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445
  • 어제방문자 : 
    1,006
  • 전체방문자 : 
    1,390,469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23:10-13
성경본문내용 (10)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11)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 할지니라(12)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13)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지니라
강설날짜 2015-04-12

2015년 출애굽기 공부


언약법전(7)-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규례


말씀:출애굽기 23:10-13

 

오늘 말씀은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규례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안식에 대하여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안식년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의 순서상으로 보면 안식일이 먼저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안식일을 살펴보고 그 다음에 안식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까? 최초의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7일째 하나님께서는 안식을 하시면서 이 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2:1-3절을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안식이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깨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2: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을 받아 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안식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혹의 근원이 무엇이었습니까? ‘너도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기 3:5절에 보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단으로부터 이 유혹을 받고 난 후에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였습니다(창 3:6).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와가 이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은 다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자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로 우리 인간들은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결국은 죽음으로 끝이 나야 하는 인생입니다. 창세기 3:17-19절을 보면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인간은 종신토록 수고하고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선악과를 따먹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우리 인생입니다. 이런 우리 인생에게 안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에서 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20:8-1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제4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율법에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 어떻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인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창조와 구원이 사람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안식일 날 일하지 아니함을 통하여 이와 같은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범죄 이후 안식일 지킴의 참 뜻입니다. 집안의 종이나 짐승조차 한숨 돌리게 하는 것이 안식일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창조주가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참된 안식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육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칠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고 합니다. 안식일에 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게 합니다. 이렇게 주인이 쉬어야 소와 나귀가 쉽니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게 됩니다. 나그네란 떠돌이 고용인들 입니다. 이들이 주인의 쉼을 통하여 숨을 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安息)이란 말 자체가 편안한 숨입니다. 평안하게 숨을 한번 쉬는 것이 안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안식이 왜 없다고 하였습니까? 선악과를 따 먹고 나서 인간이 신이 되려고 하니 쉼이 없는 것입니다. 신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전지전능합니다. 이런 신을 따라 잡으려면 어떻게 쉴 수가 있겠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주여 지금 사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내 안에 사는 분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나 소원이 없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안식에 들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이렇게 구하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교회에 와서도 안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목사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이용하여 더욱 헌신을 요구합니다. 복을 받으려면 더욱더 교회에 충성 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곧 충성 경쟁을 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 11:28). 그런데 교회에 오니 더 무거운 짐을 지워줍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열심히 충성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해서 입니까? 자신의 욕망 때문입니까? 고린도전서 9:24-25절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 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는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위하여 달려야 하는데 더욱 열심을 내라고 독촉하는 구절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바로 앞의 23절 말씀을 보면 복음에 참여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9:23절에 보면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복음에 참여한다는 것은 세상의 성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분별하며 목표를 똑 바로 보고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질서를 전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신 됨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십자가로 가는 길은 자신이 죽기 위하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자신의 신화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런 표적도 능력도 없이 비참하게 저주받아 죽은 십자가의 길로 가고 있는지 자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달려가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이나 자신의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하여 어제도 오늘도 쉼 없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하루 쉬는 안식일마저 중노동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 인생이 어떻게 안식년을 쉴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안식년에 관한 규례를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너는 육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너의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육년 동안 농사를 짓고 칠 년째는 땅을 묵혀두라고 합니다. 그리고 포도원이나 감람원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경제 원리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들과 짐승들이 먹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가꾸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나오는 열매들은 누가 먹을 수 있습니까? 가난한 자들과 짐승들 입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셔서 가나안에 들여 놓으신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짐승들까지 돌보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안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안식일과 안식년만이 아니라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후에는 희년이 있습니다. 레위기 25:8-12절을 보면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년이 일곱번인즉 안식년 일곱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찌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희년은 모든 것들이 다 회복되도록 합니다. 종으로 팔린 자도 돌아옵니다. 땅이 팔린 것도 원 주인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참된 자유과 기쁨과 안식이 주어지는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안식을 제대로 지켰습니까? 지키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였지만 율법의 문자만 보았지 그 뜻을 몰랐습니다. 안식년은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한꺼번에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 땅이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안식년을 지키자는 결의는 하였는데 정말 지켰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안식을 완성하실 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이사야 61:1-3절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사 61:1-3). 누가복음 4:17-1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읽으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7-19).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61장을 읽으셨는데 은혜의 해까지만 읽으십니다. 보복의 날은 그대로 두시고서 이 말씀이 오늘날 너희에게 이루어졌다고 하십니다(눅 4:21). 그러자 사람들이 네가 요셉의 아들인데 무슨 수로 이 말씀을 이루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눅 4:22-30). 참된 안식을 주시려고 오신 분을 죽이려고 하고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스스로의 행위로 안식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킨다고 하여도 그 결과는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신 예수님을 배척한 결과만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안식이란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선물로 주셔야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안식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시는 것입니까? 이사야 61장의 예언을 예수님께서 친히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창조에서 깨어진 안식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 다 이루었다는 증거가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는 안식을 맛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날 동안에는 아주 부분적으로 또한 순간적으로 맛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 하는 시간에 말씀과 찬양과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안식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영원한 안식을 사모합니다.

 

히브리서 4:1-12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안식이란 오직 선물로 주어집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의 모형입니다. 참된 안식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 안식을 맛 본 자는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며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기 위해 힘쓰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힘든 것은 시편 90편 말씀대로 일평생이 하나님의 진노 중에 지나가는 수고와 슬픔뿐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90편을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간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 주의 행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저희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사 우리 손의 행사를 우리에게 견고케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케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보면 이 땅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다 고통의 숨결입니다. 이런 인생들에게 참된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안식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이런 인생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보면 “내가 네게 이른 모든 일을 삼가 지키고 다른 신들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네 입에서 들리게도 말찌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안식일과 안식년을 삼가 지킬 것을 명합니다. 다른 신의 이름은 부르지도 말며 그 입에서 들리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신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삼가 지키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참된 안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798 [이사야 46장] 이 일을 기억하라 file 사 46:1-13 고영윤 2018-04-08 394
» [출애굽기 23장] 언약법전(7)-안식일과 안식년에 관한 규례 file 출 23:10-13 손재호 2015-04-12 1167
796 [마가복음 10장] 세번째 죽음과 부활 가르치신 예수 file 막 10:32-45 손재호 2016-06-26 1504
795 [출애굽기20장] 저주와 축복 출 20:1-6 손재호 3482
794 [시편 22편]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 시편 22편 1-3절 손재호 4891
793 [시편 84편] 하나님 집 문지기라도 시편 84편 1-12 손재호 5360
792 [하박국3장] 난 여호와를 인하여 하박국 3:17-19 손재호 3942
791 [호세아3장]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호세아 3:1-5 손재호 3665
790 [시편 16편] 나의 보호자 시편 16:1-11 손재호 3915
789 [시편 17편] 나는 주의 형상으로 시편 17:1-15 손재호 3907
788 [시편 18편]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1-2 손재호 4904
787 [역대상28장] 하나님을 알고 섬기라 역대상 28:9-10 손재호 4320
786 [시편 121편] 나의 도움이 시편 121:1-8 손재호 4176
785 [시편 117편] 찬양할 이유! 시편 117편 손재호 4520
784 [요한복음14장] 사랑한다는 것은 요한복음 14:21 손재호 2814
783 [로마서5장]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 손재호 3321
782 [로마서5장] 영광을 누리자! 로마서 5:2 손재호 2816
781 [로마서 5장] 환난을 누리자 로마서 5:3-4 손재호 3329
780 [로마서5장] 사랑의 확증 로마서 5:8 손재호 3385
779 [로마서 5장] 더욱더 로마서 5:9-10 손재호 283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