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올바른 금식!

by 손재호 posted Jun 18, 200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6:16-18
성경본문내용 (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17)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18)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강설날짜 2006-06-18

2006년 6월 18일 설교


세 가지 종교적 의(3)-올바른 금식


말씀:마태복음 6:16-18
요절:마태복음 6:17-18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는 세 가지 종교적 의를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올바른 구제’와 ‘올바른 기도’를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의가 무엇인가 배웠습니다. 주님께서는 나팔을 불며 구제하지 말고, 회당이나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히 구제하며,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올바른 금식’을 통해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더 나은 의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사실 금식하면 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금식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가 중대한 사건을 만나거나 무슨 중요한 일을 결정해야 할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금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특히 사순절이 되면 많은 분들이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새기며 금식을 합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40일 금식기도를 하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금식은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그 사람의 경건의 척도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금식에 힘쓰고자 합니다. 저도 대학시절 금식을 해봐야 경건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것 같아서 삼일을 작정하고 금식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때는 금식이 아니라 굼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금식의 의미도 알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나의 경건을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원래 금식은 구제와 기도와 함께 경건의 중요한 한 요소였습니다. 구약에 보면 믿음이 신실한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대 속죄일에 금식을 하였습니다. 레위기 16:29-34에 보면 하나님께서 속죄일에 대한 규례를 명하면서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스스로 괴롭게 하며’라는 말은 자기 부인을 말하는데 이 말씀 속에는 금식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요엘서 1:14절에 보면 “너희는 금식 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요엘서 2:12-1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58:6절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어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구약에 보면 금식이 하나님에 의해 명령되어지고 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을 행했습니다. 누가복음 18:12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고 자랑하며 기도였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그의 제자들도 규칙적으로 금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규칙적으로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마태복음 9:15절에 보면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잔치할 때 금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다가 왔기 때문에 금식하고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다가 왔기 때문에 먹고 마시며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금욕적인 종교가 아니라 축제의 종교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 자들은 금식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금식을 완전히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신랑이 빼앗길 날이 오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슬픔의 때가 오면 마땅히 금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슬픔의 때만 금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도 금식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 주야를 광야에서 금식하셨습니다(마 4:1-2). 초대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금식한 일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고자 할 때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처럼 금식은 구제와 기도와 함께 유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칭찬을 받는 경건 생활의 하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금식을 인정하시고 중요한 일을 앞에 두시고 금식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금식을 행하는 목적과 유익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회개할 때에 겸손의 표현으로 금식을 하였습니다(느 9:1-2; 욘 3:5). 또한 하나님의 인도와 자비를 빌 때에도 사람들은 금식을 하며 기도하였습니다(출 24:18; 에 4:16; 마 4:1-2).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육체의 방종을 다스리기 위해, 즉 자기 훈련을 위해 금식을 하였습니다(고전 9:24-27). 그리고 사람들은 절제와 나눔을 위해 금식을 하였습니다(욥 31:16). 이처럼 금식은 여러모로 경건에 유익합니다. 우리가 금식을 의식화하고 형식화해서 율법적으로 행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 자신의 육체를 제한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금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금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며, 하나님께로 더 깊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제와 기도에서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기 위해서 금식을 행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은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할 때 슬픈 기색을 하였습니다. 세수도 하지 않고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재를 뒤집어쓰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금 금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행하는 금식은 외식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자는 이미 사람들로부터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금식을 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외식하는 금식은 아무리 자주 금식을 하고 오래 금식을 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어떻게 금식을 행하여야 한다고 하십니까? 17-18절에 보면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금식을 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서 금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장하라’는 말입니다. 평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단장하듯이 금식할 때 평소 생활하듯이 하여 표를 내지 말라는 말입니다. 곧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은밀히 하라는 말입니다. 금식은 자신의 육신을 제어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고자 함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고자 함입니다. 우리의 심령과 영혼과 삶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자 함입니다. 이처럼 금식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함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자신이 금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자신의 경건을 자랑하기 위해 슬픈 기색을 하며 얼굴을 흉하게 하여 금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해야 합니다. 이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 말은 참된 절제요, 참된 자기 부정입니다. 자기 부정의 필연성은 우리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자기부정은 영원토록 강조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 부정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고, 자기 부정이 없이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정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입니다. 이는 또한 삶을 경건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운동 선수들은 오로지 승리하기 위해 수많은 것들, 심지어 해롭지도 않고 적당한 것까지도 스스로 포기하며 부정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서고,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부정과 자기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식은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경건의 요소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건에 유익한 금식이 잘 못된 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훌륭함과 경건함을 자랑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금식을 행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더 긴밀한 교제를 위해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은밀히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식을 할 때 슬픈 기색을 하고 흉한 얼굴로 해서는 안 됩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단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지나치게 금식을 강조해서도 안 됩니다. 나의 심령과 마음의 골방 속에서는 영원토록 사순절의 고통을 유지하며, 얼굴에는 언제나 부활의 영광으로 빛이 나야 합니다. 우리의 내적 삶은 언제나 자기 부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언제나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고 미소를 머금고 찬양하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 세 가지 종교적 의를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무엇인가를 배웠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상실하게 될 때 우리의 삶속에서 이런 경건의 요소들이 하나씩 중지하게 됩니다. 첫째로 금식이 중지되고, 그 다음에는 기도가 중지됩니다. 왜냐하면 금식 곧 내적 생활의 금식을 하지 않으면 기도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중지되면 그 다음에는 구제가 중지됩니다. 결국 타락과 부패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구제는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행해야 하고, 기도는 하나님과 홀로 있는 중에 드려야 합니다. 금식은 오로지 하나님과의 교제에 유익이 되는 수단으로써만 행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의를 행하지 않고 은밀한 중에 계시하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를 행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더 나은 의를 덧입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 상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