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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벧후 3:8-10
성경본문내용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강설날짜 2012-05-13
동영상 http://flvs.daum.net/flvPlayer.swf?vid=CLSrV2V8Rp8$
모바일동영상 http://m.tvpot.daum.net/clip/ClipView.tv?clipid=41752880

2012년 베드로후서 공부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라

 

말씀:베드로후서 3:8-10 

 

   우리는 지난 시간에 3:1-7절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이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된 사실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차면 이 세상은 불살라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사실을 믿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믿기에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영원한 것처럼 여기고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보거나 설교를 들을 때는 잠시 잠간이나마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고 주님의 약속의 세계만이 영원하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금방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여전히 세상이 전부인냥, 영원할 것인냥 이 세상에 코를 박고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오늘날 우리의 실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지난 시간에 계속되는 말씀으로 주님의 재림에 관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이 세상이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살라진다고 말씀하신 후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약속이 더디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십니다(8). 그리고 때가 되면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임한다고 합니다(10).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 것을 권면합니다. 초대교회 때 여러 가지 핍박으로 흩어진 성도들에게 가장 큰 위로와 소망을 주는 것은 주님의 재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간이 자꾸만 길어지자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는 말씀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이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사람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골로새서 3:1-5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위엣 것을 찾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는 이 말씀 앞에서 땅의 것만 찾는 것이 탐심의 우상숭배인줄 알고 위엣 것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는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골 3:3).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성도가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위로와 소망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만이 오늘의 이 말씀이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빨리 오시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이 시간 우리는 그 두 가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시간이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가지고 따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분류하는 모든 시간의 중심을 자기에게 두는 것입니다. 무슨 역사적인 사건을 기억하여도 나를 중심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나와 상관이 없는 시간과 공간과 사건들은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물만이 아니라 시간도 나의 때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때를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고 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 3:1). 그런데 여기서 때라는 것도 나의 때가 아니라 주님의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년이 지났다고 이천년이 지났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만물이 다 주님의 때에 맞추어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부지런히 살핀 때도 그리스도의 때였습니다. 그래서 때가 차매 주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도 주님의 시간표대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한 것이 잠시 잠간이라도 있다면 그 시간은 영원하신 주님과 연결된 시간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렸다든지 우리가 무엇을 하였다는 것은 주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시편 90:1-4절을 보면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천지 창조 이전부터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이 천년을 산다고 하여도 주님 앞에서는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므두셀라가 969세입니다. 창세기 5장에 보면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에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창 5:25-27). 969년 간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겠습니까? 우리의 짧은 인생을 소설로 쓰라고 하여도 몇 권을 쓸 수 있을 텐데 그 천년 동안 수백 명의 아이를 낳았을 텐데 겨우 아이 하나 이름만 기록이 됩니다. 그 자녀를 기록해 놓은 것도 결국 노아의 계보를 연결하고 그 족보가 그리스도에게 연결되는 것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므두셀라는 삶이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점이라도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이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왜 나의 때에 맞추어 주님이 일하여 주시지 않는가 하며 항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림의 때만이 아니라 모든 때를 나를 중심으로 보지 말고 그리스도의 때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약속 곧 주님께서 올라간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오리라는 그 약속의 말씀이 더디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여기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인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하나님의 때가 더디다고 여긴 사람입니다. 어떻게 세상에서 악한 자가 형통하고 의롭게 사는 자가 고난을 당하는가 하는 문제를 고민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빨리 의로운 심판을 집행하여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하박국 2:3-4절을 보면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묵시는 정한 때가 있는 것입니다. 묵시란 우리의 시간개념으로 측량하거나 추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응할 것인데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비록 더딜찌라도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란 내가 무엇을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의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약속이란 우리가 이성적으로 수납하고 믿을 만한 내용이 아니기에 우리의 능력으로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란 곧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는 오늘의 이 말씀이 참으로 기쁨의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두 번째 이유는 주의 택한 백성들이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9b절을 다시 보면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오래 참으심’이란 누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오래 참으신다는 말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대하여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기를 하나님이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믿지 않아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까?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란 바로 베드로전서 1:2절에서 말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 자들”입니다. 곧 창세전에 미리 예정된 자들입니다. 이들이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 자를 성령이 거룩하게 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한 자들이 다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기까지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주님께서 재림하시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가 곧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가 다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로 돌아오는 미리 아신 자들은 어떻게 돌아오는 것입니까? 복음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에 주신 말씀이신데 지금도 바로 어제의 일처럼 복음이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있었던 주님의 그 한 말씀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여 우리에게 복음이 증거 되고 우리가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기까지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곧 저와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39). 그 말씀을 오늘도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기에 아직 재림이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 자들을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거룩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입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이 땅에 주의 택한 백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주님의 택한 백성들이 다 돌아오게 되면 곧 때가 차면 지체 없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오시는 것입니까? 10절을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42-44절에 보면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도적처럼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다시 오시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됩니까? 10절을 다시 보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 보이는 하늘이 종이축이 말리듯이 사라지고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드러날 뿐 아니라 불에 살라질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12-17절을 보면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양의 진노가 이렇게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들을 믿으십니까? 아니 믿어지십니까? 이 말씀들이 믿어지는 자는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이 믿어지지 않는 자는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종말과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그런 희망과 가능성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다 반대한다고 하여도 주님의 약속은 반듯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성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심판이 지체하지 않고 이루어진 것처럼 이 마지막 심판도 지체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주님이 재림하지 않는 것은 8-9절에서 본대로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찾으시기 까지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와야 할 자들 중에 저와 여러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이미 돌아온 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전서 4: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라고 했습니다. 교회로 모인 성도가 하나님의 집인데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을 받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심판의 기준은 복음을 순종치 아니한 것입니다. 교회란 복음을 순종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산다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교회라고 말하는 곳에서 무엇을 바라보고 추구하고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교회가 제시하는 복음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의 영광과 세상의 권세가 주어진다고 오늘도 얼마나 많은 곳에서 외치고 있고 그것을 좋아하면서 따라가고 있습니까? 그것은 마귀가 준다고 하는 내용들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세상에서 고난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2-14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을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듯이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불 시험이란 고난입니다.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기에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때에 즉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이며, 영광의 영이 함께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함께 하는 자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기를 잘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고난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언가 잘 못 믿어서 복을 받지 못하고 저렇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난을 받은 것은 잘못 믿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이 세상이 얼마나 복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지가 증거 되는 현장이 성도가 고난 받는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먼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예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이 세상의 심판이야 어떠하겠습니까?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주님의 재림을 믿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때가 차면 주님께서 도적같이 임할 것을 소망하며 깨어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의 영광에 참예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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