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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창 22:20-24, 23:1-20
성경본문내용 (20)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21)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22)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23)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24)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1)사라가 일백 이십 칠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의 향년이라(2)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3)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가로되(4)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5)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6)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7)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거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8)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9)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하기를 원하노라(10)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11)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12)아브라함이 이에 그 땅 백성을 대하여 몸을 굽히고(13)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14)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15)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16)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17)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을 바꾸어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18)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19)그 후에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마므레는 곧 헤브론이라)(20)이와 같이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강설날짜 2008-12-28

2008년 12월 28일 설교


사라의 죽음과 막벨라 굴


말씀:창세기 22:20-24, 23:1-20

창세기 22:20-24절은 아브라함의 친척의 간단한 족보입니다. 창세기 11:26절에 보면 데라가 나이 70세에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란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본토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 나홀이 언제쯤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북서쪽 메소포타미아의 밧단아람 즉 하란 가까이로 이사했는지는 모르지만 창세기 24:10절에 보면 나홀의 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여튼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리는 사건이 있은 후에 어떤 사람한테서 밀가가 자신의 동생 나홀에게서 자녀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본 대로 밀가는 원래 하란의 딸입니다. 나홀에게는 조카이지만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근친결혼은 당시 하나의 풍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도 이복 누이 사라와 혼인하였습니다. 그런데 밀가가 나홀에게서 낳은 자녀들이 어떠합니까? 21-22절에 보면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고 했습니다. 밀가는 나홀에게서 아들 여덟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또 나홀은 첩 르우마에게서 네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볼 것은 밀가의 소생 중에서 브두엘이라는 아들입니다.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습니다. 지금 창세기 저자가 이 계통을 분명히 해 주기 위해서 이 족보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브두엘은 아들과 딸을 낳았는데 아들은 라반이고, 딸은 리브가 입니다. 브두엘의 딸 리브가 즉 라반의 누이 리브가가 나중에 이삭의 아내가 됩니다. 사라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다가 믿는 자들의 어머니가 될 생활의 행적을 남겨 놓고 이제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아름다운 세계로 갈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땅 위에서 경영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일 가운데 안살림을 감당할 리브가가 기다라고 있었습니다. 곧 아브라함을 이어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갈 이삭의 아내가 리브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사라가 하나님 앞으로 간 사실을 기록하기 전에 잠깐 리브가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브가가 성년이 되어 시집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사라는 127세로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사라가 90세에 이삭을 낳았으니까 그때 이삭의 나이는 37세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삭은 40세에 혼인을 하게 됩니다(창 24장). 어머니 사라가 작고한 뒤 한 3년쯤 어머니 없이 혼자 살다가 리브가가 들어와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사라는 아브라함의 거룩한 집안, 하나님의 백성의 집안을 이루어 나아가는 일을 127년 동안 담당하다가 하나님 앞으로 갔고, 좀 있다가 그를 계승해서 리브가가 들어와서 그 일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계속해서 이 땅위에서 하나님의 경영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을 여기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창세기 저자인 모세가 사라의 죽음 사건을 기술하기 전에 아브라함의 친척의 족보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23장은 사라의 죽음과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헷 족속으로부터 사는 이야기입니다. 이 사건은 인간적으로 보면 남편이 아내를 장사하기 위해 장지를 사는 평범한 상거래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이 사건 속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계시가 있습니다. 1-2절에 보면 사라는 127세에 죽었고,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37세였습니다. 사라는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었는데 이 일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 앞에 바친 후 적어도 20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입니다. 그 20년 동안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사라가 헤브론 즉 기럇아르바에서 죽은 것을 볼 때 브엘세바에서 약 65마일(105km) 떨어진 헤브론으로 올라와 살았습니다. 그 동안에 사라는 점점 기력이 쇠하여져 갔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와 아내 사라가 점점 기력이 쇠하여져 가고 하나님이 언제 불러 가실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브엘세바에서 헤브론으로 이사를 한 것 같습니다. 브엘세바나 그랄은 블레셋 사람들이 주인 노릇하고 있었던 곳이고, 헤브론은 헷 족속이 주인 노릇하고 있던 땅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목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초지가 있는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 중요했겠지만 헤브론으로의 이동은 단순한 목초지를 찾아 이동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자기나 아내 중 한 사람이 죽으면 거기에 장사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미리미리 이사한 것 같습니다. 사라가 죽어 장사할 때 보면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대단히 친절하게 잘 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장사를 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의 땅에다 매장을 해 놓으면 후에 말썽이 될 수도 있고 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친절한 헷 족속들이 사는 곳에 가서 법적으로 인정되는 자기 소유의 묘실을 장만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던 아브라함은 평생의 믿음의 동지였던 아내 사라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그러나 마냥 슬퍼만하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3-4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일어나 헷 족속에게로 가서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우거한 자니 청컨대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지를 주어 소유를 삼아 나로 내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시오”라고 정중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이에 5-6절에 보면 헷 사람들은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라고 했습니다.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방백, 곧 하나님의 귀족으로 인정하며 가장 좋은 묘실을 택하여 죽은 자로 장사하라고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7절에 보면 이에 아브라함은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하며 일어나서 절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예를 갖추어 정중히 감사를 표하였습니다. 그런 후 8-9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어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그로 그 밭머리에 있는 막벨라 굴을 내게 주게 하되 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서 당신들 중에 내 소유 매장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때 10-11절에 보면 그 말을 듣고 앉았던 소할의 아들 에브론이 대답하기를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소할의 아들 에브론이 대답하면서 ‘내 주여’라고 했는데, 이는 아주 높여 대접하는 표현입니다. 지금도 유대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 할 때 존경의 뜻을 담아 ‘아도니’ 곧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에브론이 바로 ‘아도니. 그렇게 마시고 내 말을 들어주시오. 나와 당신 사이에 그것 가지고 따질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냥 거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거저 받지 않았습니다. 12-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의 호의에 감사하여 일어나 다시 한번 절하며 말했습니다. “그 땅 백성의 듣는데 에브론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노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사려고 작정하고 간 것입니다. 15-16절에 보면 에브론이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지만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돈을 주고 사고 팔수 있겠느냐 그냥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데서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17-20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성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 앞에서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있는 에브론의 밭과 그 속의 굴과 그 사방에 둘린 수목을 다 자신의 소유로 정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곧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모든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공식적으로 사백 세겔을 주고 사서 에그론의 밭과 그 속에 있는 막벨라 굴을 사라의 매장지로 정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공짜로 매장지를 쓰도록 하였지만 굳이 정당한 돈을 주고 매장지를 샀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에브론이 소유하고 있던 밭의 귀퉁이에 있는 막벨라 굴을 미리 매장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밭과 굴을 돈을 주고 사고자 처음부터 작정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에브론과 헷 족속 사이에 사이가 좋아서 공짜로 매장지를 써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후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또 후손들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분명한 소유권을 확보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정식으로 돈을 주고 계약한 다음 매장지를 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들로부터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선생님이라고 존경을 받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우거자요, 나그네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적인 효력이 있는 방식을 통해서 정식 매매를 통해서 매장지를 산 것입니다. 당시에는 일정한 공회소에서 거래를 해야 법적인 효과가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성문이 재판정이었고 공회소였습니다. 10절에 보면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문에 들어온 그곳 곧 성문이 바로 공청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다스리는 사람이 앉아서 일을 보기도 하고 재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거기서 물건을 매매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매장지를 공석의 여러 증인들 앞에서 묘실의 소유주를 만나 이야기함으로써 그 일을 공식적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 묘실에 대한 소유권을 공개적으로 확보한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왜 굳이 그렇게 돈을 주고 공식적인 매매를 통해 막벨라 굴을 매장지를 확보한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 땅을 자신의 땅으로 생각하고 정착지를 삼고자 그렇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보다 더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전 생애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을 정하여 거기서 정착하고 안주고자 하며 자리를 잡고자 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 이삭도 그랬고, 손자 야곱도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허락하신 그 약속의 땅에 거하면서도 아브라함은 늘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생활 노선에서 다른 길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아브라함은 이미 그의 자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15:13-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의해서 자신의 자손들이 어떻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정복자 노릇하며 살라고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 볼 때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 어디에 가서 정착하여 집을 세우고 안주하더라도 그것을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가 왕으로서 나라를 세우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정착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왕 노릇을 그만두고, 정착하는 것조차도 스스로에게 허락지 아니하고 방랑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생 동안 나그네로 산 것은 그가 정착할 곳이 없어서 그렇게 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뜻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인생관에 따라 이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분명히 하고 살았습니다. 그는 우르에서 도시 생활을 하다가 떠나온 사람입니다. 온갖 우상 숭배에서 비롯된 흑암과 타락의 사회상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나그네의 길을 취해 나온 것입니다. 그의 목적지는 가나안 땅이 아니라 아름다운 나라였습니다. 곧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산 아브라함은 인간들의 사회에서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 그 아름다운 세계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름다운 나라 곧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나라를 잘 알고 그 나라를 사모하는 심정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 세상의 생활을 임시의 생활, 곧 나그네의 생활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같은 깊은 신앙의 터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 정착하지 않고 아름다운 나라를 소망하며 일생 동안 우거자요, 나그네로 산 것입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신앙에 대해서 히브리서 기자는 어떻게 증거 했습니까? 히브리서 11:9-10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마치 이방 땅에 있는 것같이 약속의 땅에 우거하며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아들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로 그냥 우거한 것은 믿음으로 한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경영하시는 터가 있는 성을 바라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경영하실 아름다운 나라를 찾고 있었기에 그는 장막생활을 그만두고 정착의 생활로 들어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만 장막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아들 이삭과 그리고 손자 야곱과 함께 장막에서 살았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낳은 때가 이삭의 나이 60세입니다(창 25:26). 아브라함은 그 때 160세였습니다. 아브라함이 175세를 살았으니까 아브라함은 이삭과 75년 동안 동거한 셈이고, 손자 야곱과는 15년을 함께 장막생활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한 장막에 다 모여 살았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이삭도 장막생활을 하고, 야곱도 장막생활을 해서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 자세의 대열에 다 같이 서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사라도 일생 그런 신앙의 자세를 취하고 살아서 모든 믿는 자의 어머니로 존경받을 만큼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내외는 다 같이 그런 신앙 자세로 장막에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그 이전에 있었던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 또 그 밖의 훌륭한 믿음의 인물들이 히브리서 11:13절에 보면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날 은혜의 왕국, 아름다운 세계를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참된 신앙의 자세라면 아무리 안정된 집 속에서 살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외국인이요, 나그네이다 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일생 동안 아름다운 본향을 사모하며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막벨라 굴을 돈을 주고 싸서 매장지로 삼은 것은 자신이나 후손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면 그들은 모두다 막벨라 굴에 묻힐 것을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야곱과 요셉의 경우만 보겠습니다. 창세기 49:29-33절을 보면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의 최후의 유언이 무엇입니까? 그 언약의 땅에 묻히는 것입니다. 지금 아들이 출세한 애굽에서 묻히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땅의 그 조상이 있는 무덤에 묻히는 것이 최후의 유언입니다.

창세기 50:24-26절을 보면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요셉 역시 최후의 유언이 자기의 해골을 애굽에서 메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에 묻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권고하셔서 이 땅에서 나갈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때에 나를 매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은 미이라를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이기에 우선 애굽에 그 시신을 안장하여 두지만 그 유언을 따라 출애굽 때 요셉의 시신을 메고 나가기 위해 미이라를 만든 것입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차매 출애굽을 합니다. 이때 요셉의 해골을 메고 나갑니다. 그런데 요셉의 해골은 막벨라 굴에 묻히는 것이 아니라 야곱이 세겜의 추장에게서 산 땅에 장사를 지냅니다. 이곳이 요셉의 후손들인 에브라임 지파가 정착한 곳이니 그곳에 요셉을 묻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다 정복하였다는 것이 여호수아서인데 그 마무리가 요셉의 해골을 가나안 땅에 묻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막벨라 굴에 장사되기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며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언약을 받은 당사자들이 죽어도 그 언약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해골을 메고 와서 그 약속의 땅에 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 땅의 일부를 사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이 땅을 약속하신 대로 주실 것을 믿고서 준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라가 제일 먼저 묻힌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돈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사서 매장지로 삼은 아브라함의 그 믿음을 우리에게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살게 하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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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창세기 22장]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창 22:1-19 손재호 2008-12-21 5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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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창세기 21장] 이삭과 이스마엘의 분리 창 21:1-21 손재호 2008-12-07 4773
251 [창세기 20장] 아브라함의 두번째 실수 창 20:1-18 손재호 2008-11-30 5835
250 [창세기 19장] 롯의 인생이 주는 교훈 창 19:30-38 손재호 2008-11-23 6145
249 [창세기 19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창 19:23-29 손재호 2008-11-16 4869
248 [창세기 19장] 농담으로 여긴 롯의 사위 창 19:1-22 손재호 2008-11-09 4961
247 [창세기 18장]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예고 창 18:16-33 손재호 2008-11-02 5934
246 [창세기 18장]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창 18:1-15 손재호 2008-10-26 4555
245 [창세기 17장]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창 17:1-27 손재호 2008-10-19 5123
244 [창세기 16장] 아브람과 이스마엘 창 16:1-16 손재호 2008-10-12 4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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