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691
  • 어제방문자 : 
    1,087
  • 전체방문자 : 
    1,418,898
조회 수 875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히 13:1-8,15-17
성경본문내용 (1)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3)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4)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6)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강설날짜 2013-02-24

2013년 2월 24일 한결교회 주일예배강설

히브리서 제37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말씀 : 히 13:1-8, 15-17


지난주에 우리는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서 13장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5)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온 교회로 나와서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아울러서 우리가 삶 속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선한 행실을 하고,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살 때 그러한 삶의 예배를 또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은 이에 대해서 4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형제 사랑 - 손님 사랑, 고난 가운데 있는 형제 사랑

2) 음행으로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

3) 돈을 사랑하지 말라

4) 교회의 목자들을 본받으라, 그리고 그들에게 복종하라.


그런데 이 네 가지를 말하면서,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생각하라, 잊지 말아라.” 이것은 이 권면과 가르침이 그들이 처음 듣는 가르침이 아니라, 이미 그들이 배워 알고 있는, 그리고 지금도 실천하고 있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그것을 잊지 말고 계속하라는 것이죠. 그러면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형제사랑


먼저 형제사랑을 계속하라고 말합니다.


(1)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형제사랑이라고 되어 있는 단어는 ‘필라델피아’입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단어이죠. 미국에 ‘필라델피아’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 이름이 바로 이 헬라어에서 따온 것입니다. 도시 이름이 참 예쁘죠? 이 단어는 “필로스(사랑)+아델포스(형제)”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이 형제사랑은 교회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늘 강조되어 왔던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심지어 사랑하지 아니하면 영생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요일 3:14-15)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아니하는 자는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에게 과연 형제사랑이 있는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없다면 우리는 중생한 자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일 내가 중생 안 했다면 중생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 하나의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중생했는데, 은혜에서 미끄러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사는 경우입니다. 우리가 이런 상태에 있다면, 우리는 간절히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결국 이 형제사랑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 안에 거할 때만이 실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충만인데, 그래서 사랑은 성령으로부터 나는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 공동체로 모여서 단순히 적당한 선을 유지하면서 웃는 얼굴로 인사 나누고, 적당히 교제 나누고, 이것저것 돕는 차원을 넘어서서, 마음에서부터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그런 열렬한 사랑으로 끓어올라야 합니다. 사실 서로 안 싸우고 웃으며 대하고 교제 나누고 하는 것은 천성적으로 사람이 좋으면, 성령의 열매인 사랑이 없어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은 세상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사람 좋은 친절을 베푸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 형제를 향해서 사랑이 끓어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옆을 보십시오. 옆 사람을 볼 때 마음에서 뭔가 끓어오르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면 무덤덤합니까? 없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게 있어야 합니다. 마치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를 사랑하기를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것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고, 그래서 서로 딱 하나가 되어서 생사를 같이 하는 것, 그것이 형제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형제를 향한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인해서, 자기 유익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자기 자존심 체면 다 버리고, 오직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여 형제를 영육 간에 섬기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심지어는 형제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릴 각오가 되어 있고, 형제가 그릇된 길로 갈 것 같으면, “그 형제가 회개하여 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지옥에 떨어져도 괜찮다...” 이런 마음으로 그 형제로 인해 아파하고, 그 형제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그리고 말씀으로 권면하고 때로는 책망해서라도 돌이키도록 섬기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것이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인가...” 질문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깊이 변화될 때, 그리고 날마다 자기를 죽이며 성령충만을 받을 때, 우리는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 한결교회는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실천하면 좋지만, 어렵기 때문에 안 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은 교회의 존재목적입니다. 예수님은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 사랑 없으면, 그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그것은 교회의 존재목적과 사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교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다, 너무 어렵다”라고 해서 포기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것을 추구하며 회복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래서 그 사랑으로 서로서로를 사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러한 형제사랑은 반드시 참된 물질의 나눔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을 히브리서 저자는 두 가지 예를 통해 보여줍니다. 2절과 3절을 보시면,


(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3)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여기서 손님(떠돌아다니는 나그네)을 잘 대접해야 된다는 말은 일차적으로 그 당시 순회교사들, 선교사들, 당시 핍박을 피해 도망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형제라 불리는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물론 여기에 믿지 않는 손님들이나, 어려움을 당한 나그네를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된 의미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나 오늘날이나, 딱한 사정이 있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을 자기 집에 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함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지혜롭게 다른 방법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물론 자기 집에 들이는 것 외에 전혀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자기 집에 초청해서 도와야 하겠지만, 그때도 사람 봐가면서 주의하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고 할 때는, 그런 식으로 모르는 손님도 마구 초청해서 대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본문이 쓰여진 당시의 배경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하고는 다르게 순회교사들, 선교사들, 박해를 피해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가난했고, 성도들의 도움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집으로 초청해서 정성껏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했느냐 하면, 그 당시 쓰여진 ‘디다케’라는 교리문답서를 보면, 자기 집에 머무는 순회교사가 참선지자인지 거짓선지자인지 구별하는 방법까지 적혀 있습니다. 그만큼 손님 접대할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서에서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라고 말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 일에 힘써야 함을 말하면서 무엇을 상기시키느냐 하면,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필시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 찾아온 천사를 대접한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이 틀림없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자인줄 모르고 그냥 나그네로 알고 대접하다가, 나중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나그네가 왔을 때 박대했다면, 그는 그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롯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마을에 온 천사를 잘 대접한 것이 자신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오늘날도 있을 수 있으니, 혹시 지금 온 손님이 천사일수도 있으니 함부로 문전박대하지 마라... 계속 손님을 잘 대접하다보면, 천사를 대접하는 대박을 만날 수 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셨고, 그러므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형제를 대접하고 섬기면, 그것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는가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갇힌 자와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3)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


이것 역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옥에 갇힌 자나 모든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라(물론 그것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일차적으로 형제라 불리는 자들 중에 그러한 갇혀 있는 자, 학대 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23절에 보면...


(23)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디모데가 옥에서 놓였는데, 이 말은 그 당시에 디모데 말고도 옥에 갇힌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바로 그런 옥에 갇힌 형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옥에 갇히고, 학대받는 경험은 히브리서 수신자들이 이미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33)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34)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 10:32-34)


그래서 사람이 동일한 몸을 가졌기 때문에,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옥에 갇히고 학대 받으면, 마치 자기가 그런 학대를 받는 것처럼, 동정하면서 그들의 아픔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자기 동족이 학대받는 것을 보면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도 동족과 함께 학대받는 것을 더 좋아했던 것처럼,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고통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는 옥에 갇히면, (오늘날과는 달리) 먹을 것을 충분히 주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지인들이 음식을 따로 가져다주지 않으면 먹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옥에 갇혔을 때,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음식과 돈, 그리고 옷들을 가져와서 섬겼던 것을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아마도 그러한 형제들을 돌아보면서 음식을 가져다주고, 또 주일예배말씀을 가르쳐주고, 그리고 간수에게 잘 보살펴달라고 뇌물을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섬겨왔을 것입니다. 그것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하고는 다르지만, 결국 그 정신은 같습니다. 형제사랑은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물질적으로 돕고 섬기는 것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6-18)


우리가 서로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다면, 그 목숨 부지하는데 수단일 뿐인 이 물질이야 얼마나 더 아낌없이 나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지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가 서로서로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며 주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알고, 깊이 변화되어서, 형제를 향한 사랑으로 끓어오르게 하시고, 그 사랑을 물질의 나눔으로 실천하는 우리 한결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음행으로 침상을 더럽히지 말라


두 번째로 권면하는 것은 음행으로 침상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람피우는 것만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부부관계 외에 모든 성적인 관계를 금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음란물을 탐닉한다거나, 마음속으로 다른 형제자매를 향해 음욕을 품는다거나, 그러한 모든 음행을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음행하는 자와 간음하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심중에 늘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살아야 합니다.

 

이 성적인 욕구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은혜에서 미끄러지면 늘 이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미끄러지면 크게 세 가지 죄를 범하게 되는데, 그것이 형제를 미워하고, 음행죄를 짓고, 또 이후에 나오는 권면인,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하고, 그렇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묵과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을 늘 마음에 기억하면서 그 죄를 피하고 그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3) 돈을 사랑하지 말라


세 번째로 돈을 사랑치 말라고 권면합니다.


(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돈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이 돈이야 말로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하시고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 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보면 선한 것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면서 이 돈을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채우고 더럽고 타락한 삶을 사는데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무엇이냐 하면, 어찌하든지 이 돈을 (정당하고 합밥한 방법으로) 많이 벌어서, 하나님이 이 돈을 통해 목적하신 것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어찌하든지 돈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자기 교회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저는 돈 욕심 없구요. 막 돈 벌고, 하는데 관심 없습니다. 사업은 먹고 사는 만큼만 할려고요...” 그것을 자랑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물론 우리가 돈 버는 것이 직업의 일차목적이 아니지만, 그러나 이차로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정당한 경쟁을 통해서 불신자들에게 돌아갈 돈들을 자기가 벌여 들어서 불신자들이 이 돈을 소유했으면 하지 못했을 그런 일을 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을 통해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바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 돈은 우리의 수고에 대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분복입니다. 그것을 그와 그의 가정이 누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분복을 주실 때, 서로 다른 수준으로 주시는데, 각자마다 분수에 맞게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소유하고 누리는 것 자체에 대해서 죄악시해서, 집 팔고, 땅 팔고, 재산 다 팔아서 교회 갖다 바치고...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있고, 또 이 세상에서 살면서 적당한 문화생활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가난하고 핍절하게 살아야 옳다라고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도 때로는 궁핍에 처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풍부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일체의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시는 분복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돈을 주신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는데,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남을 돕고 섬기는데 쓰는 것입니다. 구제입니다.


(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십니까? 선을 행하는 것, 곧 물질의 나눔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다 중요한데, 그러면 메인이 무엇이고 무엇이 옵션입니까? 두 번째 세 번째가 메인이고, 첫 번째는 옵션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돈이 한정 없이 많아서 이 세 가지를 부족함 없이 넉넉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를 희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에 주안점을 두어서 어떤 것을 줄이고 절제해서 무엇에 힘써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상황을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데, 그들은 이전에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하고, 신앙 때문에 많은 물질적인 손해와 어려움을 이미 한번 겪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크게 고생하며 가난하게 자란 사람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느냐 하면, 돈이 풍족하게 있지 않으면 안정이 안되는 그런 강박관념이 있어서, 어찌하든지 돈을 많이 벌려고 하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습니다. 부자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돈 없는 사람은 돈을 많이 갖고 싶어서 돈을 사랑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수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런 어려움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돈을 많이 벌어서 저축해서 미래의 안녕을 대비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감사함으로 누리는 차원을 넘어서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에 자신의 미래의 안녕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있으면, 교회를 위해서 물질을 희생하고 형제를 위해 헌신할 수 있을까요? 물론 형식적인 십일조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는 안하는 것이죠. 돈에 대한 사랑은 결국 형제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 먹고 살기 힘듭니다. 직장을 잡기가 너무 어렵고, 또 미래가 너무나 불확실한 시대입니다. 언제 직장에서 잘릴지 모르고,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그런 염려가 들면, 우리는 더 돈을 움켜쥐게 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이라고 했습니다.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는 말은 돈을 사랑함으로 인해서 그 마음에 염려와 근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돈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내일 뭐 먹고 사나, 집을 장만하려면 적금을 하나 들어야 할텐데, 차를 한 대 마련해야 할텐데,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노후 대비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 평생 염려하고 걱정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어찌하든지 돈 많이 벌려고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너무 바쁘게 사는 바람에 주일예배도 빠지고, 기도 안하고 말씀 안 읽고 하는 것이죠. 돈을 사랑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돈을 쥐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는 적극적으로 육신의 정욕과 만족을 채우는 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어리석은 부자와 같은 것입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가 땅에 소출이 많으니깐 곳간을 새로 크게 지어서 쌓아놓고, 이제는 먹고 즐기면서 살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오늘 네 영혼을 거두어 가신다면 네 쌓아놓은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리석은 것이죠. 이 땅에서의 풍요와 번영을 추구하면서 이 땅에 재물을 쌓는 삶이 그렇게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영원합니까? 하늘에 재물을 쌓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업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누리는 부분을 줄이고 절제해야 합니다. 누릴 거 다 누리고, 할 거 다하면 주와 복음을 위해, 남을 위해 쓸 게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에 마땅함으로 자원하여 절제하고 교회와 가난한 형제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6)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6-8)


오늘 하루 굶지 않고 살았고, 잠을 잘 집이 있고, 그래서 그 하루를 주님을 위해서 살았으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전세면 어떻고 월세면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영원히 있을 것도 아닌데... 더욱이 우리는 하늘을 향해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여행객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되도록이면 짐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결국 돈을 움켜쥐게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6)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시편 말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프다고 울며 부르짖을 때, 양식을 안 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안 해도, 안먹겠다고 하는데도, 따라다니면서 억지로 밥 먹여줍니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뭐먹고 사나...” 염려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거 남한테 다 퍼주면 나는 뭐먹고 사나”, 걱정하지 말고, 남을 도울 때도, 힘에 겹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랍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4) 목자를 본받고 그들에게 복종하라


이제 마지막으로 네 번째, 목회자들을 본받고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합니다.


(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기서 7절과 17절을 구분해야 합니다. 7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처음으로 선포했던 개척 초기 사역자를 말하고, 17절의 목자는 현재 수신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을 말씀으로 인도하며 가르치는 목자를 말합니다. 7절에서 개척 초기 사역자들은 지금 다 죽었습니다. 대부분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불굴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8절은 다음 주에 살펴보고, 바로 17절을 보겠습니다.


(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현재 사역하고 있는 목자에게 복종하고, 그 목자의 지도를 잘 받으면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왜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까? 그것은 목자는 예수님의 양떼의 영혼을 위해서 경성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떼를 목자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 영혼의 유일한 목자는 예수님이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직접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따로 세우신 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인도함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인데, 그 종을 우리는 “목사”라고 하는데, 사실 ‘목자’라는 호칭이 더 좋습니다. 그것이 더 성경적입니다. 그래서 이 목자는 성도로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동일한 형제로서 주님의 통치를 받는 주님의 양입니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주님의 뜻대로 이 형제들 위에서 권위하면서 가르치고 지도하고 인도해야 할 영적인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목양의 질서 하에서 세워져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목회자도 여러분과 똑같이 부패성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저처럼 나이도 어리고, 세상의 경험도 부족하고, 말씀의 깊이나 영성이 여러분을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일꾼은 ‘그 사람의 상태’에 달린 것이 아니라 ‘신분’에 달린 것이기에,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중하고 그 권위에 순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부족함, 저의 교만이나 악함은 하나님이 직접 치실 것이고, 징계하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자의 연약한 부분, 허물, 약점을 품고 감당하면서 그 권위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목회자의 허물과 죄를 가지고서 업신여기거나 불신해서 불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누가 손해입니까? 교회가 손해보고, 결국 자기 자신이 손해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결국 교회에 목자가 있는 것은 양떼를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에 목자가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 돈 떼먹기 위해서 있습니까? 여러분들 괴롭히려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 말씀을 가르치고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허물없는 목회자가 어디 있습니까? 약점 없는 목회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그 허물과 약점이 있는 대로 하나님은 그 목자를 사용하셔서 자기 양떼를 먹이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마땅히 허물과 약점을 감당하면서 그 권위에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이 구절은 동시에 성도들의 의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의 의무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자는 자기 양떼를 위해서 경성해야 하는 자입니다. ‘경성하다’는 말은 잠은 안자고 깨어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치 휴전선에서 밤 세도록 보초서는 사람과 같습니다. 휴전선에는 항상 적군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밤에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보초서는 사람이 있어야 그 사람 때문에 국민들과 다른 군인들이 마음 놓고 편하게 잘 수 있는 것입니다.

 

목자가 항상 깨어있으니까 마음 놓고 편하게 영적 수면에 빠지라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가 늘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목회자만큼은 그렇게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목회자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게 하셨고, 또 목회자에게 특별히 은혜를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늘 깨어 있으면서 어떤 자세로 양떼들의 영혼을 돌봅니까?


(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처럼 합니다. 회계는 결산입니다. 종말론적인 심판대 앞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인생전체를 놓고 하나님과 결산하게 되는데, 그것은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자는 목회할 때, 마치 자신이 자신의 양떼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처럼, 그래서 종말의 심판을 생각하면서 어찌하든지 이 교회를 점 없고 흠 없이 세우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회자의 소명의식입니다.

 

그러니 목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서 돈 많이 주면 행복해 할까요? 그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주일날, 수요모임, 오후강설 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나와서, 배우고자하는 열망 가운데 눈이 초롱초롱한 상태에서 강의에 집중할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을 때, 그래서 예수님을 깊이 만나서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말씀대로 살아갈 때, 그것만큼 기쁜 것이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 목회의 보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가 가장 힘들 때는 사람들이 주일예배도 숙숙 빠지고, 오후강설 할 때 졸고, 수요모임에는 아예 안 오고 그러면 참 힘듭니다. 온 교회가 말씀을 잘 가르침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잘 보존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아니하고, 영혼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미끄러져서 그릇된 길로 갈 때 한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가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에서 근심은 “신음하다, 한숨짓다”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쓴뿌리와 원망을 가지고 수시로 발목 잡을 때, 그리고 자기 허물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하면서 짐 싸들고 떠나는 영혼을 볼 때면, 그렇게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고, 그렇게 근심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아픔입니다.

 

그래서 목회라는 것은 때로는 영혼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이런 저런 험한 꼴 다보면서 극심한 신음과 한숨 속에서 아픔을 겪기도 하는 그런 사연이 많은 직분인 것입니다. 제가 왜 이 길을 뛰어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뭣도 모르고 이 길을 택한 건데, 이 길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또 그것이 훈련이기도 하니깐 있어야 된다고 말하든데...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은 목자들로 하여금 그 사역을 즐거움으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그렇게 신음하면서 한숨지으면서 하도록 하면, 결국 교회에 아무런 유익이 없고, 본인도 손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 앞에서 목자의 직분에 서 있는 저나 또 여러분들이나 동시에 도전받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지금 직장생활 하고 있지 목회하고 있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복음위에 굳게 서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맡기신 양떼들을 위해 경성하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목자가 허물과 약점이 있어도, 품고 감당하면서 또 그 목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하고 복종하여서 목회자가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목회자의 말씀의 가르침을 잘 받고 지도를 잘 받아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이 한결교회를 세워나가는 복된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804 [호세아 6장]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file 호 6:4-11 손재호 2013-06-02 10795
803 [히브리서 9장] 육체의 예법 file 히 9:1-10 최상범 2012-10-28 9955
802 [디모데전서 2장]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file 딤전 2:1-8 손재호 2013-11-03 9322
801 [디모데전서 1장]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file 딤전 1:12-17 손재호 2013-10-20 9290
» [히브리서 13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히 13:1-8,15-17 최상범 2013-02-24 8755
799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손재호 2007-07-15 8421
798 [호세아 4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file 호 4:1-10 손재호 2013-04-21 8231
797 [호세아 1장]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 file 호 1:1-9 손재호 2013-03-10 8154
796 [베드로후서 1장]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라 히 1:8-11 손재호 2012-04-01 7925
795 [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창 38:1-30 손재호 2009-05-03 7888
794 [히브리서 12장] 신앙의 경주 히 12:1-3 최상범 2013-02-03 7759
793 [디모데전서 1장]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file 딤전 1:17-20 손재호 2013-10-27 7701
792 [호세아 10장] 두 마음을 품었으니 file 호 10:1-8 손재호 2013-07-07 7346
791 [디모데전서 1장]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file 딤전 1:3-11 손재호 2013-10-13 7317
790 [디모데전서 2장]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file 딤전 2:8-15 손재호 2013-11-10 7314
789 [호세아 14장]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file 호 14:5-7 손재호 2013-09-08 7233
788 [디모데전서 3장]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file 딤전 3:1-7 손재호 2013-11-17 7210
787 [호세아 10장]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file 호 10:9-15 손재호 2013-07-14 7201
786 [호세아 6장]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file 호 6:1-3 손재호 2013-05-26 7195
785 [히브리서 13장]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히 13:9-25 최상범 2013-03-03 718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