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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마 20:1-16
성경본문내용 (1)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2)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3)또 제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4)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5)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6)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7)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8)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9)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10)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11)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12)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14)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6)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강설날짜 2007-07-15

2007년 7월 15일 설교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말씀:마태복음 20:1-16
요절:마태복음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우리는 지난주에 영생을 구하는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공부했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함을 배웠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명한 포도원 품꾼 비유입니다. 왕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보상에 대한 바른 원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비밀을 배웠다면, 오늘은 하나님 나라의 보상에 대한 비밀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보상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바른 진리를 배우고, 주님의 제자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앞 단락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 단락의 결론인 19:30절과 오늘 비유의 결론인 20:16절 말씀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는 말씀으로 ‘인클루지오’(감싸기)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서 우리는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비유의 말씀을 바르게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감싸기 구조에 유념해서 읽어야 합니다. 곧 앞 단락과의 연관성 속에서 읽어야 합니다.

오늘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나타나는 비유로서 부자 청년에 대해 베드로가 느낀 우월감에 직결된 비유입니다. 19:27절에 보면 베드로는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떠나는 것을 보고 우월감에 사로잡혀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첫 번째 제자입니다. 그 사람은 주님께 등을 돌렸고 지금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미 마지막 시간이 아닙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 이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19:28-29절에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나를 좇은 제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며,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적으로 19:30절에 보면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은 이 경고의 말씀에 대한 하나의 예증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제자들에 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 비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하여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천국에서의 보상에 대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고, 그들의 잘못된 우월감을 교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먼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20:1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2절에 보면 주인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주기로 품꾼들과 약속하고 그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당시는 하루 한 끼 먹기도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른 아침 첫 번째로 주인의 택함을 받아 하루 종일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복이었습니다. 주인은 제 삼시, 곧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에 다시 장터에 나가보니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들에게도 상당한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게 했습니다(3-4). 뿐만 아니라 주인은 12시와 오후 3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5). 그런데 오후 5시에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6). 주인이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고 했습니다.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보면 튼튼하고 기술을 가진 일 잘하게 생긴 사람들부터 차출되어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술도 없고 약해 보이는 사람들만 남습니다. 아마도 오후 5시까지 남아 있게 된 사람들은 기술도 없고 품꾼으로 쓰기에 합당하지 않은 여러모로 부족한 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오후 5시가 되도록 포도원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빈둥거려야 되는 이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해가 저물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내일 양식이 걱정입니다. 아내와 자식 보기에 민망합니다.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는 힘없는 그들의 대답 속에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주인은 그들의 형편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그들에게도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7). 그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기쁜 소리였겠습니까? 비록 한 시간밖에 일할 수 없지만, 그로 인해 많은 품삯을 기대할 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공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날아갈 듯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짧은 한 시간이었지만 주인에 대한 감사함으로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성실히 일했을 것입니다.

드디어 날이 저물어 품삯을 지불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이르기를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품삯을 주라고 했습니다(8).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은 겨우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얼마를 받아야 겠다, 얼마를 주겠지, 그런 기대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이 주시는 대로 그저 감사함으로 받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의 품삯을 받게 되었습니까?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한 데나리온씩의 품삯을 받게 되었습니다(9). 이들이 받은 한 데나리온의 품삯은 첫 시간에 택함을 받아 포도원에 들어가 하루 종일 일하게 된 일군들이 받는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 당시 노동관습에 비추어볼 때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은혜에 놀라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주인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여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던 먼저 온 자들도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동시에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씩 받았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당연히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주어졌습니다(10). 이것은 주인이 처음 포도원에 들여보낼 때 그들과 약속한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그들에게 정당한 품삯을 지불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 일찍부터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11-12절에 보면 그들은 주인을 원망했습니다.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이들의 원망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한 품삯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고 해서 원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일찍부터 택하여 일하게 하신 주인의 은혜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도 똑같이 하루치의 품삯을 주신 주인의 인자하심과 큰 은혜에 도리어 감사하고, 그런 훌륭한 주인이 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며 존경해야 했습니다. 사실 세상에 이런 은혜로운 주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세상적인 가치관과 비교 의식에 사로잡혀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준 주인의 행위가 도리어 부당하고 원망했습니다. 아마 그들은 한 시간만 일한 사람에게 그 일한 분량만큼의 품삯만 주든지, 아니면 자기들에게도 한 시간당 1데나리온씩으로 품삯을 계산해서 일한 시간만큼 더 품삯을 지불하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세상 경제 논리와 가치관에 사로잡혀 처음 주인과 한 약속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첫 시간부터 일하게 해 준 주인의 은혜를 망각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런 그들에게 집 주인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13-15절에 보면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주인은 그들을 고용할 때 한 데니리온 품삯을 약속했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켰습니다. 결코 그들의 품삯을 속이거나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5시에 온 사람에게는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주인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자비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에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도 주인이 자기 손해를 감수하면서 은혜를 베푼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항의는 아침 일찍부터 일했다는 의에 기초해서 한 시간 일한 사람들보다 많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선한 것을 악하게 보는 잘못된 행동을 한 것입니다.

이 비유에서 상식을 벗어난 고용주, 곧 집주인의 너그러운 모습을 하나님의 모습으로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고용주의 보상 방식이 일반 경제 원리를 벗어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13). 고용주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던 그 시대적 상황 속에서(15), 이 비유의 고용주는 일반적으로 악한 고용주들의 보상 원리와 정반대로 보상했습니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덜 주는데 관심이 모아져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누구도 일자리를 제공하기 꺼려하는 생산력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에게까지도 남은 노동시간과 관계없이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에게 더 주는데 모든 관심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4절에서 그가 제안한 ‘정당한 대가’는 해당 노동자들에게 아마도 하루 종일의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일부분으로 이해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삼시’ 곧, 오전 아홉시 이후에 온 노동자들에게 한 데나리온보다 적은 액수의 품삯을 주었다면, 그러한 보상은 세상 경제 원리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에 대해 아무런 불평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용주는 나중에 온 노동자들에게도 처음에 온 노동자들에게 약속한 동일한 액수인 ‘한 데나리온’ 전부를 지불해 주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공정함의 원리를 뛰어넘은 관대함과 은혜의 원리입니다(참조. 19:29). 그의 보상의 원리는 받을 것보다 적게 받은 자는 아무도 없되,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수고한 노동자들은 이처럼 관대한 보상 방식에 대해 불평을 한 것입니다. 그들이 불평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받을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보다 적게 일한 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의 불평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많이 일했다는 비교 의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용주의 보상 방식에 대해 이처럼 문제를 제기하는 그들은 세상의 상대적인 경제 원리에 너무 익숙하여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의 원리를 온전히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자신이 하루 종일 가장 많이 일했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는 노동자의 모습은 아마도 맨 처음 제자로서 예수님의 사역 기간 내내 누구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는 베드로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19:27). 그러나 그러한 베드로에게 주어진 역설적 보상의 원리(19:30)는 이 비유의 결론으로 재차 주어지고 있습니다. 16절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 원리는 먼저 온 자 또는 더 많이 포기한 자라고 해서 나중 온 자 또는 가진 것이 적어서 더 적게 포기한 자보다 하나님께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을 밝혀줍니다. 하나님의 보상의 원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바와 같이 수고한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정비례의 원리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그 수고보다 못하지 않은 그리고 사실은 수고보다 훨씬 더 많은 보상을 해주시는 은혜의 원리입니다. 이는 분명 세상의 원리와 다른 원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세상적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세상적 원리와 전혀 다른 하나님 자신의 원리, 곧 은혜의 원리가 적용되는 나라입니다.

만약 우리가 12절의 노동자들의 불평에 쉽게 공감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의 원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실제로 19:28-29절에서 제시된 하나님의 보상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어떤 제자도 하나님의 보상과 동등한 만큼의 수고를 했다고 주장하거나 요구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12절의 노동자들의 불평 이유는 자신들이 받을 것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이들과의 비교 심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남보다 높아지는데 관심을 갖기보다는 남보다 낮아지고 남을 섬기는데 모아져야 하기 때문에(참조. 18:3; 20:26-28), 그러한 비교 심리에 기초한 불평은 하나님 나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처럼 불평하는 자들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한 자들임을 보여주며, 따라서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 말째가 된다는 원리는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위험에 처해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라고 이해 될 수 있습니다(참조. 18:3). 그렇다면 16절의 결론적 선언은 19:30절과 함께 19:27절의 베드로의 질문, 곧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이 제자로서 얼마나 적절치 못한 질문인지를 경고해 주는 것입니다(참조. 18:1).

제자는 현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남보다 많이 포기하고 수고할 때 앞으로 하나님께서 더 큰 보상을 해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유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를 소유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지(참조. 13:44), 그 외에 어떤 다른 보상이나 지위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는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모독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수고 한 자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정작 그러한 그릇된 기대로 말미암아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보잘 것 없는 자, 곧 ‘말째’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에 반해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지는 못하였고, 늦게야 개종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렇게 많은 수고를 하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자신의 소유와 수고가 하나님 나라의 가치에 비해 너무도 보잘 것 없는 것임을 인정하는 자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서 높은 자, 곧 ‘첫째’로 인정될 것입니다. 우리가 보상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바른 가치관을 소유함으로 주님의 은혜를 바르게 잘 감당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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