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8장] 네번째 재앙-파리 재앙

by 손재호 posted Aug 0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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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8:20-32
성경본문내용 (20)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21)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의 거하는 땅에도 그러하리라(22)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23)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24)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 떼가 바로의 궁에와 그 신하의 집에와 애굽 전국에 이르니 파리 떼로 인하여 땅이 해를 받더라(25)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26)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27)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하나이다(28)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29)모세가 가로되 내가 왕을 떠나 가서 여호와께 기도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치 마소서 하고(30)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기도하니(31)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사 파리를 바로와 그 신하와 그 백성에게서 몰수이 떠나게 하시니라(32)그러나 바로가 이 때에도 마음을 완강케 하여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
강설날짜 2014-08-03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네 번째 재앙-파리 재앙


말씀:출애굽기 8:20-32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세 번째 재앙 곧 이 재앙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재앙인 파리 재앙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습니다(3:12; 5:1 등).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은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믿음의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타국에서 객이 되어 400년 동안 그들을 섬기다가 그들을 징치하시고 그곳에서 나오게 하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창세기 15장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이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기 백성 삼으시고, 그들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는 목적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 20절에도 보면 “내 백성을 내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기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출애굽의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출애굽 하여 나오는 백성들도 단지 자기 자신들의 구원이 목표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최종의 목표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출애굽의 과정 속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당장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자신의 행복, 자신의 만족이 압제에서 벗어나는 목표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이 제자리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 크고 절실한 문제는 섬길 자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 한 우리 인생은 마땅히 섬겨야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피조물을 섬기고, 돈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마땅히 섬겨야 할 분을 섬기고 그분의 지시를 따라 살아야 하는데 이것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이 모두가 신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 배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8-19절을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눈물로 호소하기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신은 배라고 합니다. 곧 자기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 자기 욕망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의 노예로 사는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자기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이 바르게 설정이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자기 구원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표인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 산에서 나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말할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에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을 때 이방민족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이를 잘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을 위한 섬김인지를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면 이것저것을 주신다는 것 때문에 섬기게 되면 결국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반려 동물을 키우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정성을 다합니까?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꾸미는데 한 달에 수십 만원씩 투자합니다. 반려 동물을 자식처럼 끼고 삽니다. 반려 동물에게 하는 것의 절반이라도 자기 부모에게 하였다면 효자 났다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 것은 반려 동물을 섬기기 위하여서 그렇게 합니까? 결코 아니지요. 그것은 결국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하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그 대상을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유기견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서 마땅히 섬겨야 할 줄로 알고 섬기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의 기쁨을 위하여, 나의 만족을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까? 내가 이렇게 섬겨주어야 나에게 구원을 주고, 나에게 이런저런 축복들을 주기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주님을 제대로 섬긴다고 말할 수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기 위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기쁨과 나의 만족을 위해서 섬깁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서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일조 안하고, 주일성수 안하면 그보다 더 큰 손해가 날까봐 겁이 나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도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마치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호랑이가 예뻐서 떡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떡을 주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제사들이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옛날에 제가 읽은 동화 중에 뱀에게 처녀를 제물로 받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처녀를 뱀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섬김은 결국 자기 자신의 작은 부분을 내어줌으로서 자기를 지키고자 하는 것이지 참으로 섬기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러한 하나님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이 교회를 나간다,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서 항상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종교를 하나쯤은 가지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하나쯤 가져도 된다는 말은 자기 위로나 어려울 때 의지할 힘이 되는 것이니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에게 잘 보여서 재앙이 물러가면 그것도 괜찮은 장사라는 것입니다. 십일조 바치고 나의 재산이 보호된다는 확실한 보장만 된다면 십일조 정도 쯤이야 못하겠습니까? 내 목숨이 보존된다는데 그래 떡 한 덩이 호랑이에게 못 던져주겠습니까?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바로 이런 식의 하나님 섬김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모세가 바로에게 네 번째 재앙을 내립니다. 20-23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물로 나올 때에 그에게 이르시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의 거하는 땅에도 그러하리라”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이 세상 중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재앙부터 애굽과 이스라엘 지역이 구별이 됩니다.

 

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애굽 온 땅에 파리 떼가 가득하여 땅이 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재앙에서 파리 떼는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 정도가 아니라 세 번째 재앙의 이처럼 사람이나 짐승의 피까지 빨아먹는 그러한 곤충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파리 떼가 바로의 궁과 신하의 집과 온 애굽 땅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로인하여 애굽 땅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재앙부터는 하나님께서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재앙까지는 구별시켰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재앙까지는 애굽과 이스라엘에게 함께 재앙이 닥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네 번째 재앙부터는 재앙을 받는 쪽과 받지 않는 쪽으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여호와가 온 세상 중의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바로 왕이 더욱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참으로 모세와 아론의 하나님이 참 능력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 파리 재앙을 보고서 자신이 괴로울 뿐만 아니라 고센 지역에는 이 파리 재앙이 없는 것을 보고 여호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항복을 합니다. 그러면서 뭐라고 합니까? 25절을 보면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단지 제사만 지내면 되지 않느냐. 그러니 삼일 길을 가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제사만 지내라는 것입니다. 삶의 원리, 삶의 방향, 삶의 가치관은 여전히 애굽식으로 가지고 있으면서 제사만 지내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의 주장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허용하지만 애굽을 떠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로의 주장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주장이 아닙니까? 내가 이 세상의 원리와 방법을 따라 살아가는데 일주일에 한번 예배드리고, 헌금을 할 테니 그것으로 족한 줄 알라고 하는 식의 신앙이 된다면 바로의 제안과 우리의 신앙생활이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단지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도움이 되기 위하여, 또는 도움은 안 되더라도 손해만 오지 않게 된다면 하루 정도 예배 드려주겠다는 생각이 바로 바로의 제안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왔습니까? 십일조 떼어 먹었더니 얼마나 손해가 났으며, 주일을 빼 먹었다가 얼마나 혼이 났는지 이런 식의 설교와 간증을 얼마나 많이 듣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예배를 드림이 감사와 기쁨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치루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배는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이 단지 이 땅에서 발붙이고 잘 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면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바로의 제안에 대해 모세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거절합니다. 어떻게 거절합니까? 26-27절을 보면 “모세가 가로되 그리함은 불가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 대로 하려하나이다”고 했습니다. 모세는 바로에게 그것은 불가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불가한지를 알아듣도록 설명합니다. 우리가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는데 그러면 애굽인들이 그러한 제사를 가증히 여기기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여 돌로 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애굽인들이 신을 섬기는데 짐승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 황소는 아피스에게 구별되어 있고, 암소는 이시스에게, 수양은 아몬에게, 그리고 다른 것들도 다른 신들에게 구별되어 있기에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는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마치 모슬렘 사원에서 돼지를 잡는 것이나 힌두교 신전에서 소를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기원전 5세기 경에 애굽 지역에 살던 유대인들이 희생 제사를 지내다가 애굽 사람들에 의해 학살된 사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페르시아가 애굽을 공격할 때 애굽인들이 섬기는 짐승들을 페르시아 군대 앞에 두고서 전쟁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애굽의 궁사들이 활을 쏘지 못하여 전쟁에서 지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모세는 애굽인들 앞에서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릴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바로가 모세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뭐라고 합니까? 28절을 보면 “바로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희생을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그런즉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삼일 길을 가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삼일 길을 가야 시내산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시내산에서 나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출 3:12).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바로가 뭐라고 합니까?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타협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내산까지는 가지 말고 곧 애굽은 떠나지 말고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당히 바로와 타협하며 하나님을 섬길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를 믿어도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청은 우리 주변 사람들의 요청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닙니까? 바로의 소리가 곧 우리 안에서 울리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주일 공예배 한번만 가면되지 뭘 오후예배와 수요기도회까지 가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헌금도 형편에 따라 적당히 하면 되지 힘에 지나도록 해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 가면서 저 집사가 저 정도 헌금하고 봉사하니 나는 이 정도만 하면 되겠지 하며 너무 멀리는 가지말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 제사를 드리러 가기는 가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하는 이 소리가 바로의 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안의 소리인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있어서도 적당히 거래하고 적당히 도장 찍고 가듯이 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행태를 하나님께서는 가증이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는 이사야 선지자가 고발하고 있듯이 소를 잡는 것이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양으로 제사함이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고,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함이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66:3-4절을 보면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제사가 어떤 제사여야 하며, 우리의 예배가 어떤 예배여야 하는 것입니까? 신명기 6:4-5절을 보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요구하듯이 멀리 가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예배하는 것이 곧 자신의 기쁨과 자신의 불행을 방지하는 그런 액땜식 예배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르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배하는 자가 바르게 예배하는 자입니까? 요한복음 4:23-24절을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과 나눈 대화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여인은 예배의 장소를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장소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이 말씀을 살펴봤습니다만 신령과 진정으로라는 말은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구약의 핵심을 십자가로 드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과 진리로 드린 예배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란 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상태에서 소와 양을 잡고, 십일조가 아니라 십의 십조를 드린다고 한들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란 바로 예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신 그분과의 사귐이 우리에게도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온전한 제사를 드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의 부르심을 입은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 바로의 말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려오는 예배를 방해하는 사단의 소리로 알고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귐을 통하여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욱 친밀하여지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너무 멀리 가지 말라고, 너무 깊이 빠지지 말라고 말리는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멀리 가셔서 참된 예배를 이루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여호와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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