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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로마서 5:8

2003년 특강

                                                       사랑의 확증

말씀: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몇 년전 서점가에 베스트셀러였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라고 하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수잔 앤더슨이라고 하는 34살의 직장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의사의 오진으로 인해서 어느날 실명하게 됩니다. 장님이 됐습니다. 참 마음이 괴로웠지만은 1년 동안 치료받은 다음에, 그냥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직장에서 잘 받아주어서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됩니다. 버스를 타고 직장에 나갈 때 남편이 동행해 주었습니다. 그 남편은 군인이었는데 참 공교롭게도 남편의 직장과 아내의 직장은 정반대에 있었습니다. 그 남편은 일찍 출근해서 아내를 데려다 주고 그리고는 다시 자기직장으로 출근하였습니다. 이렇게 얼마동안을 했는데 언젠가 남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내가 늘 이렇게 할 수는 없구료. 어차피 당신은 언젠가라도 혼자 다녀야 되겠는데 오늘부터는 혼자 직장에 나가면 어떻겠소" 이때 그녀는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를 데려다 주는 것이 귀찮은 모양이죠. 지겨우시죠. 내가 살아 있는 게 이렇게 불편합니까" 짜증을 냈습니다. 남편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도와주마 했지만 아내는 이미 토라졌습니다. "아니라고 나 혼자 간다고." 그녀는 홀로 버스를 타고 직장에 나갔습니다. 이렇게 하루 나가고, 이틀 나가고, 보름동안을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버스운전사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주머니, 참 복이 많으시네요. 부럽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아니 제가 이런 시각장애자인데 뭐가 부러운가요"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버스운전사는 "아닙니다. 아주머니가 여기 버스에서 내려서 저 사무실에 들어갈 때까지 저 밖에서 잘 생긴 군인 남자가 당신을 매일같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들어갈 때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때에 이 부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뒤따라와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만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자신을 향한 남편의 사랑을 알았을 때 그녀는 너무 감격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임한 모든 환난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삶의 의욕이 생겼습니다. 너무 너무 행복했습니다. 남편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그녀의 인생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부모나 남편이나 친구나 누가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것이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은 어린아이의 건전한 정서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확신할 때 그 자녀는 올바르게 자랍니다. 배우자나 친구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인간의 성취에 놀라울 만큼 기여합니다. 아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힘든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어려움도 힘든 일도 능히 극복하며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 훨씬더 풍성한 복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화와 자유와 확신과 자존감을 가져다 주는 비결입니다.

   우리는 복음 안에 있는 자는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함을 배웠습니다. 왜냐하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룰 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아니합니다.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사랑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소망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될 때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환난을 만나게 됩니다. 이 크고 작은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나 문제도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어떤 환난과 어려움도 뛰어넘게 합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사랑은 참으로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크고 작은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증이 있을 때 우리의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낙망하지 않게 됩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은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역동적이게 만듭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은 우리의 인생을 승리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송명희 시인을 보십시오. 그는 인생의 질고 가운데서도 승리의 삶,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환난과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살게되었습니다. 헬렌 켈러나 레나 마리아를 보십시오. 이들은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같이 슬픔과 운명적인 인생을 살 수 밖에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상적인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아름답고 승리의 인생을 살았고 살고 있습니다. 이들이 역경과 환난과 고통과 운명을 극복하고 승리의 삶,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하나같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들의 인생을 변화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이들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일 이것이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승리의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고 했습니다.(5b) 성령은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으면 반드시 성령에 의해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속에 내주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후 성령이 행하는 독특한 사역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붓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에 의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로마서8:16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확신하는 것과 그 분의 사랑을 확신하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서, 성령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시키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해 그 분의 사랑을 입증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가장 확실한 예로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 만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 주는 것도 없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사랑의 본질은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2:20절에서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독생자를 주시는 사랑! 이 사랑은 참으로 크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사랑은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사랑! 이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사건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가 필요 없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그 선물이 그것을 주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대가를 요구하는지에 의해 결정됩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에게 있어서 대가가 크면 클 수록, 희생이 크면 클 수록 그 사랑이 큰 것입니다. 또한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의해 측량할 수 있습니다.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면 없을 수록, 그 사랑은 더 크고 위대한 것임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재어 볼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은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독생자는 가장 귀한 것입니다. 곧 자기 자신입니다. 독생자를 희생시킨 것 이것보다 더 큰 희생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보십시오. 우리는 형제를 위해서 돈 몇십만원, 몇 백만원도 내 놓지 못합니다. 더더욱 사랑하는 독자를 희생시킬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랑을 받는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을 만큼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희생,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까?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준 큰 희생을 치르신 대상인 우리는 어떤 존재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네 가지로 우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죄인들이었습니다. 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희생시킬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우리는 독생자를 희생시킬 만큼 값어치가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들입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우리가 의의 길에서 떠났고,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들을 위해, 아무 값어치도 없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셨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었습니다. 6b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는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준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 존재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신에게 반역한 경건치 않는 자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희생시키셨습니다. 이 어찌된 사랑입니까?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이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하였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온 마음과 성품과 힘과 뜻을 다해 사랑하고 섬겨야 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적대감을 품었습니다. 그 분의 권위에 대해 분개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원수된 자들을 마땅히 진멸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원수된 자들을 진멸하시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는 희생을 감당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 주신 사랑! 이것은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원수된 우리들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셨습니다. 원수된 자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찬양합니다. 넷째로, 우리는 연약한 자들이었습니다. 6a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능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는커녕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해야 마땅한 자들입니다. 세상에 죄인을 위해서, 원수를 위해서 죽을 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의인을 위해서 죽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선인을 위해서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해서, 자신에 반역한 원수를 위해서 죽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경건치 않는 자를 위해서,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아무 능력이 없는 연약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입증해 주셨습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이 사랑보다 더 확실한 사랑의 증표는 없습니다. 이 사랑은 변개할 수 없는 사랑이요, 의심할 수 없는 사랑이요, 흔들릴 수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이요, 경건치 않는 자요, 원수요, 연약한 자들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는 희생을 치루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분명 우리는 인생의 크고 작은 비극과 재난들로 인해 당혹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환난을 당할 때 힘들어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며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어떤 환난과 재난과 문제와 고통속에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환난’이라는 전후 문맥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환난은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그 아들의 죽음 안에서 우리를 위한 사랑을 입증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그 영이 주시는 선물에 의해 그 분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은 바 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는 역사 속에서, 주관적으로는 체험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그 사랑을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를 주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아들의 역사적 사역과 그 분의 영이 우리의 마음 속에 이루시는 현재의 사역을 통합시키는 것은 복음이 지닌 가장 유익하고 만족할 만한 특징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환난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가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굳게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굳게 서서 환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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