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27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2:8-15
성경본문내용 (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11)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12)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14)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15)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강설날짜 2013-11-10

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말씀:디모데전서 2:8-15
 
지난 시간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별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는 바울 사도의 권면의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디모데전서 2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성경신학적으로나 오늘날 교회에서나 논쟁이 많이 되고 있는 본문입니다. 특히 자매들에게 걸림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자와 여자로서의 편견을 내려놓고 바울 사도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말씀의 본의를 겸손히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모데전서가 기록된 배경은 에베소교회입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 사도가 두란노서원에서 2년에 걸쳐 성경을 가르쳤던 곳입니다(행 19:8-20). 그런데 이 교회에 바울이 떠난 후 여러 이단들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그 일의 중심에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 1:20절에서 말하고 있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와 같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교훈과 신화와 족보들에 착념하였던 자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력들은 영지주의 자들의 도전입니다. 4:3절에 보면 이들은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고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자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무너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디모데로 하여금 이들을 경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에서 먼저 남자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남자들을 어떻게 권면합니까? 8절을 보면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비복음적인 것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 올 때에 분노와 다툼으로 싸울 것이 아니라 기도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변론과 반론만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로인해 끝없는 다툼이 일어날 뿐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증거 할 때에 때로는 반론도 필요하고 변론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그것이 논쟁이나 다툼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분노와 다툼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자세를 남자들에게 먼저 요구하고 난 후에 그 다음에 여자들에게도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들에 대한 바울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9-15절을 보면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9절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는 “이와 같이 여자들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남자들에게 먼저 권면한 후에 이제 여자들에게도 남자들에게 권면한 것과 똑같은 원리로 여자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와 같이’라는 말은 남자들이 이단사상을 전파하는 자들에 대해서 분노와 다툼이 없이 각처에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하는 것과 같이 여자들도 분노와 다툼이 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여자들에게 바울 사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권면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9-10절을 다시 보면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여자들에게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듯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머리를 꾸미고 금이나 진주나 값진 것으로 꾸미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신전의 창기들이 머리를 땋아서 높게 하고 거기에 온갖 보석으로 장식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그 당시의 문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교회 안에도 밀려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는 경건한 여자들이 그러한 것들을 따라 자신의 외모를 꾸미지 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아담한 옷을 입고 염치와 정절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고 살만해 지니까 이제는 보암직한 것들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좋아 보이는 것들이 많습니까? 머리를 꾸미는 것에서부터 보석, 옷, 핸드백, 속옷에 이르기까지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수백만원짜리가 없어서 팔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까지 이러한 문화가 들어와서 경건한 자매들까지도 세상 문화를 따라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건한 자매들은 이런 문화를 배격하고 아담하게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가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천년 전의 초대교회 여자들에게도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인간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됩니다. 최초로 자신을 꾸미는 일이 어디에서 일어난 것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자기의 몸을 가린 것에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으로 가린다는 것은 자기의 수치를 가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란 자기의 수치를 가려 보고자 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단지 여자의 화장술이 발달하고, 옷 입는 것이 화려하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가 인간들의 솜씨를 뽐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로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죄를 지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수치를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화장술로 가리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 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자기 가리기인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여자들은 무엇으로 자신을 단장해야 한다고 합니까? 아담한 옷입니다. 그리고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염치와 정절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염치란 헬라어로 ‘아이도스’(aijdwv")이며, 신약성경에서는 여기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버나드는 이 단어를 ‘여자다운 조건에서 벗어나지 않는 현숙함을 의미한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염치란 단순히 의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복과 함께 현숙한 여인으로서의 행동을 함께 나타내는 말입니다. 또한 정절이란 헬라어로 ‘소프로쉬네’(swfrosuvnh)라는 단어인데 ‘마음의 확고함, 빠른 이해력’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염치와 정절을 무엇과 비교를 합니까?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선행으로 단장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가 한 말을 보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 3:1-6절을 보면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말을 보면 결국 외모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신을 꾸미려고 하는 것들은 다 썩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들은 썩지 아니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여자가 꾸며야할 것은 세상의 여자들이 꾸미는 것으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로 자신을 단장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여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둘째로,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는 것입니다. 11-12절을 다시 보면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의 본의가 무엇일까요? 여자는 주일학교 교사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교회의 공적인 가르침과 연관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베소서 4:1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 목사와 교사로 이들의 사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가르침’은 성경에 대한 공식적, 교리적 가르침을 동반하는 활동을 말합니다(딤전 5:17). 이것은 가르치는 목사에게 위임된 권세입니다(엡 4:11). 특히 바울이 오늘 본문 후에 3장에서 장로들에 대해서 언급하고(3:1-17), 5장에서 장로들 가운데서 특히 가르치는 일에 힘쓰는 자들을 언급하고(5:17) 있는 이 편지 전체의 맥락을 보면 바울이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공식적 가르침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가르침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공식적인 가르침, 특히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문맥에서는 이 ‘가르치는’것이 가장 앞에 나와 강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여인들이 공식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배우는 것과 대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인들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요구하는 것은 여인들의 지식 성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저 물리적인 침묵만을 요구하던 유대적인 관습과는 달리 참으로 배울 것을 요구하는 기독교적인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인들도 기독교적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배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메시지에 집중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도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용히’라는 말도 물리적인 침묵보다는 질서 있는 가르침을 받아 변화될만한 태도를 가질 것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배울 때에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고 합니다. ‘일절 순종함으로’라는 이 말은 대개 권위 있는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서 요구 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대개 권위에 복종하거나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누구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든 남자들이 다 가르치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문맥에서의 복종은 그저 남자에게 복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남자 지도자들과 그들의 가르침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여기서 여인들은 잘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여인들이 기독교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관하는 것’도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다스리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목회서신에서 교회 공동체를 공식적으로 다스리는 행위는 장로들이 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딤전 3:5, 5:17). 물론 여기서 사용된 말이 신약성경에서 이곳에서만 나타나는 말이므로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 문맥에서 볼 때 이 용어의 가장 자연스러운 의미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여인들이 남자 위에 공식적으로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씀은 여자가 교회 안에서 공식적인 가르치는 직무인 목사의 역할을 하는 것과 다스리는 직무인 장로의 역할을 하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인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내가 허락지 아니한다”고 현재 시제로 아주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가르침은 그 당시 상황에서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에 주어진 보편적인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도 구속력이 있는 말씀인 것입니다.

 

에베소교회가 거짓교사들에 의하여 분노하며, 말다툼이 벌어지는 일에 여자들도 함께 가세를 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가 어떤 싸움이 일어나면 누가 더 나섭니까? 여자들이 더 앞장을 서기 쉽습니다. 그러다보니 무익한 변론밖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남자들을 이기고 지배하려고 하기까지 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외부의 적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더욱 소란스러워지는 것이며, 결국 사단의 술책에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여자들은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문제를 어디까지 소급을 시키고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까지 소급을 시키고 있습니다. 아담이 먼저 만들어 졌고,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자가 먼저 꾀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이 아담보다 하와를 유혹하는 것이 더 쉬웠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선악과를 보고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던 것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여자들이 백화점이나 텔레비전 홈쇼핑 같은 것을 보고서 물건을 사고 싶어서 남편에게 조르지 않습니까? 요즈음은 그렇게 조르지도 않고 여자가 다 결정하는 세상입니다만 그런데 남자들은 대부분 그런 것을 보고 시큰둥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남자도 있고 그렇지 않은 여자도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좀 종용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여자분들이 기분이 별로 안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성경의 말씀치고 우리에게 기분 좋은 말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씀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일차적으로는 그 당시의 이단들에 대하여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디모데전서 4:1-5절을 보면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교회 가운데 영지주의 이단들이 나타나서 혼인도 폐하고, 음식도 폐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을 잘 돌보고 남편에서 순복하며,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하는 것을 통하여 이단을 방어하는 것이며, 또한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3절을 보면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를 머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인정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자가 기도할 때에 머리에 수건을 쓰라고 하는 것은 권세 아래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수건 대신에 무엇으로 대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긴 머리카락이 이를 대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건을 쓰거나 머리를 기르는 것은 결국 무엇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까? 권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하와가 아담의 권세를 떠나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녀는 먹는 날에 정녕 죽으리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를 부정한 것입니다. 물론 그 책임이 아담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아담의 불순종으로 봅니다. 그것은 아담이 여자의 머리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는 이러한 구분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주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11-12절을 보면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아이를 낳고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주님을 머리로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셔서 우리의 잘못을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는 여자라면 외모로 단장하지 않고,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하며,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으로 가정을 돌보며, 남편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온갖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교회 가운데서 남자와 여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바르게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남자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기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게 하여 주시고, 우리 자매들은 금과 진주와 값진 옷으로 자신의 외모를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 자신을 단장하며, 종용히 남편에게 순복하며,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며,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사도들의 가르침 가운데 굳게 세워져 감으로 교회다움을 잘 나타내 가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796 [호세아 6장]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file 호 6:4-11 손재호 2013-06-02 10664
795 [히브리서 9장] 육체의 예법 file 히 9:1-10 최상범 2012-10-28 9819
794 [디모데전서 2장]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file 딤전 2:1-8 손재호 2013-11-03 9202
793 [디모데전서 1장]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file 딤전 1:12-17 손재호 2013-10-20 9192
792 [히브리서 13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히 13:1-8,15-17 최상범 2013-02-24 8628
791 [마태복음 20장]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손재호 2007-07-15 8260
790 [호세아 4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음으로 file 호 4:1-10 손재호 2013-04-21 8123
789 [호세아 1장]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 file 호 1:1-9 손재호 2013-03-10 8025
788 [베드로후서 1장]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라 히 1:8-11 손재호 2012-04-01 7892
787 [창세기 38장] 유다와 다말! 창 38:1-30 손재호 2009-05-03 7759
786 [디모데전서 1장]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file 딤전 1:17-20 손재호 2013-10-27 7662
785 [히브리서 12장] 신앙의 경주 히 12:1-3 최상범 2013-02-03 7645
784 [호세아 10장] 두 마음을 품었으니 file 호 10:1-8 손재호 2013-07-07 7294
» [디모데전서 2장]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file 딤전 2:8-15 손재호 2013-11-10 7270
782 [디모데전서 1장]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file 딤전 1:3-11 손재호 2013-10-13 7269
781 [호세아 14장]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file 호 14:5-7 손재호 2013-09-08 7180
780 [호세아 10장]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file 호 10:9-15 손재호 2013-07-14 7164
779 [디모데전서 3장]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file 딤전 3:1-7 손재호 2013-11-17 7132
778 [호세아 6장]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file 호 6:1-3 손재호 2013-05-26 7117
777 [디모데후서 1장]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1 file 딤후 1:1-8 손재호 2014-02-16 707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