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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4:1-11
성경본문내용 (1)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2)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3)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4)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5)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6)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7)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8)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9)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10)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강설날짜 2012-07-29

2012년 7월 29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9강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 : 히 4:1-11

 

히브리서의 계속되는 강조점은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고 모세와 예수를 대조하고, 새언약과 옛언약을 대조해서, 우리가 얼마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특권과 지위를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보다 얼마나 더 큰 책임이 따르는가 하는 점이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를 읽어가면서 바로 이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1. 이스라엘과 우리의 동일함
지난주 배운 말씀과 오늘 배울 말씀은 바로 그러한 책임 문제와 관련하여서 그들의 불신앙과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이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직접적인 경고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 경고가 되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우하신 대로 동일하게 우리를 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 아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비 없는 심판을 내리셨고,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니 보다 관대하게 우리를 대우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적으로 틀린 생각임을 우리는 이미 앞서 배운 바 있습니다. 즉 더 큰 책임이 있으면 있었지, 결국 구원에 있어서는 이스라엘이나 우리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오늘 히브리서 본문의 포인트인 것입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2)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우리나 동일한 복음을 전함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받았고, 우리는 복음을 받았고... 그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스라엘도 동일하게 복음을 전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은혜로 택하심을 입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 받고 출애굽의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0장 2절과 3절에서 바울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홍해를 건너면서 세례를 받았으며, 만나를 먹고 반석의 물을 마심으로 성찬에 참여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장차 안식의 땅,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우리하고 똑같은 것입니다. “아니 우리는 율법은 안 받았잖아요?”라고 질문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도 똑같이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았고, 우리는 시온산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을 수여받았습니다. 소위 산상수훈이라는 율법입니다. 이 산상수훈이라는 율법은 시내산 율법과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은 수준의 율법입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그냥 살인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했다고 말씀하셨고, 시내산 율법은 그냥 간음하지 말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하셨고,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시내산의 율법만 우리에게 순종하면 복을 주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시온산의 율법인 산상수훈도,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만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율법과 우리의 율법이 똑같지 않습니까? 아니 똑같은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율법보다 더 높은 차원의, 아니 완전한 차원의 율법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산상수훈의 말씀 앞에서 일차적으로 내가 죽을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깨달음이 우리로 하여금 절망 가운데 구원을 갈망하게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붙잡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만 주시고 그들을 율법의 저주 아래만 두신 것이 아니라, 율법 안에 동물의 희생제사 제도를 주심으로써 죄사함과 구원의 방도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과 우리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그림자를 가졌고, 우리는 실체를 가졌으며, 그들은 희미했고, 우리는 확실하게 드러났으며, 그들에게는 그것을 효력 있게 할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성령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는 오히려 이스라엘과 우리가 본질적으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신앙하고 불순종하여서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은 우리도 불신앙하고 불순종하는 삶을 지속하게 될 때에 동일하게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에 대한 진지한 경고의 메시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오늘 본문을 시작하면서 “두려워할지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1)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자, 곧 구원받지 못할 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세대의 실패가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을 화합해야 함
그러면 그들이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2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2)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즉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믿음을 화합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화합하다’는 말은 ‘혼합하다, 섞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표현하지 않고, “믿음을 화합(또는 혼합)하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믿음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무리 선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구원을 약속하셨어도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아니하면, 믿음을 그 말씀에 혼합하지 아니하면, 그 말씀이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와서 말씀을 많이 듣고 성경공부 많이 하는데, 단순히 귀로 듣고 지식을 쌓는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그것에 나의 믿음을 혼합해야 그 말씀이 실질적으로 나의 말씀이 되는 것이고, 내 마음에 심긴 도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끝까지 믿음을 유지하는 자가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갖게 되는 질문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협력해서,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즉 구원이란 신인협력설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알미니안의 생각이 맞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알미니안이 무엇을 주장합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한 구원의 길을 다 마련해 놓으셨는데, 이제 이것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본인이 믿음으로 반응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나의 구원이 좌우되는 것이죠. 내가 마인드컨트롤을 잘해서 말씀을 거부하지 않고 내 의지와 내 힘으로 그 말씀을 신뢰함으로 받아들이면 구원받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본문이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물론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대신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신 믿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어야 하는 것도 맞는 것입니다. 즉 내가 믿으면 구원받고, 내가 믿지 아니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분명히 구원의 조건으로 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미니안이 틀린 이유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과연 인간이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이 복음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입니다. 아담 이래로 모든 사람은 다 그 마음이 부패하고 타락하여서 그 마음에 온통 하나님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상태로는 결단코 하나님을 믿을 수 없고, 믿지도 않을 것입니다. 인간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느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음 주에 배울 12-13절 말씀에서 잘 나타납니다.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의 생명력은 성령의 조명하시는 사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 마음에 찬란한 빛을 비추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와 천벌을 피할 수 없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구원을 갈망하게 하시고, 그렇게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를 비추어주셔서 우리로 그것을 믿어 영접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즉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선물입니다. 내가 믿은 예수가 아니라, 나를 붙잡은 예수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내가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하심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이루시는 수단으로서 구원의 조건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이 간단한 말 같지만 얼마나 심오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만일 알미니안이 맞다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고 어떻게 말씀하셔야 합니까?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그 청함에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은 적다” 그렇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택함 받은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결국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초청하셨지만, 결국 택함 받은 자만이 믿음으로 반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이 말씀을 듣고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반응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자에게만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조명하시는 역사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지만, 결국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우리가 피해야 할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내 힘과 의지로 믿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 되는 일을 자꾸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죄악된 본성이 내 마음 안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것을 자꾸 내 힘과 의지로 꺾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되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깨어질 수 있고, 성령의 은혜로만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피해야 될 일은 믿음은 오직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이니, 믿는 마음이 뿅! 하고 생길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임하여 오기까지 가만히 기다리면 믿음이 자동적으로 생깁니까? 안 생깁니까? 안 생깁니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어디까지 나아가느냐 하면, 결국 내가 믿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안 주셔서 그렇다고 하는,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바로 그러한 생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네가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했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믿음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창조하시는 것이고, 은혜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인데, 그런데 그렇게 주실 때 어떤 수단을 사용하시느냐 하면, 바로 은혜의 방도에 집착하는 우리의 의지와 노력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은혜의 방도에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입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할 수 있도록, 성령이 조명해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한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배우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말씀이든지 믿고 순종하겠다는 의지의 결단을 하고 실제적으로 순종하려고 몸부림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몸부림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무능력을 더욱 깨닫게 되고, 내 마음 안에 믿지 아니하려는 죄악된 본성이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님께 도우심을 구하며 주님을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의 수단에 처절하리만치 집착하는 삶을 통해서만 믿음이 생기고 유지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일에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이 일에 힘쓰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백방으로 노력하는데, 그런데 말씀 읽고 기도하는 데는 얼마나 열심을 내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는 얼마나 죄죽임의 삶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만일 우리가 영적 게으름에 빠져서 말씀마다 믿음으로 화합지 아니하고 불신앙의 삶을 고집하게 되어질 때에, 결국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정신을 차리고 영적으로 깨어 바로 이 은혜의 방도에 집중하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아서 말씀마다 믿음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감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의 경고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회개하고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서 은혜를 많이 받아서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내 안식
이제 3절부터는 우리가 들어감을 얻어야 할 하나님의 안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을 합니다. 앞에 시편 95편에서 하나님께서는 노하여 맹세하사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이 “내 안식”이라고 일컫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3)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4)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5)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6)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여기 보면 결국 이 하나님의 안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신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안식하신 것이 아니라, 은혜롭게도 이 영원한 안식에 우리 인생들도 초청하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두 가지 차원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는 안식일을 제정하셔서 우리로 6일 동안은 힘써 일하고 7일째 쉬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게 하셨는데, 이것은 사실 무엇을 예표하는 것이냐 하면, 장차 있을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안식에 초청하신 두 번째 국면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일하시고 제7일에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일만 하고 살 것이 아니라 종말의 때에 이 세상의 일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이라는 최종 목표에 도달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매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기억하고 소망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잘못된 목적의식과 목표점을 자꾸 교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연약해서 일주일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세상일에 매몰되어서 하늘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하늘의 것을 소망하지 못하고, 자꾸 땅만 바라보고 살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세상의 것을 소망하기도 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6일 동안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 현실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일날이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주일날 모든 일을 내려놓고 교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그 하루를 주님께 온전히 드리면서, 우리가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회개하고 우리의 목표점을 교정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는 세상일을 그만두고 영원히 쉴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일하는 거 하고, 그냥 먹고 살기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는 거 하고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 없이 일하게 되면 일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돈의 노예, 자기 자신의 안위와 쾌락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영원한 안식에 대한 소망이 있으면 세상 일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할 수 있는 것이죠. 세상의 일이 좀 잘 안 돼도, 사업하다 망해도, 회사에서 짤려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니니까요. 우리가 장차 유업으로 이어받을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기에 어떠한 고난과 어려운 상황과 형편에 직면해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게 되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일 모여서 우리의 목표의식을 이 세상에서 저 영원한 안식으로 자꾸 방향 전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주일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원한 안식을 단지 소망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안식이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고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3절에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는다고 이 세상에서 일 안하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영적인 안식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쉼을 얻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안식이 없는 세상입니다. 온통 병들고 아프고, 사건 사고가 일어나고, 사람들 간에 서로 갈등하고 싸우고, 전쟁하고, 죽음의 공포 아래서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여러 가지 고통과 상실과 아픔과 상처와 슬픔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참 안식이 없는 인생인데,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얻고 참 평안을 얻고 쉼을 얻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신은 날마다 땀 흘려 일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참 평안과 만족을 누리면서 쉬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있을 영원한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당겨서 맛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부터 영원한 안식을 개설해 놓으시고 문을 활짝 열어놓으신 채로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들을 초청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 일이 창조 때부터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원한 안식이 있다는 것을 인생들에게 계시하실 때, 처음부터 영원한 안식을 명확하게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 경륜을 따라 처음에는 희미하게 예표론적으로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스라엘에게 안식의 땅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음을 예표론적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로 영원한 안식에 대한 보다 분명한 계시가 주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시편 95편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시편 95편에서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광야에서 불순종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온전히 믿어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자”고 그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다윗과 솔로몬의 때는 가나안을 다 정복하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온 백성이 안식을 누리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또 다른 안식에 들어갈 것을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즉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주었던 이 가나안 땅이 궁극적인 안식의 땅이 아니라, 장차 있을 영원한 안식의 예표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7)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8)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즉 시편 95편에서부터 벌써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진정으로 자신들이 안식할 땅으로 본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 안식을 바라보면서 다윗은 “오늘날!”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명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에서 ‘오늘’이라는 단어는 대단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모세 때에도 “오늘날”이었고, 그들은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감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였고, 히브리서 저자는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강퍅함을 면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다윗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오늘날! 저의 입술을 통해 저와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고, 이 안식에 들어오기를 힘쓰라” 지금 그렇게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오늘이라는 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여전히 안식의 문이 우리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이고, 아직 회개할 기회가 있는 때이고, 이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는 구원의 때요 은혜의 때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기회와 은혜를 결코 낭비하거나 남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지옥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수많은 영혼들이 여러분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오늘날이라고 하는 기회를 단 한번이라도 얻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오늘도 오늘이라는 하루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이 오늘이라고 하는 날 동안에 죄의 유혹을 강퍅케 됨을 면하고,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그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아서, 우리는 정말 영적으로 깨어서 말씀마다 믿음으로 화합하여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9)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10)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11)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4:9-11)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인생의 최종 종착점이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10절에서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앞에서 예수님을 믿어 이미 안식을 맛보며 사는 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 땅을 살고, 죽어서 지금 하늘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선조들, 믿음의 영웅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치 아니한 이스라엘을 본받을 것이 아니라, 바로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고난의 길을 걸어갔던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우리의 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의 최고의 모본이신,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멘이시오 충성이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은혜의 방도에 집착하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할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고난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수 있으며, 믿음이 있어야 이 땅에 것을 소망하지 아니하고 하늘 나라의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 담대한 믿음을 충만히 허락하여주셔서, 우리로 주님을 본받아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기를 위해 힘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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