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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3 12:58

[로마서 5장] 더욱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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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로마서 5:9-10

2003년 로마서 특강
                                    더욱더(부제:구원에 대한 확신)
말씀:로마서5:9,10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갈등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대한 확신 문제입니다. 이렇게 죄악된 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비리비리한 자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의 삶을 볼 때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죄종적인 구원을 받았음을 논증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구원에 대한 확신!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최종적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많은 믿음의 선진들처럼 우리의 삶도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삶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 이것은 복음 안에 있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또다른 축복입니다. 오늘 바울의 논증을 통해 구원에 대한 확신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8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자신의 선언을 기초로해서 우리의 최종적인 구원의 확신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말마암아 의롭다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주님의 재림 때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였기 때문에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논리입니다. 9절과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우리에게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 두 절 속에 있는 논증은 성경 가운데 나와 있는 구원의 확신이나 구원의 최종성에 관한 가장 강력한 논증입니다. 바울은 ‘더욱’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우리는 이와 같은 표현을 5:15절과 17절에서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15).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17). ‘더욱’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논리를 증거해 가는 방법은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독특한 방법입니다. 밤이 지나면 낮이 온다는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에 대해서 억측을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논리의 문제입니다. 9절과 10절의 말씀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9절과 10절에서 큰 것으로부터 보다 작은 것으로 전개해 가는 논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다 큰 것이 사실이라면 보다 작은 것은 필연적으로 사실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9절과 10절에서 구원에 대한 확신을 논증하면서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것처럼 상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서 말해 왔소. 그리고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의 죄가 용서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끝날까지 버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이요.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고 아직도 우리는 매우 약하고 타락한 소질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결단코 최종에 이르기까지 정죄받거나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이요?’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은 실로 중차대한 질문입니다. 최종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 이것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어떤 환난과 역경이 몰려 온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며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진노하심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다” 이 문제는 장래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2:5절에서 이 점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판단이 죄와 악에 대해 나타나고 선포되는 큰 날이 장차 올 것입니다. 이 날은 성경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엄청난 날입니다. ‘장차 올 진노’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루어질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을 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장차 올 그 큰 심판날에 안전할 것인가를 알고 안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하나님의 진노에서의 구원을 확신하기 위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어휘가 성경에 사용될 때 갖는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는다”라는 어휘가 성경에 사용될 때 세 가지 다른 시상과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이미 구원받았다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이미 죄책으로부터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미 끝난 일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그것은 과거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는 아직도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세력과 오염으로부터 구원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관계는 죄책 하나만이 아닙니다. 불행히도 그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 우리의 고민과 우리의 문제에는 우리가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책이 있다고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담의 죄는 사람의 본성 자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오염되었고 사람은 죄의 세력과 지배 아래 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방면에서도 구원을 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의 죄책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시 우리를 억눌러 왔던 이 무서운 세력과 아직도 그렇게 될 경향으로부터 구원 받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로부터 구원 받고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화입니다. 성화는 현재 우리 가운데에서 계속되고 있는 진행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구원을 생각할 때 또 다른 시상은 전적으로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주로 생각하는 것이 이 미래 시상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완벽하게 구원을 받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의 세력과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뿐 아니라 우리의 몸 자체도 죄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영화인 것입니다. 로마서8:23절에서 말합니다. “이 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바로 이것이 구원의 최종적인 것입니다. 이 최종적인 국면에서 우리는 모든 방면에서 죄로부터 완벽하고, 철저하게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서 그 영과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유다서24절)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제기하는 문제가 ‘내가 어떻게 최종적이고 완벽한 구원을 받게 될 것을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최책으로부터 내가 용서함을 받고 죄책으로부터 벗어나는 이상으로 내가 완전하게 구원 받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현재와 심판날 사이의 어느 순간에도 나의 구원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미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논증의 기초입니다. 이미 우리가 그의 피로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되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확신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의미하지만 그 이상 훨씬 더한 무엇을 뜻하고 있습니다.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의롭다고 선언해 주심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법률적이고, 법정적인 용어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만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의로 여기신다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언하신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고 우리의 것으로 계산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히고, 그리스도의 예복을 입혀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존전에서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의 행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마암아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셨다면, 즉 우리를 의롭다하시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어 주셨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더 크고 위대한 일을 이미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근본적인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시요, 실언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요, 번목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칭의를 조달해 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최종적이고 완벽한 구원에 관해 아무런 의심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복음5:24절에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 주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자를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했고, 심판과 저주에 이르지 아니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은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 칭의는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로 옷 입혀 우리로 하여금 그 의 가운데서 하나님 자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아무런 적대감을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것을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이미 우리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의 심판은 이미 끝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관한 근본적인 선고를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재판장으로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그가 우리를 의로 여기신다고 선고를 내리시고 반포하실 때 우리에 대한 심판을 내린 것입니다. 다시는 그 말을 번복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최종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선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최종적인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마치 대법원에서 최종선고가 내려지면 번복이 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영원한 재판장되신 하나님께서 이미 최종선고를 내리셨기 때문에 그것은 변개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코 다시 정죄함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칭의’가 얼마나 엄청난 일인가를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의롭다하실 때 그는 그 사람에 관한 최종적인 선고를 내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은 안전한 사람이요, 영원토록 안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10:2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의롭다 하실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가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칭의는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중대하고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마틴 루터가 칭의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을 때 감동되었던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칭의의 그 의미와 영광을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내어 놓고 종교개혁을 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칭의를 받고 믿음으로 살면서도 최종적인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이유는 우리의 행위에 매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는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화목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 얻을 것은 확실합니다. 토프래디는 구원의 확신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그의 자비하심으로 시작하신 일, 그의 능력의 팔로 이루시리, 그의 언약 참되고 진실해, 결단코 폐해지지 않으리, 현재 일이나 장래 일, 그 외 다른 아무 일도, 하나님의 뜻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그의 사랑에서 내 영혼 끊지 못하리. 그의 손에 있는 생명책에, 내 이름 지을 수 없고, 지울 수 없는 은혜의 표로 그의 가슴에 새겨져 남아 있으리라, 아 나 열심이 생겨난 것처럼, 난 결단코 끝까지 견디어 내리라. 하늘에 있는 영화로운 영들보다, 더 안전치 못하나, 나 그들보다 더 행복하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그 행복을 노래하는 복된 인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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