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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1:17-20
성경본문내용 (17)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18)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19)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20)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강설날짜 2013-10-27

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말씀:디모데전서 1:17-20

 

우리는 지난 시간에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하는 바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막 2:17). 그런데 우리 인생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인이 아닌체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생이 다 그 죄 아래 갇혀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들은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선행을 가지고 스스로 선과 악을 선택하여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시는 이 말씀이 기쁜 소식이 되는 사람은 정말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이는 이미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 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인들을 먼저 찾아오시지 않고서는 스스로 죄인임을 알고 주님께로 돌아가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심으로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은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본 15절을 말씀을 보면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소식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의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자신은 정말 의로운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앞장을 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이제까지 자신이 행한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신이 은혜를 입은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6절 말씀을 보면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던 자신이 긍휼을 입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일절 오래 참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를 통해서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의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은 주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쓰임 받을지라도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만세의 왕이시요,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이라고 하며 바울은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구원으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이제 제대로 영광을 돌려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그 분은 만세의 왕이시며, 썩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이며,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함으로써 모든 인생의 영광을 헛된 것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인생의 영광이란 언제나 썩게 마련이고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믿음의 눈으로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이란 이상한 신비스러운 것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의 약속을 눈에 보듯이 믿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은혜가 주어진 것은 죄로 인하여 영원한 심판과 저주를 받아야 할 인생에게 크나큰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결과 우리에게 믿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이란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곧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8절을 보면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나 간에 썩고 쇠하여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의 것들을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을 거스려 삽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에게는 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거룩한 싸움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9절을 보면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바울과 같은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주님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자기 백성을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기업입니다. 이러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을 받음으로 인하여 닥치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시험인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그러한 것으로 오히려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시험들이 연단을 가져와서 더 귀한 믿음의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지는 그 영광과 존귀에 죄인인 우리가 함께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로서 영광과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의 자녀들도 그 영광과 존귀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들은 그 믿음 때문에 오는 환난을 인해서 오히려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이르기까지 성도에게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결코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 아닙니다. 혈과 육에 속한 싸움이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쟁과 다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싸움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지키는 싸움인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은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싸움은 자기 자신의 정욕을 따라 다투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들도 다 그런 싸움만 싸우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나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입니다. 그것은 전에 내가 쟁취하고자 열심히 싸우던 그런 것들을 오히려 대적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싸우던 이러한 싸움이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도 여전히 나에게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싸움을 싸우지 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0절을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찌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찌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의 이 말씀에서 무슨 싸움을 싸워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내용이 이 말씀에 다 포함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 가운데서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아직도 자기 지체의 정욕을 좇아 욕심을 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살인과 시기까지 나오도록 다투고 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오늘날 같이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모두 다 이렇게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싸움이란 세상과 벗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과 벗됨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하게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하나님을 대적하고 마귀에게 순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서 어떻게 마귀를 대적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 위하여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8절을 다시 보면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한 싸움의 내용입니다. 또한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 역시 믿음의 싸움의 내용인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기뻐하고 웃는 것들을 슬퍼하며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의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선한 싸움이 우리에게 있기는 한 것입니까? 오히려 세상의 것들을 더 많이 가지지 못해서, 세상의 것들을 더 사랑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고 근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겠습니까? 오히려 적에게 포위되어 꼼짝 달싹하지 못하고 적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형편 아닙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바울 사도의 경계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8-19절을 보면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지도한 예언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말하기를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전에 디모데를 지도한 예언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복음의 내용들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디모데에게 그 복음의 지도를 따라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본 베드로전서와 야고보서에서 무엇을 싸워야 할지를 이미 보았습니다만 이제 오늘 본문의 말씀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지키고 간직하도록 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선물로 받은 자는 그 양심이 이제 하나님을 찾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9-10절을 보면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의지하여 드리는 예물과 제사가 섬기는 자로 그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나니.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피로서는 양심상으로 온전케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14-15절을 보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짐승의 피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죽은 양심에서 나오는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 자는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22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옛 사람이 죽고 양심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러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21절에 보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선한 싸움이란 주님께서 주신 믿음의 선물로 인하여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찾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막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3-4절에서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다른 교훈과 족보와 끝없는 신화에 착념하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8-19절에서 믿음과 선한 양심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이러한 양심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양심을 버린다는 것은 스스로의 양심으로 선을 이루어 나가겠다고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양심을 이야기 하고, 이성을 이야기 하지만 그러나 이미 죄로 인하여 더러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양심을 이야기 하여도, 그 양심을 바르게 쓴다고 하여도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주장과 가르침을 경계하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18-19).

 

바울은 믿음에서 파선 한 자들이 누구라고 합니까? 20절을 보면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믿음에서 파선한 자의 예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들고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 자세하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디모데후서 2:17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빌레도와 함께 이단자, 거짓 교사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양심을 버렸고,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사람들인 까닭에 교회 공동체에서 출교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2:17-18에 보면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이들은 망령되고 허탄한 말을 함부로 하며,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있을 육체의 실제적인 부활을 부인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학자는 이들을 영지주의 이단 사상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이들은 아주 심각한 이단사상에 물든 사람들로서 다른 교인들을 잘못된 교리와 믿음으로 인도하려고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에서 파선 한 자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이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친 자들입니다. 은혜로 시작하여 은혜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서 다시 자기 행위로 돌아서는 자들이 바로 믿음에서 파선한 자들입니다. 바울은 양심을 버리고 믿음이 파선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실명으로 언급하면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고 경고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들이 미치는 악영향을 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후서 2:17절에서 이들이 악성 종기처럼 퍼져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딤후 2:17). 이들은 참으로 교회에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오늘날도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같이 복음 진리를 부정하고 믿음에서 파선하게 하는 이단 사상들이 한국교회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잘 분변하고 싸워야 합니다.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날 우리 안에 있는 적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믿음과 선한 양심에서 떠나게 하는 여러 가지 이단 사상들을 대적하며,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로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워나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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