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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딤전 1:1-2
성경본문내용 (1)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2)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강설날짜 2013-10-06

2013년 디모데전서 공부


바울 사도의 인사


말씀:디모데전서 1:1-2
 
오늘부터 우리는 디모데전서를 공부하고자 합니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디모데는 당시 어린나이에 에베소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 사도가 2차와 3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개척한 교회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은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날마다 강론하였습니다. 이런 바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에베소교회가 복음 위에 굳게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당시 에베소교회에는 거짓 교사들로 인해 복음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에베소교회를 위해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로 하여금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딤전 1:3-4).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지침들(2장, 4-6장)과 장로와 집사와 같은 교회의 직분자의 자격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3장). 바울은 이를 통해서 에베소교회가 바르게 세워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디모데후서와 디도서와 함께 목회서신이라고 불리웁니다. 디모데전후서가 목회서신으로 불리우는 것은 바울 사도가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교회에서의 사역을 말하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전후서는 단순한 목회적인 내용이 아니라 역시 성경으로서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디모데와 에베소교회에 대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의 형태가 한통의 편지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한꺼번에 다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편지를 읽을 때 어떻게 읽습니까? 한꺼번에 다 읽잖아요. 이와 같이 한번에 다 읽어야 이 편지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한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점을 염두에 두면서 편의상 여러 번에 나누어서 이 서신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편지의 서문인 인사말입니다. 1-2절을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보면 서신의 특징인 발신자와 수신자가 함께 나옵니다. 발신자는 바울 사도이고, 수신자는 그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입니다. 그런데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면서 덧붙이는 말을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이라고 합니다. 이 말에 보면 바울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청난 수식어를 덧붙여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울은 열두 사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서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을 우리는 다른 서신서들에서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직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았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권위로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통해서 디모데가 이 말씀을 엄중히 받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란 무엇입니까? 사도란? 우리가 이미 배워서 잘 알고 있듯이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원래 사도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았기에 사도들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란 자기의 사사로운 뜻과 비전과 계획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를 배척하는 것은 곧 그의 보내신 자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고, 사도를 영접하는 것은 곧 그를 보내신 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작은 소자에게 대접 한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한 것이고, 대접하지 아니한 것은 곧 주님께 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서신은 철저하게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사도가 없습니다. 사도의 직임은 한시적인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기까지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하나님의 계시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사도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가 없다는 것은 주님으로부터 세움을 입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의 권위로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 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자는 사도들과 같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에 메이는 것입니다. 곧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는 곳까지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느니, 기도 응답을 받았다느니 하면서 예언을 하며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특히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나 교회를 혼란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무슨 그럴듯한 말을 할지라도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오늘날 말씀의 증거자들은 오직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단이요, 마귀적인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사도직을 명령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도 바울의 호칭을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1절에서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리 구주 하면 무슨 이름이 먼저 나옵니까?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곧 예수님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먼저 나오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구주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그의 아들이 어떻게 이루어 내신 것입니까?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죄인들은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죄인이 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의로운 자만이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죄인으로서는 결코 하나님과 함께 살아 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지은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추방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죄인들은 스스로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 13:20-27절에 보면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 떼, 네 아름다운 양떼는 어디 있느뇨.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수령으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의 고통에 잡힘이 구로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찐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이 흩으리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는 네 응득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연고라. 그러므로 내가 네 치마를 네 얼굴에까지 들춰서 네 수치를 드러내리라.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찐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악에 익숙한 유다 백성들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란 구스인이 그 피부색을,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없듯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곧 범죄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한 우리 인생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모르고서는 아무리 인간들끼리 서로 잘해 보자고 해도 그것은 결국 허사인 것입니다.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잡았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바람이요, 헛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경험들을 해 보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가지고 싶고 밤낮 소망하던 것들도 막상 손에 잡게 되면 그것은 다 허무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은 그 허무함을 또 다른 허무한 것으로 메우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이 결국은 바람을 잡는 것임을 아는 것이 복음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인생의 모든 노력과 애씀을 허무하다고 보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람들마다 자기들의 소망을 따로 만들어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소망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인 것입니다. 다른 이름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는 것입니까? 이미 바울은 지상 최고의 종교인 유대인 중의 유대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유대교가 결국 구주 하나님과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배척하는가를 절감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죽이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행 9장). 지금까지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은 것을 옳다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에 더욱 열심을 내어서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야 알았습니다. 도리어 그것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바울에게 우리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빛으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를 빛으로 사로잡으셨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아 바울은 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고,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복음 진리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후 비로소 그는 이제까지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빌립보서 3:4-9절을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오직 주님만을 소망으로 삼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사말에는 그의 가장 큰 관심사를 가지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다시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인사말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단연 건강입니다. 옛날 우리가 먹고 살기 힘들 때는 ‘진지 잡수셨습니까?’가 인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들 먹고 살만하니 건강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의 인사말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면 그것은 우리도 아직 소망을 주님께 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굉장한 신앙적인 핍박을 받고 있기에 오직 소망이 주님께 두고 사는 상황이라면 디모데전서 1:1절 이 한 절만의 말씀으로도 우리는 넘치는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딤전 1:1). 그러나 우리의 소망이 전부 땅에 있는 것이고, 그래서 주님과 상관이 없기에 이러한 말씀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도리어 울리는 꽹과리가 되어 우리에게서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에게는 자기의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고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다른 소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우리 구주 하나님과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이라고 자신을 거창하게 소개하면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편지를 받는 디모데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요, 동역자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하던 자였습니다. 디모데전서 1:3-4절에 보면 바울은 마케도냐로 가면서 이런 그를 에베소에 머물게 한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디모데로 하여금 그 곳의 교회들을 돌아보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디모데에 대하여서는 바울 사도가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까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3-5절을 보면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밤낮 기도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디모데를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디모데 안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인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의 믿음의 뿌리가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그 믿음이 디모데 속에도 있는 줄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조모 로이스까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디모데를 오늘 본문 2절에서 “믿음 안에서 참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믿음 안에서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왜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한 것입니까? 그것은 ‘믿음 안에서’라는 말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을 본받으라고까지 합니다. 빌립보서 3:17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자기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자로서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러한 믿음의 아버지 같은 분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인사하는 이런 말을 말로서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서 말하는 믿음의 사람을 곁에 두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저희 교회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앞으로 우리가 나이만 드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에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인사말을 하면서 마무리 인사말로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받기를 원하고 있습니까? 이것저것 다 치우고 건강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니면 현실 문제를 좀 해결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많은 물질을 달라고, 좋은 성적을 달라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주님께서 우리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절을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정말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아는 자라면, 물론 이것은 성령이 임하셔야만 되는 문제입니다만 정말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인줄 아는 자라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보게 된 자는 다른 것을 구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은혜 외에는, 우리 주님의 긍휼 외에는 바라 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긍휼이 있는 자에게는 그 결과로 평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아직도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 메여 사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정말로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이 바울의 인사 말씀이 제대로 우리에게 실감나게 받아들여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긍휼과 주님의 평강을 구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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