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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13:17-22
성경본문내용 (17)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18)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19)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20)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22)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강설날짜 2014-11-02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말씀:출애굽기 13:17-22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출애굽기 13장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든 초태생은 다 하나님의 것임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려져야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장자의 총회에 참여하는 은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출애굽기 13장 말씀을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벗어나서 각 지파별로 대열을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로 나왔습니다. 그들의 목적지는 약속의 땅 가나안 입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은 지중해 해안을 중심으로 놓여 있었던 ‘왕의 대로’를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은 소아시아와 메소포타미아까지 뻗어 있던 상업 도로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일주일이면 가나안 땅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지름길이 있는데도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오늘 우리가 살펴볼 17-18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보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출애굽기 14:1-4절 말씀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서 바로의 군대를 유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심으로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 부분은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17-19절 말씀을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찌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인도하지 않고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신 것은 그 지역이 블레셋 사람의 땅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지름길은 블레셋 땅을 지나서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블레셋만이 아니라 애굽의 국경지역이기 때문에 애굽의 국경수비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그 지름길로 갈려면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일어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할까봐 염려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부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염려가 선듯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을 목격하고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염려는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애굽이 그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들이 아는 유일한 세상으로 돌아 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또한 인간은 지난날의 아픔과 고통을 너무 쉽게 잊고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오히려 그런 날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나쁜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종종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민수기 14장에 보면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난 지 2년도 되지 않아서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 민수기 14:1-5절을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이 사십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에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의 대장부들을 보고 스스로 메뚜기 같이 여기며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하는 사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우려는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국경수비대 뿐만 아니라 블레셋도 강력한 싸움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괴롭히는 군대가 바로 블레셋 군대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아직 감당치 못할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서 인도하신 것입니다.

 

18-19절을 다시 보면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나왔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죽을 때 하나님께서 출애굽하게 하실 때에 반드시 자신의 해골을 취하여 나가라고 유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50:24-25절에 보면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죽기 전에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대로 반드시 이스라엘을 권고하사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그 믿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실 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가라고 한 것입니다. 모세는 요셉의 이 유언을 따라 그의 해골을 취하여 나온 것입니다.

 

20-22절을 보면 “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이르러 거기에 장막을 쳤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가는 길이 편하고 좋은 길이었을까요?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을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로는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니 편안하고 좋은 길이었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제 구원을 받았으니 평안히 믿음의 길을 가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지만 구원의 길은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마태복음 7:13-14절을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도함을 받는 광야 길은 좁은 길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예 길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이란 길이 없는 곳이라고 봐야 합니다. 길이 없기에 날마다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온 길의 경험을 가지고 나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제는 어제까지의 인도함이고, 오늘은 오늘의 인도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광야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6절 말씀에 보면 이 길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 곧 사막과 구덩이 땅, 간조하고 사망의 음침한 땅, 사람이 다니지 아니하고 거주하지 아니하는 땅을 통과케 하시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도다”(렘 2:6). 그렇습니다. 그 길은 광야 곧 사막 길이었습니다. 건조하고 깊은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러한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인도하시듯이 오늘날 주의 백성들도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스스로의 길이 막혀버린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길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냥 이 땅에서는 사막이요, 광야입니다. 어디로 가도 그곳은 물도 없고, 양식도 없고, 그늘도 없는 메마른 땅입니다.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 외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광야 길로 돌리시는 이유입니다. 만약 지름길로 가는 길이 있어서 그 길로 갔다면 이것은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길이 아니라 애굽으로 가는 길로 달려가기 때문에 막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서 감당치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21-22절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서 행하시고, 주야로 그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구름기둥 불기둥은 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하시는 모습입니다. 이 기둥이 밤에는 불로서, 낮에는 구름으로 백성들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민수기 9장에 보면 나중에 성막을 만들고 나서는 성막위에 구름이 머물면 이스라엘은 그대로 머물러야 했고, 구름이 떠오르면 이스라엘은 이동하여야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머무르고 싶다고 머물 수도 없고,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도가 있다면 편하고 좋은 길이어야 하는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히려 길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을 따라 갔는데 물이 없는 것입니다. 양식이 없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가면 만사형통하고 무엇이나 잘되고 성공하고 축복을 받아야 할 텐데, 오히려 그 길이 고생스러운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무려 40년을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리시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불신앙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일 정탐한 일수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40년을 광야에서 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를 신명기 8:2-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3). 그렇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일부러 길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길이란 예측불가능 입니다. 우리는 장래에 대하여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모든 예측 가능한 것들을 생각하고서 미리 미리 대비를 합니다. 마치 노후안심보험 설계를 하듯이 예측을 하고서 살려고 합니다. 과거의 경험들에 비추어 보고서 장래를 대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홍수가 난 곳에서 대비를 하려고 강둑을 높였는데 그러나 집중호우로 그 강둑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예측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둑도 짓지 말고 살라는 것인가 하고 질문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인생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함을 받고 산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부자의 장래계획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눅 12:13-21). 성도란 내일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내일은 내일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너무 장래에 대하여 대비를 철저히 하게 되면 주님의 인도함을 기대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시대에는 구름기둥 불기둥이 없는데 어떻게 인도함을 받습니까? 그것은 로마서 8: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을 받게 되고(요 16:8), 오직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 성도의 인도함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수사에 대한 것 곧 결혼이나 직장이나 사업이나 이러한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든 안하든, 사업을 잘하든 못하든, 우리 안에서 얼마나 주님의 인도함을 받고 사는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얼마나 고생을 하였는지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합니다(고후 1:8).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길이 잘 열려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잘하면 나의 일들은 자동으로 잘 풀린다는 그런 세뇌를 받아왔지 않습니까? 고린도후서 1:8-9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아시아로 가려고 하였으나 마게도니아로 가게 되었고, 그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다 가게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도들도 늘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기 위하여 자신은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고난을 당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과 어려움이 도리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하였다고 고백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께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내가 계획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차질 없이 잘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그러한 생각과 계획들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해 저런 고생을 한다고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빈틈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생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못 믿어서, 인도함을 받지 못해 그렇고, 고생없이 평안하게 잘 살면 하나님을 잘 믿어서 그렇다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았습니까? 한량없이 성령을 받으셔서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까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인도하심이 어디였습니까?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았는데 얼마나 죽도록 고생을 하였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고자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줄을 끊음으로써 하나님의 언약만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18-19절을 다시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였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케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나의 해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것처럼 이렇게 모세가 출애굽 할 때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오는 것은 요셉이 유언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권고하사 반드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요셉은 그 믿음 가운데 후손들에게 출애굽을 할 때에 반드시 자신의 해골을 메고 나갈 것을 맹세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소원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약을 따라 살았습니다. 요셉의 소원은 여호수아 24:32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세겜에 요셉의 유골을 안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셉의 일을 히브리서 11:22절에서는 믿음의 일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의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해골을 위하여 명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친히 성령을 보내셔서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어디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애굽 같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광야로, 길도 없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를 언약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도함을 받고 사는 것이 참된 복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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