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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빌 4:1
강설날짜 2017-10-01

2017년 빌립보서 공부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말씀:빌립보서 4:1

 

오늘부터 우리는 빌립보서 4장 말씀을 공부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말씀은 바울 사도가 결론적인 권면의 형식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를 성도들을 향해서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교회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절을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권면의 말을 하면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 여러 가지 사랑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모한다’(ejpipovqhto", 에피포데토스)라는 단어는 빌립보서 1:8절에 동사 형태로 한번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얼마나 기뻐하고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잘 보여 줍니다. ‘면류관’(Stevfano", 스텝하노스)은 원래 나뭇잎으로 만든 화관인데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쓰거나 존경의 표시로 수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큰 영광과 기쁨과 자랑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기쁨이요, 자랑이라는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20절에 보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자신의 기쁨이요,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 한 후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을 가지고 부탁하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말은 앞에서 말한 대적자들에 대한 경계의 말씀 곧 3:17-21절에 이은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가운데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어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기에 바울은 이런 그들의 미혹에 흔들리지 말고 ‘주 안에 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주 안에 서라”고 권면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3:20절에 보면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왜 주 안에 서야 할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3:20). 그리고 3:21절을 보면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20절에서 말하는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3:20절과 21절에 기초해서 볼 때 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주 안에 서야 하는가 하면 그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하늘로부터 오실 자 곧 자기 몸을 영광스럽게 변케 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3:21절은 3:20절에 나타난 믿음의 두 가지 내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3:21절을 다시 보면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는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 자신들의 낮은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게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또한 그대로 그들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 소망은 곧 구원의 완성을 바라보는 소망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49절에 보면 장차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닮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로마서 8: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이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지만 장래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의 때가 되어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가 주님과 같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믿음이 빌립보교회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런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 전도자 바울의 마음이기에 사랑하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그러므로···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 안에 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주 안에 선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풍지대와 같은 그런 곳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벌써 “주 안에 서라”고 하면서 서야 할 것을 권면한다는 것은 그것이 그저 쉽게 설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또 무풍지대가 아닌 것은 교회 안에 벌써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18절에 보면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쓰기 전에 이미 빌립보교회에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다(참조. 2:2-3). 이런 자들로 인해서 교회가 많은 미혹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조심하도록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미 누누이 말한 바 있지만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다시 말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을 향한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로 인해서 미혹 당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그런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에게 미혹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눈물로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3:18절에서 십자가의 원수들이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자를 대표한다면, 그에 반해서 신실한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대비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3:20절을 다시 보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은 곧 우리의 나라가 하늘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하늘을 땅과 하늘이라는 위치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자들이 빨리 죽어서 천당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20b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대로 “거기서 구원하실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 혼자라도 어떻게 하늘에 올라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그곳으로부터 오시는 것으로 이 세상이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빌립보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가 장차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실 힘의 강력함을 알았고,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교회 안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주 안에 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안에 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좀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3:17절을 다시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주 안에 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여기에서 바울 사도는 본받아야 할 대상이 둘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는 바울 자기 자신이고, 또 하나는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입니다. 바울 사도에 대해서 우리들이 다 잘 아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제로 우리들은 바울의 생애를 속속들이 다 알지는 못합니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이후의 삶의 모습과 태도에 대해서는 우리가 사도행전에나 서신서들에서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인 빌립보서 3:12-16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미 살펴봤지만 여기에서 우리들은 바울의 삶의 방식, 즉 그가 어떤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살았는가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3:12절에 보면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앞의 3:10-11절에서 말한 내용을 받아서 그렇게 말하였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3:10-11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결론부터 말한다면, 3:11절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는 말은 ‘아직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지막 날에 있을 구원의 소망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몸의 부활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죽어서 천당 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으로 만족해 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구원에서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이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사실이 날마다 매일 매일 내 속에서 역사해서 더 충만하고 완성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사실이 역력하게 실증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나는 매일 매일 구원을 받고 있다”고 하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12절에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또한 구원은 현재적이면서 미래적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구원의 완성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장차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구원은 ‘구원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9:28절에 보면 “장차 우리 주께서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두 번째 나타나심으로 곧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전히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3:20-21절의 설명이 나타내는 바가 바로 주님의 재림과 재림하심으로 이루실 구원의 완성인데, 우리 편에서 보면 이것은 구원의 완성에 대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3:12절에서 ‘얻지 못하고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구원의 완성에 이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12절 말미에는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께 붙잡힌 바울이 주의 뜻을 확신하고 오직 그것을 이루어 드리려는 열심으로 앞을 향하여 계속해서 달려 나간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3-14절에 보면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보이신 푯대는 저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것과도 바꿀 수 없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전진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해서 고린도후서 11:26-27절을 보면 “여러 번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확신했기에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변치 않고 오직 주의 길을 따라 달려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이 ‘나를 본받으라’고 한 그 뜻이 어디에 있는지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1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본받으라’고 한 빌립보서 3:17절의 말씀의 뜻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본받으라는 빌립보서 3:17절의 말씀은 바울 자신을 높여서 말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3:17절 말씀을 다시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은 자신만이 아니라 그밖에 또 본받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바울 자신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다른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생활도 눈여겨보고 그들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이 본받는 일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에 보면 본받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6-7절에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고 했습니다. 이 두 구절을 종합해 보면, 데살로니가교회는 처음에 우리 곧 바울 사도와 그와 함께한 일행을 본받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바울이나 그 일행인 사람만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살전 1:6). 이렇게 바울과 그 일행을 본받고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은 데살로니가교회가 이번에는 마게도냐 지방과 아가야 지방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자들을 눈여겨보라”고 하신 말씀처럼, 데살로니가교회가 그들보다 앞선 자들의 본을 따라 살더니 그들 자신들도 아가야와 마게도냐의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습니다. 여기 데살로니가교회의 예에서 보듯이 본받는 삶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순환됩니다. 왜냐하면 본받는 것은 단순히 사람만을 본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어 받고 이어 주는 ‘본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연스럽게 지역을 넘어갑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아가야와 마게도냐의 교회에 본이 되었다는 말씀이 그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확대해서 본다면 지역만 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본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바울과 초대교회 시대를 지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그리스도의 본이 전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주 안에 섰듯이 우리도 주 안에 서야 합니다. 그 표준이 되는 말씀이 바로 빌립보서 3:17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3:17). 먼저는 바울 사도를 본받아서 살고, 또한 이미 지역과 시대를 넘어서 그렇게 살아 온 자들과 살고 있는 자들을 눈여겨보고 본받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것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다시 오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실 구원의 소망을 품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주 안에 굳게 선다는 것은 막연히 하늘만 쳐다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본받는 삶이 더욱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부르심의 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 사도가 예수님께 잡힌바 되었듯이 내게도 예수님께 잡힌바 된 그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생 변치 않는 확신으로 나의 푯대가 되어 그리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바울이 그렇게 살았고, 또한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앞서 그렇게 사신 분들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먼저 그렇게 사신 분들의 본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또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되기에 그렇게 살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 우리가 믿음의 선진들의 믿음을 본받고 주께 듣고 본 바를 행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바울과 같이 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주 안에 굳게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의 극치의 영광에 참예하는 복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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