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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호 1:1-9
성경본문내용 (1)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2)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3)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4)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5)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6)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7)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8)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강설날짜 2013-03-10

2013년 호세아서 공부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

 

말씀:호세아 1:1-9

 

호세아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호세아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셨다’라는 뜻입니다(렘 42:1; 43:2). 호세아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 출신이며, 여로보암 2세 이후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6명의 왕이 바뀌는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호세아서의 중심 주제는 그릇된 길로 향하는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아내로서 정절을 유지하지 못하고 음란해진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멜과의 결혼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내용은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단지 범죄 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만이 아니라 음란한 여인과 결혼해야 하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호세아서를 공부하면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1절을 보면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을 보면 유다의 왕으로는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다스리던 시대 입니다. 그리고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는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다스리던 시대입니다. 그런데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인데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남쪽 유다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왕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북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고하면서 남쪽 유다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겠다는 말씀을 통해서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여로보암 2세를 말합니다. 이 여로보암 2세 시대에 북 이스라엘이 아주 강대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강대한 만큼 타락도 엄청난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호세아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무엇을 명했습니까?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입니다(2).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나라가 주를 버리고 떠나서 음란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음란한 이스라엘을 그대로 심판해 버리시면 되실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음란한 여인이란 아주 상습으로 음란한 행동을 하는 창기와 같은 자를 말합니다. 또한 신전 창기일 수도 있습니다. 호세아 4:13-14절을 보면 “저희가 산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가 아름다움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을 행하는도다.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행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자는 패망하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온 땅이 우상숭배로 가득 찬 것입니다. 곳곳마다 신전들이 즐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로 하여금 정결하고 깨끗한 신부를 맞이하여 그 시대에 경종을 울려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음란한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제사장이나 선지자는 결혼을 해도 처녀와 결혼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레위기 21:13-15절에 보면 “그는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을찌니라. 과부나 이혼 된 여인이나 더러운 여인이나 기생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 자손으로 백성 중에서 더럽히지 말찌니. 나는 그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법을 스스로 어기고 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녀를 낳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법을 어기시면서까지 왜 호세아 선지자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여 음란한 자녀들을 낳으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행하신다면 살아남을 자가 한사람도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3:10). 모든 사람이 다 죄 아래 팔렸다고 했습니다(롬 7:14). 하나님의 공의대로 시행하신다면 한사람도 구원함을 받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공의와 사랑은 우리의 관념으로는 서로 양립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습니까? 시편 85:10절을 보면 “긍휼과 진리가 함께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긍휼과 진리가 함께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리대로 시행하자면 긍휼이 숨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긍휼을 베풀려면 진리가 희생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가 시행이 되려면 화평이 보류되어야 합니다. 공의대로 시행하려면 화평은 물 건너 간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이것을 어떻게 하나로 만나게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긍휼과 진리가 함께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심판과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 자리가 바로 주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이 함께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하여 주시고 결혼하여 주실 것을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친히 깨뜨리면서까지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여인과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그대로 용납하실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을 행하시고 다시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판이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3-5절을 보면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여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르엘은 ‘흩어버리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한 왕자라는 복된 이름이지만 이스르엘은 흩어버린다는 저주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의 아들의 이름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사야 선지자의 아들의 이름이 ‘스알야숩’으로서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그 이름이 하나님의 계시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왕기하 9장에 보면 이스르엘은 아합 왕가가 진멸당한 곳입니다. 예후가 아합 왕가를 몰락시킨 곳이 바로 이스르엘입니다(왕하 9:10). 그 공로로 열왕기하 10장에 보면 예후의 왕위가 4대 동안 이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왕하 10:30). 지금 여로보암 2세는 예후의 3대째 후손입니다. 그러면 왜 예후를 벌하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예후가 겉으로 표명하기는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라고 하였지만 속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제거하여 나간 것입니다. 바알은 부수고 바알을 섬기는 자들은 제거하였으나 여로보암 1세가 섬기던 금송아지 숭배의 죄악에서는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열왕기하 10:28-31절을 보면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나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의 아들의 이름이 이스르엘이 되는 것은 흩어버리는 것인데 단지 예후의 왕조만을 흩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흩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 최고의 번영기인 여로보암 2세 때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가 왕위에 오른지 6개월 만에 살룸의 반역으로 예후의 집안은 망합니다(왕하 15:8-10). 살룸 왕은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죽고(왕하 15:13-14), 므나헴 때 앗수르 왕이 쳐들어 와서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왕하 15:19-20). 그리고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으나 베가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었습니다(왕하 15:23-25). 베가는 다시 호세아의 반란으로 죽었습니다(왕하 15:30). 여기서 말하는 호세아는 선지자 호세아가 아니라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입니다. 결국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였습니다(왕하 17장). 이것이 이스르엘이라는 이름이 계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흩어버리심은 이스라엘이 창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온갖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창기가 되어 멸망을 당한 것은 결국 자신이 왕이 되어 자신을 섬긴 죄의 결과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온갖 우상을 섬긴 것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 왕이 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목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이 목적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삶은 반드시 하나님이 도구로 전락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된 것이 아니라 도구화가 된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상숭배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호세아는 고멜에게서 두 번째 자식으로 딸을 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딸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라고 하셨습니까? 6절에 보면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루하마’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부정 접두어 ‘로’가 붙음으로 긍휼을 입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로루하마’라 이름하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입지 못하게 되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6b).

 

그런데 7절에 보면 유다는 긍휼이 여겨서 여호와로 구원하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호 1:7). 열왕기하 19장에 보면 유다가 앗수르의 공격에 의하여 완전히 포위가 되었을 때 그들의 손에 의하지 않고 앗수르 군사가 다 죽어버린 사건이 히스기야 왕 때에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19:35절에 보면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에서 군사 십 팔만 오천을 친지라.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런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스가랴 2장에도 보면 북 이스라엘의 심판을 선언하는 중에서도 시온의 딸은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합니다. 스가랴 2:10-13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줄 알리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호세아는 세 번째 아들을 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라고 하십니까? 8-9절에 보면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로암미’라 짓게 하셨습니다. ‘암미’가 ‘내 백성’인데 ‘로’가 붙어서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심은 자기의 백성을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5-6절에 보면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참조. 렘 31:31-34). 그런데 이제 ‘로암미’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이 아니라고 버려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자녀의 이름은 모두 심판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흩어버리시고(이스르엘), 긍휼이 여기지 아니하겠고(로루하마), 내 백성이 아니라(로암미)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함으로 인해 심판을 받고 끝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을 흩어버리시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통해 희망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후로부터 북 이스라엘은 10지파가 다 흩어져 버리지만 유다에 붙어서 들어오는 자들이 혹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구원이 유다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회복의 내용이 10-11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 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 1:10-11).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심판 후에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돌아오리라는 것입니다. 이미 범죄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유다와 이스라엘의 회복만이 아니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방인까지 이 부름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나타난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18절을 보면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든 벽을 없애버리시고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능력인 것입니다.

 

호세아 2:19-20절을 보면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멜보다 더 악하고 더럽고 추한 우리를 주님의 보혈로 정하게 하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아들의 신부로 삼으신 것입니다. 고멜과 같이 더러운 죄인을 당신의 피로 씻으시고 정결한 신부로 세우셨습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마땅함으로 그 은혜를 감당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왕이 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이 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고멜과 같은 자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목적이 된 삶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목적이 된 우상숭배 자임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우리를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어 주시고 당신의 정결한 신부로 삼아 주신 주님의 은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왕이 된 삶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왕이 된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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