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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5:21-34
성경본문내용 (21)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 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22)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23)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24)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25)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26)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29)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30)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31)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32)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33)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34)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강설날짜 2016-01-24

2016년 마가복음 공부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

 
말씀:마가복음 5:21-34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혈루증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회당장 야이로가 자기의 죽어가는 딸을 살려 달라고 간구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그의 죽어가는 딸을 살려 주시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을 고쳐 주신 사건을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려 주시는 과정 속에서 이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사건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땅에서 더러운 군대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시는 사건을 살펴봤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거라사인의 땅에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지방에서 떠나기를 간구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자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큰 무리에 에워싸여 있게 되었습니다. 22-23절을 보면 그때 야이로라 불리우는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라고 하며 많이 간구했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면 의사를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회당장 야이로는 자기의 딸이 죽어가고 있는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의사를 찾아가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행동입니다.

 

그러면 그가 왜 의사를 찾아가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의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간구했을까요? 이 회당장은 가버나움 회당의 회당장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회당장 야이로가 과거에 예수님을 만나 보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있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어가는 자기 딸을 살려달라고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 간청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갖고 있던 그 믿음은 예수님이 보실 때에는 참으로 부족하고 미미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오늘 본문에서 능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향하시는 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고생하던 한 여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히 있어진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기 위해서 그의 집으로 가는 중에 마가가 이 사건을 기술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시려고 하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이 온전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9장에 보면 마태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온 시점을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에 관해 질문한 것에 대해 대답하고 계시는 동안에 있게 된 일로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태복음 9:14-17절을 보면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9: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마가복음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계신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9:18절에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라고 했을 때 그 때는 어느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를 듣고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시다가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자와 말씀을 나누실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로 인해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점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그의 딸이 죽었으므로 더 이상 예수님께 수고를 끼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께 자기 딸이 금방 죽었음을 알리면서 어서 자기의 집으로 오셔서 죽은 자기 딸의 몸에 손을 얹어주시기만 하면 자기 딸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면서 재차 자기 딸에게로 가줄 것을 간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9장에서는 오늘 마가복음에서 말하는 내용이 생략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보면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간구를 듣고 그와 함께 그의 딸이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큰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고는 그 뒤를 좇아갔습니다. 25-26절에 보면 그 무리 중에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참으로 많은 의원을 찾아 다녔습니다. 이것은 그 여자가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겪었는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여자가 앓고 있는 혈루증은 곧 유출증으로서 이 병에 걸리면 구약의 법에 의하면 부정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추방을 당했습니다.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그 접촉한 사람도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해 동네 밖에서 살게 하였습니다(레 15:25-30). 그런 까닭에 이 여인은 성전에도 못 나가고 회당에도 못 나가고 다른 어떤 종교 집회에도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여자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가운데 많은 의원을 찾아다니느라 있던 재산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어도 아무 효험을 보지를 못하고 병의 상태는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하여졌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병원을 찾아 나서고 의원에게 기대해 볼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는 혈루증으로 인해 이제 아무 소망 없이 죽을 날을 기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27절을 보면 그러던 차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쳐 주시고, 더러운 군대 귀신들린 자도 고쳐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이 여자에게 마지막 한가닥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에 예수님을 의지해 보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무리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혈루증 앓는 여자는 자기의 처지가 사람들 앞에 드러낼 수가 없으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예수님께 접근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여자는 혈루증으로 인해 예수님에게 자신을 드러내 놓고 떳떳이 나서서 자기 병을 고쳐달라고 간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 밀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쉽게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질 수만 있으면 자기 병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 뒤로 와서 몰래 그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다’고 하는 것은 마태복음 9:20절에 기록된 대로 겉옷가 곧 겉옷 네 귀에 달린 술을 만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겉옷가에 그냥 손을 대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의 의미로 보면 겉옷가를 꽉 붙잡았다는 말입니다. 헬라어 원어로 보면 ‘ήψατο’(에파토)인데 영어로 보면 ‘to fasten’입니다. 그 뜻은 ‘꽉 붙잡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예수님의 겉옷가를 손으로 한 번 슬쩍 댄 것이 아니라 꽉 붙잡았다가 놓은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28절을 보면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가를 만지기만 하여도 구원을 얻겠다는 믿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가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겉옷가만 만져도 자기의 병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는 그러한 혈루증 여인의 그 마음의 상태를 ‘믿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여자가 예수님께서 자기 병을 고쳐주실 분으로 알았는데 어떠한 분으로서 그런 능력을 행하시는가 할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신 분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혈루증 앓는 이 여자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보실 때 아주 미미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이 ‘죄’의 문제를 다루고 계심을 알고 있는 것으로서가 아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신 이적 사건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9절을 보면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가에 손을 대었을 때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자기의 병이 나았음을 깨달았습니다. 3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곧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시고 돌아서서 무리들을 둘러보시며 자기 옷에 손을 댄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31절을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질문의 의중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 무리가 이렇게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면서도 어째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으냐 물으십니까?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선생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인줄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밀려서 자기 옷에 손을 대었음을 가지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겉옷가라도 만지면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그 믿음을 가지고 자기 옷에 손댄 여자가 있음을 아시고 그 사람을 찾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32절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옷에 손을 댄 여자를 보려고 무리를 둘러보셨다고 하셨습니다.

 

33절을 보면 혈루증에서 고침을 받은 여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를 찾으시자 두려워 떨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자기가 손을 대었음을 고하면서 그렇게 하면 자기의 혈루증이 나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그 사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무엇을 선포하셨습니까? 34절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자기 옷자락을 잡은 여인의 믿음을 축복해 주시며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인은 혈루증을 고침 받은 것뿐만 아니라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은혜를 덧입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혈루증 앓던 여자가 자신의 겉옷가에 손을 대었을 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라고 선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로, 예수님의 겉옷가라도 만지면 낫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서 예수님의 겉옷가를 만져 혈루증에서 고침을 받은 여자를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안한 마음으로 있게 해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혈루증 앓던 여자는 예수님의 겉옷가라도 만지면 낫겠다고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율법을 뛰어 넘어서 사람들 속에 뛰어 들어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율법으로 인해서 사람들 틈에 끼여서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겉옷가에 손을 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찾으심으로 자기가 한 행동이 마음에 걸려 두려움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여인의 마음 상태를 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지금 어떤 마음의 상태에 놓여있는 것까지도 아시고 그 마음에 동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여자가 마음에 거리낌을 가지고 살지 않도록 마음에 자유함을 주시고자 공개적으로 그녀의 믿음을 드러내시고 죄사함과 구원을 선포하시면서 평안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혈루증 앓던 여자는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서 예수님의 겉옷가라도 만지면 낫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졌겠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여자의 생각까지도 받아들이셔서 ‘믿음’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에게 혈루증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몸이 병에서 자유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마음과 영혼도 자유함과 평안을 함께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셨다는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쁨과 즐거움으로 누려야 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와 자신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삼고자 하셨습니다.

 

둘째로, 혈루증 앓던 여자가 예수님에 대해 갖고 있던 믿음을 보강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병행구절인 마태복음 9:22절에 보면 마태는 혈루증 앓던 여자에 대한 예수님의 은혜로운 선언을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면 혈루증 앓던 여자의 병과 그 병으로부터의 건강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 여자가 지닌 ‘믿음’과 ‘구원’만을 언급하시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이것은 함축적인 기록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기록하게 하신 데에는 의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혈루증 앓던 여자의 병만 고쳐주시고 만다고 하면 여자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단지 이적 행하는 자로만 그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병으로부터 고쳐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 그 이상의 믿음은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혈루증 앓던 여자의 병을 고쳐주신 것은 그 여자가 자신의 병을 고쳐주는 능력을 지닌 분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가상히 여기셔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여자의 혈루증 앓는 병을 고쳐주시는 이적을 통해서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참되게 인식시켜 그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 주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이 앓는 모든 병은 죄의 형벌로서 있게 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여자가 앓고 있던 혈루증이란 병의 근원인 죄 문제를 다루셨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병에서 놓임을 받았을지라도 죄에서 자유하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혈루증 앓던 여자가 예수님이 어떠한 분으로서의 그리스도이신지에 대한 눈이 떠졌을 때, 곧 무엇 때문에 자기의 병을 고쳐주시는 일을 하셨는지 그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에 대한 믿음을 가졌을 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선언하셔서 혈루증 앓던 여자가 병으로서만이 아니라 죄에서 참 자유 하여 하나님과 화목한 평안을 소유하였음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선언이 있자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마 9:22). 예수님에게서 병고침을 받고 죄 문제를 해결 받은 여자의 장래는 이제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 여자를 구원하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이 선언은 예수님 주위에 있는 제자들과 몰려든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다시 보게 하는 곧 예수님께 대한 생각을 새롭게 갖게 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특별히 야이로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게 되었음을 인하여 예수님께 나아와 자기 딸을 살려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응하시고 함께 집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과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집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자기 딸이 방금 전에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집에서 온 사람들이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절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야이로에게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큰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자기 딸의 몸에 손을 얹으면 살겠다고 하는 믿음을 가졌으나 혈루증 앓던 여자는 예수님의 겉옷가라도 만지면 낫겠다고 하는 믿음을 가진 것을 보면서, 그리고 그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능력을 나타내시고 여자의 믿음을 보강시켜 주시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회당장 야이로에게 온 사람들이 그의 딸이 죽었음을 알려주면서 이제 그만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을 예수님께서 듣고서 회당장 야이로에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고 말씀하신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이로는 예수님께서 마침내 자신의 죽은 딸을 살리신 능력을 보면서 생명의 주가 되신 예수님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의 생각은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로 이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죽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살리시는 이 일을 통해서 야이로가 가진 믿음을 구원의 생명을 주시는 믿음이 되도록 하시는 섭리를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쳐주시는 이적을 행하신 것은 혈루증 앓는 여인이 갖고 있는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회당장 야이로가 가지고 있던 믿음을 새롭게 해 주어서 그 믿음을 강화시켜 주시키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혈루증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시고 구원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단순히 병 고치는 능력 많으신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혈루증 여인이 누렸던 그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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