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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막 8:14-21
성경본문내용 (14)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15)예수께서 경계하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16)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17)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18)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19)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20)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21)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강설날짜 2016-04-10

2016년 마가복음 공부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마가복음 8:14-21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지난 시간에 살펴본 8:1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저희를 떠나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가는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보면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 밖에 저희에게 없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는 중에 제자들이 떡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그들에게는 떡이 한 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이 ‘떡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급히 떠나오느라 깜박 잊어버린 것을 말할까요? 이 말씀은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라고 했을 때 여기서 ‘잊었다’라고 하는 동사는 헬라어로 보면 ‘ejpilanqavnomai’(에필란다노마이)입니다. 이 동사는 70인 역에서 주로 ‘의도적으로 무시하다’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마가복음에서는 이곳에서만 사용되는데 아마도 70인 역에서 사용된 뜻으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70인 역의 번역에 따르면 제자들이 의도적으로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무슨 의도로 떡을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요? 22절에 보면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 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볼 때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간 곳이 이방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인 벳새다였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곳에서 또 하나의 칠병이어의 표적이 발생하는 것을 막고자 의도적으로 떡을 가지고 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새 출애굽의 사역에 이방인들이 포함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방 지역에서 새 출애굽의 표적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아에 떡을 가지고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런 의도를 파악하시고 “경계하사 가라사대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누룩’은 바리새인과 헤롯의 교훈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쿰란 문헌에서처럼 완악한 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1QS 5:4-5).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너희 마음이 둔하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둔하다’라는 말은 ‘마음이 완악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여기서 완악한 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이런 해석을 더욱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과 헤롯의 완악한 마음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의 경우에는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군사적인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들이 군사적인 표적을 구하는 행동의 배후에는 그들의 완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즉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이방인들을 무찌르는 군사적 영웅으로서 유대민족을 이방으로부터 군사적으로 구원하는 자이어야만 한다고 하는 고정관념이 있었습니다. 이 고정관념 때문에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많은 표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완악한 마음에 사로잡혀 또다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군사적인 표적을 구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누룩입니다.

 

그러면 헤롯의 누룩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헤롯의 고정관념을 가리킬 것입니다. 헤롯의 메시아 관은 바리새인들의 메시아 관과 동일하였을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바리새인들은 그런 메시아를 기다렸고, 헤롯은 그러한 메시아를 두려워했다는 점입니다. 서로의 공통점이 없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이 공통적으로 가진 메시아 관은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빠져 있던 군사적인 메시아 관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방인들이 새 출애굽에 참여하는 것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떡을 가져오지 않은 행위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언급하셨을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새 출애굽의 기대는 군사적 메시아 관과 밀접한 연관을 가집니다. 군사적 메시아는 이방인을 군사적으로 무찌르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사적 메시아는 이방인들을 위한 메시아가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한 메시아인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새 출애굽에 참여하는 것을 제자들이 꺼려하는 이유는 그들도 바로 바리새인들과 헤롯과 같이 군사적인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6절을 보면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의 의도를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누룩이라고 하니까 떡을 연상하였습니다. 그들은 떡이 하나 밖에 없는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떡을 가지고 오지 않은 그들의 의도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17-18절을 보면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나 헤롯처럼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둔하다’라는 동사는 헬라어로 보면 ‘provi>mo"’(포로오)라는 동사인데 ‘돌같이 되다’, ‘굳어지다’, ‘어둡게 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곧 그들의 마음이 완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 관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이 가지고 있는 메시아 관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께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지적을 당해도 깨닫지를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오병이어 표적과 칠병이어의 표적을 언급하셨습니다. 19-21절을 보면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열 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가로되 일곱이니이다. 가라사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라고 물으셨습니다(19). 이에 제자들은 “열 둘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 표적에서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였음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병이어 표적에서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병이어 표적을 공부할 때 살펴봤습니다만 ‘열둘’은 분명히 의미 있는 숫자였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그 숫자를 기억하도록 질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번에 살펴 본대로 열둘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또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20). 그때 제자들은 “일곱이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곱’이라는 숫자를 기억하도록 제자들에게 이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우리가 칠병이어 표적에서 살펴 본대로 ‘일곱’은 오병이어 표적에서의 ‘열둘’과 대조되어 이방인을 가리키는 숫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 출애굽 표적은 이방인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새 출애굽에는 이방인들도 함께 참여합니다. 이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칠병이어 표적에서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임을 기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가졌던 군사적인 메시아 관은 이방인을 배제하는 새 출애굽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새 출애굽에 이방인이 포함됨을 지적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새 출애굽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그 새 출애굽의 성격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알아도 어떤 메시아인지 모르면 예수님을 통해서 발생하는 새 출애굽의 성격도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다면 제자들처럼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교회는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지만 그 메시아가 어떤 메시아인지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메시아가 어떤 메시아인지 모르면 그 메시아의 고백과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말씀에 기초해서 예수님이 어떤 메시아인지를 바로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 말씀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이 고난의 메시아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 받는 메시아를 통해서 발생하는 새 출애굽이 어떤 것인지도 깨달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메시아를 바로 믿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새 출애굽에 이방인들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는 메시아로서 이방인들도 이 새 출애굽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우리는 잘못된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회가 어떤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어떤 메시아로 고백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 자신들도 유대인들과 같은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시는 우리 주님의 책망의 음성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메시아이십니다. 구약성경은 분명히 고난 받는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3-6절을 보면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는 메시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군사적인 메시아의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교회가 군사적인 힘이나 경제력이나 정치적인 힘을 통해서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고 이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에 오염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메시아 관에 빠져서 경제 대통령을 뽑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군사적인 메시아 관에 빠져서 정치적인 힘을 과시하는 단체를 만들어서 이익집단처럼 행동하고자 하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길을 따르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들을 잘 돌아 봄으로 우리 교회와 우리 자신들이 예수님을 성경이 말하는 고난 받는 메시아로 고백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 속에 있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제거해 나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믿고 그 길을 따라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의 역사가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오는 새 출애굽은 이방인을 포함한 출애굽입니다. 그러면 이방인이란 누구입니까? 유대인들에게 이방인이란 유대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 이방인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 이방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방인의 메시아도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새 출애굽은 온 세상 만민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메시아 관을 가질 때 마음을 열고 온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기독교인들만 누리는 새 출애굽의 환상에 젖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환상은 오늘날 정치적인 메시아 관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구원의 공동체인 교회가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잊고 세상에 속하여 이익 집단이나 정치 집단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정치적 메시아 관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 대통령을 배출하여 정치적으로 교회를 후원하게 하면 교회가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는 것도 정치적 메시아 관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세상에서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벌어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가지면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되리라고 여기는 것도 잘못된 메시아 관 때문입니다. 교단들이 연합하여 정치적 이익 단체를 만들어 교회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목소리를 내며 정치적인 힘을 과시하면 교회가 든든히 서 가리라는 생각도 정치적 메시아 관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이처럼 왜곡된 메시아 관에 빠진 교회는 또한 왜곡된 새 출애굽 사상을 가지게 됩니다. 이방인이 참여하는 열린 새 출애굽이 아니라 유대인만을 위한 닫힌 새 출애굽을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가 온 세상을 위해 섬기는 종처럼 존재하는 구원의 공동체임을 망각하게 됩니다. 곧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배타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면 결국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배척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기업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며 배척을 당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교회를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이렇게 대접을 받고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메시아 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 군사적인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잘못된 메시아 관으로 인해서 성공주의 목회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교회가 늘어나고 기독교인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메시아 관을 가지고 있는지, 바른 새 출애굽 사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늘 점검하며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의 수가 늘어날수록 교회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정치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는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들과 종교인들이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얼마나 교회를 이용합니까? 선거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목회자들도 얼마나 교회를 이용하고자 합니까? 교회의 힘을 이용하여 곧 교인의 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교권적 욕망을 채우고자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노래 부르지만 결국 자기 자신들의 정치적 유익만을 챙기고 결국에는 교회를 해치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교회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지 못하고 교회를 위해 존재하게 하며, 나아가 정권과 교권을 위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되면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버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리면 길에 버려져 밟히듯이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한 누룩을 제거하지 못하면 누룩이 결국 온 교회를 점령하여 변질시켜 버립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만인을 향해 열린 구원의 공동체로서 세상에 존재하지 못하고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맛 잃은 소금처럼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곧 고난 받는 메시아를 따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써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힘으로 세상과 대결하여 승리하려는 시도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욕되게 하며, 교회를 망치고, 온 세상을 향한 열린 구원의 문을 닫게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의미를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메시아 관을 소유하게 하시고, 새 출애굽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가 새 출애굽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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