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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2:19-30
강설날짜 2017-08-27

2017년 빌립보서 공부

이와 같은 자를 존귀히 여기라

말씀:빌립보서 2:19-30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자신을 앞서 먼저 빌립보교회에 보내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절을 보면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속히 빌립보교회에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빌립보교회는 바울을 인하여 몹시 염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교역자였던 에바브로디도가 그들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빌립보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바울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가 병이 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빌립보교회의 형편이 어떠한지를 알고 또 그들을 안심시킬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함께 있던 디모데를 속히 그들에게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19b절에 보면 바울이 이렇게 디모데를 속히 빌립보교회에 보내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안위를 받는다’는 말은 ‘유프쉬케오’(eujyucevw)인데 이 단어는 ‘좋은 기분이 되다’, ‘즐거운 마음이 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안위를 받고자 함이라’고 하는 것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먼저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이를 통해서 바울 자신도 평안을 얻기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바울과 빌립보교회 사이에는 서로를 위해서 걱정하고, 위로하는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가운데 있었습니다.

 

20절에 보면 바울 사도가 왜 디모데를 보내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20). 여기서 ‘뜻을 같이 하여’라는 말은 ‘같은 마음의’, ‘한 뜻의’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생각하다’라는 것은 ‘염려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빌립보교회를 위해서 진실히 염려하고 걱정하였습니다. 그리고 21-22절에 보면 바울은 왜 빌립보교회를 위해서 진실히 생각할 자가 디모데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21-22). 바울 사도는 디모데 외에 다른 사람들은 세상일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삶의 목표와 궁극적인 지향점이 잘못 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렇게 근본 목표가 잘못된 사람에게는 주의 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이 걸린 결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자기 유익을 좇아 행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당시 바울 주위에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자기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였습니다.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위해서 묵묵히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곧 그는 복음에 충성된 자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며, 주님의 교회를 생각하는 진실한 주의 종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루스드라에서 얻은 제자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유대인이요,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행 16:1). 그는 거짓이 없는 순수한 믿음을 가진 자였으며,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딤후 1:4-5). 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행 16:2), 바울이 아끼고 사랑한 제자였습니다(고전 4:17). 22절을 다시 보면 바울은 이 디모데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22). 여기서 ‘연단’이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도키메’(dokimhv)인데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연단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시험을 견딘다’는 동작의 개념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시험을 잘 견뎌 낸 상태’, ‘연단 받은 결과’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어느 쪽으로 해석을 하든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을 어떻게 섬겼다고 합니까? 22절을 다시 보면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대할 때 마치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극진한 존경과 예의를 가지고 대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대할 때 취해야 할 태도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다고 해서 예의도 없고 존경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고전 13:5). 주 안에서도 규례와 범절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유교적인 예의범절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교회의 질서를 따라 사랑과 겸손과 상호존중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영적 아버지로 생각하고 존경하고 순종하며 섬겼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디모데를 자기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주 안에서 사랑하는 신실한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고전 4:17).

 

바울 사도는 디모데가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고 합니다(22). 여기서 ‘수고했다’(ἐdouleυσεν)는 말은 종노릇 했다는 말입니다. 곧 종이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섬기듯이 섬겼다는 의미입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섬겼습니다. 디모데의 섬김의 대상은 바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바울을 자식이 아비에게 행함과 같이 존경하며 순종하며 섬겼습니다. 디모데가 바울에게 이처럼 충성한 것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위하여’ 전적으로 수고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목사에게 순종하며 존경하는 것도 복음을 위해 수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사가 복음을 위해 수고하지 않으면서 목사이기 때문에 순종하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교권이요, 권위주의에 불과합니다. 참된 순종은 목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수고할 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바울과 같이 오직 그리스도 복음을 위해서 더욱 헌신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가운데도 디모데와 같이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많은 주의 종들이 나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23-24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고 합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자신의 계획과 확신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 일의 형편을 보아서 디모데를 속히 빌립보교회에 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속히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갈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하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보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자기가 속히 갈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타난 것입니다(빌 1:8). 이처럼 사랑은 어려운 장애물을 뛰어넘게 하며, 환난 가운데서도 소망과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앞으로 자신의 일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고 최대한 빨리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고자 하는 자신의 계획을 밝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이 속히 빌립보교회를 방문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25-28절을 보면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를 속히 보내고자 하는 계획과 자신의 확신을 말한 후 빌립보교회에서 자신을 섬기기 위해 온 에바브로디도를 돌려보내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25절에 보면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디모데를 보내기 전에 급히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낼 필요성을 말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어떤 사람이라고 합니까? 25b절을 보면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울이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하는 다섯 개의 문구를 보게 됩니다. 곧 ‘나의 형제’, ‘함께 수고하는 자’, ‘함께 군사된 자’, ‘너희 사자’, ‘나의 쓸 것을 돕는 자’입니다. 여기서 앞의 세 개는 문법상 하나의 관사로 연결되어 있어서 내용상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두 개도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바울은 먼저 에바브로디도가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군사된 자’라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디모데와 함께 바울의 형제요, 함께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된 자였습니다. 바울에게는 형제들 사이에 높고 낮음을 따지는 권위의식이나 계급적인 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함께 수고하는 동역자의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높고 귀한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는 다 섬기는 종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에바브로디도를 ‘너희 사자요,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너희 사자’는 문자 그대로 ‘너희가 보낸 자’라는 뜻입니다. 원어로 보면 ‘아포스톨로스’(ajpovstolo")인데 대개 사도로 번역되지만 여기서는 원래 의미 그대로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왜냐하면 에바브로디도는 열두 제자와 같은 사도가 아니라 빌립보교회에서 바울을 섬기기 위해서 교회대표로 보냄을 받아서 바울에게 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는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위해서 그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과 선교헌금을 에바브로디도 편으로 보내었습니다. 빌립보서 4:18절을 보면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교회의 보냄을 받아서 바울에게 와서 그를 시중들며 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봉사를 예배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25절에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했는데 여기서 ‘돕는 자’라는 단어는 헬라 원어로 보면 ‘레이투르고스’(leitourgov")인데 이와 연관된 단어가 ‘레이투르게오’(leitourgέω)와 ‘레이투르기아’(leitourgία)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은 구약 칠십인 역에서 거의 전적으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에서 섬기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빌립보교회가 옥에 갇힌 바울 사도를 위해서 물품과 선교헌금을 보내어 주고 또한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서 그를 돕고 섬기게 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행해진 ‘거룩한 섬김’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 일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바울은 왜 속히 에바브로디도를 보내기를 원하는 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26). 바울은 먼저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간절히 사모하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서 ‘사모한다’(ejpipoqevw, 에피포데오)는 말은 심히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하듯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보고 싶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말합니다. 바울 사도도 빌립보서 1:8절에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에바브도디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하였다”고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가 병든 것 때문에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걱정하는 것을 인해 근심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의 진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자기를 위해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고전 13:5). 에바브로디도는 자기의 건강보다 자기로 인해 염려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염려하였습니다. 이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오로지 성도들의 유익만을 생각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종이었습니다.

 

27절에 보면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 좀더 설명합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 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27). 에바브로디도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우리는 알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그는 바울을 돕기 위해서 급히 달려 온데다가 바울을 시중드니라고 무리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다른 원인에 의해서 갑자기 중한 병에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는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겨 살려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에바브로디도만 긍휼히 여긴 것이 아니라 바울 자신도 긍휼히 여기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에바브로디도의 병에 대해 바울도 몹시 근심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기를 섬기기 위해서 왔다가 병을 얻었으니 얼마나 더 근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병이 나았을 때 에바브로디도만 안심한 것이 아니라 바울도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로지 다른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두 사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에바브로디도와 바울을 통해서 서로 다른 사람을 위해 걱정하며 다른 사람을 인하여 기뻐하는 참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교회 가운데도 이런 아름다운 사랑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28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보낸 것은 빌립보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며, 또 바울 자신도 근심을 덜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근심을 던다’(ajlupovtero" ᾧ)라는 말은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인하여 얼마나 근심하고 있었는가를 말해 줍니다.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교회의 염려를 자기의 아픔으로, 교인의 근심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기는 참된 목자 상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에바브로디도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성도들과 이로 인하여 안도하는 바울의 모습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사랑은 보고 싶어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교회 가운데도 이런 아름다운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염려하며 근심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더욱 복음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서로 사랑하며, 복음의 진보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29-30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당부합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29-30). 여기서 ‘영접한다’(prosdevcomai, 프로스데코마이)라는 말은 어떤 사람을 환영하고 환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고 충성한 교역자를 따뜻하게 영접하는 것은 빌립보교회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였습니다. 그저 의무감이나 형식으로가 아니라 모든 기쁨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영접하라고 당부한 후 ‘이런 자를 존귀히 여기라’고 당부합니다.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주를 위해 헌신하는 자는 드물고 하나님 앞에 귀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교인들은 마땅히 알아주고 존귀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몰라보고 무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런 자들을 알아주고 하나님 앞에서 귀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편에서 이런 자들을 알아주고 존귀히 여길 때 교회에 덕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되고 성도 간에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더욱 주의 사랑으로 충만케 되고 복음의 진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알아주고 존귀히 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 일에 인색하거나 형식적으로 그치지 않게 하시고 마음으로 진심으로 말과 행동으로 표현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더욱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 더욱 주의 일에 헌신하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진보의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가 왜 에바브로디도에게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30절을 다시 보면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죽음에까지 가까이 갔으나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말은 ‘목숨을 걸었다’, ‘목숨을 두고 모험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고 바울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을 섬기는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했다’는 말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보낸 물품이 부족하여 에바브로디도가 보충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빌립보서 4:18절에 보면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풍족히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족함을 채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다 와서 바울을 섬기기를 원했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관계로 에바브로디도가 대표로 와서 바울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는 모든 성도들이 다 섬기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힘에 지나도록 섬겼던 것 같습니다. 그로인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섬기다가 병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섬겼는지는 우리가 잘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섬겼을 것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 때문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자를 존귀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자들을 우리가 존귀히 여기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가 복음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교회 가운데 큰 복음의 진보의 역사가 있게 하시고,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많은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 나오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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