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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호세아 3:1-5
2003년 특강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말씀:호세아3:1-5
요절:호세아3: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를 사랑하시나니 너는 또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성경은 하나님의 러브스토리입니다. 끊임없이 죄를 반복하며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성경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말씀이 바로 호세아서입니다. 호세아서는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은 음란한 고멜과 호세아의 결혼 비유를 통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숭배와 세속주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극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의 왕은 아하스의 아들 여로보암이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13번째 왕인 여로보암 2세를 말합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재위 기간 중 가장 오랜 기간인 41년을 통치했는데, 뛰어난 지도력과 통치력을 발휘하여 남쪽 유다를 제외하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모든 영토를 회복하는 업적을 남긴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경제는 안정되었고, 군사력도 아주 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부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가장 암울한 시대를 열었습니다. 열왕기하14:24절에는 여로보암 2세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안정과 물질적인 풍요, 그리고 사회적인 번영을 이루었지만 여로보암 1세 때처럼 금송아지와 바알을 숭배하는 등의 엄청난 영적인 타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을 음탕한 여인 고멜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영적 음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큰 죄악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셨습니다.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끈질기게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탕한 여인 고멜과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 아무리 매력이 많은 여인이라 할지라도 경건한 청년이 창기와 같이 음란한 여인에게 장가든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멜과 결혼했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은혜로 아들 딸 하나씩 낳고 잘 살았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사랑으로 인해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멜에게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큰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음란한 자신을 영접해 주고 사랑해 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며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잘 양육하며 살아야 마땅했습니다. 이것이 남편의 은혜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1b절을 보십시오. 고멜은 남편의 사랑을 받고 아들, 딸을 낳고 살만하자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을 하였습니다. 남편도, 자식도 다 버리고 정부를 좇아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과거 음란하고 더러운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더 이상 미련을 둘 필요가 있을까요? 다 끝난 것 아닙니까? 좀 모자라는 남자가 아니면 이런 여자를 용납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또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음부가 된 그 여인,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외간남자와 눈이 맞아 집 나간 여인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 할 수 있습니까? 이런 아내를 용서하고 받아 줄 수 있습니까? 돌로 쳐라, 내 쫓아라 하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고멜을, 음부된 고멜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음부된 고멜을 내치지 아니하시고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음부 고멜을 사랑하신 그 사랑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1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께서 저를 사랑하시나니” 여기서 음부 고멜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며 건포도 떡을 즐긴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의 명예와 물질과 권세와 쾌락을 더 사랑하던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다른 남자와 연애하여 가정을 버리고 떠난 음부 고멜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음부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멜과 같은 자신을 사랑해 주시고 아내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만 섬기며 살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만하게 되자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겼습니다. 다른 신은 가나안인들의 신인 바알을 말합니다. 또한 건포도 떡을 즐겼다는 것은 가나안의 방식대로 곧 세상의 방식대로 살고, 세상을 즐겼다는 것을 말합니다. ‘건포도 떡’은 가나안의 술 축제 때 가나안 신전에 봉합된 떡입니다. 이스라엘은 바알이 포도 수확을 주관한다고 믿고 건포도 떡을 제사상에 올리고, 그것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도 건포도 떡을 풍성하게 먹고 있는 가나안 사람들을 따라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가나안 사람들의 농경문화에 점점 종속되어 갔습니다.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백성들은 농경민인 가나안 사람들의 삶이 부러웠습니다. 자신들은 유목민으로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사람들을 보니 한곳에 정착해서 좋은 집을 짓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며 투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들의 삶과 문화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조금씩 맛보면서 이제까지 자신들의 삶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즐기는 단계에 까지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그들의 마음과 삶에서 하나님이 멀어져 갔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가나안 사람들의 방식대로 살아도 많은 소출을 얻고 풍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이 열매를 내는 분이 아니라 땅이 열매를 내게 하고, 땅은 바알의 지배를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사를 지을 때 만큼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보다 바알 하나님을 숭배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신앙이 좋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의 축복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더 가나안 식으로 살고 열심히 가나안의 신을 섬겼습니다. ‘건포도 떡을 즐겼다’ 이 한 말씀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문제가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세상의 어떤 풍요로운 삶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잘 사는 것과 신앙과는 별 상관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난하게 살 것 같아 보이기 때문에, 풍요를 추구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가나안의 방식 곧 세상의 방식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잘 살아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추종하는 대상의 종이 되고 맙니다. 돈을 추종하면 돈의 종이 되어 비참하게 됩니다. 정욕을 추종하면 정욕의 종이 되어 비참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는 초자연적인 것을 많이 체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초자연적인 것은 여호와께서 주시지만 현실적인 것은 현실적인 법칙에 따라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신앙을 처음 가질 때나 그 후에나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이원론적으로 구분해 버리면 신앙과 현실이 떨어져서 실제는 세상의 법칙을 따르게 되고,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가나안의 삶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가나안의 신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가나안의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남편을 버리고 외간 남자와 연애하여 집을 떠난 음부 고멜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바로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한 음부 고멜이 바로 이런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을 내치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내치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변함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를 사랑하시나니”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참으로 이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어떻게 이런 이스라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음부를 용서하고 다시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사랑을 받으며 섬김을 받으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만해 지자 하나님보다 세상의 다른 것을 더 의지하였습니다. 물질을 의지하고, 세상 권세를 더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기보다 건포도 떡을 즐기며 세상 방식대로 살기를 잘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살기보다 자기 열심과 노력으로 살고자 합니다. 지혜롭게 산다는 미명아래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안락과 평안과 부를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을 좇아 음부 고멜처럼 살아왔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고멜과 같은 우리를,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다시 아내로 맞아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찬양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떤 바람둥이를 따라 가출하여 정욕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게 살고 있는 고멜을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사왔습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오벨 반은 결국 은 30개를 말합니다. 출애굽기 21:32절에 의하면 은 30개는 성인 노예의 몸값입니다. 호세아는 대금을 마련하기 위해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속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원래 고멜은 자기 아내였습니다. 그런 아내를, 그것도 바람나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가출한 여인을 위해 거금을 마련해야 했을 때 얼마나 속이 터졌겠습니까? 그러나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은 30개를 구해서 고멜을 사왔습니다. 호세아가 누구에게 대금을 지불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고멜이 창녀가 되어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고, 아니면 신전에 들어가 신전 소속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호세아는 이런 고멜을 은30개로 몸값을 치루고 사왔습니다. 이제 고멜은 호세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호세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고멜은 호세아의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구원의 경제적인 개념이 나옵니다. 호세아가 댓가를 주고 호세아를 샀기 때문에 고멜은 과거의 노예의 주인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몸값을 지불했기 때문에 다시는 옛날 주인이 상관할 수도 없습니다. 고멜의 상태나 기분과는 상관없이 옛날 주인과는 관계가 끝났고, 이제는 오직 새 주인의 말만 들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을 사랑하시되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되 호세아가 경제적인 댓가를 지불하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죄값을 대신 지불하셔서 완전히 사랑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구원이 대하여 ‘구속되었다’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아주 비싼 댓가를 지불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얼마나 비싼 댓가를 지불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를 십자가에 희생시키시는 댓가를 지불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고멜과 같은 죄인들을 사랑하사 죄의 노예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희생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합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충만히 덧입어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들의 심령에 은혜를 주사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그 크고 놀라운 사랑이, 당신의 그 뜨거운 사랑이 우리들의 심령을 사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사랑 안에 거하며, 당신의 사랑에 감동되어, 오직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을 의지하며,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3절을 보십시오,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고멜을 사온 호세아는 고멜에게 근신기간을 갖도록 했습니다.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고멜에게는 근신기간이 필요합니다. 이제 좀 시간을 가지고 조용히 자신에 대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것이야말로 호세아를 바로 알고 호세아와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고멜은 이제까지 생각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는 본질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것을 중단하고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호세아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까지 본질적이지 않은 것으로 너무나도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그들은 왕 때문에 바빴고, 지도자들 때문에 바빴습니다. 회의하느라고 바빴고, 정책을 세운다고 바빴습니다. 수많은 종교 의식 때문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없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조용히 지내도록 하십니다. 이제는 왕도 없습니다. 장관들도 없습니다. 제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포로로 잡혀갔고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상과 에봇과 드라빔이라고 하는 것들은 점치는 기구들이었습니다. 변질된 종교 행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믿음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 노예가 되어서 이런 것들이 모두 다 없는 상태에서 지내다보니까 발견하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에게는 참 하나님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말씀 없이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후 광야 생활하면서 하나님이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것 같이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고 많은 장관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참된 목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너무나도 바쁘게 종교생활을 했고 참된 지도자가 아닌 자들을 너무 많이 따라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에게 참 하나님이 필요하고, 참된 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생활이 너무 바쁜 것은 본질을 잃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혁되기 전에 정신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말씀공부, 소감모임, 요회 모임, 일대일, 리더 모임, 팀 모임, 소기도회, 캠퍼스 기도모임, 켐퍼스 심방 등등 정신없이 살았습니다. 마치 그런 행위가 없으면 신앙이 없는 것처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우리는 이 모든 행위들을 놓게 되었습니다. 지난 삼년 동안 이런 행위가 없이 살아왔습니다. 이 기간은 우리는 허비한 것 같고, 무의미한 시간같이 생각되기도 합니다.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일거리가 있으면 일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의 상태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 바쁜 목자생활 가운데서 참 하나님이 안계셨구나. 나의 신앙을 이끌어줄 참 목자가 필요 하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진정 믿고 의지하며 섬기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지나 않는지, 진정 내 속에 하나님이 있는지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말씀보다, 물질과 세상의 삶의 방식을 좇아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곧 본질적인 것보다 비본질적인 것 때문에 바쁘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 어떤 모습으로 서게 될지 생각해 봅시다. 아니 내가 죽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할지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참된 신앙을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상당히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고자 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 없이 살아온 자신, 본질보다 비본질적인 것을 좇아 바삐 살아온 자신을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 하나님이 없음을, 내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음을 발견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물질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의 괘락을 더 사랑한 자신을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여기서 돌이키는 것은 회개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어디서부터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진정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진정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 충만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이 망할 때의 모습과 너무 비슷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형식적으로 예배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로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비참한 노예생활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근신기간을 가지며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가나안의 방식대로 사는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사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돌아와야 합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시 시작하고자 할 때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승진의 기회를 잃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온전히 겸손하게 되었다면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부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더 아는 것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인생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런 인생이 진정 하나님 앞에서 복된 인생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깊이 돌아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건포도 떡을 즐기는 삶에서 돌이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가장 복된 인생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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