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25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14:1-14
성경본문내용 (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2)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3)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지라(4)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5)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6)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7)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8)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9)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데 미치니라(10)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11)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12)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3)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강설날짜 2014-11-09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너희는 가만히 있을찌니라


말씀:출애굽기 14:1-14

 

우리는 지난 시간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전쟁으로 인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할까봐 그렇게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께서 광야 길로 인도하시는 두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갔는데 앞은 바다요, 좌우편은 돌산으로 막힌 광야였습니다. 마치 독안에 든 쥐 모양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돌쳐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다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찌라”고 했습니다. 여기 2절에 나오는 ‘돌쳐서’라는 말은 ‘되돌아가서’라는 말입니다. 광야로 가든 어디로 가든 한곳으로 쭉 인도하시면 가는 줄로 알겠는데 오히려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막을 치라고 한 곳이 바로 바닷가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할찌라”고 했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아득하여 곧 나아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고 하도록 그렇게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를 통해서 바로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잡으러 오도록 유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장막을 친 곳이 바닷가이고, 그 좌우는 돌산으로 이루어진 광야였습니다. 이런 곳에 진을 치는 것 자체가 병법에 의하면 배수의 진을 친 꼴이 되는 것입니다. 병법에서 사용되는 배수의 진이란 자신들이 적에 비하여 열세이기 때문에 아예 뒤쪽에 물을 두고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여 최후의 일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곧 죽음을 각오하고 일전을 벌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최후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천해의 요새인 문경세재에 진을 치지 않고 탄금대에서 배수의 진을 쳤다가 완전히 패하고 장렬히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배수의 진이란 도망가도 죽을 것이니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그러한 배수의 진을 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인도하여 장막을 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여호와께서 전쟁을 하고 계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군사작전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12:41절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군대’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총사령관이 되셔서 지금 전쟁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전쟁의 작전에 의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닷가에 진을 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은 적을 유인하는 미끼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이미 홍해 바다가 갈라져서 건넌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홍해 바다가 갈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로가 생각하는 점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바가 나오게 됩니다.

 

먼저, 바로 왕이 생각하는 바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로 왕은 열 가지 재앙을 받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어 보내긴 했지만 그들이 단지 광야에 하나님을 섬기러 간 것이 아니라 아예 도망을 간 것임을 알게 됩니다. 5절 말씀에 보면 “혹이 백성의 도망한 것을 애굽 왕에게 고하매. 바로와 그 신하들이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가로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고 하고”라고 했습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보낸 것이 심히 안타까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들의 섬김에서 놓아 보낸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그런데 도망간 그들이 멀리 가지 못하고 근처에서 헤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것입니다. 바로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그들을 다시 잡아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바로는 즉시 군대를 비상소집 하여 그들을 다시 잡아 오고자 한 것입니다.

 

6-9절 말씀을 보면 “바로가 곧 그 병거를 갖추고 그 백성을 데리고 갈새.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발하니 장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과 그 군대가 그들의 뒤를 따라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곁 해변 그 장막 친데 미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습니다. 이에 바로는 특별 병거 육백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를 소집하였습니다. 바로는 이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 친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시 사로잡아서 자기들을 섬기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세력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전쟁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어야 하는데 세상의 세력들이 가만히 두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애굽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을 보겠습니다. 뒤로는 바다요, 좌우로는 광야 바윗길 입니다. 그리고 트여진 한 쪽으로는 애굽의 특별병거를 앞세운 바로의 군대가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진퇴양난, 사면초가라고 합니다. 이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0절을 보면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군대를 보고서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르짖음이 기도로 보입니까? 아니면 항의로 보입니까? 항의입니다. ‘아니! 하나님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다가 여기서 죽게 하려고 인도하여 내신 것입니까?’하는 항의인 것입니다. 그러한 항의를 모세에게도 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라며 항의를 하였습니다. 계속해서 1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하며 모세에게 격렬히 항의하며 따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듭니까?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나온 그들이 애굽에서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오히려 나았겠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은망덕한 행동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우리에게는 없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고서 오히려 고생이다’, ‘차라리 예수 믿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하는 생각이 없으십니까? ‘그래도 열심히 믿는다고 믿어 왔는데, 되는 일이란 없고 오히려 사방팔방이 꽉 막혀가지고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고’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습니까? 이러할 때에 우리가 기도라고 하는 것이 사실 기도가 아니라 원망인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내가 뭐 구원해 달라고 했습니까? 나는 그냥 세상이 좋은데 괜히 불러내어서 이렇게 고생시키는 것입니까?’하는 원망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3-14절을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자신을 원망하는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적 결단이나 애씀이나 달음박질하거나 원하거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두려워 떨며 하나님과 자신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만히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두려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출애굽의 역사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는 역사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음을 믿었습니다. 모세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만약 모세가 40세에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내어 이런 곳에 왔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아마 자신의 힘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힘쓰고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앞에서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적을 막아내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40세에 미디안 광야로 이끌어 내시고 80세가 되도록 양치는 목동으로 가만히 있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모세는 자기 스스로 가만히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열 가지 재앙을 거치면서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원망하는 백성에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 있어라.”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7:47절을 보면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 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쟁이 이미 창세기 3:15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전쟁의 선포입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의 전쟁입니다. 뱀의 후손은 이 세상의 권세 잡은 마귀의 세력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언약의 백성입니다. 뱀의 후손은 가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아벨과 같은 자입니다. 이러한 약속의 백성과 그를 헤치려는 자의 싸움이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이 약속을 받은 자와 약속이 없는 자와의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싸움을 통하여 결국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들을 잡으려고 많은 병거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오히려 그들이 죽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갇혀 꼼짝없이 죽을 것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바다에 길이 나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이 바로 여호와의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이 궁극적으로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몰아간 세상의 모든 세력이 이제는 승리라고 외치면서 십자가에서 죽여 버렸다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전에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사로 잡아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전쟁방식을 바로의 추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홍해 건넘에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의 군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간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간의 모습이 다 들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지금 친히 이 전쟁을 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일부러 사면초가에 몰아넣으시고 애굽으로 하여금 공격하게 하시고서는 이스라엘 백성은 구원하시고 애굽의 군대는 수장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심은 결국 하나님의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추격을 보고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애굽에서 그들을 섬기며 사는 것이 좋았을 텐데, 이게 뭐냐고 소리치는 그러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일을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심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려면 가만히 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스가랴 2:13절 말씀을 보면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일어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일하심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혈기가 있기에 잠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혈기란 우리가 혈기를 부린다고 하는 그러한 혈기라기보다는 육체를 가진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 한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잠잠히 있을 수 있습니까? 잠잠히 있으라고 하는 것은 죽은 자에게나 가능한 것입니다. 산 자는 끊임없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무언가 든든한 보호막을 만들어 놓아야 안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하니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꼭 이러한 곳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정말 손발 다 들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한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그러하기에 가만히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기다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이란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을 믿고서 잠잠히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펄펄 살아서 뛰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는 결코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무언가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없는데 어떻게 구원이 이루어지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범죄 한 우리 인생의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 그리고 비록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하나님께 해드리는 일이 있어야 자신이 떳떳해 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우리 안에 박혀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가만히 있으면서 주님의 구원을 보아야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믿음이라는 것이 잠잠히 있으면 믿음이 없는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4:5절 말씀에 보면 “일을 아니 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자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두 일하지 말자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변변하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행위를 보시지 않으실까요? 그러므로 구원이란 하나님의 일하심을 덧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하지도 않았고 애굽이 좋았던 사람들인데 어느 날 불려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사방이 막혔다고 아우성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신실하게 이루어 오심으로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잠잠해 지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찬양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4:1-8절 말씀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날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히 12:2). 그리하여 우리의 구원이신 우리 주님을 오직 찬양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260 [출애굽기 6장] 너희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찌라 file 출 6:2-7:7 손재호 2014-06-29 4769
259 [출애굽기 7장]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신 하나님 file 출 7:8-13 손재호 2014-07-06 3680
258 [출애굽기 7장] 첫번째 재앙-물이 피가 되다 file 출 7:14-25 손재호 2014-07-13 3584
257 [출애굽기 8장] 두번째 재앙-개구리 재앙 file 출 8:1-15 손재호 2014-07-20 3547
256 [출애굽기 8장] 세 번째 재앙-이 재앙 file 출 8:16-19 손재호 2014-07-27 2619
255 [출애굽기 8장] 네번째 재앙-파리 재앙 file 출 8:20-32 손재호 2014-08-03 2996
254 [출애굽기 9장] 다섯 번째 재앙-생축의 죽음 file 출 9:1-7 손재호 2014-08-10 3127
253 [출애굽기 9장] 여섯 번째 재앙-독종 재앙 file 출 9:8-12 손재호 2014-08-17 2600
252 [출애굽기 9장] 일곱 번째 재앙-우박 재앙 file 출 9:13-35 손재호 2014-08-24 2805
251 [출애굽기 10장] 여덟 번째 재앙-메뚜기 재앙 1 file 출 10:1-20 손재호 2014-08-31 3311
250 [출애굽기 10장] 아홉 번째 재앙-흑암 재앙 file 출 10:21-29 손재호 2014-09-07 3011
249 [출애굽기 11장] 마지막 재앙에 대한 경고 file 출 11:1-10 손재호 2014-09-14 3195
248 [출애굽기 12장] 유월절에 관한 규례 file 출 12:1-14 손재호 2014-09-21 2983
247 [출애굽기 12장] 무교절에 관한 규례 file 출 12:15-20 손재호 2014-09-28 2570
246 [출애굽기 12장]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file 출 12:21-28 손재호 2014-10-05 2149
245 [출애굽기 12장] 열번째 재앙-장자 재앙 1 file 출 12:29-36 손재호 2014-10-12 3192
244 [출애굽기 12장] 여호와의 군대가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file 출 12:37-51 손재호 2014-10-19 2594
243 [출애굽기 13장] 초태생은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file 출 13:1-16 손재호 2014-10-26 3434
242 [출애굽기 13장]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 file 출 13:17-22 손재호 2014-11-02 3534
» [출애굽기 14장] 너희는 가만히 있을찌니라 file 출 14:1-14 손재호 2014-11-09 325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