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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16:31-36
성경본문내용 (31)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32)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33)또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34)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35)이스라엘 자손이 사람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36)오멜은 에바 십분의 일이더라
강설날짜 2014-12-21

2014년 출애굽기 공부


만나를 증거판 앞에 두라


말씀:출애굽기 16:31-36

 

우리는 지난 두 주간에 걸쳐서 매일 만나를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과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러 나가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만나를 오멜에 담아 증거판 앞에 두어 후손들로 하여금 교훈을 삼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만나를 증거판 앞에 두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이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31-32절을 보면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만나를 오멜에 채워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오멜은 고체량의 단위로 오늘 본문 36절에 보면 오멜은 에바의 십분의 일이었습니다. 한 에바가 22리터니까 한 오멜은 2.2리터가 됩니다. 한 오멜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에서 하루 분량의 양식이었습니다(출 16:16). 하여튼 33절에 보면 이에 모세는 아론에게 이르기를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34절에 보면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증거판 앞에 두어서 간수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원문에 보면 ‘판’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맥상 증거판 앞에 두라고 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와께서 왜 만나 한 오멜을 증거판 앞에 간수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32절을 다시 보면 “너희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먹인 양식을 그 후손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증거판 앞에 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증거판 앞에 두라고 하는 것은 단지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은 것이 만나라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만이 아닙니다. 그렇게 40년 동안 만나를 먹게 하신 그 만나 속에 선조들의 불신과 반역의 증거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9:3-4절에 보면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비석들이 있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증거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모두 하나님을 반역한 증거들 입니다. 두 돌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만 간략히 보면 처음 받은 돌판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깨어지고 두 번째 돌판을 다시 만들어 보관하게 된 것입니다(출 32장 34장). 그러니 이것도 반역의 증거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민수기 16-17장에 보면 단순히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 반역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 안의 이 세 가지 물건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물 위에 언약궤 뚜껑을 덮어 가립니다. 그리고 그 뚜껑에 피를 바름으로 속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궤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만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스라엘의 불신과 반역을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풍성함을 함께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지난 두 번에 걸쳐서 일용할 양식과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만나와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만을 거두라고 하셨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더러는 많이 거두어 남겨둠으로 다음날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습니다. 그리고 제 육일에는 이틀 분의 양식을 거두고 안식일에는 거두러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도 더러는 거두러 나갔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반역의 행위였습니다. 이러한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40년 광야생활 동안 계속하여 만나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것이 함께 증거 되어지는 것이 바로 만나 한 호멜을 항아리에 담아 증거판 앞에 두라고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만나를 신약을 중심으로 우리의 영원한 양식과 비교하여 보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무슨 양식을 위하여 살고 있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고 살았지만 이 만나를 먹고 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명기 8:2-3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기초해서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 광야에서 만나를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 하나님의 시험에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계속해서 만나만 있으면 살겠다고 하는 것이 드러나는 장소가 바로 광야였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죽겠다는 심정이 듭니까? 날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하루 종일 밥을 먹지 못한 주림보다 더한 주림이 있습니까? 솔직히 그렇지 않지요. 말씀을 듣지 않아도 잘 삽니다. 이것은 우리가 병이 든 증거입니다. 우리가 밥을 먹지 않아도 늘 배가 더부룩하게 부르면 그것은 정상이 아니잖아요. 위장에 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밥맛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밥을 먹지 못하면 점점 건강이 악화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아도 멀쩡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 한 달, 아니 일 년, 몇 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아도 멀쩡히 잘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영적으로 깊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먹어도 죽는 양식이 없으면 걱정이 태산입니다. 그런데 먹고 영원히 사는 양식을 위하여서는 걱정이 없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도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애를 쓰고 살려고 하는지 자기 자신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애를 씁니까? 아니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애를 씁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6:26-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사건 이후에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표적이란 요나의 표적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을 통해 영생을 얻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먹고 배부르기 위해 따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배부른 그러한 음식은 썩는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지만 그러나 그 떡을 먹었다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 곧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썩지 않는 양식이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장에서 증거하시는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가 썩지 않는 양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6:53-58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양식을 어떻게 먹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6:27-29절에 보면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하고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아니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27). 그때 무리들이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하고 물었습니다(28). 그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29).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이 우리로 하여금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임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단지 그날 먹을 양식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만나를 거두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야함을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신 참된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24-25절을 보면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창조주께서는 천지의 주재자로써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분을 의지하는 것이 참으로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하루하루의 양식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이방인이나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31-32절을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구하는 것은 이방인이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방인이 구하는 것을 구하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단어가 “위에 있는 매일의 양식”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늘의 양식이며, 온전한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실 때 제자들이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여 와서 잡수시라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의 먹을 양식은 따로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4:34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양식은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음식을 갖다 드렸는가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날마다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하도록 있게 하는 양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입니다. 말씀이 살과 피를 입고 오셔서 그 살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의 양식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에게 일용할 양식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모인 것입니다. 날마다 떡을 뗀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식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님의 죽으심을 다시 오실 그날까지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밥 먹을 때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진정한 양식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를 중심으로 진을 치고 언약궤를 중심으로 행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에 늘 언약궤가 놓여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궤 안에 만나 항아리를 둠을 통하여 무엇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까? 너희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살지 말고 썩지 아니할 양식을 위하여 살라는 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나를 거두어 다음날까지 남겨두었더니 썩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썩지 않았습니다. 주님 안에 살지 않는 모든 것들은 결국 썩어질 것들입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쓴들 썩는 양식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심고 있습니까? 무엇을 기대하면서 살고 있습니까? 썩어질 것을 심으면 썩어질 것을 거둘 것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위하여 심게 되면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삶을 증거 해 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심는 것이 육체를 따라 심는 것인가, 성령을 따라 심는 것인가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6-10절을 보면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오해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헌금을 많이 하면 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금을 많이 하면 할수록 가난하여지는 것이지 어떻게 부자가 됩니까? 그러므로 헌금을 많이 하여 부자가 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주는 것 자체가 이미 복입니다.

 

그러면 심는 대로 거둔다고 하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거두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거두게 됩니다. 돈을 벌려면 투자를 하여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정말 애를 써서 잘해야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거두게 됩니다. 운동을 하면 몸이 건강해지듯이 육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하는 만큼의 결실을 얻게 됩니다. 농부가 봄과 여름에 부지런히 땀흘려 씨를 뿌리고 가꾸면 가을에 풍성히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배짱이처럼 놀았으면 거둘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거두기는 거두는데 무엇을 거둔다는 것입니까? 썩어진 것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즉 성령의 뜻을 따라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데 썩어질 것을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서 영생을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인 것입니다. 육은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각양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은 목사 잘 섬기면 복 받는다는 말이 아니라 영생의 말씀에 관심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의 문맥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따라 심는 자는 그 열매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따라 심는 경우는 몇 달 만에, 아니 몇 일 만에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심는 자들은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피곤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심는 길은 좁은 길이요, 오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낙심도 되고 피곤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농부가 오래 기다려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기회 있는 대로 성령을 따라 믿음의 가정에 착한 일을 하며, 성령을 따라 심을 때 반드시 거두게 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우리의 거울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썩어질 것들을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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