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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호 6:1-3
성경본문내용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강설날짜 2013-05-26

2013년 호세아서 공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말씀:호세아 6:1-3


오늘부터 우리는 호세아서 6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호세아서 5장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5장 말씀을 통해서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정조를 잃어버린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한가지로 넘어진다고 했습니다(5:5). 나의 진노를 물 같이 부으신다고 하셨습니다(5:10). 에브라임에게는 사자와 같이, 유다에게는 젊은 사자와 같이 움켜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5:14). 이 심판에서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5:14). 이 심판의 경고대로 그들은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이런 그들이 자기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5:15). 결국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로 정조를 잃어버린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앗수르와 바벨론을 채찍으로 사용하셔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뉘우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5:15). 그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라’라는 말은 우리를 여호와께로 초청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찢으셨으나 낫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깨달은 것입니다.


과거 이들은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자신들의 병과 상처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그들은 세상의 힘을 의지하여 치료받고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본 5:13절 말씀을 보면 “에브라임이 자기 병을 깨달으며 유다가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고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 저가 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너희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에브라임은 자기 병을 깨달으며, 유다는 자기의 상처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여호와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앗수르 왕 야렙에게로 갔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병과 상처를 고침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방의 강대국 앗수르로 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들이 의지했던 앗수르가 병을 고쳐 주고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가 병을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상처를 싸매어주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그들로 인해 낭패와 실망을 당했습니다. 그들에게 멸망을 당하여 비참한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후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며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마음의 상태를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마음의 정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나는 나다’는 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오직 자기 자신들이 우선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들의 행복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의지했던 앗수르에 의해 망했습니다. 비참한 노예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을 섬길 때가 좋았다며 뉘우치며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기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호세아서 5장에서 본 대로 그들은 교만해 졌습니다(5:5).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가득했습니다(5:4). 그로인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5:4). 그들은 눈에 보이는 앗수르와 같은 이방 강대국이 자신들을 지켜주고 행복하게 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앗수르에게로 간 것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이 교만으로 인해 그들은 넘어진 것입니다. 호세아 5:5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주위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인정해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 가운데 놀라운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이방 나라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출애굽의 놀라운 일을 이루심을 목도 했습니다. 가나안 정복역사를 목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셔서 이루시는 그 놀라운 일들을 그들은 다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스라엘을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와 살만해 지자 교만해졌습니다. 지금과 같이 살게 된 것이 모두 자기 자신들이 잘 나서 그렇게 된 줄로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이 똑똑해서 그렇게 된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로인해 그들은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이방 강대국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 잘 될 줄로 알았습니다. 더 잘 살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완전한 사기꾼의 농간에 속아서 있던 재산까지 몽땅 다 잃어버리고 빈털털이가 되어서 비참한 자로 전락한 사람과 같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제 그들은 이때까지 의지하였던 곧 자신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들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옛날과 같은 상태는 기대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뻔뻔스럽게 옛날의 그 상태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긍휼만을 기대하며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잘 아는 탕자 비유와 같습니다. 탕자는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여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다. 아버지 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완전히 알거지가 된 후에야 비로소 아버지 집의 풍족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고 아버지 집의 품꾼으로도 감사하다고 하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옛날의 그 아들의 지위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종의 하나로라도 받아 달라고 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는 자신들이 노예로 전락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집의 풍족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신이시며, 하나님 만이 자신들에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뉘우치며 긍휼을 구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죄악된 세상에서 멸망을 받지 않고 새 생명 가운데 살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여 주시고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가 이 울타리를 벗어나면 세상에서 마음껏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고멜을 망하게 한 것이고, 이스라엘을 비참한 노예로 만들어서 전 세계에 흩어지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소 4:13절을 보면 바울 사도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주님 안에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틈만 있으면 주님을 떠나서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마음의 탐욕 때문입니다. 음란한 마음이 내 속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힘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망하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의지하고 세상의 지혜를 좇아 갈 때 잘 될 것 같지만 망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근본적으로 죄악 되어서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좇아가기를 잘 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우리 인생이 사는 길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자들을 어떻게 회복시켜 주십니까? 놀라운 속도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틀 후에 살리시며 제 삼일에 일으키신다’는 것은 아주 빠른 시간 안에 치료하시고 회복시킨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제 삼일에 일으킨다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는 표현 방법을 잘 몰라서 오해한 것입니다. 아모스 1:3절에 보면 “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여기서 서너가지 죄란 꼭 그들의 죄가 세 가지 또는 네 가지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몇 안 되는 아주 작은 죄이지만 중요한 것이며, 결국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이틀 후에 살리시며 제 삼일에 일으키신다’는 표현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아주 긴박하게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셔서 다시 일으키신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틀과 사흘’은 너무나도 놀라운 이틀과 사흘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이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데 나중에 나타나는 결과를 보면 모든 사람들이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거의 만신창이가 되어 도저히 다시 살 수 없었던 사람이 다시 놀랍게 재기해서 성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회복시키시되 속히 회복시키는 분입니다. 그만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더 이상 머리를 굴리지 말고 완전히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하십니다. 자르실 것은 자르시고 잡아매실 것은 잡아매시고 고치실 것은 고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신기한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로 그 앞에서 살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이 말씀은 우리가 그 앞에서 갖게 되는 당당한 자격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그 영광의 존전에서 쫓겨났고, 가장 비참한 자리에 있으며, 다시 하나님의 얼굴을 뵐 것 같지 않지만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속히 치료하셔서 우리로 그 앞에서 살게 하십니다.


그러면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자고 합니까? 힘써 하나님을 알자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는 말씀은 간절한 초청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너무나도 진귀한 어떤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을 초청할 때와 같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은혜의 방도를 부지런히 사용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방도가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배워 나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나갈 때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본문 3b절을 다시 보면 호세아 선지자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호세아는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합니다. 우선 하나님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고 하십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밤이 깊어지면 다시는 새벽이 올 것 같지 않습니다. 영원히 밤만 계속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고난 가운데 빠져 있을 때는 무엇을 생각합니까? 다시 새벽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영원히 이 고생이 계속 될 것 같습니다. 군에 가서 밤에 보초를 서 본 사람은 그 밤이 얼마나 긴지 모릅니다. 마치 아침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침은 너무나도 일정하게 찾아옵니다. 시간이 지나면 여전히 새벽은 밝아 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자기를 구하는 자에게 신실하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의심하고 불안 해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그 다음에는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일년에 비가 두 번 옵니다. 10월과 3-4월입니다. 10월에 내리는 비를 가리켜서 이른 비라고 하고, 3-4월에 내리는 비를 가리켜서 늦은 비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주로 밀농사를 지었는데 그 밀을 뿌릴 때가 10월입니다. 그래서 그 때 오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추수 곧 결실기가 3-4월인데 그 때 오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이처럼 팔레스타인에는 이른 비와 늦은 바가 옴으로 곡식이 풍년이 듭니다.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농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입니다. 이 두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가 안 됩니다. 특히 늦은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라고 합니다. 그래서 ‘땅을 적시는 늦은 비’라고 했는데 사실 이 비는 풍성한 비입니다. 밀이 결실하게 하는 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뉘우치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로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와서 곡식을 풍성케 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말씀은 놀라운 소망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겉으로 볼 때 우리는 예배에도 참석하고 헌상도 하고 전도도 하니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살고 있습니까? 여호와를 힘써 알려고 하고 있습니까? 우리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와 길이가 어떠함을 힘써 알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스라엘이 믿고 의지하다가 망하여 버린 세상 것들에 대한 미련과 애착에 힘을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부지런히 자신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죄를 책망하시고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지극히 소수만이 돌아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로 선지자들이 말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도 동일합니다.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져 있습니다. 외관상으로 볼 때 교회가 번성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속은 세속화되어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속이 병들었다는 것을 알고 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움직임들이 또다시 세상의 힘을 요구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그 앞에서 살자.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우리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회개하며 주께로 돌이키는 자들에게 주님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게 함께 하실 것입니다. 땅을 적시는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를 살리지도 못할 헛된 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오직 우리로 여호와께로 돌아와 힘써 여호와를 알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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