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탄원하였습니다. 바로 이 모세의 중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야 말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직분을 한 몸에 감당한 구약의 유일한 인물로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전형적인 인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모세와 예수님을 대조하는데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오늘 본문 역시 예수님께서 모세보다 얼마나 비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우시고 우월하실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시면,

 

(2)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예수님이 하나님께 충성하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삼상 2:35, 민 12:7 참조). 여기서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총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이 신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곧 교회를 모세도 충성스럽게 섬겼고, 예수님도 충성스럽게 섬겼다는 것입니다.

 

(6)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7)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8)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민 12:6-8)

 

모세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친히 보았던 자였는데, 그러한 특권적인 지위를 누린 이유는 바로 그가 하나님의 집에 충성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복종하며, 온유함으로 정말 말 안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교육하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갔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충성은 결국 예수님의 충성되심의 예표였습니다. 모세가 충성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매 순간 자기를 모두 드리는 삶을 사셨습니다. 자신의 영광과 영달을 위해서 사시는 대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은 감추시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일먼저 공생애를 처음으로 시작하셨을 때,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은 즉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어린양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당신에게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할텐데, 제가 어떻게 당신께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해서 죄인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 전하신 후 제자들이 나아왔을 때,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양식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래서 일생을 사시면서 당신 자신이 높임을 받아야 이유가 많았고, 당신을 높이고자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하나님의 종이라도 되시는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낮추어 일평생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를 끝까지 지켜보았던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계 3:14에서 “아멘이요! 충성된 증인이시라”라고 말했습니다(계 1:5; 3:14). 예수님의 별명은 아멘이었고, 예수님의 별명은 충성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충성되심은 십자가 사건에서 절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심으로써 아멘이요 충성이신 33년의 생애의 종지부를 찍으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예수님의 전생애의 아멘과 충성의 마침표였습니다.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시면서도, 극한의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예수님의 관심은 아버지의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 “다 이루었다” 하시고 다시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삶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충성스러움에 대하여 히브리서 저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여기서 ‘그가 비록 아들일지라도’라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과 순종이 어울리는 단어가 아님을 말해줍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으로서 순종과 충성의 대상이 되셔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시고 충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요지로서, 모세와 예수님이 똑같이 충성하였어도, 예수님이 더 영광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충성하셨고, 모세는 피조물로서 충성한 것입니다.

 

(3)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4)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5)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 3:3-6)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그리고 만유의 후사로서, 그 집 맡은 주인으로 충성하셨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모세는 한 피조물로서 그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했다는 것입니다. 한글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모세와 예수님에게 사용된 전치사가 다릅니다. 모세는 집 안에서! 충성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 위에서! 충성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그 집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 충성하신 것입니다.


똑같이 순종하고 충성해도 이러한 신분의 차이 때문에 그 구속의 효력에 있어서 본질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세가 암만 충성해도, 심지어는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는다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다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면, 그것은 반드시 효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죽음은 무한한 효력을 내기 때문에 모든 믿는 자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충성한 사역이 다릅니다. 모세는 5절에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충성했다고 했습니다. 즉 모세의 율법은 장래에 있을 복음의 예표와 그림자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고, 장차 있을 복음을 예표하기만 할 뿐, 그 율법 자체가 우리를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은 몽학선생으로서 우리를 죄 아래 가두어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23)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3-24)

 

그래서 요한복음 1:17에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와 복음의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모세를 소유한 것보다도 예수님을 소유한 것이 얼마나 더 온전한 구원을 주고 확신을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구약과 비교할 수 없이 탁월하고 우월한 특권과 지위를 가져다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에 대한 자랑과 담대함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무언가를 자랑한다는 것은 그것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알고, 그것을 가졌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격, 그리고 자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용직 노동자로 밭을 갈다가 거기서 보물 상자를 발견하고서 그것을 감추어 놓고 돌아와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보물상자 때문에 그가 얼마나 기뻐하며 감격하였겠습니까? 그 밭을 사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도 그것이 전혀 아깝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재산을 팔아 밭을 산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고, 바보 같은 짓이라고 놀리고 조롱해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전혀 꿀릴 것 없는 담대함과 당당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랑과 담대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담대함은 다만 사람들에 대해서만 가지는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서도 이 담대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를 힘입어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입니다. 구약 어디에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나아가는 예가 있었습니까? 구약은 이 지성소로 나아감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제약이 있었고 방해물이 있었습니까? 오직 대제사장만 1년에 한번 들어가는데,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서 휘장을 거쳐서 들어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이제 언제든지 그 지성소에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의 형제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특권들과 지위들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와 교제 나누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과 같이 우리도 만유의 후사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고, 새하늘과 새땅을 다스리는 왕 자리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언약 백성으로서 자랑과 담대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지금 당장에 눈에 보이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것을 그냥 자랑과 담대함이라고 하지 않고, 거기다가 소망이라는 단어를 첨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의 자랑과 담대함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왜 소망을 말하느냐 하면,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 보물상자는 밭에 감추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4-25)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구원의 은혜와 특권과 지위들은 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현실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할 때, 여러 가지 고난과 어려움과 가난과 사람들로부터의 조롱과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연약한 우리로서는 이러한 고난과 핍박 앞에서 두려워 머뭇거리고 주저하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말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 안에서 허락된 놀라운 구원과 축복들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소망의 자랑과 담대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어떤 한 순간에만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지속적으로 그러한 자랑과 담대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자랑과 담대함을 가지고 앞에 있는 손해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그의 집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영접하면, 우리는 이미 그의 집입니다. 그러나 그 집은 아직 완성된 집이 아닙니다. 주님 안에서 그 집이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끝까지 소망의 자랑과 담대함을 가지고서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과 충성을 잃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그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소망의 자랑과 담대함을 끝까지 가질 수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충성하셨는지, 왜 충성하셨는지, 그리고 그 충성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구원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 예수님의 충성에 나타난 우리를 향한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소망의 자랑과 담대함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여서 소망의 자랑과 담대함을 놓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감으로써 그의 집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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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 [히브리서 9장] 그리스도의 피뿌림의 효력 히 9:11-14 최상범 2012-11-04 5054
759 [히브리서 8장] 새 언약 히 8:8-13 최상범 2012-10-21 6214
758 [히브리서 7장] 멜기세덱과 예수 히 7:1-25 최상범 2012-09-30 5344
757 [히브리서 7장] 대제사장의 기도 히 7:25 최상범 2012-10-07 4978
756 [히브리서 7-8장] 하늘 성소에 계신 우리의 대제사장 히 7:26-8:7 최상범 2012-10-14 4707
755 [히브리서 6장] 완전한 데로 나아가지십시다 히 6:1-8 최상범 2012-09-16 6444
754 [히브리서 6장]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히 6:9-20 최상범 2012-09-23 5130
753 [히브리서 5장] 병적인 유아상태(2)-의의말씀 히 5:11-14 최상범 2012-09-09 4262
752 [히브리서 5장] 병적인 유아상태(1) 히 5:11-14 최상범 2012-09-02 5322
751 [히브리서 5장] 고난으로 온전하게 되었은즉 히 5:1-10 최상범 2012-08-26 4701
750 [히브리서 4장] 은혜의 보좌 히 4:14-16 최상범 2012-08-19 4345
749 [히브리서 4장]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히 4:1-11 최상범 2012-07-29 5657
748 [히브리서 4장] 말씀과 성령의 조명하심 히 4:12-13 최상범 2012-08-12 4788
» [히브리서 3장]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6 최상범 2012-07-15 5407
746 [히브리서 3장]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 3:7-19 최상범 2012-07-22 4622
745 [히브리서 2장]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 히 2:5-18 최상범 2012-07-08 5020
744 [히브리서 2장] 표적과 기사 히 2:3-4 최상범 2012-07-01 4944
743 [히브리서 2장]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히 2:1-4 최상범 2012-06-24 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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