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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출 23:1-9
성경본문내용 (1)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3)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4)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5)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6)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7)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8)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9)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
강설날짜 2015-04-05

2015년 출애굽기 공부


언약법전(6)-공정한 재판을 위한 규례


말씀:출애굽기 23:1-9

 

오늘도 우리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에게 주신 언약법전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규례입니다. 이 규례에는 다섯 가지 금지 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허망할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재판의 고귀함에 대한 규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와 같은 금지 사항들을 준수함으로써 법정의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거룩한 백성이며, 재판은 곧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 받아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재판에 대해서 금지하는 사항들의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허망한 풍설’이란 ‘헛된 소문’, ‘거짓된 소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근거가 없는 헛된 소문을 퍼뜨려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언약의 공동체에서 잘못된 평판이 퍼뜨려지게 되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잘못된 증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억울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악인과 연합하지 말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보면 ‘악한 자에게 너희 손을 건내지 말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는 말은 없는 사실을 꾸며 상대방을 함정에 빠뜨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 보면 이 말씀을 의역을 해서 “죄 있는 편에 합세하여 권세 있는 자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지 말아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악인의 근거 없는 헛소문만을 듣고 그 소문에 동조하여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권세 잡은 자들과 손을 잡고 법정에서 거짓 증거를 하는 경우와 악인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로인해서 억울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함을 받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멸시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근거 없는 거짓고소를 당하는 핍박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헛소문이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평판에 대하여 분별없이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복음을 위하여 억울한 비방이나 비난을 받는 것은 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며,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1-12절을 보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2:20-21절을 보면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참으며, 오직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본을 보여 주신 우리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다 악한 일을 한다고 해서 너희도 악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릅니다. 그러나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맹점이요, 한계입니다. 언약공동체는 다수결의 원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아무리 다수라고 하더라도 악을 행하면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다수를 따르지 않고 소신대로 소수의 무리에 남는 것은 큰 결단이 요구가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리를 위해서는 이런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공동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른다고 해서 악한 길을 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16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세를 대적하는 일에 고라 자손과 다단과 아비람이 당을 만들어 일어났습니다. 사사기 19장-21장에 보면 사사시대에는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풍조는 심각한 비극을 초래하였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멸문지화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15장에 보면 다윗 당시 압살롬이 반역의 세력을 결집하여 많은 백성들이 동조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수의 의견에 대해서 말씀으로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다수가 행하는 악과 불의에 동참하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일에 인생들 모두가 따른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악한 일에 참여한 것입니다. 이 길이 멸망의 길입니다.

 

또한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이 다 거짓 증언을 한다고 해서 너희 자신도 함께 거짓 증언을 하여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증언을 할 때 군중 심리에 휩쓸려 거짓 증거를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언약의 백성들은 다수를 따라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때도 다수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비난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찌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법정에서 거짓 증언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생명까지 잃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 이스라엘 왕국 아합 왕 때 나봇이 여러 무리들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돌에 맞아 죽은 경우입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그것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열조의 유업을 다른 사람에 팔지 말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거절하였습니다. 이에 아합이 속이 상하여 밥도 먹지 않고 드러누워 버렸습니다. 이에 그의 아내 이세벨이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나봇이 아합 왕을 저주하였다고 모함하였습니다. 이에 무리들이 나봇을 성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라’는 말은 편파적으로 두둔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곧 재판을 할 때 무조건 가난한 사람을 편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는 가난한 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무조건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정에서는 빈부에 관계없이 반드시 공의가 실현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에 대한 자비를 베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공적 법을 수행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가난하다고 하여 무조건 편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빈부를 떠나 공의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난한 자의 송사에 대하여 가난하고 힘이 없다고 해서 멸시하여 공평치 않게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6절을 보면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규례는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이 불공정한 재판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공동체로서 가난한 이웃에 대하여 자비를 베풀 뿐만 아니라 정직함과 의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의 모든 방면에 참여하여 복음의 지혜로 행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4-5절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찌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찌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원수란 법정에서의 소송 상대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규례는 비록 원수일지라도 그들이 곤궁에 처했을 때에는 도와주는 것이 언약 백성으로서의 마땅한 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려주라고 합니다. 또한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려주고 나귀를 일으켜 세워 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의 백성들로서 원수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들의 길 잃은 소나 나귀와 짐을 못 이겨 쓰러진 나귀에 대해서도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의 랍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3-44).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써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날 때 그 사람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원수나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면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재판관의 공정한 재판을 명시한 규례입니다. 즉 재판관은 돈과 권력에 결탁하여 거짓 재판을 하지 말며, 실수하여 무고한 자를 죽이지 않도록 지혜롭게 판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은 이웃에 대하여 악한 것을 도모하며 거짓으로 모함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19:16절을 보면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에서 공의로 판단하지 못하므로 무고한 생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35절에서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랴가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면 그 피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고소로 악한 일을 꾸미며, 바른 법집행을 하지 않으므로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그런 악한 일을 결코 의롭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공의로 판단하십니다.

 

8절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적 직무를 수행하는 자들에게 재판을 할 때에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일반적으로 선물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이 법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을 때에는 선물의 의미가 아니고 뇌물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한다고 말했습니다. 전도서 7:7절을 보면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탐학’이란 부정한 소득을 말하는 것으로 뇌물을 의미합니다. 뇌물은 지혜자를 우매하게 만들고 사람의 명철을 흐리게 합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늘 목격하고 있습니다. 많은 고위 공직자들과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고 우매하게 된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뇌물로 인해 그 인생이 부끄러움을 당하고 사회에서 매장되는 많은 지도층 인사들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뇌물은 그 위력을 맛본 자에게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만드는 요술방망이 같습니다(잠 17:8). 뇌물의 생리에 익숙한 자는 하나님조차 자기편으로 매수하려고 뇌물을 씁니다. 사도행전 8:18-20절을 보면 시몬이 성령을 돈으로 사고자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헌금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의 불의를 눈감아 주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뇌물을 받지 않으시며(대하 19:7), 뇌물 받는 자를 저주하시는 분이십니다(신 27:25). 그러므로 언약 백성은 뇌물 받는 일을 두렵게 여겨야 합니다. 보이는 뇌물에 현혹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법과 관련을 가지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그것이 뇌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적 직무를 수행하는 재판관이 세상에서 공의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은 이러한 것에서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뇌물로 인한 부끄러운 모습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도 연루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정치와 법에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적은 수가 아닐 것입니다. 국회의원들 중에도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언약의 백성들이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재판이나 법에 관여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의를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하며, 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인 정치인과 법에 참여하는 자들이 뇌물을 받고 불의를 행한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 사회는 더욱 불의가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언약 공동체인 교회가 이렇게 될 때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으로부터 밟히게 될 것입니다.

 

아모스 5:24절에 보면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모스 선지자로 하여금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약 공동체에는 하나님의 공법이 물 같이 흐르고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언약 공동체를 통해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사도행전 24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벨렉스 총독에게 가서 심문을 받게 되었을 때 벨릭스는 바울 사도를 자주 불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영적 소원이 있어서가 아니라 바울로부터 돈을 받을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4:24-26절을 보면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벨릭스의 이런 의도에 결코 따르지 않고 의를 행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어떤 희생이 따른다고 할찌라도 의를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나그네를 학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방 나그네란 히브리 사회에 거주하는 이방인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기 때문에 나그네의 마음을 너희가 잘 알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2:21절에 보면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방 나그네를 압제 하지 말라는 말은 포괄적인 규정이라면 오늘 본문 9절에서는 재판과 관련하여 법정에서 이방인에게 일방적으로 부당한 판결을 내림으로 학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재판에서 이방인에 대한 압제와 학대를 엄격히 금지한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살던 자들을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땅에서 사백년이 넘도록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나그네의 부당한 대우와 아픔을 잘 알고 있습니다. 9절에서 ‘나그네의 정경’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나그네의 감정’이라는 뜻으로 나그네가 타국이나 타향에서 겪는 서러움과 외로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누구보다도 나그네의 서러움과 외로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이방 나그네들에게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그네로 살다가 구원함을 받은 언약 백성으로써의 마땅함인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서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써 우리의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증거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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