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711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16:13-20
성경본문내용 (13)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4)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15)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8)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9)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20)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강설날짜 2007-05-20

2007년 5월 20일 설교


베드로의 신앙고백


말씀:마태복음 16:13-20
요절:마태복음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전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단락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말씀은 갈릴리 사역의 절정으로서, 베드로의 신앙고백 사건입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은 이 고백을 들으시고 베드로를 축복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의 의미가 무엇인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시고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이 도시는 분봉왕 헤롯 빌립이 티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하기 위하여 건설된 도시로 주로 이방인들이 거주하였습니다. 따라서 이곳은 유대인 무리를 찾아보기 힘든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곳에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떠나서 제자들만 데리고 이런 조용한 곳으로 가신 것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시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은 14절에 보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당시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에게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것이 있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선지자 중에 하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훌륭한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어떤 분이신지 그의 본질에 관하여는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단지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나 나타난 분이다.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예언이 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예레미야가 다시 나타나서 열변을 토하며 눈물로 호소하는 것이다. 옛날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이 돌아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15절에 보면 이제 주님께서는 그 범위를 좁혀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에 대해 베드로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6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고백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베드로가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당신은 히브리 민족의 모든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분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섭리의 완성자이십니다.” “당신은 새 날과 새 시대의 문을 여시는 분입니다”라는 말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모든 선견자들과 시편 기자들과 선지자들은 어떤 한 사람의 출현을 고대했었습니다. 이들의 모든 글들을 살펴볼 때 우리는 그들의 이상이 하나의 인격체로 구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우리는 한 어떤 인격자가 이스라엘의 국가적 이상으로 점점 부각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사람은 압박받고 상하고 고통 받는 종인 동시에 왕관을 쓴 승리의 왕이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참조. 사 53:1-5, 32:1 등). 구약 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은 그들의 기대를 이루어 주며, 그들의 소망을 실현시켜줄 한 사람을 고대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선지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날에 대해 말했었습니다. 요엘 1:15절에 보면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 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고 했습니다. 또한 말라기 4:5-6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참조. 슼 14:1; 암 5:18 등). 그들의 눈은 항상 미래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히브리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그분을 고대하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지금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서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누구도 예수를 그렇게 고백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 시대 사람들의 예수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넘어서서 예수님 안에 어떤 신비적인 요소를 발견했습니다. 물론 그 시대 사람들도 예수님에게서 예언자적인 특징을 발견했으며, 초자연적인 능력을 소유하신 분이심을 알아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인식은 사람의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넘어서서 “당신은 메시아 이십니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당신은 세례 요한보다도, 예언자 엘리야보다도, 파수꾼으로서 메시아를 기다렸던 예레미야보다도 더 큰 분입니다. 당신은 그들 모두가 고대하던 그 분이십니다. 당신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위대한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어떻게 축복해 주셨습니까? 17-19절을 보면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왕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메시아이심을 고백한 것에 대한 어떤 상급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가 새로운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고백 자체가 베드로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명해 주신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복된 이유는 그가 이러한 고백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러한 고백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까? 17b절을 보면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너의 고백은 다른 사람이 네게 가르쳐 준 것을 고백한 것이 아니며, 네가 그 진리를 발견한 것도 아니다. 바로 나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그것을 계시해 주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것을 베드로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를 따라 다니며 그의 행하시는 사역과 말씀을 통해 오랜 세월 기다려온 메시아 안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는 진리를 깨닫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으로 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고 말씀하시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너는 베드로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사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의 형제 안드레가 메시아를 만난 후 시몬에게 “우리가 메시아 만났다”고 하고 그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을 때 그를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베드로의 아람어다)라 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요 1:4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그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했을 때 다시 ‘너는 베드로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때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그의 이름이 베드로 곧 반석이 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말씀 후에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반석 위에’라는 말을 잘 유념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여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앞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히브리인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함을 배웠듯이 이 말씀도 히브리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합니다. ‘반석’이라는 말이 히브리 성경 곧 구약 성경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된 경우를 살펴보면 우리는 이 말이 인간을 상징하기 위해서 사용된 경우는 한 번도 없고, 언제나 하나님을 상징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여기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이 반석 위에’라는 말은 베드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베드로 위에 세우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위에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곧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되신 자신 위에’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은 대개 히브리어 단어 ‘카할’을 번역하는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카할’은 ‘회중’, ‘공동체’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로 이스라엘을 지칭하는데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클레시아)라는 말 속에는 히브리 민족이 인간 왕들이나 어떤 정체에 의하여 지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민족이라는 위대한 사상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교회를 ‘자신 위에 친히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내가 세우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어떤 것으로도 교회를 파괴할 수 없으며, 온갖 어두움의 세력도 그의 교회의 완성을 궁극적으로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인간의 의식도, 노력도, 열심도, 인간을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강한 이유는 오직 살아있는 믿음으로 주님의 성품에 참여함으로써 그의 위대한 교회의 재료로 사용될 자격을 지닌 돌들만을 주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각기 가장 적당한 자리에 배치하사 친히 그의 교회를 지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교회가 음부의 세력을 뚫고 탈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교회가 적에게 포위된 성문을 뚫고 밖으로 나아가서 저편에 있는 더욱 충만한 생명 속으로 들어갈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만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교회에 일원이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이 없다는 말이 이런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신 후에 계속해서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9a).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의 열쇠들’은 무엇을 말할까요? ‘열쇠들’ 이라는 말은 히브리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열쇠들’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는 자들인 서기관들의 직무를 나타내는 표였습니다. 베드로에게 맡겨진 열쇠들은 교회의 열쇠들이 아니라 천국의 열쇠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으로서의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 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천국의 비유를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고 고백함으로 천국에 관한 교육을 맡은 서기관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노니”라고 하신 말씀은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너는 나의 서기관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신앙 고백을 했기 때문에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참조. 엡 2:20; 계 21:14). 오늘날 이 열쇠들은 천국을 선포하는 모든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인데, 그들이 전도자임을 나타내는 증명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로마 카톨릭처럼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는 말씀을 베드로에게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를 준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를 결정하는 열쇠를 준 것이 아니라 천국의 서기관으로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는 권세를 부여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 신앙 고백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특권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는 말씀에 바로 이어서,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생활에 대한 최종적인 권위를 교회에 부여하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묶는다 또는 무엇을 푼다’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친숙한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묶는다’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것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권위적 선언을 의미했으며, ‘푼다’는 것은 어떤 것을 행할 수도 있고, 행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를 허락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묶는다’ 또는 ‘푼다’는 말은 히브리인들이 도덕적 권위를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한 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교회는 도덕(윤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묶는 것과 푸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의 권위에 근거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위하여 삶의 도덕적 기준들을 해석해 주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20절에 보면 이제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 되심을 사람들에게 이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는 자신의 정체가 제자들 외에는 무리들에게 아직 알릴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21-23절에 보면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 고백한 베드로도 진정한 그리스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도 이처럼 심각하게 오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무리들에 의해서 오해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의 사명을 완성하는 그때까지 그리스도 되심을 알리지 말도록 명령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시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함께 하사 우리로 베드로와 같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고 고백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베드로가 누렸던 그 축복을 우리도 누릴 수 있기를 원합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602 [마태복음 12장] 왕의 진정한 가족! 마 12:46-50 손재호 2007-01-21 3462
601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 13:1-23 손재호 2007-01-28 6650
600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 마 13:24-30, 36-43 손재호 2007-02-04 5031
599 [마태복음 13장] 겨자씨 비유 마 13:31-32 손재호 2007-02-11 4316
598 [마태복음 13장] 누룩 비유 마 13:33 손재호 2007-02-18 4941
597 [마태복음 13장] 감추인 보화 비유 마 13:44 손재호 2007-02-25 3873
596 [마태복음 13장] 값진 진주 비유 마 13:45-46 손재호 2007-03-04 3799
595 [마태복음 13장] 그물 비유 마 13:47-50 손재호 2007-03-11 4287
594 [마태복음 13장] 집주인 비유 마 13:51-52 손재호 2007-03-18 4636
593 [마태복음 13장] 고향에서 배척당한 그리스도 마 13:53-58 손재호 2007-03-25 3282
592 [마태복음 14장] 오병이어 표적! 마 14:1-21 손재호 2007-04-23 4106
591 [마태복음 27-28장] 부활하신 그리스도 마 27:57-28:15 손재호 2007-04-08 3237
590 [마태복음 14장] 바다 위로 걸어오신 왕 마 14:22-36 손재호 2007-04-15 3943
589 [마태복음 15장] 진정한 더러움 마 15:1-20 손재호 2007-04-22 4134
588 [마태복음 15장] 가나안 여인과 왕 마 15:21-28 손재호 2007-04-29 4185
587 [마태복음 15장] 칠병이어 표적 마 15:29-39 손재호 2007-05-06 4348
586 [마태복음 16장] 누룩을 주의하라! 마 16:1-12 손재호 2007-05-13 4476
» [마태복음 16장]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 16:13-20 손재호 2007-05-20 7117
584 [마태복음 16장] 수난과 부활 첫 번째 예고 마 16:21-28 손재호 2007-05-27 3646
583 [마태복음 17장] 변형되신 예수님 마 17:1-13 손재호 2007-06-03 467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