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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시편 117편

2003년 시편 특강
                      
                                                   찬양할 이유!

말씀:시편117편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시편에서 가장 긴 시와 가장 짧은 시가 각각 몇편인지 아십니까? 시편에서 가장 긴 시는 119편입니다. 무려 176절에 달합니다. 반면에 시편에서 가장 짧은 시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117편입니다. 117편은 단 두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시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는 것 입니다. 이 짧은 시 안에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의 모든 시가 이 안에 요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시편 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 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다 찬양해야 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시인은 어떤 하나님을 찬양합니까?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 시인은 이 세상의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모든 나라,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2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인은 한마디로 모든 나라, 모든 백성이 여호와를 찬양해야하는 이유는 우리를 향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고 진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이 크다는 말은 무엇을 말할까요? 인자하심이란 말은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헤쎄드”입니다. 헤쎄드는 구약 성경 중에 하나님의 성품을 기술하는 가장 중요한 어휘 중에 하나입니다. 이 어휘의 의미와 용례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합니다. “헤쎄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긍휼’, ‘친절’, 혹은 ‘사랑’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칠십인역에서는 ‘긍휼’이라는 뜻의 엘리오스로 번역하고 있고, 영역본에서는 ‘불변의 사랑’, 혹은 ‘계약적 사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개역 성경을 비롯한 한글 성경에서는 거의 모두 헤쎄드를 ‘인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헤쎄드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계약 개념을 염두에 두고 정의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하나님의 성품을 기술하는 어휘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구 사전을 통해서 살펴 볼 때 헤쎄드라는 말은 이 두 가지 용례가 다 성경의 문맥 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헤리스에 의하면 이 어휘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용례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용례가 다릅니다. 우선 사람들 사이의 용례를 살펴보면 윤리적인 구속력을 가진 친척, 주인, 동맹군, 친구, 통치자 등의 사이에서 헤쎄드가 베풀어집니다. 이 경우 헤쎄드란 값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어지는 것이며, 헤쎄드를 베푸는 사람은 강자나 부자이고, 그 수혜자는 반드시 약자로서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의 사람이기 때문에 헤쎄드는 전적으로 시혜자의 자유로운 선택으로부터 나옵니다. 예를 들면 아합에게 대패한 벤하닷이 “이스라엘 집의 왕들은 헤쎄드한 왕들이다.”(왕상20:31)고 말한 후 그에게 나아가 엎드려 목숨을 구걸합니다. 아합은 마땅히 죽였어야 할 벤하닷을 살려 줍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왕에게 헤쎄드라는 어휘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과부가 된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늙은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양했습니다. 이를 본 보아스는 “너의 베푼 헤쎄드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다”(룻3:10)고 말합니다. 개역 성경은 여기서 헤쎄드를 ‘인애’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사울의 자손 가운데 살아남은 자를 찾는데 이유는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헤쎄드를 베풀리라”(삼하9:1,3,7)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우 개역 성경에서는 헤쎄드를 ‘은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윗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도 그 아비 연고로 헤쎄드를 베풀겠다고 말합니다.(삼하10:2) 여기서 다윗이 요나단이나 하눈에게 헤쎄드를 베풀겠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형제의 사랑이나 친구의 우정에서 나온 친절이요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일찍이 다윗이 요나단과 맺은 계약이나 하눈이 그에게 베풀었던 헤쎄드에 대한 보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예에서 보듯이 헤쎄드는 부요한 강자가 무능한 노약자에게 베푼 친절과 사랑과 긍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헤쎄드라는 말은 한글 성경에서 두루 사용되는 ‘인자’라는 번역이 크게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사용되는 헤쎄드의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언약관계였던 만큼 헤쎄드는 언약적 헤쎄드라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헤쎄드는 계약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변함없는 사랑’, 곧 헤쎄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헤쎄드를 ‘계약적 사랑’(covenantal love)라고 번역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애굽기20:6절과 신명기5:10절은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선언하는 구절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신5:10) 이들은 다 같이 계약의 맥락에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그 죄를 삼사대까지 갚겠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헤쎄드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얼핏보면 헤쎄드가 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 같은 인상이 듭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은 하나님께서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했기 때문에 계약을 맺으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은 단순히 계약의 일면이 아니라 오히려 계약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의 징표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쎄드의 밑바탕에는하나님의 사랑이 깔려 있습니다.

   출애굽기34:6-7절에 보면 여호와는 자신을 가리켜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계약을 배반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의 범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염두에 두고 있는 표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계약 개념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헤쎄드에 짝이 되는 말로 부가된 에메트(진실)는 분명 헤쎄드의 의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열왕기상 3:6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윗이 성실하고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 행했으므로 그에게 헤쎄드를 베풀고, 그의 아들을 대신하여 왕좌에 앉게 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헤쎄드는 여호와께서 일찍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의 계약을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하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 성전을 짓고자 하는 다윗을 사랑하사 그에게 언약을 세워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이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린 때와 같지 않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7:8-13) 하나님은 이 언약대로 이루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의 헤쎄드는 그의 계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헤쎄드는 여호와의 언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심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헤쎄드는 이 영원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헤쎄드를 베풀지 못했을지라도 하나님은 헤쎄드를 베푸신 것입니다. 헤쎄드는 계약 개념을 포함하는 영원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 한글 성경에서 단순히 ‘인자’라고 번역한 것은 헤쎄드가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자’라고 번역하는 것보다 ‘사랑’, 혹은 ‘변함없는 사랑’, ‘한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으로 번역하는 것이 히브리어 헤쎄드의 의미를 잘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편117편은 여호와의 영원한 헤쎄드를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하는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 곧 여호와의 헤쎄드가 크기 때문입니다.

   시편 106편 1절; 107편 1절; 118편 1,2,29절 등 시편 곳곳에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영원한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감사하는 구절은 이렇게 시편 곳곳에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 가운데 여호와의 인자하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특히 시136편에 보면 후렴구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천지 창조, 출애굽, 가나안 정복과 정착 등을 주제 등으로 매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강강수월래나 쾌지나칭칭나네와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 가운데는 여호와의 헤쎄드를 이용하여 국민적인 노래를 부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국민이 헤쎄드를 이용하여 국민 노래를 불렀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헤쎄드를 뼈저리게 느끼고 감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를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면 하나님은 네 조상에게 명세한 그 언약을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언약을 배반하였습니다. 호세아서에 보면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서 하나님을 떠난 우상 숭배에 빠졌습니다. 곧 그들은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을 주겠다고 하는 바알을 연애하여 그를 섬기고 좇아 갔습니다. 곧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바알 곧 세상 방식대로 살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히 여기시는 우상숭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에 붙이셔서 징계하셨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과거 하나님을 섬길 때보다 더 가난하고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영원히 멸하셔야 마땅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에게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헤쎄드를 보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도 당신의 크고 놀라운 헤쎄드를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사 그에게 언약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잊고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까지 죽이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가증히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심판하셔야 했습니다. 그와 세운 언약을 파하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파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다윗을 멸하지 아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에게 한없는 헤쎄드를 베푸셨습니다. 그 나라를 견고케 해 주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죄를 범하였지만 그이 나라를 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마침내 그의 자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가장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배반한 자를, 언약을 파기한 자를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참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시인은 이 같은 하나님의 헤쎄드를 생각할 때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의 포로로 끌려갔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끝내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헤쎄드를 베푸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언약을 지키시는 사랑을 보이신 것입니다. 시인은 이 여호와의 헤쎄드를 경험하고 체험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헤쎄드의 사랑에 감동이 되어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 찬양할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이 이 헤쎄드의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크고 진실하심은 영원합니다. 여기서 진실하심이 영원하다는 말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헤쎄드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헤쎄드가 어떠합니까? 우리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이 어떠합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헤쎄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야 말로 우리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헤쎄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생각대로 살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자였습니다. 영원한 저주와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셨습니다. 그 귀한 보배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독생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헤쎄드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순간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세상의 썩어질 것을 좇아 살아갑니다. 호세아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세상의 부귀와 명예와 풍요와 안락한 삶을 위해 바알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세상의 방식을 좇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 인생들을 당장 심판하셔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우리 인생들을 위해 헤쎄드를 베푸십니다. 우리를 변함없이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당신의 사랑 가운데 거하게 하십니다. 당신을 섬기며 당신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헤쎄드가 아니면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한 시도 한 순간도 당신의 헤쎄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죄악된 자들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배은망덕한 자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자들입니까? 당신의 사랑을 배반하고 세상 정욕과 육신의 소욕을 좇아 살고자 합니까? 참으로 이 종은 당신의 헤쎄드가 아니면 벌써 멸망받을 자였습니다. 이 종을 향한 당신의 헤쎄드를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우리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돌이켜 보며 늘 감사와 찬송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인과 같이 날마다 주님의 헤쎄드를 체험하며,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늘 찬양하는 복된 삶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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