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94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16:1-16
성경본문내용 (1)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생산치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2)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3)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그 여종 애굽 사람 하갈을 가져 그 남편 아브람에게 첩으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십년후이었더라(4)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잉태하매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그 여주인을 멸시한지라(5)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의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잉태함을 깨닫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6)아브람이 사래에게 이르되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으니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래의 앞에서 도망하였더라(7)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8)가로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가로되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하나이다(9)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10)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11)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12)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지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13)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14)이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라 불렀으며 그것이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 있더라(15)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의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강설날짜 2008-10-12

2008년 10월 12일 설교


아브람과 이스마엘


말씀:창세기 16:1-16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손과 땅에 대해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땅에 대한 약속은 기간을 정하여 주셨는데, 후손에 대한 약속은 기한이 없습니다. 이것은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실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기다릴 줄 모르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사건이 이스마엘 사건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다릴 줄 모르는 자들입니까? 그러므로 믿음이란 기다림의 다른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사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 반드시 이루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알지만 막상 기다림의 문제에 부닥치면 우리도 별수 없이 아브람과 사래처럼 약속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마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말씀의 본의가 무엇인지 배우고, 우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우리가 이미 배운 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언약 체결식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계획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15:13-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친히 자손 언약과 땅 언약을 체결해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위대한 사실을 땅 위에 증거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수행해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16장 말씀은 아브람이 이 언약을 믿고 그 언약을 믿음으로 수행해 나가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을 쓰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곧 아브람이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여 여종 하갈을 취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는 사건입니다. 이 일은 16:3절에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거한지 십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 때 아브람의 나이는 85세 였고, 사래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에 거한지 십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자 아브람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였습니다. 16:2절에 보면 그것은 자신의 여종 중에서 애굽 사람 하갈이라는 종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어 그로 자식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해 주셨지만 현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일반적인 법칙에 의해서는 그에게 자식이 없었습니다. 아브람은 한 때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루어 나가려면 양자를 얻어서라도 그 일을 이루어가고자 한 적이 있습니다. 15: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나타나셨을 때 “주 여호와여!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는 15: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때 아브람은 ‘내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되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이 큰 사명을 이루어 나가시는 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이 사래의 제안을 수용했습니다.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몸에서 날자가 후사라고 하셨기 때문에 꼭 사래의 몸에서 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래는 자신의 여종에게서 자식을 얻으면 그를 후사로 잇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보면 정실이 후사가 없을 때 첩을 두거나 씨받이를 통해 후사를 이었습니다. 아브람 당시에도 일부다처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래의 이런 제안은 그 당시의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람도 그럴 수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특히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식을 낳아 후사를 이어야 할 신성한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금 자신에게 보여주신 큰 일에 대해서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 없지 않느냐?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래가 먼저 제안하고 나오니 이것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도 그렇게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닐까 덮어놓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아주 무서운 발상이요, 위험한 태도입니다. 죄를 짓기 쉬운 태도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의적으로 짐작하는 일입니다. 부패한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결코 거룩한 하나님의 뜻을 스스로 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기의 입장에서 종교적 사고를 하며 기도하며 행동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앙이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고 자긍합니다.

아브람과 사래 역시 독자 이삭을 얻는 과정에서 그런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아브람은 당시 제도 가운데서 생각할 수 있는 일반적인 상태에 머물지 않고 그 이상으로 진전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경영이시니까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재가하시는지 아니하시는지 여쭈어보는 태도를 취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했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신령하게 사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요, 절대적으로 해야 할 마땅한 태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의와 자기가 그렇게 판단하게 한 동기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려고 하시는 풍성한 계시의 내용에 반드시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사래의 제안이 왔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이시려고 하시는 계시의 내용에 부합한지 아니한지를 비추어 보아서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의 뜻에 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자기의 생각과 관념대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할 때 자기 양심에만 의지한다면 그것은 캄캄한데 머무는 것입니다. 사람이 양심에 의지하여 어둠속에서 약간의 의를 행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위치나 그런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양심이란 그의 의에 대한 인식의 정도 안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자기가 당연히 했어야 할 것을 안했더라도 자신이 모르고 있는 경우에는 하등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기 양심에 기초한 의는 정당한 척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내자는 되어도 최종의 심판의 척도는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마땅히 하나님께 그 뜻을 물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사래가 이렇게 이렇게 말하는데 이 일이 사람의 생각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 나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인지요?’하고 물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이 이 일을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일입니다. 아브람은 자기 나름대로의 인본적인 신앙심과 충성심으로 하나님께 과잉 충성을 한 것입니다. 자기의 뜻이 하나님의 뜻 인양 착각하고 행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앙이요, 과잉 충성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기보다 주변 환경과 자신의 형편을 바라보고 사래의 제안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인 냥 행한 것입니다.  

4-6절에 보면 결국 아브람 가정은 이 문제로 가정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하갈이 잉태하자 교만하여 사래를 무시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래는 아브람에게 바가지를 긁었습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자 사래는 하갈을 구박하여 내쫓아 버렸습니다. 7-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친히 감당해 주셨지만 아브람은 이 문제로 많은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결국 아브람은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12절에 보면 이스마엘에 대해서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 것이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이 예고하신 대로 이스마엘의 문제는 그 후 역사가 펼쳐지는 대로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인 문제로 계속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동 분쟁의 빌미가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리는 그 시대의 도덕적 관점과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악일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람과 사래가 행한 그 일들은 도덕적으로, 관습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를 이루기 위한 선한 의도에서 나온 행위였습니다. 특히 사래의 입장에서는 많은 희생을 감수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죄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자기희생을 감수하며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행한 일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참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곧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아브람의 신앙생활을 보면 그는 하나님의 계시에 접촉하면서 움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일 하나에 있어서는 계시의 접촉이 빈곤했습니다. 아마 아브람은 자기가 자식을 낳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경륜을 펴나가는 일에 있어서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그 뜻을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한 것 같습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착각이요, 실수였습니다. 아브람이 행한 행동을 동양사상대로 말한다면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해 놓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성경이 말하는 사상이 아닙니다. 사람의 할 일이라는 것도 결국 내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이 옳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그것을 재가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곧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참 뜻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때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에게 여쭈어 보고 그분의 계시에 의해서 하려고 하는 자세가 바른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물론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옳은 일이고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여러 가지 형세를 보아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이 된다고 해도 그냥 밀고나가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하나님께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마엘 문제가 바로 아브람이 자기 뜻에 옳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밀고 나간 결과로 생긴 것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큰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브람의 이스마엘 사건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많은 문제 중에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수행해 나갈 때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참 뜻인지,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뜻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안 될 때 우리도 아브람과 똑같이 이스마엘 문제를 양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16장의 이스마엘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언약을 사람들이 망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통하여 사람이 하는 일을 대비하여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마치 에서와 야곱을 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와 비약속의 자녀가 어떻게 나오는 지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이루어나가실 때 사람의 기술과 방법과 끈기와 노력과 인내와 낮아짐이나 그 무엇이든지 간에 다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길로만 이루어내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집념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하였습니다.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세계를 망쳐놓았습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부패하여 선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인간이 아무리 선하게, 아름답게, 욕심 부리지 않고 이루어 놓은 찬란한 문화라고 하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진노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을 향하여 불태워 버리고자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사람들이 힘을 합하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고집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아니다, 내 나라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하시자 그 아들을 죽여 버린 것이 바로 이 땅의 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으심 앞에 서지 않은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결코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은지를 모르는 것이 아직도 죄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마엘과 이삭을 신약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이스마엘은 인위적인 작품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람이 할례를 받고 나서 주시는 자녀입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만이 약속 안에 들어가게 됨을 보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4:21-31절을 보면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고 했습니다.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 계집종에게서 난 자, 육체를 따라 난 자, 이것이 이스마엘이며, 사람의 행위로 구원에 이르고자하는 사람들의 대표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 홀로 이루어 내시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고 하였다가 나온 것이 이스마엘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면 자꾸만 이스마엘을 양산시켜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고 인간적인 방법, 세상의 방법을 따라 일하는 것은 다 이스마멜을 양산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이스마엘을 양산해 낸다하여도 결국은 다 내어 쫒기는 신세입니다. 그러나 약속의 자녀는 자유자의 자녀이며, 위에서부터 났으며,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위의 예루살렘이기에 출처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속받은 자들이 바로 약속의 자녀입니다. 사람의 적당한 종교적인 기술과 인위적인 행함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자만이 그래서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자기를 새롭게 창조하신 주님만 바라보는 자가 약속의 자녀입니다.
  
오늘날도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자들이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듯이 그러므로 성경은 이스마엘을 내어 쫒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누구를 쫓아내어야 합니까? 이스마엘을 쫓아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보다 사람의 열심을 보이고자 하는 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기 보다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세상적인 비전을 심고 있는 자, 하나님의 일이 자기들이 아니면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이 바로 이스마엘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큰 업적을 드러내고 많은 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큰 교회를 이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의 약속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내어 쫒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스마엘을 보면서 사람의 계획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내지 못함을 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홀로 자기의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어 내셔서 자기 백성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스마엘의 길이 아니라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늘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약속의 실체가 바로 새 언약으로 주어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언약을 자신의 주권과 뜻 가운데 이루어 가심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늘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강설날짜 조회 수
264 [창세기 31장] 야곱의 귀향! 창 31:1-55 손재호 2009-03-01 5858
263 [창세기 30장] 야곱의 독립 투쟁 창 30:25-43 손재호 2009-02-22 5331
262 [창세기 29-30장] 야곱을 연단하신 하나님 창 29:1-30:24 손재호 2009-02-15 5006
261 [창세기 27-28장] 벧엘의 하나님! 창 27:34-28:22 손재호 2009-02-08 4461
260 [창세기 27장] 야곱을 축복하는 이삭 창 27:1-33 손재호 2009-02-01 5773
259 [창세기 26장] 이삭과 함께 하신 하나님 창 26:1-35 손재호 2009-01-25 6481
258 [창세기 25장] 야곱을 택하신 하나님 창 25:19-34 손재호 2009-01-18 4671
257 [창세기 25장] 아브라함의 죽음 창 25:1-18 손재호 2009-01-11 5197
256 [창세기 24장] 이삭과 리브가의 혼인 창 24:1-67 손재호 2009-01-04 5778
255 [창세기 22-23장]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 창 22:20-24, 23:1-20 손재호 2008-12-28 4776
254 [창세기 22장]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창 22:1-19 손재호 2008-12-21 5580
253 [창세기 21장]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맹세 창 21:22-34 손재호 2008-12-14 5884
252 [창세기 21장] 이삭과 이스마엘의 분리 창 21:1-21 손재호 2008-12-07 4776
251 [창세기 20장] 아브라함의 두번째 실수 창 20:1-18 손재호 2008-11-30 5840
250 [창세기 19장] 롯의 인생이 주는 교훈 창 19:30-38 손재호 2008-11-23 6149
249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창 19:23-29 손재호 2008-11-16 4870
248 [창세기 19장] 농담으로 여긴 롯의 사위 창 19:1-22 손재호 2008-11-09 4966
247 [창세기 18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예고 창 18:16-33 손재호 2008-11-02 5937
246 [창세기 18장]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15 손재호 2008-10-26 4558
245 [창세기 17장]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창 17:1-27 손재호 2008-10-19 513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